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지역신문의 역사는 지방일간지에 비해 매우 짧다. 지역주간신문의 발행이 실질적으로 가능해진 것은 1988년 5공정권의 언론기본법이 폐지되고 정기간행물등록법이 제정되면서 시설기준이 완화된 후부터였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5.16쿠데타 이전까지 군이나 읍에서 발행한 신문들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긴 하지만, 남아 있는 자료들은 없다. 현재 약 4백80여 개의 지역신문이 정부에 등록되어 있다. 시와 구 같은 기초 자치지역 당 평균 2개의 지역신문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언론재단이 2000년에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등록된 지역신문 중 정상적으로 발행되고 있는 신문은 전체의 48%인 2백29개에 불과했다. 등록만 되어 있고 발행되지 않는 지역신문이 131개, 발행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 지역신문이 1백20개로 집계되었다.
지역별로는 서울과 경기지역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수가 총 92개로 전체 발행되고 있는 지역신문의 40.2%를 차지했다. 풀뿌리 지역신문 역시 수적으로는 수도권, 대도시집중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풀뿌리 지역신문들은 지역공동체가 가진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측면을 다양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언론재단의 보고서에 의하면 지역신문이 다루는 기사의 대부분은 지역뉴스로, 지역 내의 사안을 다룬 기사의 비율이 73.4%, 지역 내의 사안은 아니지만 지역과 특별한 관계를 가진 사안을 다룬 기사가 비율은 9.0%였다.
15.2%에 달하는 기사만이 전국 혹은 지역과 무관한 주제를 다루었다. 기사에 등장하는 뉴스인물 역시 지역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지역신문의 광고 또한 거의 대부분이 지역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광고주 혹은 광고의 내용이 되는 상품이나 기업, 영업점, 단체 등이 지역 내에 위치한 광고의 비율은 면적을 기준으로 89.0%를 차지했다. 지역신문 광고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광고의 내용은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소규모 유통업체였다.
<표>
지역신문 기사의 중심 주제를 구분한 결과 가장 많은 지면을 차지한 주제는 ‘문화/예술/종교’로 16.0%를 차지했다. 농수산업, 관광산업, 공업, 금융, 기간산업 등 ‘경제/산업’이 14.1%, ‘행사’가 12.1%, ‘행정/법률’이 9.8%를 차지했다. 다음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한 주제는 ‘생활정보(날씨, 취업, 행사안내 등)’ 8.7%, ‘인물/미담’ 6.7%, ‘교육/청소년’ 6.6%, ‘보건/복지/의료’ 5.0% 순이었다. 일간지가 비중 있게 다루는 ‘사건/사고’는 2.5%, ‘정치’는 3.1%로 상당히 낮게 나타났다.
그러나 지역신문 기사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행위주체는 행정기관, 행정관료, 정치인 등으로, 기사의 면적 기준으로 34.3%를 차지했다. 다음은 일반인 21.6%, 시민사회단체 및 단체 관련자 20.1%의 순이었다. 지역신문에 가장 자주 인용되는 취재원 역시 행정관료와 정치인들이었다.
분석대상이 된 기사 5백91건 중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48.4%에 달했다. 행정관료 다음으로 자주 인용된 취재원은 각종 시민사회단체의 장 혹은 관련자로, 분석대상 기사의 30.5%를 차지했다. 일반인으로 분류된 인사가 인용된 비율은 26.7%였다. 그러나 중앙일간지나 지방일간지에 비해 지역주민이 뉴스의 중심인물이나 취재원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지역신문 중 상당수는 중앙언론이나 지방일간지의 행태를 답습해 지역사회에서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옥천신문과 같은 일부 지역신문들은 행정기관을 비판, 감시하고 지역토호세력에 맞서 지역주민들의 입장을 대변해왔다.
그들은 중앙일간지들이 외면해온 지역뉴스와 민초들의 애환을 지면을 통해 제공함으로써 지역사회의 신뢰를 얻고, 이를 통해 독립적인 언론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들은 비록 중앙일간지나 지방일간지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지역주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지역사회의 감시견이자 등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려고 노력했다. 또한 합리적인 경영과 철저한 언론윤리의 실천을 통해 장차 우리 언론이 지향해야할 개혁 방향도 제시하고 있는 진정한 풀뿌리 언론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지역신문들은 행정기관의 홍보지도 아니고 토호세력의 정계진출 발판도 아닌, 지역주민의 관점에서 지역사회에 일어나는 일들을 독자들에게 알리는 신문고 역할을 하고 있다. 풀뿌리 지역신문 중 상당수는 주민주식의 신문 소유형태를 갖추고 있어, 언론의 공적 책임을 망각한 소수 개인에 의해 지역여론이 왜곡되는 것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이러한 지역신문사의 기자들에게는 촌지가 통하지 않고, 기사와 관련 외부의 부당한 압력도 통하지 않는다. 경영이 건실하고 투명해 사주가 지역 권력이나 광고주와 결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역 단위 민주주의 실천**
풀뿌리 지역신문은 10명 내외의 직원이 1년 매출 2~3억 원 정도를 올리면 유지할 수 있는 영세기업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 지역사회에 미치는 역할은 그 매출액의 수십, 수백 배에 달한다. 지방정부의 예산 낭비를 감시하고, 지역정보교류의 활성화를 통해 지역사회의 효율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지역신문처럼 부가가치가 큰 산업도 없다. 어느 나라이건 언론 없이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 모든 부문을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꾸려나갈 수 없다. 언론이 국가의 혈관과 신경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기능은 지역사회 단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 지역에 지역언론이 없다면 그 지역의 정치, 경제, 문화, 교육이 제대로 될 리가 없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지역신문은 한국의 중앙언론이 해결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와 부조리를 제거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1960년대 경제개발정책 수립 이후 누적되어온 대표적 문제라면 부정부패, 정치적 무능, 국토의 불균형적 발전, 배타적 지역감정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그 동안 끊임없이 중앙언론에 의해 지적되어 왔다. 그러나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현재의 거대 중앙언론으로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살펴보자.
그 주된 이유는 권력과 은밀한 거래와 타협을 통해 생존해온 중앙언론이 권력의 부패와 부조리를 파헤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비판하고 고발하는 시늉만 했을 뿐이다. 정치인들에게 정치자금을 갖다바친 언론사주가 운영하는 신문으로부터 우리 사회의 뇌물 관행을 적나라하게 보도하기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정계진출을 꿈꾸는 기자들로부터 자신들을 공천해줄 정치인들의 무능과 비리를 들춰내리라 기대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도덕적인 잣대를 치우고 기술적인 측면으로 접근해도 중앙언론은 역부족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한 문제들을 하루 40분 뉴스로, 하루 48면, 그 중에서 절반이 광고인 신문지면으로 다루기엔 턱없이 시간과 지면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저 억세게 재수 없는 공무원이나 정치인만이 시범케이스로 언론의 조명을 받을 뿐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된 고질적 병폐는 중앙언론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으로 따지자면 한국 사회는 너무나 여러 곳이 병든 중환자이다. 다리도 부러지고, 뇌 기능도 마비되고, 간에는 염증이 생긴 환자를 한 의사에게 맡기고 모두 치료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각각의 환부를 전문의들에게 맡겨야 그 환자는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중앙언론에게만 맡겨서는 결코 치유될 수 없다. 다양한 지역언론들이 나서서 산적한 문제들을 낱낱이 파헤치고 대안을 제시할 때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지방자치가 지지부진한 주된 이유도 따져보면 지역언론도 없이 지방자치를 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이 지역언론 중심으로 언론체제가 형성된 것도 바로 지방자치를 실시했기 때문이다. 언론 없이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지역언론이 없다면 지역단위의 민주주의 실천방식인 지방자치 역시 실현될 수 없다. 지난 10년간 우리가 제도를 고치고, 많은 예산을 투입하면서 지방자치의 실현을 위해 노력했지만, 아직 그 결과가 미미한 이유는 지역주민들의 여론 형성과 참여를 촉진할 지역언론을 제대로 키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역경제 활성화**
지역신문은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지역사회의 경제가 낙후한 원인은 물론 수도권 위주의 산업화정책 탓이다. 현재의 경제체제하에서 중앙과 지방의 관계는 사실상 식민지 종속관계나 다름없다. 유능한 인재와 경제적으로 윤택한 사람은 모두 도시로 빠져나가고, 중소도시를 장악한 자본의 이윤도 지역 내에서 재분배되는 것이 아니라 서울로 되돌아가는 것이 현실이다.
지방의 학부모들이 수도권 대학에 진학한 자녀들에게 보내는 학비와 생활비만 연 9천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농어민들이 생산하는 값싼 농수산물은 도시인들의 윤택한 생활에 기여하지만, 농어촌 지역으로 돌아가는 것은 도시인들이 외면하는 공해시설뿐이다. 그러다보니 농어촌 지역사회를 떠나 대도시 주변으로 인구가 몰리고, 그로 인해 대도시는 교통, 환경, 범죄 문제 등으로 엄청난 사회적 간접비용을 부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만약 지역사회 내의 경제정보를 원활히 공급해주는 지역언론이 존재한다면 지역경제의 양상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현재 지역사회경제가 어려운 이유는 경제활동에 필수적인 지역 내의 경제 정보가 지역사회 내에서 제대로 유통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기업에서 직원을 채용하고, 어느 상점이 질 좋은 물건을 싸게 파는지, 지역경기가 상승세인지 침체기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는 것이 대부분의 지역현실이다. 그래서 소비자들은 값싼 물건을 사러 대도시로 가야 하고, 기업을 하는 사람들은 소비자들에게 접근할 광고매체가 없기 때문에 사업투자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지역사회의 경제는 고도의 경제 정보가 필요하지 않은 가장 원초적인 산업 위주로 짜여진다. 입고 먹고 마시는 부가가치 낮은 사업장만 개업과 폐업을 반복할 뿐이다. 어느 중소도시고 한두 집 건너 식당과 옷가게이고, 거리를 장식하는 것은 티켓다방 종업원들의 작은 오토바이들이다.
지역신문은 지역감정 해소와 지역공동체의 발전에도 필수적이다. 사실 우리의 지역사회는 행정구역상 함께 묶여진 단위일 뿐이지, 공동의 목표와 이념을 갖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국가적인 지역갈등은 물론이고, 한 지역 내에서도 혈연과 지연과 학연을 통해 파벌이 나뉘어 각자의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역감정 해소와 지역공동체 발전**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목소리를 크게 내는 정치인이나 지역유지들은 흔하지만, 지역 전체의 공익을 위해 앞장서는 사람들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결국 지역사회는 공동체라기보다는 각자의 이해관계에 얽혀 이합집산하는 야합의 장으로 전락하고 말았고, 정치인들의 정략적 선동에 악용되곤 한다.
지역사회를 진정한 지역공동체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의 공익과 공동선을 위해 지역주민의 여론을 결집하는 지역언론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지역주민들 사이에서 정보와 의견의 교환, 문제점 인식, 대안 및 해결책 모색 등이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건강한 지역공동체의 건설은 실천에 옮길 수 없기 때문이다.
흔히 공동체 하면 떠오르는 마을, 동네는 그 구성원들이 서로 잘 이해하고 대화하는 곳이다. 흔히 이웃집 부엌의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서로 알고 지낸다는 전통적 부락 공동체의 원동력은 원활한 정보교류를 통한 상호이해로부터 나온다.
마을 공동체의 의사소통 도구는 구전을 통한 대화였다면 그보다 넓은 지역사회 공동체의 정보교류 수단은 풀뿌리 지역언론일 수밖에 없다. 풀뿌리 지역언론을 통해 엮어진 지역공동체가 늘어날 때 건강한 국가공동체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
***풀뿌리 체질로**
수백 년 간 지속된 중앙집권체제는, 신문의 본질적 형태이며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지역신문이 이 땅에 발붙일 수 없게 만들었다. 중앙권력이 사실상 전국을 통치하는 상태에서는 지방민들도 자연 중앙에서 발행되는 언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변방에 산다는 피해의식에 젖은 지방민들은 언론이란 서울에 있어야 하고, 거대해야 한다는 왜곡된 논리를 거부하지 못했다. 그 결과 지방언론은 피폐해지고 부실해 질 수밖에 없었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신문발행이 자유로워지면서 일간지 시장의 독과점체제가 깨지고, 지역신문의 발행도 자유로워졌지만, 중앙일간지들이 전국시장을 독식하는 기형적 신문산업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군사정권이 만들어준 보호막 속에서 막강한 기득권을 축적한 중앙일간지들에게 지방지들은 경쟁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 결과 지방자치를 실시했어도, 지역간의 불균형은 해소되기는커녕 오히려 점증되고 있다. 남한 전체 면적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은행예금과 대출의 65%, 대기업 본사의 88%, 공공기관의 84%, 대학 연구기관의 61%가 몰려 있다. 그로 인한 손실도 엄청나다. 수도권 인구 증가로 인한 교통혼잡비용이 1991년에는 1조7천억 원이었지만 장차 138조 원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것이 교통개발연구원의 예측이다. 한 신문은 “이대로 가다간 수도권은 만성 비만에 시달리고, 비수도권은 영양실조에 걸려 국가가 건강한 발전을 할 수 없을 것이란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역언론의 부재로 인한 불편은 서울이나 지방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국민 개개인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 즉 생활지역에서 발생하는 뉴스나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습득하기가 매우 어렵다. 중앙언론에서 지역단위의 뉴스까지 소상히 제공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지역사회 내의 정보교류나 여론수렴의 수단이 없으니 사회적 효율성이 떨어지고, 지역사회 내의 현안을 민주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21세기 첨단정보의 시대, 세계화 시대에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우리는 등잔 밑이 어두운 봉건시대적 불편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신체에 비유하자면 동맥과 정맥만 있고 실핏줄은 없는 무기력한 인간이 되었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는 그 증상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너무나 오랫동안 익숙하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체질화된 것이다. 언론개혁은 이처럼 잘못된 한국 언론의 체질을 바꾸는 것이다. 전국지 중심의 신문시장을 지역신문 중심으로, 적어도 전국지와 지역신문이 공존할 수 있도록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작은 언론이 희망이다(장호순 지음ㆍ개마고원 펴냄)중 68-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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