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무더운 여름, 아주 시원한 책을 한 권 만난다. 책장을 넘길수록 청량함이 느껴진다. 얼핏 보기에 딱딱할 것 같은 제목과 달리 읽는 이의 마음을 여유롭게 한다. 푸근하고 유려한 문장뿐 아니라 사진전문기자가 동행하여 찍은 디지털 카메라의 선명한 사진은 책의 품격과 전달력을 한층 높여 준다.
<장소의 의미 I> (삶과 꿈 펴냄)은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교수가 우리 국토 구석구석을 직접 발로 누비며 보고 듣고 느낀 대로 쓴 책이다. 서해 낙조 안면도, 꿈과 사랑의 바다 통영, 은둔의 땅 머리 해남, 고산 풍류의 보길도, 나는 새도 넘기 힘든 문경새재, 강산이 시작되는 태백, 산중의 정적 수덕사, 어머니 품속 같은 지리산, 안동 병산서원, 한산도 제승당, 천년의 삶터 경주, 슬프고 아름다운 공주, 도심의 고도 북촌, 재래시장 일번지 남대문시장, 봄을 실어오는 모란시장, 상경과 귀향의 서울 톨게이트 등 유명한 산과 해안, 역사의 숨결과 문화의 현장, 서민의 꿈이 서린 도시의 명소 등 익히 알려진 31 곳을 생생하게 보여줄 뿐 아니라, 그 의미를 해석하며 미래의 꿈까지 그려준다.
<사진> 유우익의 국토기행 <장소의 의미 I>
찾아가는 장소가 다양할 뿐만 아니라 저자의 경력만큼 책의 내용도 풍부하고 충실하다. 무엇보다 우선 교수로서의 따뜻함과 성실성이 곳곳에 배어 있다. 가는 곳마다 역사를 돌아보고 그 의미를 되새기며, 고사나 시구(詩句)를 인용하여 삶의 지혜를 찾게 한다. 깊은 내용에 비해 설명은 쉽고 재미있다. 그러면서도 단순한 관광 차원을 넘어 땅을 바라보는 지리학자로서의 전문성이 묻어난다. 답사에 동행한 일행이 전문가, 일반인, 제자, 가족 등 어떤 집단인지에 따라 설명이 달라지는 것도 흥미롭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저자의 다양한 행정경험과 경륜을 반영하듯 답사일정이나 글의 구성과 배열이 빈틈없이 꼼꼼하고 정확하며 언뜻 언뜻 나라를 걱정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모습을 드러내는 점이다. 산 따라 강 따라 유유자적하는 가운데 역사와 문화를 호흡하며, 사회를 인식하고 설계하는 철학적 깊이를 느끼게 한다.
지난 주말 이 책을 읽다가 갑자기 떠나고 싶은 충동에 끌려 서울 근교 두어 곳을 찾아가 보았다. 책의 서술은 정확헸고, 뛰어난 구도의 사진은 실제 풍경을 능가하는 것 같았다. 책을 들고 다니며 기록된 사실을 확인하거나 저자와 나의 느낌을 비교해 보는 것은 여행의 새로운 묘미를 느끼게 했다.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과 문화를 재인식하게 할 뿐 아니라, 자연의 무한한 역사 속에서 한없이 짧은 인생을 깨닫고, 겸허한 삶의 자세를 가다듬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마도 이 책은 그 동안 저자가 쓴 수많은 저서, 논문들 보다 더욱 지리학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고 뿌리내리게 하는 데 기여할 것 같다. 곧 이어 출간될 2권을 기다리며 이 책에서 굳이 아쉬운 점 한 가지만 지적하자면, 그 장소를 찾아가는 길 안내나 관광정보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하긴 그 유명한 장소들을 누가 찾아가지 못하랴. 인터넷에 들어가기만 하면 수없이 많은 온갖 정보들이 가득 담겨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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