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명실상부 '선거의 해', 2012년의 긴 레이스가 그 막을 내리기까지 이제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제18대 대통령 선거도 일주일 후부터 시작될 본선 마지막 격돌만을 남겨두고 있고, 한 달 후에는 대한민국의 새 대통령이 선출될 것이다.
이렇게 대형 선거가 연달아 치러지는 과정에서 오늘날 한국의 대의민주주의 정치체제가 직면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가 다시 한 번 대두되었다. 그것은 1987년의 정치제도 개혁 이래로 각종 공직선거의 투표율이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낮은 투표율은 그 자체로 우리가 선택하고 있는 민주정치체제의 근본적인 위기를 낳는다. 투표율이 낮아질수록 선거의 결과가 민주주의와는 그다지 상관없는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정치적 대리인의 선출이라는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구성원이 적어지면 곧바로 대의민주주의의 핵심 원리인 대표성에 문제가 발생한다.
한국판 차티스트 운동!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일까?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고 평등한 정치참여의 기회가 '누구에게나' 보장되어 있는 이 아름다운 사회에서, 보통선거의 원칙에 따라 보장된 참정권을, 표를 행사함으로써 정치적 의사결정에 자기 의지를 개입시킬 수 있는 권리를 도대체 왜 행사하지 않는가? 이 듣기만 해도 좋은 것을 포기한다니 당최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런데 질문을 다른 방식으로 해본다면, 과연 한국사회에서 정치참여의 기회가 실제로 평등하게 보장되어 있는가?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투표에 참여할지 말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동등한 조건에 놓여 있는가? 단언하건대 절대 그렇지 않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아무개의 구체적인 현실을 조금만 살펴보면, 한국사회에서 사회경제적 조건이나 연령, 혹은 다른 이유들로 인해 투표권이 아주 쉽게 제약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은 투표하고 싶어도 투표하지 못한다. 선거일에도 정상영업을 하는 사업장에서 파트타임/비정규직 노동을 하고 있는 우리 청년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현실에서 국가의 마땅한 역할은 정치참여의 기회가 평등하게 보장되기까지 최대한의 노력을 다하는 것이다.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국민의 참정권을 보장하기 위해, 투표권의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끊임없이 제도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 정치참여의 동기부여 문제는 우선 정치참여가 권리로서 온전히 보장된 이후에나 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선의 중요한 국면에서 '투표 시간 연장'과 '선거일의 유급휴일 지정'을 요구하는 시민사회와 노동진영의 목소리는 굉장히 소중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대선후보들이 다양한 정치개혁안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시민들의 참정권 보호와 확대 그리고 이러한 참여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한 정치제도의 개혁이 동시에 논의되고 있는 지금 한국사회는 말 그대로 정치의 계절을 치열하게 통과하고 있다. 2012년 11월 한국판 차티스트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시민들이 참여하는 정치개혁운동의 깃발이 올라갔다.
투표시간 연장 더하기(+), 부재자투표의 개선까지!
우리는 이 시점에서 조금 더 나아갈 수 있다. 투표권 보장을 위한 제도개선의 범위를 조금 만 더 확대해서 생각해보면, 투표시간 문제 말고도 바꿔야 할 것들이 참 많다. 분명한 것은 이미 훌륭한 대안들이 충분히 나와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실현시키는 일이다.
당장 우리가 주목해야 할 과제는 바로 '부재자투표제도'의 문제다. 부재자투표제도는 선거일에 자기 주소지의 투표소에 가서 투표를 할 수 없는 유권자들을 위한 것으로, 해당하는 이가 미리 신고하여 정해진 날짜에 주소지의 투표소에 가지 않고 현재 머무르고 있는 곳(거소)에서 투표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부재자투표에 관한 문제는 특히 청년들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대학에 진학하거나 구직활동, 직장생활을 하기 위해 타지생활을 하는 청년들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이런 청년들 중에 많은 수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주소지 이전을 하지 않고 주민등록상 주소지를 원거주지로 남겨놓는다. 이들 모두가 부재자투표를 해야 하는 유권자들이다. 타지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청년들의 삶을 두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한국에서 청년들은 자신의 참정권을 행사할 공간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 상징적인 의미에서도 문자 그대로 '부재자'다.
그런데 이 '청년부재자'들의 투표권을 제대로 보장하기에는 현행 부재자투표가 가진 문제들이 많아 본래의 취지와 효과를 제대로 살리고 있지 못하다. 가장 크게 아래의 두 가지 문제가 있다.
| 가. 부재자투표에 대한 홍보의 부족으로 부재자투표를 언제, 어떻게, 어디에서 신청해야 하는지 알기 어렵다. 나. 부재자투표소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만 운영하는데, 사실상 그 시간 동안에 투표를 할 수 없거나, 투표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
우선 첫 번째 문제로 인해, 부재자투표가 아니면 투표를 할 수 없는 이들조차도 때를 놓치는 경우가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선관위와 관련 기관의 적극적인 홍보 노력과 더불어 부재자 신고기간을 대폭 연장하고, 인터넷을 통해서도 신고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다음으로 두 번째 문제와 관련해서는 필자가 겪었던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할 수 있을 것 같다.
2010년 지방선거 때 한 부재자투표소에서 실제로 겪었던 일이다. 당시 부재자투표 2일 차였고, 오후 4시 정각이 되자 선관위에서 투표종료를 선언하였는데 그 시점에 투표소에 도착한 학생들이 있었다. 학생들은 디지털시계로 분명히 "4:00"로 표시되고 있는 중이었다며 투표 참여를 요구했지만, 선관위는 4시 00초 이후로는 투표를 할 수 없다며 알 수 없이 원칙적인 입장을 고수했다. 함께 있던 학생들이 강력하게 항의했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그 학생들은 결국 투표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
당시 선관위의 행태도 어처구니없었지만,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애초에 왜 투표시간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로 정해져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중앙선관위는 우송 업무에 따른 실무적인 이유로 4시 이후까지 투표시간을 연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는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나마 이번 대선부터 부재자투표도 오전 6시부터 투표가 시작되게 되어 조금 개선되었지만, 투표마감시간도 반드시 2~3시간 연장되어야 한다.
다른 한편, 부재자투표소의 설치 요건에 대한 문제도 있다. 선거법에는 대학교 내에 부재자투표소를 설치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그 요건이 너무 높다. 최소한의 기준은 필요하겠지만, '부재자투표 예상자 2000명'이라는 일률적인 기준은 대부분의 학교에서 충족시키기 어려운 수치다. 재학인원이 일정 규모 이상 되는 경우에도 설치 기준을 채우기 위해서는 장기간에 걸쳐 상당한 역량이 투입되어야 한다. 그런데 대학 당국도 지역 선관위도 필요한 도움을 주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부재자투표소 설치의 모든 책임이 학생들에게 내맡겨져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서는 부재자투표소 설치 요건의 인원 기준을 재학인원에 비례하여 특정비율로 정한다거나, 과감하게 500명 수준으로 낮추는 식의 개선이 필요하다.
One More Step!!
내친김에 딱 한 걸음만 더 나아가보자. 부재자투표제도만을 두고 고려한다면, 상기한 것들도 꽤 훌륭한 개선방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애초에 부재자투표를 할 필요가 없다면? 기존의 것을 넘어서는 좋은 대안들이 이미 있다. 바로 '사전투표제'와 '통합선거인명부시스템'이다.
사전투표제는 말 그대로 선거일에 투표소를 직접 방문하여 투표할 수 없는 유권자들을 위하여 선거일 전에 미리 투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부재자투표와는 달리 사전에 신고할 필요가 없다. 다음으로 통합선거인명부시스템은 선거인명부를 전산화함으로써 주소지마다 정해져 있는 투표소로부터 자유롭게 자기가 편한 위치의 어느 투표소에서나 투표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투표용지 발급기계장치가 함께 필요한데, 이미 개발되어 활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기술적으로 신뢰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남아 있지만, 이 두 가지가 안정적으로 도입될 수 있다면, 투표권 보장에 제도적으로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
지난 총선 때 청년유권자 운동으로 '표를 품은 청년'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결과적으로 청년들이 품었던 표는 사표(死票)로 판명 났고, 청년들의 녹록하지 않은 현실에선 하나씩은 누구나 똑같이 가지고 있는 줄 알았던 '표'조차도 마음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우리는 정치참여에서의 '부재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끈질기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야 한다.
일단 투표시간 연장을 비롯하여 부재자투표 제도 개선 등 각종 제도개선도 더 적극적으로 요구할 필요가 있다. 특히 부재자투표 해당자는 신고기간 잘 챙겨서 빠짐없이 신고하자. 이번 제18대 대통령 선거의 부재자 신고가 11월 21일부터 5일간 진행된다. 부재자투표 안 해도 되는 사람은 투표참여를 약속하자. 그리고 우리의 소중한 권리, 참정권 보장을 위한 제도개선을 요구해야 한다. 한국판 차티스트 운동에 청년들이 나서길 바란다. '표를 품은 청년'으로서 당당하게 정치에 참여하고 우리의 목소리를 내봤으면 한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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