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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언론이 희망이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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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언론이 희망이다 <1>

"풀뿌리 언론을 키워라"

올 상반기 언론개혁 논쟁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지만 정작 바뀌어진 것은 별로 없는 듯하다. 최근 순천향대 장호순 교수(언론학)는 '작은 언론이 희망이다'라는 저서를 통해 진정한 언론개혁을 위해서는 지역(郡) 단위의 풀뿌리 언론을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전국지 10개가 신문시장의 95%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서는 다양한 계층의 이익을 언론이 대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프레시안은 저자 및 출판사(개마고원)측의 양해를 얻어 이 책의 주요 부분을 발췌, 5회로 나누어 싣는다. 편집자

1. 머리말

“우리 언론인은 사실의 전모를 정확하게,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보도할 것을 다짐한다. 우리는 또한 진실을 바탕으로 공정하고 바르게 평론할 것을 다짐하며, 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폭넓게 수용함으로써 건전한 여론 형성에 기여할 것을 결의한다.”

신문윤리강령에 명시된 한국 언론의 약속이다. 그러나 한국 신문은 스스로 다짐한 정확하고 공정한 보도를 거듭 외면해왔다. 그 결과 올해 들어 정부와 시민단체에 의해 ‘언론개혁’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언론보도가 불공정하고 부정확하다는 비판이 한국 언론에만 국한된 현상은 결코 아니다. 언론에 대한 불만은 국가를 막론하고 시대를 초월해 제기되어 왔다. 이는 공정하고 정확한 보도가 그만큼 달성하기 어려운 과제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실 ‘정확’과 ‘공정’은 ‘뉴스’와는 부합될 수 없는 말이다. 흔히 뉴스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달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는 환상일 뿐이다. 뉴스는 실제 발생한 현상을 언어와 영상으로 압축해 재구성하는 것으로, 실제 일어난 일과는 상당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더욱이 뉴스의 제작 과정은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오류를 수반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언론보도의 파급효과가 크고 그에 따라 이해관계가 달라지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뉴스를 조작하려는 압력이 언론사 내외에 상존한다.

‘언론개혁’이란 이처럼 언론보도 과정에 본질적으로 내재하는 진실 왜곡의 요소들을 제거하여, 최대한 정확하고 공정한 언론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진실 왜곡의 3단계-취재ㆍ편집ㆍ판매**

뉴스는 크게 3단계를 거쳐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전달된다. 즉 취재 단계, 편집 단계, 판매ㆍ송출 단계를 거친다. 진실 왜곡의 압력은 이 3단계에서 모두 가해진다.

취재 단계에서는 특정인, 특정 계층, 특정 집단, 특정 지역의 입장과 현안만을 다루도록 만든다. 편집 단계에서는 권력이나 광고주나 사주의 요청과 압력에 의해 기사가 삭제되거나 변형된다. 판매ㆍ송출 단계에서는 신문의 발행이나 방송의 허가를 제한하여 뉴스의 수요와 공급을 왜곡시킨다.

한국 신문은 뉴스 제작의 모든 단계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취재 단계에서는 대부분의 기자들이 출입처 기자실에 상주하면서, 관급 자료에 의존해 기사를 작성하고 있다. 한 조사결과 신문에 등장하는 취재원의 63.9%를 정부와 기업측 인사들이 차지했다. 농민이나 노조원의 비율은 1.1%에 그쳤다.

또한 대부분의 신문이 전국지를 표방하면서도 권력과 경제의 중심지인 서울에서 발생하는 뉴스만을 거의 취급한다. 지방 뉴스가 주목받는 것은 대형사고가 터질 때뿐이다.

편집 단계에서의 부당한 압력 문제는 지금까지 가장 큰 주목을 받아왔다. 보수 진영에서는 권력에 의해서, 진보 진영에서는 사주에 의해서 진실 보도가 왜곡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느 주장이 맞는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편집 단계에서의 왜곡과 은폐 압력은 은밀하게 가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예 드러내놓고 하는 경우도 있다. 매일 저녁 7시 광화문 지하도에는 조간신문 가판이 나온다. 정부부처나 기업 홍보실에서 가판신문을 검토한 후 해당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불리한 기사를 빼달라는 것이 한국 언론의 토착문화가 되어버렸다.

판매 단계의 문제도 심각하다. 독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자신들에게 필요한 뉴스가 담긴 신문을 구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소비자들이 불량상품을 도태시키듯이 왜곡 보도를 일삼는 신문을 독자들이 추방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나 자유로이 신문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아무나 신문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난 40년 간 정부는 시설기준 조항을 두고 윤전기가 없으면 신문을 발행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신문사들은 카르텔을 형성하고 가격 담합을 통해 독자들의 선택을 제한했다.

***이제까지 언론개혁운동은 편집단계의 문제에만 초점**

이처럼 신문 제작의 전과정, 즉 취재, 편집, 판매의 모든 단계에서 고질적인 병폐들이 존재하지만, 지금까지 진행된 ‘언론개혁’의 초점은 편집 단계에서 발생하는 권력과 사주의 부당한 압력에 맞춰져 있다. 정부는 일부 신문사주를 탈세와 횡령 혐의로 구속했고, 진보적 신문과 언론인 단체와 시민단체들은 특정인의 신문 소유지분 제한과 편집권 독립의 법제화를 요구하고 있다. 보수 진영에서는 신문고시나 탈세 처벌이 비판적 언론에 대한 탄압이라고 맞서고 있다.

반면 취재 단계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아직 심각히 논의되지 않고 있다. 간혹 불거지는 출입처 기자실의 문제점에 대해서 침묵하기는 보수 언론이나 진보 언론이나 마찬가지이다. 신문 시장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제시되는 해결책도 현재 신문 시장의 틀을 뜯어고치기보다는, 그 틀 속에서 기존 신문사간의 시장점유율을 바꾸기를 기대할 뿐이다.

보다 다양한 계층들을 신문시장에 발행 주체로서 참여하게 함으로써, 소수의 전국지가 독과점하고 있는 신문시장 구도를 혁신하려는 시도는 보이지 않고 있다.

***10개 전국지 전체시장의 95%**

지금과 한국 신문시장의 구조적 모순들을 그대로 둔 채, 신문고시나 편집권 독립이나 소유지분 제한과 같은 조치만으로는 결코 ‘언론개혁’이 이루어질 수 없다. 지금과 같이 10여 개의 거대 전국지들이 신문시장의 95%를 차지하는 상황에서는 설사 일부 신문의 소유주가 바뀌고, 법적으로 편집권 보장이 된다 하더라도, 공정하고 정확한 보도나 다양한 여론수렴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한국 신문이 안고 있는 문제의 근원은 신문의 개인 소유 때문이 아니라, 특별한 개인만이 신문을 소유할 수 있게 만들어 ‘족벌언론’을 가능하게 만든 시장구조에 있다. ‘족벌언론’이 문제가 아니라, ‘족벌언론’을 퇴출시킬 수 없는 구조가 문제인 것이다. 그것은 서너 개의 신문이 사실상 전국의 신문시장을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명국가 치고 이렇게 신문시장의 독과점 비율이 높은 나라가 없다. 소유 제한이나 편집권 보장 등은 현재의 ‘족벌언론’ 사주들을 통제할 수는 있겠지만, 신문시장의 독과점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언론개혁의 핵심은 소수 특권층만이 누리는 언론의 자유를 보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누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보수 언론의 힘을 약화시켜 진보 언론에 실어주거나, 거대 언론이 현재 누리고 있는 몫을 그보다 규모가 작은 현재의 기득권 언론에게 나누어지는 것만으로는 결코 언론개혁이 될 수 없다.

신문개혁이 완성되려면 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보다 다양한 지역에서 신문을 만들어 균형 잡힌 신문시장의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풀뿌리 지역신문이다. 시, 군, 구 단위에서 1억 원 미만의 소자본으로 매주 발행되는 풀뿌리 지역신문은 적은 자본으로도 제작이 가능해, 상대적으로 권력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고 사주나 광고주의 압력도 배제하기 쉽다.

세계화, 정보화 시대에 풀뿌리 지역신문을 얘기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거나 퇴행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거대화, 도시화, 전국화, 첨단화 등에 익숙한 한국인들에게, 언론은 커야 하고 서울에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한국인들에게, 풀뿌리 지역언론은 생경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한국 신문이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한 이유는 그들 대부분이 거대화를 추구하며 서울에 집중해 있거나, 지방에서 발행되면서도 전국지의 흉내를 내기 때문이다.

***언론개혁의 핵심은 실질적 언론자유의 확대**

언론은 커지면 커질수록, 집중되면 될수록, 언론 본연의 공익적 기능을 하기 어렵다. 언론이 비대해진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자본을 투자하는 것이고, 그에 상응하는 이윤을 창출하라는 압력이 가해진다. 자연 사익에 매몰되고, 공익을 외면하기 마련이다. 또한 특정매체가 비대해져 시장점유율이 높으면 높을수록 권력과 자본의 언론통제와 진실 왜곡은 용이해진다. 감시하고 회유하고 협박할 대상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사실상 거대 전국신문만이 존재하고, 다양한 군소 지역신문을 찾아보기 힘든 한국 신문시장의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언론개혁은 미완성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선진국에서는 편집권독립 보장이나 소유 제한 없이 언론보도의 정확성과 공정성이 보장되는 이유는 다양한 지역언론으로 구성된 언론시장이 권력의 간섭과 사주의 전횡을 방지하기 때문이다. 현재 갈등 속에 진행되고 있는 '언론개혁’ 조치들이 언론탄압이 아니라, 언론자유의 확장으로 귀결되려면 이 땅에도 지역언론이 제대로 설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풀뿌리 지역신문인가? 그것은 언론이 본연의 위치로 돌아가는 데 가장 유리한 위치에 서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의 언론은 자리를 잘못 잡고 있다. 뿌리를 내려야할 곳이 아닌데 뿌리를 내린 것이다. 언론의 제자리인 시민사회가 아니라, 정부와 자본의 영역에 안주해 그들의 시각으로 세상사를 재단해왔다.

언론개혁은 한국 언론이 제자리인 시민사회로 돌아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시민사회에 가장 가까이 있는 언론이 지역신문인 것이다. 또한 상징적인 의미도 크다. 일제 식민지 지배자와 군부독재자에 의해 간택된 언론이 굴절시킨 역사를 청산하고 민주언론으로서 새롭게 시작하려면, 그 동안 권력과 자본에 기생해온 언론이 아니라 역경 속에서 민초와 함께 하는 풀뿌리 지역언론이 그 주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언론개혁은 거대 전국언론의 썩은 뿌리를 뽑아내는 동시에, 풀뿌리 언론이 자생할 수 있는 밑거름을 만드는 작업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다른 민주국가처럼 군소 언론과 거대 언론이 서로 견제하고 공존하는 언론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풀뿌리 언론 육성대책이 절실하다.

한국 언론의 토양은 지난 80년동안 권력과 자본에 의해 너무도 심각하게 오염되고 훼손되어, 풀뿌리 언론이 자생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지역사회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범국가적 차원에서 풀뿌리 언론이 제대로 성장하도록 보호하고 지원해줄 때, 진정 언론개혁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작은 언론이 희망이다(장호순 지음ㆍ개마고원 펴냄)중 5-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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