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영국의 세계적인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미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이 글은 당초 프랑스의 국제관계 전문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실렸던 것으로 미국의 정치전문 웹사이트 <카운터펀치>에 재수록됐다. 편집자
***전쟁 이후; 제국은 계속 팽창하고 있다**
현재 세계의 상황은 역사상 전례가 없는 것이다. 과거의 거대한 제국들, 즉 16-17세기의 스페인, 특히 19-20세기의 대영제국도 현재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미 제국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이다. (또한) 현재 세계화(globalisation)의 상태도 그 통합의 정도나 기술수준, 정치의 측면에서 사상 유례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도 긴밀하게 통합된 사회에 살고 있다. 모든 일상적 활동들이 너무도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서 조그마한 사고도 즉각 전지구적인 파장을 불러 일으킨다. 예를 들어 중국 어디선가에서 시작된 사스(SARS)는 수일만에 전지구적인 현상이 되었다.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세계 수송시스템, 국제회의나 세계시장, 심지어 세계경제 전체의 장애가 발생한다.
끊임없이 혁신되고 있는 경제에서의 기술발전, 특히 군사기술의 혁신이 엄청난 힘을 발휘하고 있다. 군사부문에서의 기술의 역할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결정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오늘날 세계적 규모에서 정치력을 가지려면 이 군사기술의 확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또한 국가규모가 엄청나게 커야 한다. 과거에는 국가의 크기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전성기에 세계 최대의 제국을 경영했던 영국은 18-19세기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중간 규모의 국가였다. 17세기의 네덜란드는 스위스 정도 크기의 국가였지만 세계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국가(a global player)였다. 오늘날에는 거대국가가 아니라면, 제아무리 부유하고 기술적으로 앞선 국가라 하더라도, 세계적 강국이 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다.
여기에 오늘날 (국제)정치의 복잡한 본질이 있다. 우리 시대는 여전히 민족국가의 시대이다(사실 이는 세계화의 시대에 세계화가 작동되지 않고 있는 유일한 측면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국가는 거의 모든 일반 국민 하나하나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특별한 종류의 국가이다. 과거에 정책결정자들은 일반 국민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관계없이 국가를 운영했다. 그리고 이제 와서 회고해 보건대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에 이르는 동안 각 정부들은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국민동원에 의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국민들이 생각하고, 하고자 하는 바는 그 어느 때보다도 졍책결정자들을 직접 영향을 미친다.
미국의 제국건설(imperial project)에서 핵심적인 새로운 현상은 과거의 강국이나 제국들은 자신만이 유일 초강대국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세계 전체의 지배를 노리지 않았던 반면 미국은 바로 그러한 야망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제국도, 스스로가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던 중국이나 전성기 때의 로마제국도 자신이 천하무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냉전이 종식될 때까지 우리가 살았던 국제관계 시스템에서는 지역에 대한 지배가 최대한의 위협이었다. 1492년 이후 가능해진 세계적 영향력 확대(a global reach)를 세계지배(global domination)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19세기의 대영제국은 지구 전체에 걸쳐 활동했다는 의미에서 진정한 세계제국으로느 유일했으며, 그런 점에서 미 제국의 선례가 될 수 있다. 공산정권 시절의 러시아인들은 세계혁명을 꿈꾸었다. 그러나 그들은 소련의 전성기 때에도 세계지배는 자신들의 능력 밖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냉전의 수사와는 반대로 그들은 단 한번도 세계지배를 진지하게 시도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의 야망과 한 세기 전 영국의 야망은 너무도 뚜렷이 대비된다. 미국은 엄청난 인구와 광대한 국토를 갖고 있으며, 거의 무제한적인 이민 덕택으로 아직도 성장하고(유럽연합과는 달리) 있다. 스타일에서도 차이가 있다. 전성기 때의 영 제국은 세계의 약 4분의 1을 점령하고 통치했다. 미국은 식민제국주의가 국제적 유행이었던 19세기말-20세기초의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는 식민지를 경영한 적이 없다. 그 대신 미국은 의존적 국가, 위성국가들과 함께 일했다. 특히 경쟁자가 거의 없었던 서반구(아메리카 대륙)에서 그러했다. 영국과는 달리 미국은 20세기 들어 이들 국가에 대해 군사개입이라는 정책을 개발해냈다.
과거에는 해군이 세계제국의 결정적 수단이었기 때문에 영국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해군기지와 교두보를 세계 도처에 확보했다. 지브롤터에서 세인트헬레나 섬, 그리고 포클랜드 열도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유니온잭(영국 국기)이 휘날리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태평양 외부에서 미국에게 이러한 종류의 기지가 필요해지기 시작한 것은 1941년부터였다. 그것도 미국은 해당국가와의 합의에 의해 확보했다. 당시에는 진정 자발적 동맹이라고 불릴 만했다. 오늘날 상황은 달라졌다. 이제 미국은 해외기지에 대한 간접지배가 계속되는 것 외에 대단히 많은 숫자의 해외 군사기지를 직접 관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국내정치(the domestic state)의 구조와 이데올로기에도 중대한 차이점들이 있다. 영 제국은 보편적이 아닌, 영국적 목표를 갖고 있었다. 반면 미국은 혁명기의 프랑스나 러시아처럼 보편주의적 혁명에 바탕을 둔, 즉 세계는 미국의 모범을 따라야 하며 나아가 미국은 세계의 해방을 도와야 한다는 믿음에 바탕을 둔 강대국이다. 자신들이 인류에 공헌하고 있다는 믿음 하에 자신들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제국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기본적 차이는 영 제국이 세계적 규모였음에도 불구하고(어떤 의미에서 19세기의 영국은 지금의 미국보다 더 세계적이었다. 오늘날 어떤 나라도 전세계의 제공권을 독점하지 못한 반면 19세기 영국은 전세계의 제해권을 완벽하게 장악했기 때문이다) 초강대국(global power)을 지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심지어 영국은 유럽이나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군사적, 정치적 강대국(land power)이 되기를 원치 않았다. 영 제국은 영국의 기본적 국익, 즉 경제적 국익을 추구하면서 외부에 대한 간섭은 최소한으로 줄였다. 영 제국은 언제나 자신의 국가 규모와 자원의 한계를 의식하고 있었으며 1918년 이후로는 제국의 쇠퇴를 명백하게 깨닫고 있었다.
그러나 최초의 산업국가로서 영국의 세계제국은 세계화의 정신으로 활동했다. 즉 영국 경제의 발전은 세계 다른 지역의 발전에도 기여한다는 것이었다. 영 제국은 일종의 국제교역시스템이었다. 즉 영국의 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영국경제는 기본적으로 후진지역에 대한 영국 제조업의 수출에 바탕을 두었으며, 역으로 영국은 여타 세계의 1차 산물의 가장 주요한 구매자 역할을 했다. 세계의 공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한 후에 영국은 세계 금융시스템의 중심이 되었다.
미국경제는 그렇지 않다. 미국경제는 토착산업들의 보호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가진 국내시장에 대한 외부의 경쟁을 제한하고 있다. 그리고 외부경쟁에 대항하는 보호무역은 아직도 미국정치의 중요한 요소로 작동하고 있다. 미국의 산업이 세계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을 때는, 전성기 때의 영국이 그러했던 것처럼, 자유무역이 잘 맞을 수 있었다. 그러나 21세기 미 제국의 취약점 중 하나는 세계가 산업화된 오늘날 미국경제의 위상이 예전처럼 지배적이지 못하다는 점이다. 오늘날 미국은 전세계 다른 지역으로부터 엄청난 양의 공산품을 수입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기업과 유권자들은 보호무역을 고집하고 있다. 미국이 관리하는 자유무역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라는 이데올로기와, 바로 그 때문에 위협받고 있다고 느끼는 미 국내 주요 구성원들의 정치적 이해 사이에 모순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약점을 극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법 중의 하나는 무기 교역을 확대하는 것이다. 이는 영 제국과 미 제국 사이의 또 다른 차이점이다. 특히 2차대전 후 미국은 평화시로서는 비정상적으로 끊임없이 군비를 확장해 왔다. 이는 근대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바로 이것이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말했던 '군산복합체'의 지배력의 근거일 것이다. 40여년의 냉전 기간 동안 미소 양측은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또는 금방이라도 전쟁이 일어날 것처럼 말하고 행동했다. 영 제국은 1815년에서 1914년까지 주요한 국제전쟁이 없었던 한 세기동안 제국의 전성기를 누렸다. 특히 미국에 대한 소련 군사력의 열세가 명백했음에도 불구하고 미 군수산업의 성장을 향한 추동력은 냉전이 종식되기 이전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커져가고 있다.
냉전을 통해 미국은 서방세계의 헤게모니 국가가 됐다. 그러나 그것은 동맹의 우두머리로서였다. 상대적 힘에 대한 환상은 없었다. 힘은 워싱턴에 있지, 다른 곳에 있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 당시 유럽은 미국의 세계제국의 논리를 받아들였다. 반면 오늘날 미국 정부는 자신들의 제국과 그 목표들이 더 이상 진심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는 데 대해 분노하고 있다. 더 이상 자발적 동맹은 없다. 사실 현재 미국의 정책은 역대 그 어떤 미 정부의 정책보다도 인기가 없다. 어쩌면 역사상 그 어떤 강대국의 정책보다도 인기가 없을 것이다.
미국은 국제관계에서의 전통에 걸맞는 상당한 정도의 예의를 갖추고 서방동맹을 이끌어 왔다. 사실은 소련군과의 대결에서 유럽을 최전방에 세워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동맹은 군사기술에서의 의존성 때문에 미국측에 영구적으로 고정됐다. 미국은 유럽의 독자적 군사능력 보유를 일관되게 반대하고 있다. 드골 이후 미국과 프랑스간의 해묵은 마찰의 근본원인은 프랑스가 국가간의 동맹을 영구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길 거부하고, 나아가 첨단 군사장비를 생산할 독립적 능력을 보유하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갈등에도 불구하고 동맹은 진정한 자발적 동맹이었다.
소련의 붕괴로 미국은 유일 초강대국이 됐다. 어떤 나라도 이를 막을 수 없었고 막으려 하지 않았다. 무례하고, 적대적이며 제 힘을 뽐내는 미국의 갑작스런 변모는 이해하기 힘들다. 특히 냉전기간 동안 개발돼 그 적정성이 입증된 제국적 정책에도 맞지 않을 뿐더러 미국경제의 이익에도 부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최근 워싱턴에서 채택되고 있는 정책들은 모든 외부인들에게는 너무도 해괴한 것이라 도대체 그들의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기조차 어렵다. 그러나 현재 워싱턴의 정책결정을 지배하고 있는, 또는 최소한 절반 정도는 지배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은 이들이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있는 것처럼 군사력에 의한 세계지배이다. 그 목적이 무엇인지는 불투명하다.
그들의 의도가 성공할 수 있을까? 세계는 한 나라가 지배하기에는 너무 복잡하다. 또한 미국은 첨단무기 분야에서의 우위를 빼놓고는 감소하고 있는, 또는 잠재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자산들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경제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미국경제는 장기적으로는 물론 단기적으로도 취약하다. 당장 내일이라도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석유대금을 달러가 아닌 유로로 결제하기로 결정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를 상상해 보라.
미국은 상당한 정치적 이점을 갖고 있었지만 지난 18개월 동안 그 대부분을 창문 밖으로 던져버렸다. 미국문화의 세계 지배, 국제공용어로서의 영어라는 소소한 자산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현재 제국 건설(imperial project)을 위한 가장 주요한 자산은 군사력이다. 군사력 측면에서 미국과의 경쟁은 불가능하며 가까운 장래(forseeable future)에 이는 변하지 않을 것 같다. 국지전에서 군사력이 결정적 요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군사력이 절대적으로 결정적 요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실적 차원에서 중국을 포함한 그 어떤 나라도 미국의 기술수준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기술적 우위의 한계들에 대해 신중한 검토를 해야 한다.
물론 이론적으로 미국이 전세계의 군사점령을 노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노리고 있는 것은 전쟁을 일으켜, 친미정부를 세운 다음,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작동되지 않을 것이다. 군사적 측면에서 봤을 때 이라크전쟁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이번 전쟁은 순전히 군사적이었기 때문에 한 나라를 점령하는 데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즉 영국의 인도에 대한 고전적 식민지모델에서와 같은, 어떻게 국가를 경영할 것인지, 또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고려가 결여됐다. 미국이 이라크를 통해 세계에 제공하고자 하는 '민주주의'라는 모델은 모델이 아니며, 미국의 목표와도 관련이 없다. 미국에게는 진정한 동맹국가가 없어도 된다든가, 이제 막 정복한(그러나 효과적으로 통치하지는 못하고 있는) 나라들을 다스리기 위해 대중들의 진정한 지지가 없어도 된다든가 하는 믿음은 환상일 뿐이다.
이라크전쟁은 미국의 의사결정 과정의 천박함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이다. 이라크는 이미 미국에게 패배당한 나라이며 그동안 굴복하기를 거부했을 뿐이다. 이 나라는 너무도 허약해서 다시 한번 손쉬운 승리를 거두었을 뿐이다. 우연히도 이라크는 석유라는 자산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번 전쟁은 사실은 미국의 국제적 힘을 과시하기 위한 군사훈련이었을 뿐이다. 워싱턴의 미치광이들이 떠들어대고 있는 정책, 즉 중동지역 전체를 완벽하게 재편하겠다는 구상은 말도 안 되는 헛소리이다. 만일 사우디왕조의 전복이 그들의 목표라면 왕조를 무너뜨린 후의 계획은 무엇인가? 그들이 정녕 중동 재편을 원한다면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이스라엘의 힘을 빌려야만 한다는 것이다. 부시의 아버지는 그럴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 백악관에 있는 부시는 그럴 마음이 없다. 그 대신 부시 행정부는 중동지역에 단 2개뿐인 세속정부 중 하나(이라크)를 무너뜨렸고, 이제 남은 하나인 시리아를 공격할 꿈을 꾸고 있다.
미 정책의 공허함은 그들의 목표가 대중들에게 전달되는 방식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악의 축'이라든가 '로드맵'이라는 용어들은 정책의 천명이 아니라 그저 구호(soundbites)에 불과하다. 지난 18개월동안 이들이 세계를 향해 뱉어놓은 수많은 말들은 그들에게 진정한 정책이 결여돼 있음을 보여준다. 부시는 정책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연극을 하고 있다. 리차드 펄이나 폴 월포위츠같은 관리들은 사적으로는 물론 공적으로도 람보처럼 말하고 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미국의 압도적 힘뿐이다. 그들이 실제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상대가 아주 작고 신속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곳이라면 누구든 침략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책이 아니다. 통하지도 않을 것이다. 미국의 장래에 매우 위혐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국내적으로 봤을 때, 군사적 수단에 의한 세계지배의 핵심적 위험은 미국의 군국화(militarisation)이다. 군국화의 위험은 심각할 정도로 과소평가되고 있다.
국제적 측면에서의 위험은 세계의 불안정화이다. 중동은 이러한 불안정화의 한 사례일 뿐이다. 세계는 지금 10년 전, 아니 5년 전보다도 훨씬 불안정하다. 미국의 정책은 (국제)질서유지를 위한 대안적 처방들을,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약화시키고 있다. 유럽에서 미국은 나토(NATO)를 난파시켰다. 그 정도라면 큰 손실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나토를 미국을 위한 세계 군사경찰로 만들려는 시도는 심각한 왜곡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은 고의적으로 유럽연합(EU)을 파괴하고 있다. 또한 1945년 이후 인류가 이룩한 위대한 성과의 하나인, 번영하는 민주적 사회적 복지국가를 파탄내기 위한 조직적 시도를 하고 있다. 널리 얘기되고 있는 유엔의 신뢰성 위기는 사실 대단한 것이 아니다. 안보리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또 미국의 거부권에 발목이 잡힌 유엔은 단 한번도 주변적 역할 이상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세계는 미국에 어떻게 대항할 것인가? 또는 미국을 어떻게 봉쇄할 것인가? 어떤 사람들은 미국에 대항할 힘이 없다는 생각에서 차라리 미국측에 가담하는 편을 택한다. 이보다 더 위험한 것은 펜타곤 배후의 이데올로기를 증오하면서도 미국의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일부 지역의 부정의를 제거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미국을 지지하는 사람들이다. 이는 인권제국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같은 경향은 1990년대 유럽이 발칸문제 해결에 실패하면서 더욱 강화됐다. 이라크전쟁에 대한 의견 대립을 통해 몇몇 영향력 있는 지식인들이 이 그룹에 가담했음이 드러났다. 미국의 마이클 이그나티에프(Michael Ignatieff) 프랑스의 베르나르 쿠쉬너(Bernard Kouchner)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세계의 악을 교정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면서 미국을 지지하고 있다. 너무도 추악한 정권이라 그 정권의 제거가 세계에 순이익이 되는 경우가 물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런 논리가, 세계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세계에 대해 관심도 없으면서,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는 자에 대해서는 언제나 결정적 무력을 휘두르는 초강대국(world power)의 출현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보자면 우리는 대중매체에 대한 압력이 커져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론이 대단히 중요해진 요즘 세상에는 여론 또한 엄청나게 조작되기 때문이다. 1990-1991년의 걸프전 때에도 그러한 시도가 있었다. 베트남전 상황의 재연을 막기 위해 언론의 전투현장 접근을 봉쇄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는 실패했다. CNN 등 일부 언론들이 바그다드에 남아 워싱턴의 입맛에는 맞지 않는 사실들을 보도했기 때문이다. 이번 전쟁에서도 언론통제는 먹히지 않았다. 따라서 앞으로는 보다 효과적인 언론통제의 방안 모색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직접통제의 형태를 취할 수도 있고, 어쩌면 최후의 수단으로 기술적 통제를 시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부통제와 언론독점의 강화가 폭스 뉴스나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보다는 훨씬 더 큰 위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현 우위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역사상 모든 제국들이 그러했듯이 동맹이란 것도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모든 식민지제국의 종말을 보았다. 이른바 독일인들의 천년제국은 단 12년만에 끝장났고, 소련의 세계혁명 야망도 백일몽으로 끝났다.
미 제국이 오래 가지 못할 것임을 보여주는 몇 가지 내부적 요인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즉각적인 것은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세계를 경영한다는 의미에서의 제국주의나 세계지배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미국 내에서 자신들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미국의 경제는 너무도 허약한 지경이라 얼마 안 가서 미 행정부와 의원들 모두 해외에서의 군사적 모험보다는 경제문제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결정하게 될 것이다. 해외군사개입의 비용 대부분을 미국인들 자신이 부담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걸프전 때는 그렇지 않았다. 냉전 동안에도 그 비용은 그렇게 큰 것이 아니었다.
1997-98년 이후 우리는 자본주의세계경제의 위기 속에 살고 있다. 자본주의세계경제가 금방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국내경제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마당에 야심적인 대외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미국이 세계경제 문제에 진지하게 대응할 것 같지는 않다. 미 국내기업의 기준에서 보더라도 부시는 미국을 위한 적절한 경제정책을 갖고 있지 못하다. 또한 부시의 현 국제정책은 미국의 제국적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나아가 미 자본주의의 이익에도 확실히 부합하지 않는다. 따라서 조만간 미 행정부 내에 의견 대립이 나타날 것이다.
현재 핵심 이슈는 미국의 다음 행동은 무엇이며 다른 나라들은 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이다. 일부 국가들, 예를 들면 영국은(미국의 유일한 진짜 동맹) 미국의 계획이라면 무조건 지지하고 따를 것인가? 영국 등은 미국이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에도 한계가 있음을 반드시 말해야 한다. 지금까지 가장 긍정적 공헌을 한 국가는 터키다. 터키는 대가를 치를 것임을 분명히 알면서도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하고 싶지 않다(미국의 군사기지 사용 요청을 거부)고 분명히 말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봉쇄가 안 된다면-어찌 됐건 미국을 가르치거나 재교육시키는 것이다. 한때 미 제국도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다. 또는 최소한 한계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미국이 누군가를, 소련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종류의 두려움이 사라진 지금, 개명된 자기이익과 교육이 그 자리를 대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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