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에서는 지금까지 집시법 위반, 업무방해, 공유수면관리법 위반, 일반교통 방해 등으로 600여 명이 연행됐다. 그 중 무죄추정원칙에도 불구하고 구속 수감되어 재판을 받아온 사람은 강동균, 김종환, 김미량 등 마을 주민과 송강호, 김동원, 김복철, 박석진, 정연길 등 총 21명이다.
| ▲ 시위 중 끌려나가는 강정마을 평화운동가들 ⓒ조성봉 |
해군기지건설을 반대하는 활동가들에 대한 정부의 탄압과 폭력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송강호 박사는 해군으로부터 물속에서 폭행을 당했었고 바지선에서 바다 위 카약으로 떨어진 적도 있다. 또 경찰에 연행되는 과정에서 몸이 아스팔트와 차량 사이에 끼여 목이 부러질 뻔한 위험한 상황을 겪기도 했으며 경찰의 폭행으로 이가 부서지고 턱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이뿐만 아니라 영화평론가 양윤모씨가 경찰에게 복부를 가격당하는 모습이 영상으로 고스란히 담겼고 대학생 10여 명은 한밤중에 공사장 안에서 날카로운 철조망으로 밀려 돌기에 찔리는 등의 폭력을 당했다. 문정현 신부는 포구에서 밀려 7m 아래로 떨어졌고 미사 도중 성체가 밟히는 사건도 있었으며 수녀 19명이 연행되는 사건도 있었다. 40m 높이의 화순항 케이슨 제작장에서 농성을 벌였던 정연길 목사는 어떠한 안전장치도 없이 경찰에 의해 강제 연행되기도 했다.
한국 정부는 2013년에 UN 인권위원회 이사국으로 참여하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강정마을에서의 폭력, 4대강 건설 강행, 쌍용자동차 노동자 탄압, 용산 철거민 강제진압 등 지속적으로 국가 폭력을 자행하고 있다. UN에서도 이 사건들과 관련해 인권 침해에 대한 경고 조치와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데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특히 강정마을 해군기지 사업은 마을 공동체와 주민들의 삶을 무너뜨리고 평화 활동가들과 성직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 ▲ 해군기지건설 반대 미사 중 수녀 18명이 경찰에 의해 연행되고 있다. ⓒ강정마을회 |
하지만 국가 폭력을 넘어 지금도 많은 성직자와 활동가들이 평화로운 강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들은 미사를 지내고 기도를 하고 평화 커피를 팔고 평화콘서트로 노래하고 강정 댄스를 추고 전국을 걷는 평화 활동 등을 하며 해군기지사업을 멈추라고 이야기한다.
송강호 박사는 3월 6일 구럼비 발파를 며칠 남겨두고 구럼비를 지키겠다고 바위로 진입했다, 이후 지난 4월 1일 수감되었다가 9월 29일 보석으로 나왔다. 그는 교도소 면회 때 특유의 밝은 미소를 띠며 본인보다 오히려 밖에 있는 사람을 걱정했다.
김복철 활동가는 화순항, 서귀포항, 화약고 등의 투쟁현장에서 언제나 큰 형 노릇을 했다.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해군기지공사가 다급해지면 경찰과 용역들의 폭력이 강해져서 주민들과 활동가들이 위험할 수 있으니 조심했으면 좋겠다는 신신당부를 했다. 또 밖으로 나가면 평화 카페나 민박 사장님이 되어서 동료들과 즐겁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전하기도 했다.
김동원 순례자는 강정에서 활동하는 평화활동가로 벌써 두 번째 교도소에 들어갔다. 옥중에서도 순례기를 통해 마을 주민과 활동가, 경찰, 건설업체 관계자들과 소통하고 싶다며 많은 분들에게 양심의 소리에 충실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구럼비와 우리는 하나입니다. 모두 함께 꼭 지켜주세요. 박용성: 많은 사람들이 부르는 별칭이 '게릴라' 인데요.
박용성: 강정마을에서 많은 후배들이 게릴라의 활동과 인간성을 좋아하던데요. 김복철: 코레일 직원이자 철도노조 조합원으로 현재는 서울의 소리 기자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강정에서는 지난해 몸이 좋지 않아 휴가차 제주도로 내려왔다가 철도노조 해고자 신분으로 8월부터 연말까지 강정마을에서 경찰과 업체를 상대로 1인 시위 및 여러 가지 투쟁을 했었습니다. 올 3월 구럼비 발파 이후 서울의 소리 기자로서 불법 화약운송 관련 취재 및 지킴이 활동을 했습니다. 강정에서의 활동을 스스로 평가한다면 머리는 아니지만 몸으로나마 일조했다고 할까요. (웃음) 박용성: 강정에서 게릴라만의 평화 활동을 하게 된 배경에는 그전의 활동이 많은 영향을 끼친 것 같은데요 김복철: 2006년 철도노조 충북 제천 전기 쟁의대책위원장과 미(未)조직비정규직 조직국장, 정책국장, 정보통신국장으로 노조 활동을 하다가 2010년 1월 해고되었다가 이듬해 6월에 복직되었습니다. 그 중간에는 해병대를 제대한 해병예비역들과 2008년 촛불 정국 때 국민의 희망 해병 모임에 참여하면서 다양한 활동을 했었습니다. 용산참사 집회 및 이 대통령 퇴진 활동에 힘을 보탰었고 2009년도에는 고 박종태열사 추모집회에 참석했다가 서울페스티벌 무대를 점거해서 연행됐고 촛불 관련 혐의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되기도 했었습니다. 보수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전문 시위꾼으로서 자격증을 취득해도 될 만큼 활동을 한 것 같습니다. (웃음) 박용성: 구속되었을 때 상황이 어땠는지요. 김복철: 강정마을에 와서 총 6번 연행되었습니다. 영장 청구를 3번이나 당했는데 2번은 모두 기각되었고 6월 14일 사건으로 구속되었습니다. 그날은 평화 활동가가 덤프트럭 밑으로 들어가 있었던 날이라 저는 취재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서귀포경찰서 구슬환 경비과장에게 활동가를 설득해달라는 요청에 몇 차례 설득하는 과정에서 그동안의 활동과 차량을 덤프트럭 앞에 세워둔 것이 표적이 되어서 54기동대에게 기습적으로 연행되었습니다. 경찰의 비겁하고 어이없는 행동입니다. 박용성: 한여름의 제주교도소 수감 생활이 힘들었을 텐데 교도소에서 주로 무얼 하는지요. 김복철: 몸이 좋지 않아서 운동을 정말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폐가 안 좋았는데 담배도 끊고 운동도 열심히 하니 까맣던 얼굴 혈색도 많이 좋아졌다고 다들 그러네요. 책도 많이 읽고 있습니다. 교도소 생활을 하며 몸과 마음의 양식을 채우는 중이죠. 하루는 삶은 달걀이 먹고 싶어 어렵사리 방법을 찾아 뜨거운 물에 삶아 먹다가 독방에 10일간 갇히기도 했답니다.(웃음) 주민분들, 활동가분들에게 죄송하지만 잘 쉬고 있습니다. 오세요. 제주교도소 평화의 성지로. 박용성 : 강정 해군기지 사업의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이고 강정마을이 장차 어떻게 되길 바라는지요. 김복철: 마을 주민들의 의견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진행되다 보니 국책사업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과정이 꼼수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현재 공사를 중단하는 것밖에는 강정해군기지 사업의 총체적인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공사 강행으로 구럼비 바위가 일부 깨져있긴 하지만 그것은 자연이 복구해 줄 겁니다. 아름다운 구럼비를 그대로 보존하고 강정마을이 세계적인 평화마을로 조성되기를 바랍니다. 박용성: 강정마을 주민들과 활동가들 그리고 국민들에게 하고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김복철: 구럼비와 우리는 하나입니다. 모두 함께 꼭 지켜주세요. 전쟁 대신 평화를 전 세계에 전파할 수 있는 평화의 공원을 만듭시다 박용성: 평화활동가로서 마을 주민과 활동가들에게 매우 상반되게 불리던데요. 송강호: 같이 활동하는 SOS 평화활동가들은 나를 물귀신이라고 부르고 주민들은 '송 박사'라고 부릅니다.
박용성: 강정 마을에서의 본인의 활동을 말한다면요. 송강호: 강정에 기도하러 왔어요. 불의 앞에 정의가 짓밟히고 폭력 앞에 평화가 압살당한 강정 마을에 하나님의 평화와 정의가 실현되도록 기도드리는 일이 나의 일이라고 생각했고 강정에서의 활동도 쭉 그래 왔습니다. 박용성: 자연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유독 강하던데요. 송강호: 수락산 자락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자연에 대한 한없는 매력을 느끼며 어린 시절을 보냈지요. 구럼비는 어렸을 때의 기억을 되살려 냅니다. 이런 아름다운 자연을 무대로 뛰어놀고 살았던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많지요. 박용성: 독일에서 신학 공부를 하고 그 이후 국제적인 평화활동을 해왔는데 한국으로 돌아와 강정에 오게 된 결정적인 배경이 있었는지요. 송강호: 독일에서 신학을 공부했었고 그 이후 국제적인 평화 활동을 해왔습니다. 국제 평화활동은 '개척자(Frontier)'에서의 활동입니다. 개척자는 아프가니스탄, 동티모르,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등지의 분쟁 지역에서 평화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2011년 1월에 제주도의 목사님들이 평화 신학강연을 요청해왔습니다. 그 일로 제주도에 내려온 길에 강정에 와서 양윤모 감독과 함께 구럼비 바위에 있던 중덕사라는 간이시설물에서 지내게 됐습니다. 그때 마을의 김종환 형님이 개척자들의 방문객들을 둘러보기 위해서 중덕사에 들러 막걸리를 드시며 힘을 잃고 투쟁의 의지가 사라지고 있는 강정 마을 주민들의 현실을 안타까워하셨습니다. 그 한숨 소리와 한탄했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여 강정 마을에서 기도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전쟁의 비참함과 폭력의 조악함을 피부로 느끼며 살아왔습니다. 아름다운 자연 유산인 구럼비 바위 지대를 파괴시켜 전쟁기지를 만든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미친 짓이기 때문입니다. 박용성: 송 박사님이 해군, 경찰 등 국가와 삼성, 대림 등 업체의 폭력에 가장 많이 노출되어왔고 얼마 전에는 구속까지 되어 많은 분들이 안타까워합니다. 구속되었던 당시 상황이 어땠나요. 송강호: 3월 6일부터 구럼비 바위를 폭파하기 시작했는데 4월 1일 주민들의 간절한 호소를 외면한 채 사업단은 포크레인과 천공기로 구럼비 바위를 쪼개고 부숴버렸습니다. 그래서 사업단에 공사를 중단해 달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리고 철조망을 넘어 구럼비가 부서지는 현장으로 들어갔습니다. 경찰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저를 잡아 팔을 뒤로 비틀고 차로 옮겼습니다. 그 과정에서 차의 밑바닥에 귀와 목이 밟혀서 짓뭉개졌고 이가 부서졌으며 턱밑이 찢어졌습니다. 그 날은 아이러니하게도 만우절이자 쉰다섯 번째 생일이었습니다. 박용성: 송 박사님이 보는 강정마을 해군기지의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인지요.
박용성: 해군기지 사업 중단이 당장 큰 과제이지만 강정마을이 어떻게 변화되었으면 하는지 고민을 많이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송강호: 강정마을 해군기지는 반드시 중단되어야 합니다. 온 국민이 함께 막아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강정 마을에 생명 평화의 공원이 세워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전쟁 대신 평화를 노래하고, 춤추고, 배우고, 가르쳐 세계에 평화를 전파할 수 있는 평화의 공원이 만들어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온 세계의 정의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강정 마을을 찾아와 함께 투쟁해주길 바랍니다. 몇 해가 아니라 수십 년이 걸릴지라도 반드시 함께해주셔야 합니다. 박용성: 현재 <평화, 그 아득한 희망을 걷다-르완다에서 강정까지 송강호의 평화 이야기> 집필과 법정 대응에 집중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교도소에서의 생활은 어떠셨나요. 송강호: 하루 세 번 제주도가 비무장 평화의 섬이 되게 해달라고, 강정마을에 화해와 평화가 오게 해달라고 기도했었습니다. 또 살아 있는 구럼비 바위와 그 곁에 살고 있는 하나님의 피조물들을 지켜달라고, 그리고 우리나라가 평화통일을 이루도록 항상 기도했고요. 박용성: 강정마을 주민들과 함께하는 평화 지킴이와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송강호: 무엇보다 먼저 사랑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을 만나게 된 것이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은혜와 축복이었습니다. 평화 지킴이 여러분들이 정문을 지키고 바지선의 크레인을 오르며 바다에 뛰어드는 모습을 보며 여러분들이 눈물겹도록 사랑스럽고 존경스럽습니다. 국민 여러분! 국익과 안보라는 미명하에 지금 강정 주민들을 희생양으로 삼으려고 하지만 그다음은 여러분 자신임을 잊지 마십시오. 지금 억울한 희생을 막지 않으면 아무도 당신들이 겪을 억울한 희생을 막아줄 동료는 없습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억울한 강정 주민들을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아름다운 구럼비를 꼭 지켜주십시오. 강정마을의 평화운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의 가치와 평화를 지키는 것 박용성: 동원씨는 수수하게 생겼고 활동이나 말투도 부드러운데 어렸을 때는 어땠는지요.
박용성: 사회복지사로서 강정에서의 활동이 맞닿아 있는 것 같은데요 김동원: 소신 강하고 능력 있는 사회복지사는 아니었지만 대학 때부터 고민해왔고 2년 동안 청소년 사회복지기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습니다. 공부와 현장 근무를 통해 사람과 사회에 대한 인위적인 변화를 지양하고 사람과 사회가 지닌 본래의 힘(소통, 나눔, 회복력 등)을 믿으며 도움을 주는 사회복지사가 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공동체'에 주목하게 되었고 기존 공동체들을 살리거나 새로운 공동체들을 만드는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강정마을 공동체 문제는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박용성: 강정 마을과는 어떻게 인연이 됐나요 김동원: 지난해 해군기지 공사 시작 즈음인 4월 초에 우연한 소개로 여행길에서 강정마을의 아픔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강정 마을에서 만난 모든 장면들이 낯설었습니다. 바다를 안고 있어 더욱 아름다운 구럼비를 쓰다듬어 보았고, 구럼비를 지키기 위해 바퀴 달린 공사 장비 앞에 자신의 몸을 눕히는 마을 주민들을 만났고, 그러한 주민들을 잡아가는 경찰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2개월 가까이 순례자의 신분으로 강정마을을 도우며 지내다가 집에 돌아가 새로운 짐을 싸고 다시 강정마을로 돌아왔습니다. 강정마을 주민들의 눈물 때문에 온 걸음, 지금까지도 포기하지 않고 구럼비와 마을을 지키기 위해 흘리는 희망의 눈물을 믿고 지금까지 걸어온 것입니다. 박용성: 지난해 중덕 해안가를 가로막는 펜스를 막다가 구속된 이후 해상 크레인에 올라 구속되었는데 그때 상황이 어땠나요. 김동원: 강정 앞바다 준설 작업을 하는 바지선 위에 오른 6월 30일은 제 인생 두 번째 구속일입니다. 해군기지 공사로 인한 바다 피해를 최소화해주는 생명줄인 오탁수방지막은 그날도 여전히 이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바다는 천연기념물 연산호를 비롯하여 온갖 생명들을 품고 있는데도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바다 밑을 파헤치고 있었죠.
박용성: 옥중 순례기를 통해서 강정마을과 활동가들 그리고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호흡을 하고 있는데 교도소에서 주로 하는 일은 무엇인지요. 김동원: 물이 고이면 썩을까 두려워 옥중 순례기라는 글을 씁니다. 제가 교도소에서 느끼고 경험하는 것들로 생명평화의 가치를 말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치를 갖고 이곳 사람들을 만납니다. 소란스러운 낮에는 책을 읽고 밤이 되면 편지를 쓰며 새벽이 되면 기도를 합니다. 박용성: 순례자 김동원에게 해군기지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지요. 김동원: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누구든지 개인의 양심과 도덕이 파괴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옆에 있는 사람이 아파할 때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옆 사람의 아픔과 고통을 외면할 수도 있다는 것을 너무나 정확히 보여주는 곳이 강정마을입니다. 해군은 강정마을 주민들이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도 마을을 빼앗고, 주민들을 서로 적이 되게 만들었지요. 생명이 고통을 느끼고 죽어가는 사실을 알면서도 땅과 바다를 파헤칩니다. 그리고 군사기지 건설로 인해 국가 간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염두 하면서도 군사기지 건설을 강행합니다. 세상의 생명과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개인, 사회, 국가가 본래 지니고 있는 양심과 도덕을 먼저 지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박용성: 지금 당장은 해군기지사업의 중단이 최우선이겠지만 장기적으로 바라는 강정마을의 미래를 그려 본다면. 김동원: 강정마을의 평화운동이 단순히 자신들의 땅, 집 등의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뜻만 있었다면 지금까지 오랜 시간 오지 않았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사람의 의지만으로도 눈에 보이는 땅과 집 그리고 구럼비 바위 등을 지켜나갈 수 있겠지만 분명 언젠가는 그 의지가 무너질지 모릅니다. 지금의 강정마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의 가치와 평화, 그리고 양심과 도덕을 지켜나가려는 의지에 신념을 더하여 사람과 공동체의 성숙을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길을 가고 있지만 그것이 세상의 빛이 되고 희망이 되고 있음은 우리와 반대편에 서 있는 모든 존재들도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강정마을이 400여 년 동안 아름답고 풍요로운 자연을 지키고 누리며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왔듯이 세상에 빛과 희망이 되는 생명·평화의 가치 그리고 양심과 도덕을 지키고 누리며 다시금 자연과 더불어 행복한 마을로서 오랫동안 살아갈 수 있길 바랍니다. 박용성: 평화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김동원: 강정에 오기 전 늦은 나이어서 이번만큼은 국방의 의무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군 입대 5일 전에 입영 연기를 했습니다. 이렇게 감옥에 올 용기는 있었어도 강정 마을을 뒤로한 채 돌아설 용기는 없었지요. 또 이 나라 국민으로서 국방의 의무보다 사람과 공동체의 아픔을 외면하지 말아야 할 의무가 우선했습니다. 그래서 국방의 의무 대신 강정 마을에서 평화 복무를 하고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총을 들지 않고 제가 지닌 평화로써 평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전쟁과 갈등 그리고 고통과 차별받는 사람과 자연이 없도록 저마다의 생명평화의 가치와 각자의 재능으로서 언제 어느 곳에서든 평화 복무를 해주세요. 이 땅의 평화는 총을 든 자들만이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닌 우리 모두가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평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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