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경력 47년. 오로지 학생과 교사만을 생각하는 충정으로 살아가는 사람."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다. 이는 교육감이 자신을 가리켜 평가한 말이다.
지난 25일로 취임 1년을 맞는 공 교육감에게 현직교사로서 함께 축하하고 그 공로를 치하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마는 이러한 교육감의 자평에 대해 커다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 답답할 따름이다.
***학력신장 덕분(?)에 애꿎게 고생한 교사·학생·학부모**
공 교육감은 취임 초부터 기존의 서울교육이 심대한 문제가 있다고 진단하고 이를 시정할 해법으로 이른바 '학력신장방안'을 내놨다. '학력신장방안'의 많은 내용 가운데 1년 동안 학교 현장을 뒤흔들었던 핵심적인 내용들을 살펴보면 첫째, 초등학교에서 시험을 부활하고 그 결과를 상대적인 가늠이 가능한 방식으로 통지한다. 둘째, 중·고등학교에서 신입생들에게 일률적인 진단평가를 실시하고, 서술·논술형 평가를 30% 이상 실시한다. 셋째, 자립형 사립고를 확대하고 평준화를 보완(?)한다는 것 등 이었다.
이러한 교육감의 정책 덕분에 지난 1년 동안 초등학생들은 '지하철 타고 집에서 서울역까지 갔다 와 보기' 대신에 '서울지하철은 몇 호선까지 있나'를 달달 외워야 했으며, 시험에 대비하기 위해 학원에 다니고 온갖 학습지를 끌어안고 씨름했다. 학부모들은 그런 시험에 대비하기 위해 아이들을 닦달하며 어느 학원이 좋은지 어떤 학습지가 좋은지 머리를 싸매야 했고 성적표를 받아들고는 속을 끓였다. 교사들은 교사들대로 '이게 아닌데' 싶으면서도 진도 나가기를 포기한 채 시험 열흘 전쯤부터 매일같이 아이들에게 학습지를 만들어 풀게 했다.
중·고등학생들의 지난 1년은 어땠을까? 서울시 전체 신입생들은 입학하자마자 똑같은 문제로 '진단평가'라는 시험을 치러야 했고 정보가 빠른 엄마들은 아이들을 입학 전부터 학원에 다니게 하거나 학습지를 풀게 하면서 시험 대비를 시켰다. 새로운 중학교 생활에 대한 아이들의 기대는 무너지고 중학교 생활은 시험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그뿐 아니다. 주변 몇 개의 초등학교에서 온 아이들의 평가 결과가 나오면서 'A초등학교 아이들이 B초등학교 아이들보다 성적이 좋다더라' 'C초등학교 아이들 성적이 제일 낮더라' 하는 식의 이야기들이 나돌기 시작했다. 아이들뿐 아니라 인근 초등학교까지 너무나 자연스럽게 '줄 세우기'가 된 것이다. 첫 해가 이러할진대 이것이 2~3년 지속되면 초등학교 고학년 교실의 풍경이 어떻게 변질될지는 불을 보듯 뻔해진다.
학교에서 교사들은 자기 교과의 특성에 맞게, 그리고 교과내용에 맞게 때로는 보고서로, 때로는 포트폴리오로, 때로는 감상문으로, 때로는 서술형 문제로, 때로는 객관식 선다형 문제로 아이들의 학습결과를 평가한다. 하지만 서술·논술형 30% 평가를 획일적으로 강요한 교육감의 정책으로 인해 교과의 특성과 교육내용의 특성을 살린 평가나 이제 정착 단계에 이른 수행평가는 학교 현장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정책은 보다 창의력과 사고력을 키우겠다는 교육감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한 교사가 한꺼번에 수 백 명 아이들을 평가해야 하는 현실에서는 형식적인 평가로 그치게 될 가능성도 높다.
***'꽃 같은 청춘' 박제화 정책 즉각 중단해야**
1년을 되돌아보면 교육감의 '학력신장방안'의 결과로 W학습지 회사와 J학습지 회사의 주식은 껑충 뛰었고, 관련 예산은 신설됐으나 저소득층 자녀들에 대한 각종 지원비와 부진아 지도를 위한 예산은 삭감되거나 학교예산으로 떠넘겨져 사실상 실종되고 말았다. 교사들은 지난 1년 동안 교육담당자로서의 책임감을 통감하며 자괴감에 빠진 채 새로운 '학력신장 방안'을 실시하기 위해 부과된 더 많은 업무들에 치여 지내 왔다. 이것이 공교육감이 심혈을 기울여 1년 동안 추진한 '학력신장방안' 정책의 결과다.
아이들의 학력이 신장되기는커녕 십수 년 동안 어렵게 노력해서 아이들을 점수의 굴레로부터 간신히 해방시켜 놓은 초등학교조차 다시 시험과 점수, 그리고 줄 세우기의 살벌한 현장으로 변하고 있다. 다양한 수업 방식과 평가는 이제 점점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아이들의 창의성은 다시 박제화되고 연필 하나 달랑 들고 학습지에 매달려 점수 잘 따는 아이들이 '학력 좋은' 아이들로 평가받는 시대착오적인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두 아이를 가진 학부모로서, 교직경력이 47년에는 못 미치나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나름대로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더 잘 가르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일선 교사로서 공 교육감 취임 뒤 1년은 고통과 걱정의 시간이었다.
12년 동안 오로지 대학 가기에 매달려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꽃 같은 청춘을 보내야 하는 우리 아이들이다. 그 아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점수따기 식 '학력'이 아니라, 좀 더 폭넓고 다양한 교육방식 속에서 '제대로 된 창의성과 사고력'을 키우는 교육이다.
서울의 교사들은 온갖 공문과 잡무에 치여 교재연구와 아이들 상담할 시간조차 제대로 내기 어려운 형편이다. 심지어 초등학교 교사들은 30시간이 넘는 살인적인 수업부담을 지고 있다. 우리 교사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각종 비교육적 업무에서 벗어나 오로지 아이들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학교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그리하여 3년 뒤 공 교육감 퇴임식 때는 많은 교사들이 다함께 노고를 치하하며 아쉬워하는 축제를 벌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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