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NHK의 ‘겨울연가’ 방영 여파로 ‘욘사마’ 열풍이 불고 중국 동남아 등지에서 한류 열풍이 뜨거워질 때 우리의 최대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한류를 지속시킬 것인가였다.
문화계와 정부 지방자치단체까지 합세하여 드라마산업의 육성, 한류문화 체험관, 관련관광지 개발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심지어 ‘제2의 배용준을 많이 만들어내자’는 정책(?)주문도 제기됐다.
이 같은 국민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최근 KOTRA 일본 나고야 무역관에서는 ‘열도를 강타하고 있는 한류 열풍에 이상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영화 월별 수입액이 갈수록 하락세로 돌아섰고 드라마 시청률도 뚝 떨어졌다는 것인데 사실 이 정도는 충분히 예견됐던 일이다.
나의 일관된 생각은 한류 열풍이야말로 유행의 일시적 반복현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마치 80년대 홍콩영화가 아시아 대륙을 열광하게 했지만 식상한 내용과 빈곤한 콘텐츠에 부딪쳐 사라졌다가 이따금 얼굴을 내미는 것처럼 대중문화에 전적으로 의존한 한류 열풍은 주기적 한계와 만날 수밖에 없다. 한류 붐을 지속시키기 위해 정작으로 더 중요한 과제가 있다면 우리 민족의 ‘이야기 자원’을 캐고 다듬어 나가는 일일 것이다.
나의 관점이 맞는다면 세계는 이미 ‘이야기자원 전쟁시대’에 돌입했다. 이제 정보사회의 태양은 지고 생산의 핵심동력이 ‘이야기’로 옮겨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세계가 ‘이야기’를 사고 ‘이야기’에 열광한다.
문화가 중심이 되는 사회에서 문화산업의 동력은 이야기로부터 출발한다. 많은 시간과 인력 투자가 필요한 반도체산업 못지않게 ‘이야기’도 많은 수익을 창출해 내고 있음은 영국작가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 한 편으로 입증해준다. 2003년도 삼성전자의 반도체 판매수익이 연간 3조 6천억원이라면 마법사 이야기라는 콘텐츠 하나만으로 ‘해리포터’는 연간 2조원 이상의 수익을 만들어낸다. 환타지 소설로 잘 알려진 J R R 톨킨의 ‘반지의 제왕’까지 합하면 그 부가가치의 총량은 가히 천문학적이고 우리의 정보기술(IT) 산업규모를 가볍게 상회한다.
한 개인의 상상력에서 출발하는 ‘이야기’가 국민적 자산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주목해야 할 것은 미래의 경제인 이야기 산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나라들의 사례가 결코 우연한 계기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데 있다.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의 뿌리를 따라가면 그 민족의 무궁한 서사적 자원과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태초에 생성된 이야기는 설화나 신화로 이어지고 그 자양 위에서 상상력을 키우고 자란 작가들에 의해 ‘고전’으로 완성되어진다.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서사적 자원에서 캐낸 ‘아더왕의 죽음’ ‘캔터베리 이야기’가 셰익스피어, 토마스 모어, 밀턴, 브론테 자매, T 하디의 작품 등 수많은 고전의 다리를 건너며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까지 이어졌고 급기야 첨단 테크놀로지와 결합한 것이다.
따라서 영화와 음반, DVD, 그리고 오늘날의 대중문화스타들은 원칙적으로 견고한 민족의 자산인 서사적 자원의 산물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전 세계적 유통망을 통해 누구도 넘보지 못할 입지를 다진 헐리우드산업의 성장도 서구의 역사적 뿌리로부터 배태된 이야기 자원의 지속적인 공급이 있어 가능했다.
오늘날 프랑스가 세계문화예술계에서 영화대국(특히 코미디영화)으로 인정받는 배경에도 루이 14세의 연극에 대한 절대적 지지와 사랑이 있었다. 코미디 전용극장 ‘코미디 프랑세즈’를 건립한 왕은 몰리에르와 라신과 같은 작가들을 무조건적으로 지원했고 이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와 코미디연극의 기초는 현대 프랑스 영화의 튼튼한 자양을 만들어냈다.
따라서 기초인프라가 되어줄 이야기 자원의 개발 및 공급 없이 수출되는 한국 드라마가 주는 환상은 일정 기간 후 외면 받을 숙명을 안고 있다.
다행히 자원빈국인 한국은 단군신화, 삼국유사, 고구려, 중ㆍ근대사,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문학작품의 소재가 될 서사적 자원이 풍부한 나라다. 문제는 ‘이런 자원이 재능 있는 작가들의 상상력과 만나 어떻게 탄탄한 이야기 토대로 탄생 되는가’이다.
스타 몇 명에 일희일비 하는 한류정책보다 이야기 작가를 발굴하고 문학 연극 등 기초예술분야에 과감한 투자와 지원을 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불붙기 시작한 ‘이야기전쟁시대’를 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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