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종북 논란의 2라운드가 열렸다. 2012년 종북 논란은 지난 4, 5월의 격렬함은 약화되었으나 새로운 양상을 띠면서 계속 확산되어 가고 있다. 즉 SNS를 통한 종북 논란이 그것이다. SNS를 통해 종북 논란이 확산되면서, 일종의 사상 검열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한 예로 청소년, 대학생들 사이에 김일성, 김정일에게 특정한 욕설을 하지 못하면 '종북'으로 찍히게 되면서 친구들에게 놀림이나 왕따를 당하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다. 소위 신공안정국이 정치사회를 넘어 일반인들의 생활 세계 깊숙이까지 파고들고 있다.
한편, 1라운드 종북 논란은 2008년 발생했다. 2008년 종북 논란은 구 민주노동당을 분당시키는 구실이 되었다. '종북좌파' 논쟁은 결국 민주노동당을 분당시키고 진보를 분열시키는 사건으로 치달았다. 종북의 실체는 무엇인지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고, 진보는 상처를 입을 대로 입었으나 제대로 치유되지 않은 채 봉합되는 것 같았다. 미봉상태에서 생채기가 곪아 터진다면 다음에는 더 큰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2012년 급기야 터졌다. 역시 2012년 통합진보당의 내부 분열만이 아니라 정치권의 위기와 진보 진영의 대위기를 가져오고 있다.
| ▲ 2006년 6월 박홍 전 서강대 총장이 서강대학교에서 열린 담장 개방 녹화사업 준공식 행사에 참석한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과 이야기 나누고 있다. ⓒ연합 |
돌아보면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한 직후 수립된 반민특위 사건도 그랬다. 일제 35년의 과거를 청산하고, 정의를 세우기 위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설립되었다. 그러나 역사는 정의의 순방향으로 흐르지 않았다.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을 조사하고 법정에 새워야 했던 반민특위의 위원장으로부터 수많은 위원들이 친일파 세력과 합작한 반공세력으로부터 빨갱이라는 역공을 당해야 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도 가세하여 빨갱이를 제외하고는 모든 국민이 대동단결해야 한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반민특위 개시 1년도 안 되어 반민특위 사무실은 극우 반공 청년들이 불법 난입한 난장터로 바뀌었다.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청산하기는커녕 친일파가 친미파로 변신하며 득세하는 세상이 오면서 세상의 정의는 죽은 듯했다. 1960, 70년대 생사람이 간첩으로 빨갱이로 구속되고, 사형을 당할 때도 극소수 양심적인 사람을 제외하고는 국민 대다수가 반공주의의 덫에 걸려 침묵하거나, 반공주의 대열에 동원되었다. 빽 없고 돈 없는 국민들은 행여 실수로 반공의 덫에 걸릴까 봐, 또는 집안에 불온한 혐의자가 있을 경우에는 '빨간 줄이 그일까 봐' 반공의 망에 걸리지 않기 위해 살얼음판을 걷듯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상검열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처방이 있다. 즉 '북한 욕하기'이다. 진실이 뭐건 상관이 없다. 북한 정권의 핵심인 북한 체제 및 김일성, 김정일을 욕함으로써 자신이 자유민주주의자, 또는 반공주의자임으로 입증할 수 있다. 현재 한국 사회 분위기상 반공 검열 기제가 작용하는 맥락에서 북한 욕하기를 하지 않게 되면 곧 종북으로 매도될 가능성이 심대해졌다. 통일부에 따르면 종북이란 "대한민국 헌정질서와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부정하고 북한의 주체사상 및 선군 정치를 무분별하게 추종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오늘날 청소년, 청년들이 SNS 상으로 종북 게임을 하고 있다. "소원을 말해봐"가 아니라 "김정일, 김정은을 욕해봐".
2.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에서 국가보안법은 초법적인 것이었다. 21세기 가까스로 헌법이 제 지위를 되찾으면서, 헌법재판소는 권위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여전히 강압적인 철거반원들을 향하여 "김일성(김정일)만 못한 ×아!"라고 했다고 하여 국가보안법으로 실형을 받아야 했던 시간에 멈춰 있는 걸까? 뉴라이트 세력이 주장하듯 반공·반북주의를 절대 이성으로 여기고 있는 시간에 살고 있는 걸까? 또한, 천안함의 진실을 묻으면 곧 종북좌파인가? 극우세력이 종북좌파라고 명명한 사람이나 사건에 대해 회의하면 회의하는 자는 종북좌파인가? 종북 또는 반북보다 더 중요한 가치관, 도덕은 없는가? 진보가 말하는 진실은 종북주의자의 허상에 불과한 것인가? 다시 말해 종북이나 반북과 무관한 또는 그것을 초월한 사람 중심의 사고, 이성은 없는가? 세상에는 사랑, 평화, 정의, 나눔, 복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공평함, 환경 보호 등 종북이나 반북적 가치관보다 훨씬 더 소중한 사상이나 가치관, 도덕이 존재하지 않는가?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적 정글의 법칙을 비판하고, 나눔의 공동체를 강조하는 가치관을 갖고 세상이나 사람을 보는 것은 종북적 태도인가?
우리는 근대를 이성의 시대, 민주주의의 시대로 호명해 왔다. 근대 이성과 민주주의는 절대 종교, 신분제 등이라는 봉건적 주술의 세상에서부터 사람을 해방시켰다. 그러나 한반도에서는 봉건시대이래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진정한 이성의 시대를 맞이할 수 없었다.
과거 종교의 이름으로 이단자를 화형시키고, 유배시켰다. 신분의 이름으로 사람에게 굴레를 씌웠다. "왕후 장상의 씨가 따로 있겠느냐"는 고려 조 노비 만적의 주장은 신분제라는 사슬 속에서 허용될 수 없었고, 조선조에서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떤 사람은 신분 때문에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도 없고, 아무리 능력이 있어서 능력에 맞는 일을 할 수 없으며, 아무리 돈이 많아도 맛있는 음식, 좋은 집에서 살 수 없고, 그런 자유와 권리를 박탈당해야 하는 세상이 강요되었다. 또 어떤 사람은 아버지의 신분 때문에 능력에 상관없이 벼슬과 재산을 세습 받을 수 있고, 노력에 상관없이 호의호식할 수 있고,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사람을 발밑에 둘 수 있는 세상이 주어졌다. 그런 시대에는 양반이 아니고서는 인간일 수 없었고, 세상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으로서 이성을 가질 수 없었다.
그런데 시대마다 그 시대의 질서를 흔들려는 사건들이 드물지만 있었다. 고려조는 말할 것도 없고, 조선조 역시 마찬가지였다. 조선조 후기의 종교 박해 사건의 배경에는 기독교가 있었다. 기독교는 '만민평등사상'으로 유교적 신분제 질서를 흔들려 했다. 1894~95년, 몰락해 가던 조선왕조의 몰락을 가속시켰던 동학농민혁명에도 '인내천사상'과 만민평등사상이 신분제적 주술을 허물어뜨리려고 했다. 즉 기나긴 신분제적 억압 시대에도 민중들 속에서 스스로 인간임을 선언하고 세상을 분별할 수 있는 이성을 가지려는 끈질긴 노력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도 일제는 조선인을 '엽전'이니, '맞아야 말을 듣는다', '조선인은 해도 안돼'는 등 조롱하고 폄하하려 했다. 일본의 경우에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1889년 일제 헌법을 공포하면서 의회제 민주주의를 선포한 소위 민주주의 국가를 가장했다. 1910년 대한제국과 늑약(勒約)한 이래로 일제는 '내선일체(內鮮一體)'라는 위선 속에서 조선민들은 일제의 최하등국민으로 만들었고, 어떠한 자유와 평등의 제도나 정신도 주지 않았다. 황국신민, 대동아공영권의 거짓 기치 속에서 청년들이 끌려나가고 어린 여성이 일본군위안부로 공출 되어 나가야 했던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독립운동, 민족해방운동이 그치지 않고 일어났던 것은 국권회복을 넘어서서 인간화를 회복하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말로 해서 이성 회복을 위한 저항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성 회복을 위한 저항의 움직임은 일제 강점기에는 말할 것도 없고, 한국전쟁 직후 그 참혹한 극우 반공, 냉전의 세상에서도 꿈틀거렸다. 1960년 4.19혁명 직후에도 한국전쟁 전후 빨갱이 사냥에 의해 개죽음을 당했던 유족들이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외치면서 전국 방방곡곡에서 유족회를 구성하며 억울한 죽음을 알렸다. 1961년 5.16쿠데타에 의해 유족회는 흩어지고, 유족회 대표는 사형선고를 당하고 말았다. 소위 혁명재판소는 정의에 사형선고를 내리는 곳으로 변모했다. 유족들은 침묵하고 잊기를 강요당했다. 그러나 그 유족들은 침묵 속에서도 소설도 쓰고, 자녀들에게 억울한 사정을 얘기하기도 하고, 민주화 국면에 진상 규명을 위한 지침 없는 활동을 했다. 반공독재 권력은 민중에게 죽음을 강요하고, 이성의 침묵을 선고할 수 있었으나 최종적인 집행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국가보안법이 무소불위의 칼날을 휘두를 때도 그 칼날을 맞을지언정, 휘거나 도망치지 않으려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한반도에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살도록 호소하기 위해 임진강을 건넜던 게 계기가 되어 네 번이나 조작 간첩이 된 후에 1992년 다섯 번째 만에 진짜 간첩이 되었던 김낙중은 80살의 노인이 되어서도 평화 통일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폭력과 공포는 사실을 왜곡하고 조작할 수 있지만, 진정한 마음을 굴복시키지는 못한다.
3.
21세기 휘몰아치는 종북의 격랑은 과거 반공의 광풍에 비하면 약한 강도인가? 결코 아니다. 20세기 반공의 광풍은 야만적인 냉전 시대의 산물이라고 한다면, 21세기 탈냉전 시대에도 나와 다른 사람을 종북으로 몰아가는 사회는 결코 이성이 살아 있는 사회라고 말할 수 없다. 여전히 야만의 시대를 살고 있고, 적응하고 있는 것이 수치스럽다. 종북으로 찍히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지식인들을 보면 역겹지 않을 수 없다. 아니, 내 안의 사상검열 자체가 역겹다.
진실이 불편한 것이라고 하여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수 없다. 종북 선풍이 사회를 휩쓸어도,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민중들의 삶은 펴지기는커녕,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한반도 분단 구조의 70년간 대결 세력들은 계속 새로운 단어를 제조하고 있다. 반공, 멸공, 빨갱이, 간첩, 좌경용공, 좌빨, 종북좌파 등의 단어들은 사실은 같은 개념이다. 즉 이성의 죽음이다. 식민의 시대와 냉전분단의 시대를 포함한 20세기 100년간 지배집단은 이성의 죽음을 통하여 민주주의의 싹을 자르고, 평화와 통일, 정의와 인권의 깃발을 꺾으려고 시도했다.
고장 난 시계처럼 한반도의 시계는 냉전과 탈냉전 사이를 계속 동요하고 있다. 탈냉전이 강해지면 남북의 화해가 되고, 냉전이 강해지면 대결의 분위기로 치닫게 된다. 그 틈새에서 민중들은 죽어나고, 지식인들은 영혼을 팔았다. 이성의 무덤이 한반도 곳곳에 솟아 있다. 어느 버려진 무덤 가운데 돋아난 들풀 하나가 말한다. "너희가 아무리 내 몸통을 짓밟아도 내 뿌리, 내 영혼마저 갖지는 못해"라고. 이성과 민주주의의 뿌리는 서구와 미국이 주입시켜 준 것이 아니라 자유와 평등을 갖고 싶어 했던 이 땅 민중들의 수천 년 된 희망이다. 이성의 죽음을 통하여 이성은 더 깊게 민주주의의 땅에 뿌리를 내려 부활할 것이다. 그게 바로 민중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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