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시각에서 한미관계 등에 관한 워싱턴의 동향을 전해줄 '김희원의 워싱턴통신'을 신설한다. 필자 김희원은 국제정치 연구자로 현재 워싱턴에서 활동하고 있다. 편집자
***워싱턴에서 본 여중생 사망사건**
워싱턴시내에서 열리는 한국관련 각종 세미나와 회의를 다니다 보면 중국과 일본에 비해 한국이 워싱턴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얼마나 푸대접을 받고 있는지 절감하게 된다.
무엇보다 청중의 규모와 나와서 발표하는 소위 '한국 전문가'들의 pool이 절대적으로 작다. 매일 (영자판) 한국신문을 읽는 사람들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얘기까지 있다. 심지어 '한국 전문가'들 가운데는 간단한 인사말 외에는 제대로된 한국말을 구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도 그나마 'Korea'가 미국인들의 관심을 끄는 경우는 북한이 '사고'를 저지를 때에 한한다. 순수히 'South Korea'에 관한 주제로 회의를 열 경우 파란 눈을 한 청중의 숫자가 열을 넘기길 기대해서는 안된다. 한국에서 거물급 인사가 와서 연설하거나 지금처럼 대통령 선거가 코앞에 다가와 있는 상황이라면 몰라도(대통령선거 역시 대북정책과 관련해서 관심이 있을 뿐이다).
이런 와중에 워싱턴 논객들 사이에서 꾸준히 토론 대상이 되어왔던 South Korea에 관한 주제가 있다면 반미감정이라 할 것이다. 이들의 주요 우려 사항은 한국내 반미감정이 일반시민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한국이 중국과 정치ㆍ경제적으로 가까워짐에 따라 언젠가는 기왕의 한미관계를 대체하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정도의 우호관계로 한중관계가 진전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동북아에서 중국의 지역 패권국화를 견제해온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이 문제는 '목에 가시'가 될 수밖에 없다.
한중관계의 진전은 냉전체제의 해체, 역사ㆍ문화적 밀접성, 지리적 근접성 등을 고려해 볼 때 자연스러운 움직임일 수 있다는 것이 미국측 시각인 것 같다. 허바드 대사도 부임 직전 워싱턴의 한 모임에서 이런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미국측에서 볼 때 오히려 문제의 핵심은 한국전쟁 당시 수많은 사상자를 내면서까지 한국을 도와준 미국에 대해 한국인들이 반미감정을 표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배신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런 시각은 공화당과 민주당을 막론하고 한국을 가까이서 꾸준히 관찰해 온 경험이 없는 인사들사이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는 태도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앨 고어 부통령의 외교안보 고문을 맡았던 레온 펄스도 한 세미나에서 비슷한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다.
여기에 보수적 이념이라는 양념을 더하면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이 한국내 반미감정을 부추기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는 설명이 가능해진다. 상존하는 북한의 군사위협에 대해 국민들이 무감각해지게 되고 오히려 남북화해 분위기 속에서 주한미군의 존재이유에 대해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좀더 비판적인 시각은 현정부가 일련의 '반미 사건들'에 대해 방관 내지는 묵인하는 태도를 보여온 것 아니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난 9월의 '미군병사 폭행ㆍ납치 사건'에서도 한국정부가 균형된 시각을 가지고 당시 시위대의 불법행위에 대해 분명한 입장표명을 했어야 했다는 비판이 있다.
또 여중생 사망 사건으로 인해 최근 고조되고 있는 반미감정에 대해서도 정부나 대통령이 앞장서서 사건이 감정적인 차원으로 비화되기 이전에 미리 진화에 나섰어야 했다는 불만이 있다. 이와 더불어 한국 언론의 '편파보도'에 대한 불만도 제기되고 있다. 사건의 본질이 '사고'에 있고, 일본이나 독일에 주둔한 미군의 지위와 비교할 때 주한미군의 지위가 크게 다를 바 없으며, 해외에 파병된 한국군도 비슷한 지위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별로 소개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미국측의 안이한 대응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국을 오랫동안 관찰해온 진보적 논객들은 대부분 이에 동의하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경제성장, 세대변화, 냉전체제의 붕괴 등으로 한국 국민들 사이에서 보다 동등한 한미관계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국가적 자존심이 강화되고 있음을 미국측이 간과하고, 반미감정을 말그대로 일시적인 '감정'으로 치부해왔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한국 국민들을 상대로 주한미군 주둔의 필요성을 알리고 대미관을 긍정으로 유도하는 소위 대민외교가 너무 소홀히 다루어져왔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이 부분에서는 특히 서울에 파견된 미국기업 관계자들의 불만이 대단하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과 같이 미국이 오만하게 비쳐질 수 있는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우려를 금치 못하고, 현장에서 보내는 자신들의 소리가 본국 정부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음을 매우 답답해 하고 있다.
이번 여중생 사망 사건과 관련해서는 논의의 초점이 점차 책임자 규명 문제로 옮겨가고 있는 느낌이다. 사건 직후 논의의 근간은 부시의 공세적 대북정책, 미 대사관의 소극적인 대민외교, 햇볕정책, 한국정부의 미온적인 대응 등 정책차원에서 파생된 반미감정에 있었다.
그러나 반미감정을 넘어 반미의식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최근의 사태에 직면하여 이유야 어찌되었건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하는 공감대가 워싱턴에 형성되고 있으며, 한국국민들의 분노에 공감하는 일부 논객들 사이에서는 장갑차 운전병에게 과실치사 혐의가 없다면 지휘계통상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다만 SOFA 개정의 필요성은 별 관심을 얻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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