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귀중한 자원인 석유를 60%나 갖고 있는 아랍지역. 그런데 그 아랍의 주민들은 어째서 다른 지역들보다 더 큰 절망과 고통 속에 지내고 있는 것일까? 지난 70년대 석유를 앞세운 자원민족주의로 '새로운 세계경제질서'의 주역으로까지 각광을 받았던 아랍이 왜 지금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중동전략 앞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일까? 같은 제3세계이면서도 지금 남미에서는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볼리비아의 모랄레스 등을 중심으로 '우리의 자원은 우리 자신을 위해 사용하겠다'며 자주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아랍의 정권들은 어째서 미국의 영향력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민주화가 안 됐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아랍 정권들은 국민들의 자발적 선택에 의해 성립되기보다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도움으로 성립되고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의 뜻을 따르기보다는 미국의 눈치를 먼저 보는 것이다. 60년째 계속되고 있는 팔레스타인의 곤경에 대해서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레바논사태에 대해서도 아랍 정권들은 이렇다 할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아랍지역 최초의 진정한 민주선거에서 권력을 장악한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정권은 테러정권이라는 이유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측에 의해 압살의 위기에 놓여 있다.
왜 아랍은 민주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가? 다음에 소개할 글에서 아랍의 한 지식인은 이 지역의 민주주의 결핍에 대해 매우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지난 수십년간 아랍은 서방측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라, 근대화된 국가가 될 것이라는 약속을 수없이 들었지만 모두 사기였다는 것, 최근 미국 네오콘들에 의해 미국의 입맛에 맞는 정치개혁을 강요당했지만 그 결과는 이슬람 과격세력의 정치적 득세로 이어졌다는 것, 그나마 미국 자체의 민주주의가 후퇴하면서 미국식의 (사이비) 정치개혁도 이젠 없었던 일이 돼버렸다는 것, 강대국의 묵계 속에 아랍의 민주화는 요원하다는 것, 너무도 오랫동안 절망과 고통 속에 살아온 아랍 민중들은 이제 민주주의 이념이나 제도보다는 자신들의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 줄 영웅(오사마 빈 라덴 같은)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것 등.
과연 아랍은 자신들만의 힘으로는 민주화를 이룰 수 없는 것일까? 남미와 마찬가지로 아랍지역의 민주화는 세계정세의 향방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에서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아랍의 민주화와 관련하여 현지 지식인의 글을 소개한다. 이집트의 영자 주간지 <알 아흐람 위클리> 최신호(7월 28일자)에 실린 이 글의 필자 가밀 마타르는 '개발과 미래 연구를 위한 아랍센터(Arab Centre for Development and Futuristic Research) 사무총장이며 원문은 http://weekly.ahram.org.eg/2006/805/op215.htm에서 볼 수 있다. 편집자
권력에 아첨하기(Panderig to Power)
요즘 아랍지역에서는 이 지역의 한심한 상황을 개탄하는 사람들을 흔히 만나볼 수 있다. 날이 갈수록, 안정되고 자유로우며 품위 있는 삶을 향한 아랍 민중들의 꿈은 멀어져만 가고 있으며, 아랍인들의 자존심과 자긍심은 최악의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편, (외부의) 훼방꾼들은 더욱 노골적으로 개입하고 있으며, 절망에 빠진 사람들은 외국으로 이민을 가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고, 멍청한 자들은 여전히 세상물정 모른 채 살아가며, 부패한 자들은 엄청난 부를 쌓고, 이 와중에 대다수 민중들은 침묵 속에 분노만 키워가고 있다.
아랍 사람들은 자신들이 거대한 사기극의 피해자라고 느끼고 있다. 즉 지난 수십년간 자신들의 국가는 어떠한 외세의 개입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이라고, 또한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는 생겨나지도 않을 것이라고, 설령 생겨난다 하더라도 생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존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국제적 인정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나아가 이스라엘이 국제적 인정을 받는다 하더라도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에 굴복하거나 제 나라를 찾으려는 팔레스타인인들을 저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약속을 수도 없이 들었지만, 어느 것 하나 이뤄진 것은 없었다. 과연 이러한 아랍인들을 탓해야 할 것인가?
우리 아랍인들은 그동안 계급간 격차는 좁혀질 것이며, 머지않아 모든 아랍인들이 읽고 쓸 수 있게 되고, 비약적 발전을 통해 근대과학과 근대적 사고방식, 그리고 근대적 가치를 수용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들어 왔다. 1973년 4차 중동전쟁이 끝나고 원유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아랍이 곧 세계에서 6번째로 강력한 세력이 될 것이라고 떠벌였다. 하지만 결과는 딴판이었다.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아시아의) 남한이 과학기술 발전의 원동력으로 떠올랐고, 70년대말에는 중국이 남한이 따라잡겠다고 선언하더니 이같은 목표를 이뤄냈다.
그러자 서방의 맹주인 미국은 이스라엘의 꼬드김에 넘어가 아랍이 진보의 열차에 승차하기 위해서는 재교육, 재훈련을 받아야겠다고 결정했다. 현재 워싱턴은 아랍의 '꿈', 나아가 그나마 보잘것없는 산업기반과 지적 역량마저 파괴하려는, 동시에 미국의 모든 외교력과 군사력 그리고 경제력을 동원해 이스라엘의 꿈을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이뤄주려는 일당들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다. 이들 일당은 아프간 및 이라크에서의 미국의 실패로 큰 타격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중동지역에서 이스라엘을 위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미국이 아랍지역에서 주도한 경제개혁, 정치개혁의 결과가 어떠했는지 한번 살펴보자. 경제'개혁'이 대단한 성과를 거두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개혁은 민영화라는 미명 아래 우리의 국부와 자원을 앗아가 버렸다. 개혁은 우리의 국민경제를 하나 하나 시장의 명령 아래 굴복시켰다. 그 시장의 명령을 읽어준 것은 이스라엘이었다. 개혁은 새로운 기업가 계층을 탄생시켰는데, 이들은 현재의 기존정권을 받쳐주는 든든한 버팀목 구실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이들의 역할은 언론을 장악하고, 서비스 및 생산적 부문을 독점하며, 신념과 도덕을 중시하는 교육을 구시대적이라고 몰아붙이면서 기존 교육제도를 해방시키는 일을 감독하는 것이다. 국제기구들은 진정한 인간 및 사회개발의 후퇴로 얻어진 경제성장률의 상승이 경제개혁의 가장 중요한 성과라고 말한다.
정치개혁 역시 아랍 정권들에 대한 미국의 압력에 의해 시작됐지만 전개 양상은 달랐다. 대부분의 아랍 정권들은 마지못해 미국의 압력에 굴복했지만 국제적, 지역적, 혹은 국내적 상황 등을 이유로 언제라도 개혁을 무산시킬 기회를 호시탐탐 노려 왔다. 한편 일반 국민들은 워싱턴이나 서방측의 기대 또는 소망과는 다른 방식으로 행동했다. 이들은 정권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랍 민중들은 권력을 가진 자들이 절대로 자신의 권력을 놓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아랍의 지식인, 그리고 정치엘리트의 상당수는 처음부터 미국의 의도를 의심했다. 이들은 워싱턴이 밀어붙이고 있는 정치개혁의 진정한 목적은 진짜로 중요한 국내와 지역적 과제로부터 우리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제 와서 돌이켜 보면 이들의 우려는 정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위기와 이라크, 소말리아, 수단 상황 등과 같은 핵심적 지역문제, 그리고 아랍사회에서의 민주주의 위기 등 근본적 문제에 대한 아랍 정권 및 국민들의 무관심을 지적하면서 이는 진정한 민주주의에 대한 소망을 왜곡시키는 기만과 조작 등으로 특징 지워진 사이비 정치개혁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의 의도와 국민들의 여망을 따르는 척 하다가 필요하면 방침을 바꿔버리는 것이 아랍 정권들의 전략이었다고 한다면 세계 다른 지역에서는 왜 이와는 다른 양상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한다. 러시아와 중국을 보자. 이 두 나라는 약간의 망설임 끝에 이제는 서방의 개혁 압력에 단호하게 맞서고 있지 아니한가. 또한 남미의 모랄레스와 차베스 같은 지도자들도 미국의 지시를 거부하고 있지 아니한가.
그런데 아랍의 정권들은 세계 다른 지역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그저 미국만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사이비) 민주화 압력에 대한 대응으로 최근 중동지역에서 치러진 일련의 선거에서 이슬람세력들이 잇따라 압도적 승리를 거두면서 미국을 경악시키고 있는 시점에 이들 아랍 정권들은 자신들이 시작한 정치개혁에서 뒷걸음치고 있다.
이같은 전환은 워싱턴의 지배세력이 방침을 수정하고, 실용주의 세력이 다시 세력을 얻어가는 시점에 일어났다. 부시를 둘러싸고 그에게 '민주화'야말로 미 대외정책의 만병통치약이라고 끊임없이 속삭여대던 복음주의적 이데올로그들은 (자신들이 일으킨 아프간ㆍ이라크전쟁과 미 국내정치에서의) 군사적 패배와 정치적 후퇴가 분명히 드러나면서 갑자기 실용주의자들에게 주도권을 빼앗겨 버렸다. 네오콘들이 주도한 일방주의적 군사주의의 결과 세계 도처에서 반미감정이 한층 더 악화됐으며, 특히 미국이 민주개혁을 요구한 모든 지역에서 이슬람세력의 정치적 득세가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 자체도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즉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서는 미국 자체의 민주적 원칙들을 희생시켜야만 한다는 것을 부시행정부가 깨달으면서 미국의 민주주의도 크게 후퇴한 것이다. 중동지역의 많은 관측통들은 부시행정부가 미국 시민의 자유와 사생활의 권리를 제한하는 조치들을 하나하나 취해갈 때마다 경멸감을 드러냈다. 이 문제가 중동지역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들은 부시가 정부 비밀유지법의 범위를 넓혀갈 때마다 불길한 징조를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불길한 느낌은 미국 정부가 수상하다고 인정되는 미국 시민들에 대한 조사, 수색, 구금, 체포를 합법화하는 조치를 취했을 때 더욱 커졌고, 이러한 정부 조사의 범위가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 이메일 교신 등에까지 확대되면서 불길함은 당혹감으로 번져갔다. 나아가 최근 미국정부가 개인간 금융거래는 물론이고 모든 전화통화를 도청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을 때, 그리고 부시가 <뉴욕타임스>와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 대해 미국정부의 불법적 국내정보수집활동을 보도함으로써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했다고 비난했을 때-이는 반역죄에 해당된다고 비난한 것이나 다름 없다-당혹감을 넘어 무시무시한 경고의 의미로 다가왔다.
세계의 지배엘리트들은 미국의 이러한 상황전개를 매우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내가 아는 아랍의 고위 관리 중 많은 사람들이 부시행정부의 반(反)민주주의적 작태에 공감을 표시했다. 이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테러와의 전쟁이 제대로 진척되지 않고 있는 만큼, 국내의 민주적 자유를 제한할 수밖에 없다고. 나아가 국가적 위기상황에서는 국가안보와 정치안정을 위해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율성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다고. 이런 주장들을 들으면서 나는 '아하, 아랍 정권들은 앞으로는 더 이상 워싱턴이 자신들에 대해 언론의 자유에 대한 제한을 풀라거나 정당 결성의 자유, 또는 항의의 권리를 보장하라는 등의 압력을 가하지 않을 것임을 간파했구나' 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갑자기, 권력의 승계에 대한 논란이 가라앉았고 서방측도 더 이상 이런 문제들을 들고 나오지 않았다. 최소한 2개의 아랍 정권이 기존 정권을 계속 유지시킬 것임을, 동시에 근본주의 세력을 비롯한 국내 정적들에 대한 탄압을 강화할 것임을 분명히 선언했다. 이 정권들은 지배계급의 부패 등 정권에 불리한 사안들에 대해 언론통제를 신속하게 시행했다. 아랍의 정권들은 그 짧았던 정치개력의 시기 동안, 지배계급에 '도전했던' 세력들에 대해 복수할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아랍지역의 정권들은 그동안 정치개혁을 요구했던 '다모클레스의 칼'이 더 이상 자신의 머리 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지 않다는 사실에 자신감을 얻은 것이 분명하다. 반면 중동지역을 비롯한 전세계의 민주화 운동가와 인권 운동가들은 '테러와의 전쟁'에 갇혀 있는 미국, 다극질서를 외치며 힘을 키워가고 있는 러시아, 그리고 경제성장에 매진하면서 동북아 지역질서를 자신의 안보 및 경제성장에 유리하게 바꾸려는 중국간의 암묵적 휴전에 절망하고 있다. 앞으로 아랍지역의 정권들은 이 지역의 민주화가 진전되지 않는 것은 아랍 특유의 문화적, 종교적 요인 때문이라며 어떤 정치개혁의 요구에 대해서도 '완강하게 저항'할 것이다.
그러나 아랍의 정권담당자들에게는 불행한 소식일지는 몰라도 오랫동안 늪처럼 고여 있던 이 지역의 국내정치는 이제 새로운 생명력을 보이면서 요동치고 있다. 아무리 많은 댐과 장애물을 쌓는다 하더라도 이 요동치는 민심의 물결을 잠재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동안 아랍지역에서는) 너무나 많은 희망이 좌절됐고, 너무도 많은 환상이 무너졌으며, 이제 인내심은 거의 모두 소진됐다. 아랍지역의 구석 구석에서, 변두리에서, 아니 어떤 경우에는 중심부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사상이나 제도가 아닌 개인을, 즉 영웅을 원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야말로 '정치개혁'의 반대자들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의 최대 숙원, 즉 아랍지역에서의 민주주의의 지연과 핵심 요새에서의 민주주의의 쇠퇴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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