광주인권영화제(이하 인권영화제)가 11월 25일 개막한다. 시작부터 15주년을 맞는 지금까지, 무료 상영의 원칙을 지켜오고 있는 인권영화제가 버틸 수 있는 힘은 한국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를 갈구하는 모든 사람들의 지지와 응원, 기꺼운 후원과 지원을 통해 만들어져 왔다. 인권영화제를 준비하는 활동가들이 따로 있기는 하지만, 감독과 관객, 스텝이 엄격히 구분되기보다는 인권영화제의 지향을 나누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인권영화제였다. 매년 자원활동을 통해 더욱 적극적으로 주체의 범위를 넓혔으며, 주최와 관객이 따로 있는 인권영화제보다는 함께 만들어가는 인권영화제가 되어 왔다.
이처럼 누구에게나 문턱 없는 인권영화제가 걸어가야 한다는 마음은 변하지 않아하지만, 올해 광주인권영화제는 매끄럽지 못한 길을 만들고 있다.
시민들의 힘으로 만들어 가는 광주인권영화제
그동안 인권영화제는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단체지원기금 등 사회적 자본으로 사업비의 '일부'를 충당해왔다. 자본과 국가로부터 독립된 운동을 위해 자립적인 재정을 마련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지만, 사업비의 규모가 매우 크기 때문에 일부를 의존해 온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 이후 각종 기금으로부터 정부 비판 세력이 배제되는 맥락에서, 제13회 광주인권영화제부터는 기금 심사에서 우수한 결과를 냈지만 최종 탈락하였다.
이후, 인권영화제는 이런 계기를 통해 더욱 자립적인 재정 마련에 힘을 쏟기로 하였고 광주인권운동센터 내부 사업이 아닌, '광주인권영화제조직위원회'라는 독립적인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기 시작했다. 조직위원회 출범은 인권영화제가 더 이상 열악한 환경에서 힘쓰는 극소수의 잔치가 아닌, 시민들의 힘으로 안정적이고 내실 있는 대중영화제를 만들자는 마지막 보루였다.
강운태 광주시장의 인권 프렌들리에 녹아들고 있는 시민단체
하지만 걸림돌이 생겼다. 늘 배고프고 가난해도 어렵게 잘 치러온 조직위원회가 올해 인권영화제 예산의 상당수를 광주시로부터 후원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
문제에 앞서, 현재 광주시는 유엔으로부터 '인권도시'로 지정 받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현재 유엔에는 광주를 인권도시로 지정하는 프로그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광주시는 무리하게 다양한 인권사업들을 추진하고 있다. 알아보니 인권도시 지정은 강 시장이 인수위를 거치면서 민선5기 100대 과제 중 하나였고, 취임 이후 민주정신선양과를 '인권담당관실'로 개편하며 열과 성의를 다하고 있는 사업이었다.
지금은 인권담당관 공개채용 과정을 하면서 이름 빨 있는 인사들이 입사서류를 넣으며 화제가 되고 있는데, 문제는 권력 있는 자들만 들이댈 뿐만 아니라 시민단체에서도 무턱대고 인권 사업과 출연기관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중에 조직위원회도 갑작스레 광주시로부터 지원받게 되었는데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정부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시민이 감시하는 곳이 하나 둘 늘어날 때마다 우리사회가 깨끗해질 가능성은 높아진다. 감시하는 시민이 있는 곳에서는 누구든 마음대로 전횡하기 어려운 법이고, 시민단체들이 감시활동을 하는 만큼 우리사회에 그만큼 보탬이 된다.' 시민으로부터의 깨끗한 재정과 운영을 강조하는 시민단체인 참여연대가 지향하는 가치문구 중 하나다.
하지만 요즘 시민들이 생각하는 시민단체는 어떤 모양새일까? '시민 없는 시민단체', '정부 출연단체, 흔히 말하는 관변단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신문기사에도 나돌듯이 실제로 시민참여와 시민들의 기금으로 운영되는 곳이 줄어드는 반면, 정부에 의존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이 문제는 활동가의 생계가 불안정해지면 활동마저 불안정해지는 원인이 되기도 하며, 활동비에 의존하지 않고 활동가 개인이 독립적으로 사업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활동가 개인의 능력차에 따라 활동의 지속성을 맡겨두게 되는 폐단에 있다. 활동가 생계비나 사업비가 조직 공동의 책임임에도 불구하고 시민단체 수장들은 활동가들에게 자기 밥 그릇(공모사업)을 챙기길 바라는 게 정상적인 시민단체의 모습인가 의문이 든다.
물론 세금으로 조성된 지원기금을 받아 공익사업을 전개하는 것이 시민단체의 도덕성을 가늠하는 기준은 아니다. 하지만 정부, 기업의 비판과 감시에 집중하는 시민단체가 그들의 눈치를 보며 불필요한 논란을 만들거나 표현의 자유가 가로막혔던 게 한 두 번이었던가.
서울인권영화제 사례를 보더라도
2009년 서울인권영화제 예를 들어볼까 한다. 서울시가 13회 서울인권영화제 개막 이틀 전에 청계광장 사용을 돌연 불허 통보한 적이 있었다. 당시 서울인권영화제는 서울시에 청계광장 사용을 신청한 후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으로부터 사용 허가 공문을 받았고, 청계광장 사용요금까지 납부한 상태였음에도 불허했지만, 공안탄압 역효과와 어려운 상황을 듣고 달려온 결집된 시민들의 힘으로 성황리에 치룬 적이 있다.
이처럼 인권영화제마저 가로막는 지금 우리 사회의 현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막히지만, 이런 상황이 비단 인권영화제만의 상황이 아니다. 그동안 국가는 정부의 일방적 정책에 반대하는 모든 목소리를 '반정부'로 규정해버리며 공안 정국을 형성하고 있는데, 그 결정적인 사건으로 '촛불정국에서 집회시위에 가담한 단체가 정부지원 중단'된 경우가 그러하다.
국가의 폭력과 지원중단 소리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죽어나는 건 '시민들이 만들어가는 인권영화제'가 아닌 '정부지원금에 의해 생존하는 시민단체들'이다. 결국 정부 눈치 보며 비판의 목소리는 줄어들 수밖에…. 과연 이런 상황에서 광주인권영화제는 광주시로부터 제대로 보장받을 수 있으며, 시대 공안탄압을 이겨낼 수 있을까? 4대강 사업에 조건부 찬성 (아니)찬성하고 있는 강운태 시장이 주는 돈으로 4대강 사업을 반대한다는 광주인권영화제의 명철한 슬로건 '그만파쇼'를 한다니 싸늘한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
무분별한 소비와 행정낭비
또, 광주시 후원이 기존 인권영화제 예산에 비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며 편의적인 모습이 좋지 않아 보인다. 대표적인 예로 '광주시'가 명시되지 않은 기존 홍보물이 무더기로 재활용 분리수거함에 처박혀 있는 모습, 지원받은 돈은 0원 한 푼도 안남기고 써야한다는 어느 관계의 말을 들으며 과잉소비, 행정낭비가 습관적으로 얼마나 심각해질지 느낄 수 있었다.
만약 돈 없고 생존권 문제에 직면해있는 비정규노동자들이나 인권영화 속에서 구제받아야 할 주체들이 이 광경을 보면 어땠을까? 비약일 수 있지만 지원사업은 인권-우리 주변과 연대해야함을 잠시 잊게 만드는 로또 맞은 느낌이자, 그 방식에 익숙하거나 편해지고 싶어 하는 인간 스스로의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게 만든다.
앞으로 광주인권영화제는 어디로…
지난 서울인권영화제 사태를 보며 광주인권영화제는 지금의 결정이 향후 어떤 영향을 미칠지 우리는 세심하게 고려하고, 어디에 뿌리내리고 있는지 어디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는지를 되돌아 봐야 한다. 그리고 '가장 낮은 곳을 향한 치열한 시선, 소외된 곳을 향한 그 치열한 시선'을 향해 가겠다는 조직위원회 발기인 선언문의 마지막을 다시 생각해보자. 그리고 힘들었지만 '기업과 국가권력으로부터 독립하여 시민의 힘으로 운영된다.'라고 했던 지난 인권영화제를 되돌려봤으면 한다.
이 당당한 말들과 삶을 담은 영상들로 인권영화제가 채워져야 한다는 단순한 사실 속에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는 소박한 진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