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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러시아가 '에너지파시즘'이라고?

[독자기고] "미국의 러시아 포위망 뚫기 위한 자위조치일 뿐"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대학에서 역사학 박사과정에 있는 양철학씨가 지난 1월말과 2월초 <프레시안>에 실린 마이크 클레어 교수의 에너지 파시즘에 관한 글을 읽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보내 왔다. 러시아의 에너지정치를 미국과 같은 '에너지 파시즘'으로는 볼 수 없다는 것이 그의 글의 요지다. 중앙아시아 국가에의 미군기지 설치, 나토의 동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체코·폴란드에의 미사일방어망 추진, 우크라이나·그루지야 등 러시아 인접 친서방정권에 대한 적극 지원 등 미국의 러시아 포위·봉쇄작전에 대한 자위적 조치의 성격이 훨씬 강하다는 것이다. <편집자>

<프레시안>에서는 지난 1월 28일과 2월 7일 두 차례에 걸쳐 '에너지 정치학의 국제적 권위자'라는 마이클 클레어교수의 글을 소개하였다. 클레어의 글 1편(프레시안, <'에너지 파시즘'이 도래하고 있다>, 2007년 1월 28일)에 잘 정리되어 있는 미국의 공격적 에너지확보 정책은 많은 정치학자들의 소개로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냉전시기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중동에 머물렀던 미국의 에너지 확보 정책은 소련의 붕괴와 더불어 중앙아시아의 신생독립 국가들에게까지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에너지에 대한 집착은 거의 광적인 수준이어서, 이라크 전쟁에서 볼 수 있듯이 주권국가를 침략하여서라도 원하는 것을 얻어내었다. 가히 '제 3제국'의 뒤를 잇는 (에너지) '파시즘'의 첨병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다.

미국에 비해 정도가 덜 하기는 하지만, 유럽 제 국가들도 에너지 문제에 있어서 민감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북아메리카의 식민 지배자에서 미국의 푸들로 전락한 영국은 물론이고,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각국도 주로 자신들의 구 식민지였던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역량이 닿는 한 열심히 에너지를 긁어 모으고 있다.

이러한 정책은, 석유를 비롯한 광물 자원의 매장량은 한정되어 있는 반면 그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보다 싼 가격에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확보하려는 의도의 산물이다. 문제는 서구 제 국가들의 에너지 확보 정책이 에너지 자원을 소유한 국가와 이를 필요로 하는 국가 사이의 이른바 '시장'관계에 따른 '자연스러운' 광물자원 유통의 보장을 근간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외교·정치·군사적으로 힘이 강한 나라가 광물자원을 보유한 자신보다 힘이 약한 나라들을 직간접적으로 간섭하고 강압하거나 심지어는, 이라크 전쟁에서 알 수 있듯이, 침략하기 위한 방책으로 수립되어 실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즉, 그들은 자신들이 확고히 우위에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신)자유주의적 개방을 요구하는 반면, 자신들이 부족하고 필요로 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경제 외적 힘의 논리에 따른 해결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1편 글에서 마이클 클레어가 보여주고 있는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구 제 국가들의 에너지 정책은 '에너지 파시즘'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극단적인 행위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이라크 파병과 이에 대한 일부 파병지지자들의 석유 확보에 따른 국익추구라는 옹호론은 이런 면에서 서구의 이른바 '에너지 파시즘'에 대한 잠정적 지지 및 동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서구의 행태와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 정책을 '에너지 파시즘'이라는 하나의 틀로 묶어 동일한 비판의 선상에 놓을 수 있는 것일까? 2편 글(프레시안, <러시아, '에너지 파시즘'의 정점에 서다>, 2007년 2월 7일)에서 마이클 클레어는 러시아 판 '에너지 파시즘'의 증거로 블라지미르 뿌찐(라틴 식 발음기호로 하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광물자원 채굴을 포함한 주요 기간산업의 국유화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지적하고 있으며, 이른바 '유꼬스(유코스) 사태'와 천연가스 무기화를 그 결과물로 들고 있다.

과연 클레어 교수의 이러한 비판들이 러시아가 (미국과 더불어) '에너지 파시즘'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는 근거가 될 수 있을까? 혹 러시아의 현실을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무시/배제하면서 자신의 논리구조에 무리하게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

클레어는 뿌찐의 1997년 박사학위 논문 요약본(필자가 확인한 바로는 뿌찐 러시아 대통령의 박사학위 논문은, 클레어의 인용과는 달리, 1999년이 아니라 1997년에 '시장관계 형성 조건하에서 지역 광물자원 재생산에 대한 전략적 접근 (Стратегическое планирование воспроизводства минерально-сырьевой базы региона в условиях формирования рыночных отношений)'이라는 제목으로 통과되었다.)에서 한 구절을 인용하며, 이를 에너지 파시즘 정책에 대한 전형적인 자기옹호("No better justification for Energo-fascism can be imagined.")의 예로 들고 있다.

"국가는, 그 소유권자가 누구이든 상관없이, 천연자원, 특히 광물자원의 획득과 사용 과정을 제어할 권리가 있다. 이 점에 있어서 국가는 사회 전체의 이익을 추구한다." ("The state has the right to regulate the process of the acquisition and the use of natural resources, and particularly mineral resources, independent of on whose property they are located," he wrote. "In this regard, the state acts in the interests of society as a whole.") (<러시아, '에너지 파시즘'의 정점에 서다>)

지금까지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실현된 적이 없는 완전한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국가가 수립되지 않는 한, 많은 나라들에서 현재 선호하고 있는, 석유나 우라늄 등 지극히 제한적인 지역들에서만 채굴과 생산이 가능한 한정된 재화의 획득과 사용에 대한 국가의 간섭정책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클레어 교수가 뿌찐의 언명을 '자기정당화(justification)'로 평가절하하는 이유는 현 러시아 정부가 공적·사적 영역에서 생산하는 광물자원의 분배에 '간섭'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것을 강압적으로 '국유화'하여서 국가가 '직접 관할'하는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클레어에게 '유꼬스 사태'는 뿌찐의 러시아 정부가 이른바 '에너지 파시즘'이라 불릴 만한 정책을 행하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예이다. ('유꼬스 사태'는, 현 러시아 최고의 재벌로 꼽히는 라만 아브라모비치 첼시 구단주 이전에, 러시아 최고의 부자이자 최대의 석유재벌이었던 미하일 하도르꼽스끼와 그의 동업자 및 측근들을 세금 포탈, 사기, 살인 및 살인교사 혐의 등으로 체포하고, 그가 소유하고 있던 유꼬스 사를 공중 분해한 사건이다. 유꼬스 사의 처리과정에 대해서는 클레어의 글에 간단 명료하게 설명되어 있다.)

유꼬스, 러시아판 국제그룹?

하도르꼽스끼는 러시아의 대표적인 자유주의 시장주의자이며, 공공연하게 친미, 친유럽 노선을 표방하는 인사이다. 정치적으로는 러시아의 야당들, 자유주의 계열의 정당들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공산당에게까지 정치자금을 지원하면서 노골적으로 반 뿌찐 노선을 걸었다. 또한 체포되기 직전에는 정치계에 입문한 후 대통령 선거에 나올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언론과 사람들 사이에서 떠돌았다. 이러한 과정에서 뿌찐 정권에 비해 국내에서 부족할 수 밖에 없는 정치적 역량을 미국 및 서방의 후원을 등에 업음으로써 메우려 하였다. 그러한 이유로 유꼬스 사의 핵심 자회사인 유간스네프찌 석유회사가 국영 석유회사인 로스네프찌로 넘어가고, 이 로스네프찌의 주식이 런던을 시작으로 해외 주식시장에 상장됨으로써 '유꼬스 사태'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음에도, 서방 특히 미국 정계에서는 여전히 유꼬스 사태를 들먹이며 러시아 정부를 비난하고 있다.

여기까지의 과정만을 본다면, 유꼬스 사태는 국가권력에 의한 사기업의 불법적인 공중분해, 즉 전두환에 의한 국제그룹 분해와 비슷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러시아 일반인들의 이 사건에 대한 정서는 어떠할까? 유감스럽게도 100에 99명은 현재 시베리아 골짜기에서 '유형' 생활을 하는 하도르꼽스끼 전 유꼬스 회장을 욕한다. 이는 지식, 연령, 성별을 불문한 일반적인 현상이다. 일부 인권단체, 극소수 언론, 일부 일반인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이 유꼬스 사태에 대해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물론 현 러시아에서 언론 규제 및 사회의 민주화 정도를 감안하여, 정부에 의한 통제와 선전에 따른 여론 호도로 보는 이들도 있으며, 전혀 틀린 말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뿌찐 현 대통령에 대해 그리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거나, 심지어는 심각하게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하도르꼽스끼, 그리고 그로 대변되는 알리가르히(러시아 재벌집단을 일컫는 말-필자 주)에 대한 반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러시아 재벌집단이 이렇게 비난의 표적이 되는 이유는 이들이 부를 합법적인 방법으로 혹은 시장질서에 따라 축적한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없이 맨손으로 시작하여 10여 년의 시간에 이미 세계적인 재벌이 되어있다는 것은, 특히 석유를 비롯한 광물자원의 채굴권을 손에 넣었다는 것은, 사실,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실제로 러시아 초대 대통령인 옐찐(옐친) 시절에 나라의 중요 산업은 힘있는 자들 사이에서 분할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수 많은 비리와 범죄행위들이 자행되었다.

따라서 러시아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유꼬스 사태는 열심히 일하는 자본가에 대한 국가의 불법적인 테러가 아니라, 자신들의 공유물을 빼앗아간 강도를 잡아 처벌한 당연한 일인 것이다. 즉, '국제그룹의 공중분해'가 아니라 '친일세력이 불법적으로 강탈한 재산의 환수'인 것이다.

정리해보면 유꼬스 사태의 본질에는 뿌찐의 전략적 광물자원 공유화 정책이라는 점도 있지만, 그와 더불어 반 뿌찐 노선을 걸은 하도르꼽스끼의 정치 성향 또한 놓여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만일 유꼬스 사태가 뿌찐의 국유화 정책 차원에서만 나온 것이라고 한다면, 하도르꼽스끼 이후 다른 알리가르히들이 소유한 석유 및 중요 광물자원에 대해 더 이상의 환수조치가 취해지고 있지 않은 이유는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대세를 거스르지 않는다면 그들이 소유한 광물채굴권의 국유화를 무리하게 시도하지 않는다는 것 외에는 달리 설명할 수가 없다. 비유하자면 유꼬스 사태는 '불법적으로 재산을 축적한 친일세력이 세운 국제그룹의 국가 권력에 의한 공중분해'라고 할 수 있을까?

따라서 '유꼬스 사태'에 있어서 뿌찐 정부가 비판 받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에너지 파시즘'이 아니라 정권의 필요에 따른 선별적이고 불법적인 재벌(알리가르히) 길들이기이다. 실제로 뿌찐 러시아 대통령은 유꼬스 사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유꼬스 관계자들이 행한 불법적인 부 축적 행위들을 지적하며 대응논리로 내세운다.

문제는, 우리가 친일세력이 불법적으로 강탈한 재산을 환수하는 법률 재정을 시도함으로써 모든 불법적인 행위들에 대해 동등한 법 적용을 추구하고 있는 반면, 현 러시아 정부는 그러한 시도를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알리가르히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것이 정권 자체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초기부터 공생하고 있는 친 뿌찐계 알리가르히 때문이다.

러시아와 인접 국가들간 자원분쟁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에너지를 '무기화'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석유 및 가스, 그리고 이의 수송 문제를 놓고서 러시아는 유럽 제 국가들과 지속적으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으며, 당연하게도, 이 모든 일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려 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주변 국가들과 여러 차례 갈등이 있었다. 우끄라이나(우크라이나)와의 가스분쟁, 벨라루시와의 석유 및 가스 분쟁, 그루지야에 대한 가스가격 인상 요구 등의 마찰들이 이미 발생했으며, 이러한 분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이러한 러시아와 주변 국가들 간의 분쟁을 클레어 교수는 러시아가 추구하는 '에너지 파시즘'의 또 다른 증거라고 말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는 러시아와 주변국 사이에 분쟁이 발생했을 때 이 모든 책임이 러시아 측에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는 '에너지 파시즘'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결론을 도출해낸다. 그러나 클레어 교수의 이러한 주장은 현상을 매우 서구적인 시각으로 봄으로써 나온 잘못된 판단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클레어 교수가 대표적인 사례(The most notable expression of this)로 드는 우끄라이나 가스분쟁을 보자. 이른바 오렌지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빅또르 유셴꼬 (빅토르 유셴코) 우끄라이나 대통령은 집권 초기부터 급진적인 친 서방 정책을 펼치고 있으며, 우끄라이나의 EU 및 나토 가입을 그 정치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물론 이러한 우끄라이나 정부의 정책에 대해 미국과 서유럽은 지속적인 지지 의사를 밝히고 있는 반면, 러시아는 불쾌함을 넘어 공포감으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러시아는 여러 경로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우끄라이나 정치에 간섭하려 하고 있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사회-경제적으로 러시아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어서 친러시아 성향을 보이는 동(東)우끄라이나 지역은 러시아가 대 우끄라이나 정책을 펼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발판 역할을 하고 있다. (유셴꼬 우끄라이나 대통령의 최대 정적이자 현 우끄라이나 총리로서 우끄라이나 내의 친 러시아 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빅또르 야누꼬비치(빅토르 야누코비치)의 정치적 기반이 바로 동우끄라이나 지역이다.)

그러던 중 2005년 말, 러시아 측이 칼을 빼 들었다. 우끄라이나 측에 공급하는 가스가격을 서유럽에 공급하고 있는 시장 가격에 가까운 정도로 올리겠다는 요구를 하였고, 만약 협상이 안되면 특단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경고를 하였다. 당시 우끄라이나는 (벨라루시 및 그루지야와 마찬가지로) 서유럽 가스 가격 대비 50% 이하의 특별 가격으로 가스를 공급 받고 있었다. 엄청난 경제적 타격을 안게 된 우끄라이나는 그럴 수 없다고 버텼고, 2006년 1월 1일 가스쁘롬은 우끄라이나로 가는 가스공급을 전격 중단하였다.

그러자 우끄라이나는 서유럽으로 가는 가스를 자신들 내수용으로 돌려버렸다. 러시아와 서유럽을 잇는 가스관은 우끄라이나를 통과하는 것이 유일하다. 우끄라이나에는 임시 가스저장시설이 있어서, 러시아에서 오는 가스를 일단 집하하였다가 이를 다시 내수 및 서유럽으로 보내는 역할을 하였다. 즉 가스 이동을 중간에서 조절할 수 있는 시설이 우끄라이나에 있었던 것이다. (러시아 측은 우끄라이나 측이 특별가격으로 가스를 받아서 이를 서유럽에 시장가격으로 팔거나, 심지어는 가스를 빼돌려서 이를 서유럽에 팔아 넘겨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클레어 교수는 러시아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우끄라이나와 러시아의 '가스분쟁'이 한 겨울에 일어났다며 러시아 측의 불순한 의도를 지적하고 있다. 사실은 이러하다. 우끄라이나와 가스쁘롬 간의 계약은 2006년 1월 1일을 기점으로 갱신되게 되어 있었다. 계절적인 요인은 가스쁘롬측이 가스분쟁에서 보다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며, 실제로 러시아 측은 (내심 쾌재를 부르며)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따라서 (우호관계에 있는 나라였다면) 보다 이른 시점에 재계약 협상을 통보하거나 보다 타협적인 방안을 들고 나왔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계절적인 요인 등 최대한의 유리한 입지들을 선점한 후 공세적인 요구를 한 러시아의 행위는 의도적인 도발이라는 비난을 받을 만한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형식적인 차원에서 볼 때 러시아는 합법적인 절차를 거쳤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상황의 이점을 이용한 것은 러시아 뿐일까? 우끄라이나는 일방적으로 당하고만 있었는가? 자국으로의 가스공급이 중단되자 우끄라이나는, 가스 집하장을 자신들이 관리하고 있다는 상황을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유럽 다른 나라들로 가는 가스를 내수용으로 돌려버렸다. 갑작스러운 가스공급 중단으로 유럽 제 국가들의 정부들은 대책마련에 부산하였고, 우끄라이나와 러시아에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였다.

그런데 그 기본적인 요구는 정확하게 클레어 교수가 '가스전쟁'을 바라보는 것과 동일한 입장에서 취해졌다. 즉, 우끄라이나에 대해서는 대화를 부탁하는 반면, 러시아에 대해서는 그 정치적 의도성을 들먹이며 타협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즉 이러한 반응을 계산(어쩌면 조율)한 우끄라이나 역시 자국 영토를 지나는 송유관을 독점 관리하는 지위와 서방의 지지를 최대한으로 이용하면서, 서방으로 가는 가스를 내수용으로 돌리는 초 강수를 둔 것이다. 다시 말해, 러시아가 최소한의 형식적 절차를 지키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였다면, 우끄라이나는 자신의 이점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형식적 절차를 무시하였다는 것이다.

벨라루시를 살펴보자. 알렉산드르 루까셴꼬 벨라루시 대통령은 장기집권을 획책하는 전형적인 독재자이다. 이런 관계로 대통령은 물론이고 주요 정부기구의 수장들이 서방 국가들의 입국 금지자 명단에 기재되어 있다. 다른 나라에 팔 만한 물건을 생산할 변변한 산업도 거의 없다. 즉 가난한 독재국가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벨라루시의 몇 안 되는 동맹국이자 돈줄 역할을 하는 것이 러시아이다. 무엇보다도 시장가격의 3분의 1이 안 되는 가격으로 공급되는 러시아의 가스와 석유는 벨라루시 경제의 중요한 버팀목이다.

러시아가 벨라루시에 이러한 지원을 하는 것은 벨라루시와 러시아의 국가연합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국가연합 안이 시간이 지나도록 진전이 없다.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벨라루시를 지나는 송유관에서 석유가 자꾸 사라지고 있다. 러시아로부터 싼 가격으로 들여온 석유를 제 3국으로 팔아 넘기는 장사도 한다. 하지만 러시아가 제시하는 국가연합 안들은 이런 저런 핑계로 차일 피일 미루어지기만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러시아에서는 벨라루시에 최후통첩을 하게 된다, 모든 나라에 차별을 두지 않고 시장가격에 따른 거래를 하겠다고.

그루지야는 어떠한가. 러시아와 그루지야간 관계악화의 극적 전환점은 미하일 사아까쉬빌리 현 그루지야 대통령이 이른바 '오렌지 혁명'을 통해 정권을 장악한 시점으로 볼 수 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러시아와 그루지야가 그리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던 것은 아니지만, 그의 대통령 당선 이후 두 나라 사이의 관계는 최악의 상황에 다다랐으며, 이는 가스분쟁뿐만 아니라, 포도주 분쟁, 스파이 사건, 비자분쟁, 영토 분쟁 등으로 이어지며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이 두 나라가 이렇게 첨예한 대립의 길을 걷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루지야가 차지하고 있는 지정학적 중요성에 대해서 먼저 언급할 필요가 있다. 소련의 붕괴 이후, 미국과 서방이 장악한 중동과 아프리카, 미국과 서방으로부터 자립하여 독자노선을 걸으려 하고 있는 남아메리카, 러시아 영토 내에 있는 시베리아를 제외하고, 엄청난 양의 석유 및 가스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나, 어느 강대세력의 영향력 하에도 있지 않던 빈 공간으로 등장한 것이 카스피해 지역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크게 관심을 가지고 일종의 '자원 외교'를 시도하고 있는 지역이다. 크게 보아 중앙아시아와, 그루지야를 포함한, 까프까스(코카서스)의 신생 독립 국가들을 포괄하는 지역으로, 여기에 카스피해 남쪽 연안에 상당한 영토를 접하고 있는 이란과 북쪽 연안을 점유하고 있는 러시아를 포함하면, 이 지역의 역학관계는 그리 간단히 설명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틀에서 접근하여 간략히 설명해보면, 결국 미국을 대표로 하는 서방 세력의 진출과 러시아의 대응으로 볼 수 있다. 소련의 붕괴와 신생 러시아의 내부 혼란을 틈타 미국은 이 지역에 적극적으로 진출하였다. 특히 아프가니스탄 침략 시에는 상당한 지원을 조건으로 하여 중앙아시아 국가들에서 군사기지를 임대함으로써, 자국의 군대를 이 지역에 주둔시키는 데에도 성공하였다. 만일 미국이 이란을 침공하여서 많은 희생에도 불구하고 점령하는 데 성공한다면, 중동에서 카스피해를 거쳐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즉,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까자흐스딴에 이르는) 거대한 석유 및 가스자원 지역을 직-간접적인 통제하게 둘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정책을 자국의 이익과 동일시하며 서방의 입장에서 '에너지 지배'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는 나라가 그루지야이다. 사아까쉬빌리가 그루지야의 대통령이 된 이후 경찰 및 군인의 제복과 같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국가 정책에 이르기까지 그루지야의 많은 부분들이 서방, 특히 미국식으로 편제되었다. 부시 미국대통령의 그루지야 방문 시 그에 대한 예우는 대통령 이상의 것이었다. 이에 발맞추어 미국 및 서방의 그루지야에 대한 정책도 적극적인 지원과 지지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그루지야가 갖고 있는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이다.

그루지야는 (체첸 지역을 포함한) 러시아령 까프까스의 남쪽에 북쪽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동서로는 까프까스와 흑해에 걸쳐있다. 즉 군사적으로는 러시아 서남부 지역에 직접 접경하고 있고, 보다 중요하게는, 경제적으로 카스피해의 자원을 흑해로 연결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체첸이 러시아에 가지는 의미도 이와 유사하다.) 즉, 미국과 서유럽에게 그루지야는 러시아 영토를 거치지 않고 카스피해의 자원을 공급 받을 수 있는 통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까자흐스딴의 석유가 서유럽으로 가는 데 있어 러시아의 송유관을 이용함으로써 러시아가 가지는 통제력, 그리고 우끄라이나 가스분쟁에서 우끄라이나 정부가 가스 통제권을 가짐으로써 어떻게 러시아에 대응했는가에 대한 위의 논지를 통해 잘 설명이 되리라 생각한다.

문제는 그루지야와 러시아가 서로에 대해 매우 공격적인 정책들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루지야는 직·간접의 외교적 언사들을 통한 비난, GUAM(그루지야, 우끄라이나, 아제르바이잔, 몰도바(몰도비아) 4개국이 연합하여 결성한 일종의 비러시아 경제공동체. GUAM은 각 국가의 첫 번째 철자를 따와서 조합한 것 임. – 필자 주)과 같은 비러시아 (내용상으로는 반러시아) 국가협력체 결성, 스파이 혐의로 러시아 군인 긴급 체포, (러시아 측은 기정사실화 하고 있고 그루지야 측은 반박하고 있는) 체첸 저항군에 대한 암묵적 지원 등 지속적으로 러시아를 자극하고 있다.

러시아 또한 비자 문제, 그루지야산 포도주 금수 조치 등의 외교적 경제적 수단은 물론이고, 그루지야 내의 독립세력들에 대한 직·간접적으로 원조를 하는 등 매우 적극적으로 그루지야 문제에 대처하고 있다. (실제로 그루지야 영토 내에 있으며 독립하여 러시아와의 합병을 원하는 압하지야와 남(南)아세찌야 자치 공화국들에서는 주민들의 다수가 러시아 여권을 소지하고 있고, 심지어 연금 생활자들은 러시아 측으로부터 연금을 받고 있다.) 클레어 교수가 러시아의 '에너지 파시즘'을 증명하는 예로 들고 있는 그루지야와 러시아의 가스분쟁은 이러한 복잡한 국제정세와 상호 공방의 와중에 나온 것이다.

러시아의 독불장군 증후군, 태생적인가 후천적인가?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큰 틀에서 보았을 때 러시아의 정책은 에너지 부국이라는 입지를 이용하여서 자신들의 일방적인 요구를 강요하는 '에너지 파시즘'이라기 보다는, 미국 및 서방의 정치·군사·경제적 포위망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에너지를 무기화'한 조치라 할 수 있다.

사실 소련이 붕괴한 후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의 (빠른) 회생 가능성에 회의의 눈길을 던졌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러시아는 중국의 경제성장 성공사례에 비견되는 대표적인 실패사례로 언급되곤 하였다.), 내심으로는 러시아의 2차 붕괴 내지 남아메리카나 아프리카와 같은 자원 식민지화를 바랬을 것이다. 내부 혼란과 외적 압박 속에서 등장한 뿌찐 정권은 연방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이 이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책임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에 따라 중앙집권화에 박차를 가하였으며, 이에 방해되는 요소들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철퇴를 가하였다. 클레어의 말을 빌리면 '에너지 마개를 외교정책의 도구 (the energy spigot as a tool of foreign policy)'로 만들기 위한 준비도 하여 왔다. 그 과정에서 나온 것이 '유꼬스 사태'이고, 그 완성을 대외에 알린 것이 우끄라이나와의 '가스전쟁'이다.

러시아 정부가 가스쁘롬을 앞세워 우끄라이나와 벌인 '가스전쟁'의 핵심은 단순히 친서방 정책을 추구하는 우끄라이나 정부에 대한 분노만이 아니다. 그것은 사방에서 러시아를 옥죄어 오는 미국과 서방 국가들에게 더 이상의 인내는 없다는 경고인 것이다.

사실 러시아가 느끼고 있는 서방의 압력은 그 외부에 있는 사람은 알 수 없을 정도로 강하며, 그 결과 이에 매우 민감하게 대처하고 있다. 이미 설명하였듯이, 소련이 붕괴하자 마자 독립을 선언한 발트 3국은 물론이고, 우끄라이나와 그루지야마저 친 서방 노선으로 돌아섰으며, 지금은 러시아와의 관계가 다시 개선되고 있긴 하지만, 한때는 중앙아시아 대부분의 국가들 역시 친미 노선으로 선회하였었다.

이러한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주변 국가들의 정치적 노선수정은 직접적인 군사 위협으로 이어졌다. 언급하였듯이, 아프카니스탄 침략을 계기로 중앙아시아에 미군 기지가 들어서게 되었으며, 까프까스에는 그루지아가 서방의 직간접적인 경제-군사원조를 받으며 러시아의 신경을 자극하고 있고, 발트 3국에는 나토 산하 레이다 기지가 건설되어서 러시아의 영공을 감시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북한과 이란의 미사일에 대응하는) MD체제 구축을 빌미로 서로는 알래스카에서 동으로는 동유럽의 체코와 폴란드에 미국의 미사일 기지들이 구축되고 있다. 즉, 미국의 대러시아 포위라는 러시아의 주장이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인 것만은 아닌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러시아가 주변 국가들과 벌이고 있는 분쟁들은, 큰 틀에서 보았을 때, 서방의 동진, 러시아 포위를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 할 수 있다. 1962년에 미국이 소련의 쿠바 미사일기지 건설에 전쟁 불사의 의지를 표명하였다면, 2000년대 러시아는 미국 주도의 러시아 포위망 구축을 뚫기 위해 에너지를 무기로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자세, 무엇이 문제인가?

긴 글을 통해 필자는 마이클 클레어 교수가 러시아에 '에너지 파시즘'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데 대해 이견을 제시했다. 즉, 그가 미국이라는 강대국이 추진하고 있는 자원 정책들에 대해 '에너지 파시즘'이라며 비판하는 논거들을 러시아에도 동일하게 들이대는 것은 무리라는 점을 설명했다.

이 글을 통해 한가지 더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자신들이 잘 모르는 세계를 과연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혹 맞지도 않은 남의 안경을 쓰고 이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파의 사람들뿐 아니라 미국의 대외정책을 '에너지 파시즘'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는 클레어 교수와 같은 이도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의 사고 틀을 완전히 벗어 던지지 못하고 있으며, 그 결과 분명 다른 잣대와 시각으로 보고 분석해야만 하는 현상들을 한 무더기로 묶어서 판단하는 오류를 보이고 있다.

여기서 함께 생각하고 싶은 것은 한국의 우리들이 이러한 편향적인 시각들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제는 내 눈에 맞는 내 안경을 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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