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이라크 주재 이집트 대사가 납치되고, 5일에는 파키스탄ㆍ바레인 대사가 총격을 받는 등 7월 들어 나흘동안 3명의 이슬람권 최고위 외교관이 이라크 저항세력의 집중적인 공격대상으로 떠올랐다. 이라크 임시정부에 대한 이슬람권 국가들의 인정ㆍ지원을 차단하기 위한 것임이 분명하다. 그만큼 저항세력은 조직적이고 치밀하며 전략적이다.
반면 미국은 2차대전 이후 수십년동안 견지해 온 '두 개의 전쟁 전략'의 포기를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다. 10만명 이상의 미군 병력이 벌써 3년 이상 이라크와 아프간에 발이 묶여 있는 상황에서 '2개의 주요한 재래식 전쟁에서 거의 동시에 결정적 승리를 이루겠다'는 이 전략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자인하기 시작한 셈이다.
물론 부시 대통령은 자신이 벌여놓은 '이라크사업'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태세다. 그는 지난 4일 미국 독립기념일 연설에서 '이라크에서 미군병사들이 흘린 피는 값진 것'이라며 결쿠 후퇴하지 않을 것임을 다짐했다. 과연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에 친미적이며 안정적인 민주정권을 세워 미 국민과 이라크 국민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미국의 석학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자신의 최신(7월 1일자) 월례 칼럼 '부시씨의 전쟁(Mr. Bush's War: http://fbc.binghamton.edu/commentr.htm)'에서 베트남전의 '영광스런 종결'을 시도하다 권좌에서 물러난 닉슨은 이라크전쟁을 일으킨 부시에 비교하면 조무래기 범죄자에 그나마 영리한 편이었다면서 부시는 아마 재임중 탄핵은 피할 수 있겠지만 닉슨보다도 훨씬 엄중한 역사와 민중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1971년 '펜타곤 페이퍼'를 폭로해 베트남전쟁의 추악한 진실을 전세계에 알렸던 미국의 다니엘 엘스버그(74)는 최근 한 연설을 통해 베트남전쟁과 이라크전쟁은 미국이 현지 사정도 제대로 모르는 채, 영어 깨나 하는 자들을 앞잡이로 내세워, 미국의 의지를 일방적으로 관철하려 했다는 점에서 동일한 성격의 전쟁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미국의 본격적인 개입 이후 10년이나 걸렸던 베트남전보다도 이라크전쟁에서 손을 떼기가 훨씬 더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라크에는 엄청난 석유자원이 있는 데다, 지정학적으로 베트남보다 훨씬 중요하며, 미국의 계속 주둔을 바라는 이스라엘의 집요한 로비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엘스버그는 수백만의 목숨을 앗아간 베트남전쟁의 재연을 막기 위해서는 '미군 철수'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면서 정치인들을 비롯한 미국인들에게 진실을 직시하고 양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을 촉구했다.
이 연설은 미국의 대외정책에 관한 진보적 민간연구소인 '포린 폴리시 인 포커스(Foreign Policy In Focus) 등이 베트남 종전 30주년을 이틀 앞둔 지난 4월 28일 미 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세미나에서 행해졌으며 아래 번역 글은 그 요약문이다. 원문은 '포린 폴리시 인 포커스' 홈페이지(http://www.fpif.org/commentary/2005/0506reflect.html)에 실려 있다.
***'베트남전쟁과 이라크전쟁에 대하여(Reflections on Vietnam and the Iraq War)'**
이라크전쟁과 베트남전쟁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지 않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습니다. 저는 언제나, 망설임 없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물론 여러 차이들이 있지요." 이라크는 덥고 건조하며, 우리 병사나 외교관들이 현지 언어를 못하기는 마찬가지지만 그 현지 언어가 예전에는 베트남어였던 것이 지금은 아랍어라는 차이가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찰라비나 알라위 등등의 인물에 대해 '민주적' 대표라고 말하는 우리들의 어법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신기하게도 이들 이라크 지도자들은 예전의 베트남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영어를 기가 막히게 잘합니다.
베트남에서 최상층부의 사람들은 영어를 했습니다만, 중류층의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프랑스어를 했습니다. 이는 저에게 아주 유리했는데, 저도 프랑스어를 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당시) 저는 (베트남) 지역민들과 지역 지도자, 그리고 많은 군사령관들과 프랑스어로 대화를 나눴습니다. 물론 저는 다른 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베트남어를 할 줄 몰랐습니다. 우리들 중의 누구도 현지어를 할 줄 모른다는 것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몰랐습니다. 우리와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은 프랑스 식민정권의 앞잡이였습니다. 베트남 인민들에겐 그렇게 인식됐습니다.
당시의 베트남 지도자들이 영어를 잘 한다는 이유만으로 정치지도자가 됐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반면 베트남 인민들은 미국말 잘하는 것을 지도자의 조건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고 딘 디엠처럼 기독교도라야 지도자 자격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라크에서도 마찬가지겠죠. 미국말을 잘한다고 해서 이라크 지도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미국인들이 깨닫기가 매우 힘든 사실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이라크인들이 우리를 외국 점령군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와 같은 이라크인들의 인식은 정확한 것입니다. 단지 미국인들은 이같은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미국인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디 있든 미국인은 좋은 이웃이야. 우리는 선의의 방문객이고, 기꺼이 도우려는 사람들이며, 해방과 민주주의를 지지하고 있단 말이야.'
베트남전쟁의 시작부터 끝까지 민간인이든 군인이든 미국인 중에 자신과 현지인들의 사이를 제대로 파악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것은 외국인 점령자와 그 앞잡이, 또는 외국인 점령자와 마지못해 점령을 참고 견디는 일반민중의 관계였습니다.
이같은 무지의 결과, 우리는 우리가 선포한 전쟁을 이기기 위해 미국에 대한 반대와 저항을 분쇄할 수 있는 기회를 단 한 차례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이전의 프랑스가 그랬고, 그 이전의 일본도 그랬으며, 그 이전 1천년에 걸친 압제를 가했던 중국도 마찬가지 운명을 겪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베트남을 안정화하고 승리를 달성할 수 있는 권리도, 전망도 없었습니다. 지금의 이라크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지난 1월말에 있었던 이라크 총선은 가장 실용적인 관점에서 본다 하더라도 실패였습니다. 우리가 진정 민주적이고 대표성이 있는 이라크 정부를 원했다면 수니파를 선거과정에 반드시 참여시켰어야 했습니다.
앞으로 미군 병사와 외교관들은 - 그들을 그렇게 부를 수 있다면 말입니다 - 그들이 이라크에 머무는 한 계속 죽을 것이며 또한 계속 죽일 것입니다. 이러한 사태가 과연 얼마나 오래 갈까요?
이라크전쟁과 베트남전쟁의 또 다른 유사점은 미군의 현지주둔이 거짓말과 책임전가에 의해 유지됐다는 점입니다.
거짓말이라 함은, 닉슨 행정부와 그 이전의 존슨 행정부의 경우, 지도자들조차 미군 주둔은 잠정적 조치라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미군 주둔은 승리를 위한 것이며, 궁극적 승리를 거두고 나면 미군 주둔도 끝날 것이라고 믿었지만 이는 자기기만이었습니다. 미국의 어떤 정보기관, 저 자신도 1964-65년에는 그 일원이었던 민간인 자문관들도 그와 같은 전망을 결코 제출한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닉슨은 재임기간 내내 주베트남 미군이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거짓말을 끊임없이 함으로써 미국 국민을 자기편에 묶어 두었습니다. 베트남에 미군기지를 두지 않겠다는 것은 결코, 단 한번도 닉슨의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당초 그는 최소한 4만 정도의 미군 병력을 영구히 베트남에 주둔시킬 생각이었습니다. 그가 이같은 계획을 포기한 것은 의회를 통한 국민대중의 압력, 그리고 늘어만가는 전사자 및 징병제의 압력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단 한번도 지속적인 공습 계획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괌과 태국 근해의 항공모함에서 발진하는 전폭기들의 공습에 의해 사이공의 친미정부를 영구히 유지하려 했습니다. 그의 복안은 미국의 자존심을 살릴 정도의 적당한 시간 간격을 둔 뒤 공산주의자들의 정권 장악을 용인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사태는 그의 뜻대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베트남을 떠난 것은 1975년 4월 30일이었습니다.
미군 헬리콥터가 대사관 지붕 위에 몰려있는 사람들을 태우는 광경은 결코 닉슨이 상상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미국 유권자와 의회의 전비 지원 삭감 등 일련의 사태들에 의해 그와 같은 수모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물론 미군 철수는 닉슨 사임 후에 일어난 일이지요. 그러나 만일 닉슨이 (1974년에) 중도사퇴하지 않았더라면 베트남전쟁은 미국의 압도적 공군력에 의해 지탱돼 최소한 1년이나 2년, 어쩌면 수년 더 지속됐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베트남에서 빠져나오기가, 다시 말해 미국이 베트남에서 일으킨 전쟁을 끝장내는 것이 그토록 어려웠다는 점입니다. 1965년, 미국의 베트남전쟁이 본격화됐을 때 이 전쟁이 10년 안에 끝나리라는 보장은 없었습니다. 미 국민들의 반전 요구에 따른 의회의 압력, 그리고 워터게이트사건과 같은 요행이 없었더라면 베트남전쟁은 아마도 훨씬 더 오래 지속됐을 것입니다.
저는 이라크에서 빠져 나오는 것이 (베트남에서보다) 훨씬 더 어렵고, 훨씬 더 오래 걸릴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베트남에는 석유가 나지 않았습니다. 베트남에서의 미군기지의 필요성은 오늘날 중동지역에서의 미군기지의 필요성에 비하면 보잘 것 없었습니다. 베트남 주변에는 이스라엘처럼 미군의 계속 주둔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미국의 정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아주 긴밀한 맹방이 없었습니다.
저는 미국이 이라크에서 당장은 물론이고 아주 먼 장래에도 이라크에서 빠져나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 언제 그런 일이 벌어질지를 예측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과연 언제 우리는 중동지역의 석유를, 이라크의 석유를 그 지역 사람들에게 넘겨주게 될까요? 미국에 협력적이지도 않으며, 이스라엘에게는 한사코 적대적이고, 또 다른 시아파 국가인 이란에게 우호적인, 그런 사람들에게 말입니다. 과연 그런 날이 올까요? 솔직히 말한다면, 미국의 정권을 민주당이 잡든 공화당이 잡든 그런 날은 아주 오랜 후에나 올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왜 이라크에서 손을 떼야 하는가에 대해, 그것이 왜 좋은 정책인가에 대해 지금 말하지 말자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 저는 린 울시 하원의원(민주당. 캘리포니아주) 등이 제출한 이라크철군법안을 아주 기쁘게 생각합니다. 울시 의원은 부시 행정부 하에서 일련의 아주 훌륭한 활동을 해 왔습니다. 이 법안은 아주 아주 중요합니다.
물론 현실감각을 잃어서는 안 되겠죠. 이 법안이 가까운 장래에, 아니 지금 예측할 수 있는 장래에는 미 의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언젠가는 이라크에서 손을 떼고 이란 등 다른 지역에서의 또 다른 전쟁을 피하려 한다면, 미국이 이라크에서 빠져나오는 것보다 그곳에 계속 있는 것이 미국은 물론 이라크인에게도 좋다는 주장이 거짓임을 분명히 아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금 제안된 법안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 요점입니다.
"당초 방침대로 밀고 나가야 한다." 이는 베트남전쟁에서 지겹도록 들어온 말입니다. 울시 법안(이라크철군법안)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이렇게 말합니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손을 떼는 것이 미국에게 옳은 일이고 이라크인들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말입니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손을 뗐을 경우 미래의 상황이 분명하다거나, 평화가 보장될 것이라거나, 또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베트남에서 우리는 미국이 손을 떼면 그곳의 가톨릭교도들이 집단학살 당할 것이라는 얘기를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베트남인들이 행복하고 민주적인 미래를 가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만일 미국이 계속 이라크에 남아 있다면 이라크를 운영하도록 우리가 선택한 그곳의 협력자들이 지금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테러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바로 '우리'가 저항세력들을 단결시키는 문제의 근원인 것입니다.
지금 저항세력이 뭉치고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바로 미국의 점령입니다. 미군의 점령이 계속되는 한 이라크의 평화는 결코 찾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미군 점령은 평화로운 이라크라는 가능성을 근원적으로 배제하고 있습니다.
부시 행정부는 미군의 이라크 주둔은 의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그들을 지켜줘야 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는 거짓입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해줘야 할 것은 자금지원과 재건사업이지, 미군 주둔이 아닙니다. 미군은 단지 그들을 억압할 뿐입니다.
지금 당장 이라크에서 철수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패배주의자, 유화주의자, 약골, 겁쟁이 등 온갖 비난을 받을 것입니다. 동서냉전이 끝난 요즘 세상에 용공분자라고 비난할 수는 없겠지만 친테러주의자, 친오사마빈라덴주의자라는 비난도 나올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칼한 것은 부시 행정부의 테러전문가였던 리차드 클라크 같은 사람도 미군의 이라크 점령은 나날이 알카에다의 힘의 강화시킬 뿐이라고 지적했다는 점입니다. 현 정부가 주장하는 것과는 정반대죠.
그들은 철수를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해 "너, 테러를 옹호하고 있는 거지" "너, 패배를 원하는 거지"라고 을러댑니다.
베트남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패배주의자, 유화주의자, 약골, 겁쟁이 등의 비난을 들을 각오가 돼 있지 않다면 우리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비난을 감수할 각오가 돼 있지 않다면 우리가 해야만 하는 것, 즉 최대한 이른 시일 내의 이라크 철수라는 목표에 단 한발짝도 다가갈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미국의 정치인들이 겁쟁이라는 비난을 들을 각오가 돼 있지 않았기 때문에 지난 세기 그 전쟁에서 수십만, 아니 베트남인들까지 포함하면 수백만이 무고한 희생을 당했다고. 그들은 그 비난이 터무니없고 엉뚱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약하고, 사내답지 못하며, 겁 많고, 패배주의적이라는 비난을 직면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지금 이 나라에서 오클랜드의 바바라 리 하원의원(민주당)보다 더 위대한 영웅은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녀는 지난 2001년, 의회 청문회 없이 아프간전쟁에 돌입하자는 데 대해 반대표를 던진 유일한 의원이었습니다.
다음해 그녀는 이라크전쟁에 반대하는 투쟁을 이끌었습니다. 미국을 베트남전으로 이끌었던 통킹만결의안과 유사한 이라크전쟁결의안 반대 투쟁에는 1백32명의 의원이 동참했습니다.
그녀는 아프가니스탄과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문제에 관한 청문회나 토론, 심사숙고도 없이 헌법상 고유권한인 의회의 전쟁선포권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는 절대적으로 옳은 주장입니다.
베트남전과 이라크전쟁의 초기 양상은 전혀 달랐지만, 이라크의 경우 초기엔 전격전의 양상이었죠, 두 전쟁 모두 우리는 거짓에 의해 전쟁에 끌려 들어갔습니다. 이제 두 전쟁의 양상은 매우 비슷해졌습니다. 베트남전 당시 통킹만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으며 아직도 의회에 남아 있는 두 상원의원, 에드워드 케네디와 로버트 버드 의원은 동료 의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거의 40년 전 내가 했던 일을 지금도 부끄러워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제발 일평생 후회가 될 일을 하지 마십시오." 아마도 그들 중 대다수는 앞으로 남은 일생 부끄러움을 안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비난을 감수할 수 있는 용기입니다. 이라크에서 철수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입니다.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입니다. 그 용기가 점령으로부터 이라크인은 물론 미국인을 구원해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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