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전문기자 오동진과 중견 영화평론가 김영진이 개봉영화 가운데 한 편을 골라 매주 벌이는 사이버 영화논쟁. 이번 주는 권상우, 유지태 주연의〈야수〉가 도마에 올랐다. 두 사람, 이번 영화만큼은 작정하고 씹었다.
(소 box) 〈야수〉는 어떤 영화? 세상에 길들여지지 않은 야수 같은 두 남자가 암흑가의 거물에 맞서 거친 폭력의 세계에 뛰어 드는 이야기를 그렸다. 눈앞에서 조직 폭력배들에 의해 동생을 잃고 복수심에 불타는 형사 장도영(권상우)과 사회정의를 구현해야 한다는 신념의 검사 오진우(유지태)가 온갖 비리를 저지르고도 보란 듯이 정치가로 나서는 조직의 보스 유강진(손병호)을 잡기 위해 목숨을 걸고 수사를 벌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법과 질서는 결코 이 둘의 편이 아니다. 둘의 운명은 비극적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
오동진 : 일단 이 영화에서 좋은 점, 미덕부터 얘기해 보자. 김영진 : 전형적인 매력이 있다. 어디선가 본듯한 영웅과 악당의 모습, 그게 바로 이 영화가 주는 친숙한 매력이다. 오동진 : 그 전형성 때문에 지겹지는 않았고? 김영진 : 그게 이 영화의 매력이자 독인 것 같다. 오동진 : 매력이자 독이라... 단순하게 인상 비평적으로 이 영화에 대해서 한마디로 말하면 한 젊은 감독이 영화에 대한 과잉의 감정을 마구 발산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갈 데까지 간 사람들, 더 이상 돌아갈 데가 없는 인간들의 얘기인데 이상하게 그게 전혀 와 닿지가 않는다. 유희 같은 느낌을 준다. 김영진 : 오호 그런 가혹한 얘기를... 그렇다기보다는 너무 정제되지 않은 시각이라고 할까, 그런 게 거슬렸다. 뭐냐 하면 전형성을 끌어온 것은 좋은데 거기서 더 들어가지 못했다는 거다. 오동진 : 그러니까 그 전형성이란 게 세상의 고민이 중첩되지 않으니까 세상의 진짜 모습으로 전화되지 않는 거다. 김영진 : 난 영웅과 악당의 이분법 구도를 지적하고 싶다. 물론 그게 대중영화의 익숙한 꼴이긴 하다. 헌데 이 영화는 비극이다. 그 비극의 울림을 제대로 살리려면 그 이분법을 비트는 뭔가가 있어야 했다고 본다. 오동진 : 가장 큰 문제는 관객들을 자꾸 설득하려고 한다는 거다. 예를 들어 유지태의 법정 '난동' 장면 같은... 김영진 : 그게 이분법 구도의 함정이라는 거다. 적은 악하고 우리는 선하다는... 그러니까 폭력과 악의 순환이라는 이 영화의 주제가 덜커덩거리기만 하고 전혀 와 닿지가 않게 되는 거다.
오동진 : 이 영화에서 리얼리티가 극히 떨어지는 장면 하나는 오진우 검사와 형사 장도영이 한 유치장에 들어가 바로 옆방을 쓴다는 거다. 피의자들이 서로 범죄사실을 의논할 수 있도록 방을 배치한다는 게 말이나 될 법한 소리인가. 그 장면을 보면서 이 감독이 어떤 부분에서는 지나치게 나이브하다는 생각을 했다. 김영진 : 하하하… 음, 일리가 있다. 오동진 : 적어도 그런 인물들이 감옥에서 만날 때는 운동을 하는 시간에 슬쩍 쪽지를 전달한다든가 등등 뭔가 거기서도 긴장감을 깔아 놓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런 정성은 없고 자꾸 인물들의 대사를 집어 넣으려고 한다. 김영진 : 이 영화가 중반 이후에 지루해지는 건 바로 그런 디테일 부족 때문이다. 나도 그런 점이 불만인데 전문가들이 나오는 영화가 전혀 전문가들답지 않다는 게 늘 불만이다. 허장성세라고 할까, 인물의 감정 묘사에만 집중하면 다 전달되는 줄 안다. 하지만 영화는 그렇게 해서는 그 인물에 대해 전혀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첨가해서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 한가지는 영화 속의 악당 캐릭터인 유강진이 말하는 대사, 정치인들이 깡패보다 못한 것들 운운하는 그런 대사에서 오는 나이브함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적이 분명하고 그 적에 대해 분노하고 욕하기만 하면 세상의 본질을 밝힐 수 있다고 여기는 그런 상투적인 인식 말이다. 오동진 : 맞다. 그것도 진부함의 극치라고 봤다. 한편으로 보면 이 영화는 액션 신에 힘을 팍 주고 있다. 거기에다 퀵 줌이니 화면 분할이니, 줌 인 트랙 아웃이니 혹은 줌 아웃 트랙인이니 등등 여러 재주를 부린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끝까지 가져가야 할 주제의식의 끈을 중간중간 슬쩍 놓아 버린다는 것이 용서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김영진 : 나는 이 감독이 홍콩 영화나 미국영화를 꽤 본 것 같은 인상을 받았는데 정작 거기서 핵심은 놓친 것 같다. 오동진 : 영화를 많이 본 건 좋은데, 진짜 영화는 보지 않은 셈이다? 김영진 : 그네들의 잘 된 영화에서 보면 전형성이라는 틀을 놓고 거기서 한 발 더 들어가 영웅 같은 악당, 악당 같은 영웅의 모습을 보여준다. 거기서 때로 기막힌 디테일이 나오는 것 같은데. 이 영화는 올드 클래식 할리우드 영화 수준만도 못한 것 같다. 근데 왜 요즘 한국영화는 그렇게 주인공들이 불행해지는 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비극이 될 수 있는 요건은 부족해 보인다. 운명의 족쇄, 세상의 그물코 같은 폭력에 대해서는 시선을 아예 안 두고 있다. 그냥 이야기의 논리에 갇혀 인물들이 잔뜩 인상을 쓰고 허장성세만 부리고 있다. 오동진 : 세상이 어떻게 운행되고 있는지를 실제로는 잘 모르고 있는 셈이다. 세상에 대한 고민을 별로 안 하면, 액션장면을 어떻게 찍을까, 이 인물을 어떻게 멋있게 스타일화할까, 어떻게 비극적으로 결말을 맺을까 등등만 고민하게 되는 거다. 〈야수〉는 바로 그런 오류의 극치처럼 느껴진다. 영화가 전반적으로 '어리게' 느껴지는 건 그 때문이다. 김영진 : 그래서인지 이 영화에 자주 나오는 기교적인 부분도 예쁘게만 보이지가 않는다. 뭔가 허공에서 노는 느낌이라고 할까. 특히 빈번하게 나오는 그 퀵 줌 효과는 인물에게 달라붙어서 감정을 뽑아내려 안달하는 듯 했다. 제목 그대로 야수가 될 수밖에 없었던 남자들의 모습을 보여주려면 결국 그들이 야수가 돼야 했던 동기를 어떻게든 세상 속에서 찾아내야 하는 것 아닌가? 가혹한 표현이지만 일방으로만 생각하는, 고통조차도 일방으로만 생각하는 그런 관점에선 얘기와 인물이 어리게 보일 수밖에 없다. 젊고 신선한 게 아니라... 차라리 할리우드 영화처럼 정의는 결국 승리한다, 뭐 이런 게 덜 유치하지 않지 않았을까?
오동진 : 우리영화가 진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무엇보다 제작비가 수월찮게 들어가는 큰 영화를 찍으면서 신인감독에게 턱 맡겨 버린다. 이게 요즘 충무로의 경향인 것 같다. 신인들이 득세하고 중견들은 조로하고. 김영진 : 정의의 판타지는 거부하면서도 실제 세상의 모습에 촉수를 들이댈 영혼은 둔감한 이런 경향은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오동진 : 정의의 판타지는 거부하면서..영혼은 둔감하다..오늘의 결론이네...제대로다. 아무리 상업영화라는 테두리를 둘러치더라도 거기에도 기본이라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신의 기본. 오늘 우리 둘 다 조금 날이 서있군. 김영진 : 비판만 해서인가. 좀 공허하다. 아무튼 이 영화에 대한 반응은 반반인 것 같다. 연령층에 따라 그렇게 나뉘는 것 같지는 않고.. 이 영화의 전형성에 대한 호감, 비호감에 따라 평가가 나뉘는 것 같다. 오동진 :전형성에 대한 호감,비호감? 우리에게도 홍콩 느와르 같은 영화 한편이 나왔다,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아니다 뭐 그런 건가? 그것도 참.. 김영진 : 영화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으면 그럭저럭 볼만하다, 그런 얘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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