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고용평등법 시행규칙 제1조의 2 별표에는 성 희롱에 관한 판단기준이 예시되어 있다. 이 규칙을 제정할 당시 논란의 여지가 있었던 조항이, 지금은 판단기준 항목에서 빠졌지만 ‘신체부위를 음란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행위’가 아니었을까 한다. 음란한 눈빛이냐 아니냐는 여성들의 자의적(恣意的) 판단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억울한 피해자가 속출할 것이라는 많은 남성들의 우려 때문이다.
특히 얼굴도 권력인 사회에서 돈 없고 열등한 신체를 가진 남성들 사이에서 꽤나 두려움이 확산됐음은 당시 인터넷 상에 어느 네티즌이 올린 “똑같은 눈빛이라도 장동건이 쳐다보면 따듯한 눈빛이고 못생기고 볼품없는 내가 쳐다보면 음란한 눈빛이냐”는 자조성 글을 떠올리면 금방 알 수 있다. 말이 나왔으니까 말이지 돈 있고 잘 생긴 남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따금 2백여 명이 넘는 여성과 엽색 행각을 벌였다는 카사노바 사건과 같은 경우에서 보듯 위 조항은 큰 걱정거리가 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땅의 대부분의 남자들은 별로 가진 것이 없고 잘난 것이 없는, 그래서 자칫하면 잘못 돌린 눈빛 하나 때문에 패가망신 당할 가능성에 죄다 노출된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아마 역사상 최악의 불평등 악법으로 기록될 뻔했던 이 항목이 빠졌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남성들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숨을 쉬었다는 후문(?)이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성 희롱 금지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항상 피해자의 위치에 있던 여성을 보호할 장치가 마련된 것은 천만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상대에 따라 사안이 달라질 논란의 여지가 있는 위 조항에서 보듯 우리의 여성들이 여성문제의 피해자와 가해자를 전체 여성 대(對) 전체 남성으로 일괄해서 규정짓고 바라본다는 시각이다.
그간 여성의 권익을 억눌러온 가부장제 사회의 억압에 대한 분노가 전체 남성들을 향해 폭발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의 여성들은 남성 세계의 또다른 특징을 그냥 지나치고 있다. 여성의 눈에는 남성권력사회에서 손해보는 쪽은 항상 여성이라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힐 수 있지만 막상 남성사회도 속내로 들어가 보면 그 안의 불평등의 깊이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게 된다.
상당수 남성들은 독점권력화 되어있는 남성사회 안에서 패배감과 소외자로서의 설움을 씹으며 산다. 사실 돈과 권력과 좋은 일자리는 사회적 승자인 소수 남자들만의 차지다. 최근에 민노총 등 노조의 잇단 파업사태는 소위 남성사회 안에서 가부장의 막중한 책임을 떠 안고 살아가야 하는 가장들의 패배의식도 한몫 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독점적 남성권력의 횡포는 매춘문제에서도 진면목을 드러낸다. 물론 매춘은 윤락행위 방지법에 의해 단속해야 할 사회악이지만 지금 소위 여기저기 노출된 유곽인 텍사스촌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매춘근절 전쟁은 돈과 권력을 가진 남자들의 이중적 자기기만을 여실히 보여내는 행위라고 나는 생각한다. 가진 것이 많은 자들이 룸살롱 등에서 비밀리에 펼치는 매춘 행각은 그대로 놔둔 채, 장가 못간 농촌 총각들이 신부감을 찾아 중국 필리핀 등지를 떠돌며 애태우는 일이 비일비재한 오늘의 우리 사회 현실에서 일부 짝 없는 사회적 패자들의 비상구만 봉쇄하려 드는 것은 기만이고 위선이다.
가장(家長)으로서의 남성들의 지위도 날로 쇠락해 가고 있음은 여성들인 당신들이 먼저 안다. 나의 경우도 일자리가 있어 명목상 생산을 독점한 셈이지만 소비주권은 이미 주부인 아내에게 내어 준 지 오래다. 소비선택권뿐만 아니라 자녀교육에 관한 사항도 역시 가장으로서가 아닌 과장(課長)(?) 수준의 발언권밖에 행사하지 못한다.
알고 보면 이 땅의 적지 않은 남자들도 당신들만큼 약자며 피해자다. 여성운동도 이제 여자 대 남자의 맞대결 차원이 아닌 이 땅의 불평등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안별 배려의 차원에서 펼쳐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시는 ‘음란한 눈빛’ 등의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문구를 만들어 가진 것도 없는 불쌍한 세상 남자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일이 없도록 배려해 주길 부탁해 본다.
세상을 움직이는 부드러운 힘-, 그대들 여성으로부터 남자도 보호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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