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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왜?'와 만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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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왜?'와 만나야 합니다

[리영희 선생님을 보내며]

리영희 선생님,

선생님은 아마도 한국사회에서 개인적인 인연이 없더라도 누구나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아니 부르고 싶은 몇 안 되는 분 중의 한 분일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 엄혹한 시절에 선생님의 책을 읽고 세상을 보는 눈을 떴던 모든 사람들에게 선생님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선생님과 일면식도 없는 저에게도 선생님이었습니다. 모두들 귀와 눈을 가린 채 살아야 했던, 그래서 더욱 세상 소식에 굶주려 있던 70년대 중반, <창작과비평> 과월호에 실렸던 선생님의 베트남전 글을 읽고 받은 충격을 저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감옥에서 선생님의 '역설의 변증'을 읽고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가슴을 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그러한 개인적인 독서인연을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그런 사사로운 관계에 머물러 있기에는 너무나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선생님의 타계는 <전환시대의 논리>나 <우상과 이성>을 읽었던 몇몇 사람들만의 슬픔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2010년 12월, 연평도 대포소리에 대포폰은 날아가고, 천안함 의문은 가라앉고, 서해에 미국 항공모함이 뜬 상태에서 한미fta가 타결되고, 안보에서 통일, 정치, 경제에 이르기까지 망가질 대로 망가진 mb정부의 이 퇴행적 상황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선생님은 선생님의 책을 읽지 않은 더 많은 사람들 속에 서계셔야 합니다.

벌써 그렇게 되었군요. 선생님이 전두환정권에 의해 강제 해직되어 한창 고생을 겪고 계시던 나이, 저도 바로 그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 동안 세상은 참 많이 변했습니다. 선생님이 쓰신 원고지 매수만큼 세상은 변했습니다. 그래서 궁금합니다. 청년실업 100만 시대에 88만원세대는, 그리고 비정규직 800만 시대에 미래 불안에 떨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서민들은 선생님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바로 그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이제 다시 읽혀져야 합니다. 굳이 선생님의 책이 아니라면 어떻습니까. 이 시대의 많은 소시민들은 선생님 뒤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소시민들은 결단해야 할 때 결단하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대부분의 소시민들은 작은 이익에 울고 웃으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이들이 선생님과 다시 만나기 위해서는 '바닥'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선생님이 전쟁 때 목격했던 힘없는 백성들에 대한 뜨거운 인간애, 쌀부대를 빼돌리던 하사관의 뺨을 때리던 그 심정의 바닥, 팩트를 찾아 밤을 지새던 열정의 바닥이 무엇인지 거기서 다시 만나야 합니다.

지금은 '왜?'라는 질문이 사라진 시대입니다. 무엇이 진짜 행복한 삶인지,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지에 대한 질문이 실종된 시대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늘 가지고 계셨을 '왜?'와 만나야 합니다. 바로 거기가 바닥일 테니까요. 그리고 선생님의 'simple life, high thinking'과 만나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바닥과 바닥끼리 연대해야 합니다. 조중동의 요사스런 선동질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바닥으로 내려가 뿌리끼리 연대해야 합니다. 이제 민주주의는 바닥에서부터 다시 올라와야 합니다. 저는 이 험난한 한반도 정세를 헤쳐나갈 수 있는 길은 그러한 흔들리지 않는 민주주의 밖에 없다고 믿습니다. 선생님의 타계는 그러한 맥락에 놓여져 있습니다.

선생님은 여러 차례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현상을 보지 말고 그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아야 한다고. 이제 우리는 바닥으로 내려가 선생님과 다시 만나렵니다. 선생님의 그림자가 아닌 바닥의 리영희가 되어 다시 만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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