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후보가 경제민주화를 포기한 줄 알았다. 그런데 느닷없이 경제민주화를 다시 들고 나오는 걸보면 경쟁후보의 막판 추격세에 박 후보도 정말 다급해질 대로 다급해지기는 한 모양이다. 삶아먹은 사냥개를 다시 끄집어내어 뼈다귀라도 다시 쓰려고 하는 모양인데, 뼈다귀에 붙어 있는 먹다 남은 살점마저도 아쉬운 형편인 모양이다. 소문대로 박근혜의 캠페인에 빨간불이 들어온 게 틀림없다.
어쨌든 평소 경제민주화의 상징처럼 되어있던 한 노정치가의 말로라는 것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삶은 사냥개 취급을 받는 것을 보는 마음은 씁쓸하기 그지없다. 비록 정치철학은 달라도 그와 함께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을 주장하던 필자의 입장에서는 그 노정치가에 대한 연민의 정을 금할 길이 없다. 그래도 그 노정치가는 자기나름의 신념과 소신을 갖고 행동한듯한데 그런 대접을 받다니, 아무리 선거의 여왕이라지만 너무 한다는 분노감마저 든다. 그분은 그런 대접을 받으면서도 왜 거기 그대로 있나 하는 아쉬움도 있다.
밖으로부터는 글로벌 경기침체 위기가 닥쳐오고 있다. 안에서는 이명박 정부 5년의 실정으로 말미암아 중산층이 몰락하고 민생이 파탄나면서 가계부채위기가 끌어 오르고 있다. 양극화와 사회 갈등의 위기도 고조되고 있다. 이러한 안팎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꼭 해야 하는 것이 바로 경제민주화다. 경제민주화가 이 시대의 화두가 된 이유다.
그런데 박 후보는 오로지 표에 도움이 되느냐, 안되느냐에 따라 경제민주화를 삼켰다, 내뱉었다 하면서 말 바꾸기를 하고 있다. 우리가 직면한 위기의 본질을 모르고 있다는 얘기고 경제민주화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는 얘기다. 박 후보는 경제민주화를 단지 선거를 위한 상술로 이용해먹으면서 중산층을 복원하고 민생을 챙기겠다고 립서비스만 열심히 하고 있다.
왜 중산층이 몰락했고 민생이 파탄났는지에 대한 반성은 없었다. 오로지 선거 구호만 있을 뿐이다. 파탄난 민생과 몰락한 중산층의 애환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여성' 대통령의 섬세함과 따뜻함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집권에 대한 욕망과 집념만이 보일 뿐이다.
박 후보는 '줄·푸·세'도 경제민주화라는 궤변을 주장해 많은 사람들을 아연실색시켰다. 부자세금 줄이고, 재벌규제 완화해주고, 서민·중산층의 정당한 권익보호 요구는 엄하게 법으로 다스리는 친재벌·친부자 정책이 경제민주화라는 것이다. 온갖 당치 않은 이유를 대가면서 재벌들이 골목상권을 짓밟으며 부당하게 획득한 기득권에는 손가락 하나 안대고 보호해주겠다는 것이 박 후보의 경제민주화라는 것이다. 박 후보는 재래시장을 십수차 방문했다고 한다. 영세상인들의 손을 잡으면서 골목상권과 재래시장을 보호하고 지원해줄 테니 자신에게 표를 달라고 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날 국회에서 그들을 도울 유통산업발전법을 부결시키는 이중성을 보였다. 이것이 박 후보의 경제민주화다. 박 후보의 친재벌적 사고의 경직성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새누리당과 박 후보는 '여성' 대통령을 새로운 선거상술로 내세우고 있다. 얼핏보면 약자 편에 서서 강자의 횡포를 막아주는 경제민주화와도 잘 어울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려운 국민들의 팍팍한 삶을 보듬어 안는 여성대통령의 따뜻한 손길은 그들의 경제민주화에는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정작 어머니 같은 따뜻한 보호의 손길은 골목상권과 재래시장의 영세상인들을 보듬어 안기보다는 오히려 재벌총수들을 먼저 감싸 안는 '친재벌적 여성성'을 보이고 있다. 서민과 중산층의 아픔을 보듬어줄 따뜻하고 부드럽고 섬세한 여성 대통령이라고 선전하고 있지만 오히려 '면도칼 테러'도 굳건히 넘긴 강인한 박정희 스타일의 카리스마형 '남성성'과 잘 어울린다.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다"는 박 후보의 위압적 태도와도 잘 어울린다.
여성을 위해 한 일이 거의 없는 후보, 전혀 여성스럽지도 않은 여성대통령이 '여성성'을 내세워 경제민주화를 말할 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혼란스럽다. 박 후보의 여성대통령론과 경제민주화가 잘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박 후보의 여성대통령론이 표를 얻기 위한 얄팍한 선거 상술이 아니라면, 그리고 박 후보의 여성대통령론이 여성으로 위장한 박정희식 불통의 통치가 아니라면 박 후보는 진정한 경제민주화를 해야 한다. 친재벌을 버리고 친서민, 친골목상권, 친영세상인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먼저 친여성이 되어야 한다. 똑같은 일을 하고도 여성들이 남성의 60% 정도 밖에 보상을 받지 못하는 성차별적 임금구조, 무엇보다도 먼저 이것을 고쳐야 한다. 여성대통령이라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경제민주화 정책이다.
박 후보는 '준비된 여성대통령'이라는 선거구호를 쓰기 전에 이 문제에 대한 확실한 해답부터 먼저 '준비'해서 이 나라의 여성들에게 밝혀야 할 것이다. 필자도 투표권을 가진 두 딸의 아버지다. 이 땅의 모든 여성들이여, 그리고 딸을 가진 이 땅의 모든 부모들이여, 우리 모두 박 후보의 답을 기다리자. 말뿐인 선거구호에 현혹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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