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가운데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국제갈등의 해결전략에 관해 체계적 연구를 해온 한 전문가가 나름대로의 창조적 대안을 <프레시안>에 기고해 왔다. 성균관대 국정관리대학원 강영진 겸임교수는 이 글에서 자국민의 아프간 피랍사태를 3차례나 겪었으면서도 모두 성공적으로 해결해낸 이탈리아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탈레반과의 직접 협상을 통해 탈레반 통치지역에 대한 인도적 지원 등 창조적 대안을 제시하되 공식, 비공식 채널 등 다각도의 접근경로를 최대한 활용하라고 제안하고 있다.
강 교수는 특히 그동안 아프간 인질사태의 특징을 분석하면서 탈레반이 '포로 석방' 등 당초의 요구조건 대신 '몸값 지불' 등 다른 댓가를 받고 인질을 석방한 사례가 많고, 더욱이 일단 인질 석방을 위한 협상 단계에 들어간 이후에는 인질을 살해한 경우가 단 한 건도 없었다는 점을 들어 우리 정부가 창조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을 한다면 인질 21명의 무사 귀환도 결코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한국인 인질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며 그의 제안을 소개한다.
강영진 교수는 언론인 출신으로 올해 초 미국 조지메이슨 대학에서 갈등해결학(Conflicts Analysis & Resolution) 박사 학위를 받았다. <편집자>
1978년 3월16일, 로마 한복판에서 이탈리아 총리 알도 모로가 납치됐다. 수행원 5명은 피살됐다. 공산주의계열 무장단체 '붉은 여단'(Red Brigades)의 소행이었다. 이들은 수감된 동료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두달간 인질극을 벌였다. 모로 총리의 가족과 시민들, 그리고 교황까지 나서서 이탈리아 정부에게 협상에 응하라고 촉구했다.
교황 바오로 6세는 모로 총리를 풀어주면 그 대신 자신이 친히 인질로 잡혀 있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탈리아 내각과 의회는 "테러리스트의 요구에 굴복해선 안된다"며 협상을 거부했다. 이 참에 정치적 라이벌이 제거되길 바라는 정객들의 비열한 계산도 깔려 있었다.
결국 모로 총리는 납치된 지 55일만에 로마 시내 길가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이 참담한 결과는 이탈리아 정계 및 시민사회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그 상처 속에 자라난 것이"납치사건을 다룰 때 무엇보다 중시해야 할 것은 인질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란 공감대였다. 이는 이후 이탈리아 정부의 인질사건 처리과정에서 가장 우선하는 원칙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탈리아, 세 건의 아프간 인질사태 모두 성공적으로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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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가을 미국의 침공으로 탈레반정권이 무너진 후 지금까지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총 16건의 외국인 납치사건이 벌어졌다(로이터 AFP 등 외신집계 종합). 2건 이상 납치사건을 겪은 나라는 이탈리아, 터키, 인도, 영국, 독일 등 5개국. 이중 이탈리아만이 유일하게 3건의 납치사건을 모두 원만히 해결, 인질이 모두 무사히 풀려나도록 할 수 있었다. 20여년전의 쓰라린 경험에서 얻은 교훈이 적용된 결과인 셈이다. 3건의 인질사건 경과를 살펴보면 한국인 인질사태를 푸는 데 유익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1) 2005년 5월, 아프간 여성과 어린이를 위한 구호단체 활동가 1명이 이슬람 무장조직에게 납치됐다. 납치범들은 수감자 석방과 함께 술 판매 및 음악방송 금지, 이슬람학교 지원 등을 요구했다. 자세한 협상과정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납치범의 어머니 등 수감자 4명이 석방되고 수십만 달러의 몸값이 지불된 것으로 추정됐다. 아울러, 인질로 잡힌 이탈리아 활동가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아프간 여성들이 가두시위를 하는 등 구명운동을 적극 펼치기도 했다. 그 결과, 납치 3주만에 인질이 무사히 풀려났다.
(2) 2006년 10월 이탈리아 사진기자 1명이 탈레반 대원들에게 납치됐다. 탈레반측은 아프간에 주둔하고 있는 이탈리아 부대를 철수하든지 탈레반 수감자를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탈레반측과 즉각 협상에 나섰다. 현지에서 오랫동안 의료구호사업을 펼쳐온 비정부기구 'Emergency'의 대표 지노 스트라다(이탈리아인 의사)와 그의 아프간인 스탭에게 양측간 중개역할을 하도록 했다. 납치 3주후 인질이 풀려났다. 이탈리아 정부가 몸값으로 100만 파운드(약 19억원)를 지불했음이 나중에 공개됐다.
(3) 2007년 3월 이탈리아 기자 1명이 탈레반에 의해 납치됐다. 요구사항은 마찬가지로 파병부대 철수 혹은 포로 석방이었다. 이번에도 역시 지노 스트라다와 Emergency의 아프간 요원들이 중개역할을 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인질을 살리기 위해선 자국군을 철수할 수도 있다고 미국과 아프간 정부를 압박, 5명의 탈레반 수감자를 석방케 했다. 탈레반 최고사령관 물라 다둘라의 동생 물라 샤 만수르 등 고위급 포로들이었다. 동시에 인질도 석방되었다. 납치 2주만에 전격적으로 이뤄진 일이었다.
한국정부 협상의 지렛대는 이탈리아의 1/10
한국인 인질들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풀려나도록 할 수 있지 않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대단히 힘들 것같다. 이탈리아의 선례를 따르기엔 인질사태의 규모나 제반 여건에서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혹은 비슷한 인질사태를 겪은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가 안고 있는 결정적 취약점은 크게 두가지다.
첫째, 우리 정부가 가진 협상의 지렛대가 대단히 작다는 것이다. 탈레반의 요구대로 포로와 인질을 맞교환하려면 미국의 묵인과 아프간 정부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이에 반대하는 양국 정부를 움직이려면 그에 상당하는 지렛대가 필요하다. 지난 3월 이탈리아 정부가 지렛대로 사용한 것은 아프간 주둔 이탈리아 부대의 철수문제였다. 당시 의회에서는 철군 동의안이 통과돼 있는 상태였다. 프로디 총리가 이끄는 중도좌파 내각이 붕괴될 위기에 몰려 있었다. 인질사태가 원만히 해결되지 못할 경우 연립 내각이 무너지고 새 내각이 들어설 텐데 그러면 이탈리아 군을 바로 철수시키게 될 것이라며 아프간 및 미국 정부를 압박했다. 이탈리아의 파병규모는 약 2000명으로 연합군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탈리아가 철수하게 되면 그 자체로 타격이 큰 데다, 자칫 철군 도미노현상으로 이어질 것을 두려워 한 미국과 아프간정부는 마지못해 탈레반 수감자 석방에 동의하게 되었다.
이에 비해, 한국군 파병 규모는 비전투부대 200명 정도로 이탈리아의 1/10 수준이다. 이를 지렛대로 쓴다고 해도 아프간정부와 미국을 움직이기엔 턱없이 작은 크기다. 게다가 이미 올해 안에 철수할 계획임을 밝힌 상태여서 협상 카드로서의 약효도 다한 상태다. 찾아보면 다른 카드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내 여론구조 및 정치권의 성향상 미국과의 관계악화를 감수하면서까지 인질사태 해결을 위해 미국을 압박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힘든 실정이다.
인질숫자 많아 해결방식에 결정적 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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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반면, 인질사태 규모는 기존의 다른 납치사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것이 두번째 결정적 난점이다. 아프간에서 벌어진 납치사건은 대개 건당 한 두 명 수준이었다. 가장 많은 경우가 네 명이었다. 그러나 한국인 인질은 현재 21명. 그동안 아프간에서 벌어진 모든 납치사건 피랍자를 합친 숫자와 맞먹는 규모다. 인질 숫자가 많으면 포로 석방이든 몸값이든 상대측의 요구도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또 인질사태 규모가 커 국제적 관심사로 떠오른 바람에 세계가 주시하고 있는 상태다. 인질이 한 두명일 때는 납치단체가 요구하는 수감자 몇 명을 다른 석방자 속에 은근슬쩍 끼워넣는 식으로 처리하기도 하지만, 한국인 인질사태의 경우 그런 방법을 쓰기도 곤란한 실정이다.
몸값을 제공하는 식으로 풀려고 할 경우에도, 탈레반에 제공해야 할 몸값 총액이 워낙 커진다는 점이 난점이다. 인질 1인당 몸값을 이탈리아 사진기자 경우의 절반으로 한다고 해도 총 금액은 약 200억원에 달하게 된다. 이런 거금이 탈레반으로 넘겨지면 고성능 무기 구입 등 군자금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갈수록 거세지고 있는 탈레반의 공세 때문에 고민하는 미국으로선 좌시하기 힘들다. 국내 여론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격화되는 아프간 내전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걸 뻔히 알면서도 자국민 인질만을 살리기 위해 탈레반에 거금을 건넸다"는 국내외의 비판을 감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탈레반과 만나 함께 새로운 대안 만들어라
사태 해결의 책임을 안고 있는 한국 정부로선 대단히 힘든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들이 썼던 인질-포로 맞교환이나 몸값 지불방식 모두 제반 여건상 사용하기 힘든 상태다. 게다가 협상용 카드나 지렛대도 변변찮은 실정이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이런 경우 해법은 단하나, 창조적 협상으로 돌파구를 만드는 것이다. 문제해결의 새로운 대안을 창조해 난국을 타개하는 것이다. 탈레반측에는 인질을 석방할 만한 명분과 댓가가 되면서, 동시에 우리 국민 그리고 미국 아프간정부 국제사회 모두 수긍할 만한 그런 대안을 찾아야 한다. 협상이 필요한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탈레반과의 협상에서 해야 할 일이 바로 그런 대안을 함께 찾고 만드는 일이다.
어떤 대안이 있을 수 있을까? 한 예로, 탈레반이 장악하고 있는 지역에 인도적 지원사업(Humanitarian Aid)을 해주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아프간은 오랜 전란으로 급수 보건위생 교육 생업 등을 위한 기본시설이 턱없이 부족해 주민들이 큰 곤란을 겪고 있다. 현재 탈레반은 아프간 동남부 일대에 강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직접 통치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헬만드주에서는 주지사까지 임명해놓고 학교 병원 등 공공시설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학교나 병원에 교육기자재 의료장비 약품 등 필요한 물자를 제공해주는 방안을 제시해볼 수 있다. 또는 탈레반이 원하는 지역에 급수시설 학교 병원 등을 지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구체적인 지원 내역과 규모는 서로 협의해서 정하면 된다.
탈레반 장악지역에 인도적 지원 제공
이런 방안을 택할 경우 단순히 몸값을 지불하는 것에 비해 한국측 부담이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 해도 이는 현지 주민들에게 바로 혜택이 가는 일이고 또 분쟁을 격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평화 건설에 기여하는 일이기 때문이 우리로서도 충분히 자청해서 감수할 만한 일이라 본다.
이런 방안에 대해서는 아프간이나 미국 정부가 크게 반대할 이유는 없을 것같다. 기본적으로 이런 사업은 분쟁지역에서의 평화건설을 위해 장려되는 성격의 일이기 때문이다. 인도적 지원사업인 만큼 유엔의 협조를 얻어 지원기간 동안 안전을 보장받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유엔의 사회경제적 지원프로그램으로 연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과연 탈레반측이 이런 해법을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탈레반도 5,6년간 한 국가를 경영해봤고 향후 그러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의미는 충분히 알 것이다. 또 당장 직간접적으로 그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가능성이 적지 않다. 협상테이블에서 우리측 협상단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일이기도 하다. 포로 석방이나 몸값 지불은 미국과 아프간 정부의 반대 그리고 한국 법규와 여론 등의 문제로 실현 불가능한 사정을 설명해(탈레반측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대안을 찾는 쪽으로 논의의 초점이 옮겨가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가능한 최선의 대안 중 하나로 인도적 지원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 만일, 다른 이유로 이 방안이 곤란하다면 그들이 원하는 대안을 제시하도록 해 함께 협의하고 만들어가면 될 것이다. 그런 것이 바로 창조적 협상이다.
참고로, 그동안 있었던 인질협상사례를 살펴보면 예상외로 탈레반측이 비교적 유연한 협상스타일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처음엔 외국군 철수와 포로 석방을 요구조건으로 내걸었다가도 결국 몸값 지불 혹은 복합적 방식으로 마무리된 사례가 전체 9건중 5건이나 있었다. 아울러 협상과정 및 합의 이행과정에서도 신의성실의 원칙을 지키는 모습이 확인된다. 그동안 있었던 납치사건 14건중 단순 납치-살해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인질협상단계로까지 이어진 경우 단 한 건도 인질이 살해된 경우가 없었다. 또 합의가 이뤄지고 이행되면 고스란히 인질을 풀어주는 등 끝까지 신의를 지키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정부는 협상 장소나 의제 전제조건 등에 구애받거나 연연하기보다는 하루속히 탈레반측과 만나 호의적 관계를 형성하고 본격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후 보다 효과적인 협상을 위해선 협상 진행방식도 다각도로 하는 것이 좋다. 특히 정부 대표가 참석하는 공식협상 외에 민간단체 관계자 등에 의한 비공식 협상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탈레반의 법적 지위와 아프간 현지 정황상 공식협상에는 난점과 한계가 많기 때문이다. 당장 협상 장소문제에서부터 난항을 겪어왔지 않은가. 또 비공식 비공개 협상일수록 보다 유연한 접근과 창의적 대안창출이 가능해진다. 아프간 현지의 의료구호단체 대표를 활용, 두 건의 인질 석방에 성공한 이탈리아의 경우를 참고할 만하다.
국민들의 따뜻한 관심과 성원 위해 기독교계 노력 필요
한국인 인질사태를 푸는 데 가장 중요한 주체는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한국인들이다. 이번 사태의 결과는 우리 국민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사태와 관련, 탈레반이나 미국이 가장 신경쓰는 것은 한국민의 여론 동향인 듯하다. 이탈리아의 경우에서 보듯, 평화적인 방법으로 인질 전원을 무사히 구해내려는 국민적 의지가 높을수록 미국이나 탈레반도 협조적으로 나오게 돼 있다. 우리 정부의 사태해결 노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도 바로 국민들의 관심과 시선이다.
이번 사태와 관련, 우리 국민들 사이엔 동정적 시선과 함께 비판적 시각이 공존하고 있다. "정부의 위험 경고에도 불구하고 전쟁 중인 이슬람국가에 가서 단기 기독교 선교활동을 하려다 엄청난 사태를 초래했다"는 따가운 눈총이 엄존한다. 피랍자 가족과 교회 그리고 기독교계 전반은 바로 이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현 시점에서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들의 따뜻한 관심과 성원을 얻는 일이다. 국내외에서 비판받아온 기존의 선교방식에 대한 성찰과 개선노력도 동반돼야 할 것이다. 그런 노력이야말로 먼 이국땅에 붙잡혀 있는 한국 젊은이들이 모두 무사히 돌아오도록 하는 데, 그리고 이후 다시는 이런 불행한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데 가장 중요하고 또 효과적인 일이 될 것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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