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20여 년 동안 고미술이라는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우리 고미술에 담긴 아름다움의 근원과 참된 의미를 찾아보고자 했다. 늪이라는 데가 언뜻 보기에는 얕은 저수지 정도로 여겨지지만 빠져나오려고 애쓰면 쓸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수렁과 같다. 내게 고미술의 세계는 그런 곳이었다.
그 매력, 아니 마력에 홀려 내 중년의 열정을 상당 부분 쏟아 붓고 몰입하며 그것과 소통하고자 했으나 정신 차려보면 나는 늘 그 주변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고미술에 녹아 있는 '오래된 아름다움'이라는 화두는 쉽게 속살을 보여주지 않는 여인처럼 늘 나를 애타게 했다.
그럴수록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우리 고미술의 아름다움은 언제나 거부할 수 없는 힘으로 유혹으로 나를 그 영원히 풀리지 않을 화두를 풀어내는 작업에 끌어들이곤 했다. 그러나 나는 영혼과 이성을 마비시키는 그 유혹을 애써 거부하지 않았다.
고미술 컬렉션으로 가는 여정은 컬렉션 대상의 이름을 찾아 불러보고 그 형태미와 느낌을 눈과 마음에 담아보는 데서 시작된다.
미술과 민속, 공예의 개념이 혼재된 고미술품
컬렉터에겐 행일지 불행일지 모르지만, 컬렉션 대상이 되는 고미술품은 그 영역이 대단히 넓고 대상물도 다양하다. 회화, 조각, 공예 등으로 장르 구분이 비교적 분명한 현대미술에 비할 바가 아니다.
우리가 인사동이나 답십리 고미술품 가게에서 볼 수 있듯이 컬렉션 대상 고미술품에는, 흔히 골동품이라 부르는 서화, 도자기, 금속공예품은 물론이고 선사시대 돌칼에서 삼국시대 토기, 조선시대 무덤에 껴 묻었던 미니어처 도자기에다 반짇고리, 은장도 등 규방의 여인들이 쓰던 물건들이 다 포함된다.
또 무병장수와 부귀영화의 소망을 담은 민화가 있고, 사방탁자, 반닫이, 소반 등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사람들의 손때 묻은 가구가 있다. 함지박, 농기구, 등잔대 등 자연과 더불어 농경시대의 생산과 의식주에 쓰였던 물건들도 많다. 3000년이 더 된 물건들이 있는가 하면 불과 몇십 년 전의 물건들도 있다.
▲ 답십리의 고미술품 가게. 1,500년이 더 된 삼국시대 토기에서 불과 몇십년 전에 사용하던 민속,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한 물건들이 가득 진열되어있다. 이렇듯 현장에서 거래되는 물건 중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고미술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들도 많다. ⓒ한길아트 |
이러한 물건들을 뭉뚱그려 우리는 골동품이라 부르기도 하고 고미술품이라고도 한다. 서양 용어인 앤티크(antique)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공식적으로 또는 학술적으로 정해진 이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딱히 한 가지 용어로 지칭하기도 힘들다. 일각에서는 미술 활동의 소산인 미술품과 생활문화의 소산인 민속품으로 대별하자고 제안하기도 한다. 또 미술(art)과 공예(craft)로 구분하자는 주장도 있다. 개념적으로는 한층 정확한 정의이다.
그러나 근대 이전, 사회가 요즘보다 덜 문명화되고 덜 다원화되었던 시대에 만들어진 물건들은 미술과 민속, 또는 공예의 개념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다면적 속성을 가진 물건들이 많고, 더군다나 거래 현장에서는 그러한 개념 정의나 장르 구분이 큰 의미가 없어 컬렉션 대상물의 구분과 명칭은 이매하고 어중간한 데가 많은 것이 우리 현실이다.
어쨌든 이처럼 명칭과 장르구분에서 분명하게 선을 긋기가 힘들다는 사실은 그만큼 컬렉션의 대상으로 하는 우리 옛 물건의 영역이나 가지 수가 다양하고 그 내용이 풍부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컬렉션의 관점에서 고미술품의 성격을 어떻게 정의하고 이해할 것인가?
고미술품의 영역이 포괄적이고 좀 애매한 데가 있으나 기본적으로 미술의 한 영역이다. 그러나 조금 관심을 갖고 그 세계를 살펴보면 초심자라도 고미술의 컬렉션 속성은 같은 미술의 영역인 현대미술품과는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이내 깨닫게 된다. 그 다른 점에는 뭔가 이유가 있는 것이다.
기록이 없어 어려운, 그래서 더 매력적인 고미술 컬렉션
우선 고미술품이 현대미술품과 쉽게 구분되는 차이점을 들라면 대부분 사람들은 제작자, 제작 연대 등에 관한 기록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대개의 고미술품이 그렇긴 하지만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서화처럼 화제(畵題)에다 연대, 작가 서명, 낙관이 있는 경우도 있고, 불상 불화처럼 복장(腹藏) 유물이나 화기(畵記)에 그러한 기록을 담고 있는 유물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작품들이 수적으로 전체 고미술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다시 말하면 제작 기록이 남아 있는 경우는 극소수이고 도자기, 민속품, 가구, 생활도구 등 고미술품 영역에 포함되는 대부분 물건들은 제작기록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요즘이야 찻잔 하나를 만들더라도 작가가 서명을 넣는 세상이지만, 그런 개념이나 문화가 없었던 시대에 만들어진 많은 물건이 컬렉션 영역에 들어와 있는 셈이다. 크게 보면 고미술 컬렉션과 관련해 진위 여부 등 제기되는 많은 논란과 에피소드는 결국 제작기록의 유무에서 비롯한다고 볼 수 있다.
둘째는 유물의 역사성이다. 고미술의 경우 통상적으로 만들어진 지 100년 이상 된 작품 또는 물건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제작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물건을 두고 100년 이상의 역사성 기준에 따라 고미술품이다 아니다를 따지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 대개의 경우 어떻게 보면 오래되었다는 막연한 느낌에 대해 구체적인 연대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셈인데 이런 점이 고미술 컬렉션의 어려움이자 매력이라고 할까?
셋째는 유물의 다양성이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컬렉션 대상에 포함되는 고미술품의 종류는 참으로 다양하고 그 범위도 넓다. 약간 과장하면 오래된 물건이면 다 컬렉션 대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감상과 장식을 위한 미술 공예품보다는 농경시대 생활용품과 생산 도구, 종교적 용도의 물건들이 많은 탓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아름다움(美)과 쓰임(用), 생활과 신앙, 미술이 하나였던 시대에 만들어진 그러한 물건들에 대해 오늘날 현대미술에 적용되는 미학적 해석과 장르구분을 적용한다는 것이 큰 의미가 없음은 당연한 일이다.
▲ 생활과 신앙, 미술이 하나였던 시대 사람들의 삶과 죽음, 미술 창작의 의미를 복합적으로 담고 있는 무속도나 망자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상여를 장식했던 꼭두 등도 훌륭한 컬렉션 대상이다. ⓒ한길아트 |
지금까지 이야기한 고미술품이 현대미술과 달리하는 3가지 속성을 하나로 묶으면, 결국 고미술 컬렉션이란 '제작 기록이 없고 오래된, 그리고 장르구분도 분명치 않은 여러 다양한 물건을 수집하는 일, 또는 그 행위'로 정의할 수 있다. 이 정의가 얼마나 고미술 컬렉션의 본질을 사전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두 가지 측면에서는 고미술 컬렉션의 속성과 매력을 충분히 함축하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컬렉션 대상 물건 대개가 제작기록이 없는데다가 오래되었다는 사실은 물건의 진위 여부 문제와 관련되고 물건의 가치 평가를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진위 감정에 대한 안목을 길러야 함은 물론이고 고고학, 미술사, 민속학, 생활문화사 등 다방면의 역사적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또 고미술품에 대한 지식은 자료나 문헌 연구만으로 갖추어지지 않는다.
현장 견학과 체험도 필수적이다. 학계(아카데미즘)와 업계(시장)를 넘나들며 지식과 체험, 열정을 한 데 녹여 유물에 담겨있는 상징성을 이해하고 역사적 상상력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컬렉션 분야가 다양하기도 하지만, 유물에 따라서는 역사적 연원을 알아보기 위해 2000~3000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보니, 한 영역 안에서도 컬렉션 대상은 바다처럼 넓게 펼쳐져 있는 점이다. 현대미술과는 달리 작가, 장르, 구상 비구상 등으로 관심분야를 분류해 좁혀나갈 수 있는 여지가 크게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컬렉션 영역의 선택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처음 이 고미술 컬렉션에 관심을 갖고 입문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어렵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항들을 요약하면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어렵고 끝이 없다"는 말 외에 달리 고미술 컬렉션의 세계에 함축된 의미를 표현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무슨 답변이 그러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게 나의 솔직한 고백이다.
어렵기에 묘미가 더해지고 끌어들이는 그 무슨 힘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진위 감정의 길은 끝이 보이지 않는 미로다. 물건을 보는 안목을 틔워가는 과정도 한 단계 올라서면 다음 단계가 저 멀리 봉우리 되어 가로막는다. 그러다 보니 섭치 수집 단계를 벗어나는 데에도 만만치 않은 비용과 시행착오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 고미술 컬렉션이다.
저자 김치호 1954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1977년 연세대학교상경대학 응용통계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교에서 통계학 석사(1983), 경제학 박사(1987) 학위를 받은 뒤 20여 년 동안 한국은행, 예금보험공사 등에서 한국의 거시경제, 통화정책, 금융위기를 연구했다. 정리금융공사 사장을 역임했고, 연세대학교, 서강대학교 등에 출강하고 있다. 『한국의 거시경제 패러다임』(2000, 한길사) , 『고미술의 유혹』(2009, 한길아트) 등을 저술하고 논문 50여 편을 국내외 학술지에 발표했으며, '유망 미술작가 해외진출 후원모임'을 창립하고 초대 회장을 맡는 등 우리 미술시장 저변 확대를 위한 운동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