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의 기로에 선 한반도에 새로운 해빙이 시작되고 있다. 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악의 축', '폭정의 전초기지'라 명명했던 북한이 영변의 핵시설을 폭파하기로 결심했다. 부시행정부가 낳은 북핵 외교의 작은 '개가(凱歌)'이다.
영변 핵시설 폭파가 갖는 의미는 향후 북핵 폐기를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는 한반도의 비핵지대화는 물론이고, 한반도의 영구평화론이 정착될 수 있을지 그렇지 않을지를 가늠하는 첫 단계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조치라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북한의 영변 냉각탑 폭파 결심은 핵 해체를 향한 김정일 위원장의 '통 큰 결단'의 첫 걸음으로 평가해야 한다.
부시의 선제공격에 맞서 강성대국과 선군정치를 표방해 온 북측으로서 핵시설을 폭파한다는 것은 선제공격에 맞설 수 있는 상징적인 방어물을 스스로 포기하여 제거단계에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하며, 냉각탑 폭파 이벤트를 펼쳐 전 세계인들에게 공개하겠다는 것은 핵을 가진 테러지원국가라는 이미지를 씻어내고 북한의 핵개발 의지에 의구심을 갖고 있는 집단을 향해 핵 해체로 답변하겠다는 선전에 강한 사회주의 국가 특유의 결과인 것이다.
이를 놓고 '핵 폭파쇼', '핵 서커스', '콘크리트 핵 껍데기쇼'라고 폄하하는 것은 김정일 체제에 있어서 핵이 갖는 위중하고 절박한 필요성을 모르고 하는 소리이며, 9.11 이후 대량살상 무기의 제거를 향한 부시의 끈질긴 노력과 인내심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좋든 싫든 우리는 개성이 완전히 다른 선제공격형 부시대통령과 선군정치형 김정일 위원장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대화를 통해 핵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평화적 관점에서 봐야 하며, 호전적인 이 두 지도자가 서로 전쟁하지 않고 대결을 피해가면서 6자회담 나머지 참여국들과 함께 대화를 통해 핵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의 끈을 동여매는 그 인내와 노력을 결코 하평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이번 북한의 영변 냉각탑 폭파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추가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첫째, 북한의 핵해체에 대한 의지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수 있다.
둘째, 6자회담의 기능과 유용성에 관한 의구심과 본질적 기여도를 재평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셋째, 북한의 핵신고서 제출과 동시에 핵시설의 불능화 조치가 이행된 후, 핵폐기화 단계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어려움은 있겠지만, 핵해체의 목표 달성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핵문제 해결에 대한 희망적 전망을 갖게 되었다.
넷째, 2.13 합의문에 대한 북측의 준수 입장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북측이 2.13 합의문을 단계적이고도 일관되게 실천할 의지가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확인할 수 있음은 물론, 이를 뛰어 넘어 나아갈 가능성까지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본론 : 핵포기의 궁극적 목표는 북미관계 정상화
북한이 핵시설을 폭파시키겠다는 내부적 계획과 결심을 하게 된 것이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이에 관한 북측의 첫 언급이 비밀리에 시도된 시점은 2007년 3월 1일, 6박 7일 일정으로 김계관 부외상이 미국 뉴욕을 방문했을 때였고, 당시 힐 차관보와 단독 대좌에서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김 부외상의 방미는 한마디로 말해 기존의 북측 외교관들의 의전과 관행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버린 파격적인 외교행보였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집권 시절인 2000년 조명록 차수의 미국 방문은 의전적인 측면이 강했고 실리보다는 명분과 상징성이 강한 방미였다면, 2007년 김계관 부외상의 방미는 격식과 형식을 깬 실리와 실용에 입각한 방미였음을 직감케 했다.
김계관 부외상은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이 만나고 싶고, 가고 싶고, 하고 싶은 모든 일들을 거침없이 했다. 아무런 제재나 간섭을 받지도 않았고, 통제할 북측 인사도 동행하지 않았다. 6자회담 진행 중간에 자신이 답변할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회담 휴회를 선언하면서까지 회담장을 빠져나와 자구 하나까지도 평양의 훈령과 답신을 받고서야 회담을 다시 진행하곤 했던 그였지만, 당시 미국에서의 그의 활동에는 아무런 제약도 감시도 없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당시 김계관 부외상의 방미는 사실상 김정일 위원장의 특명전권 대사의 자격에 준하는 위치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고 한다.
영변 핵시설 폭파는 1년 전 김계관 부외상 뉴욕 방문 시 첫 제안
김 위원장은 김 부외상이 미국으로 떠나기 전, 그와 가진 사적 대화에서 "이번 김 부외상의 방미는 조선인민을 해방시키는 방미로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이로움을 가져오고 조선 인민을 해방시키는 데 기여할 것으로 생각된다면, 모든 사항을 김 부외상이 즉석에서 판단하여 결정해도 좋다. 이에 준하는 자격과 권한을 김 부외상에게 부여한다"라는 언명을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였는지 모르겠지만, 김 부외상은 첫날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뉴욕의 한인식당가를 찾았고, 자신의 오랜 미국 친구와 점심을 하면서 소주 4병을 비웠다. 그의 얼굴은 마치 가을 단풍처럼 붉게 물들었고, 김 부외상은 그런 모습으로 백주에 뉴욕 거리를 활보했다고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서 외교관이 대낮부터 술을 마시고 적성국가의 대로를 누비고 돌아다닌 예는 일찍이 없었다.
김 부외상은 미국의 외교문제 전문가들을 만나서는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전략이 무엇이냐고 거침없이 물었고, 중국에 대한 북측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충격적인 발언도 쏟아 냈다. 그가 뉴욕에서 만났던 미국 조야의 인사들 가운데 독특한 사람은 다름 아닌 냉전시절에 죽의 장막(竹의 帳幕)을 걷어 내고 공산국가 중국을 뚫고 들어간 헨리 키신저 전 미국무장관이었다. 김 부외상은 키신저를 만나 "미국이 북한에 전략적 관심을 갖고 있느냐. 한반도는 중국 청나라에서부터 일본에 이르기까지 외세 침략의 대상이었다. 미국과의 전략적 관계는 북한에 도움이 되고, 동북아 지역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왜 미국과 핵문제 해결을 계기로 관계 정상화를 맺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북측의 속내를 읽을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노출된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지난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남북 정상회담을 가졌을 때 "미국이 원한다면 통일 이후에라도 주한미군은 한반도에 주둔해도 좋다"라는 김정일 위원장의 발언과 일맥상통한 부분이다. 눈길을 뗄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전략적 맥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김계관의 이 발언은 미국이 죽의 장막을 걷어 내고 공산국가 중국을 뚫고 들어가서 미국의 패권경쟁국가인 구소련을 견제했듯이, 이번에는 철의 장막을 걷어 내고 공산국가 북한을 뚫고 들어가 또 하나의 패권경쟁국인 중국을 견제하려면 중국과 인접해 있는 북한이 전략적으로 좋지 않겠느냐는 함의를 던진 것이다.
사실 지난 2007년 김계관 부외상의 뉴욕 방문 중 가장 놀라웠던 특별한 사건(?)은 김 부외상이 크리스토퍼 힐 미국무성 차관보를 단독으로 만난 자리에서 했던 다음과 같은 발언 내용이었다. 김 부외상은 힐 차관보에게 "우리(북측)가 핵무기를 전면 폐기하면 미국은 무엇을 줄 수 있느냐"라는 질문을 단도직입적으로 던지면서 처음으로 북한의 전면 핵 폐기 의사를 비쳤다. 그러자 힐 차관보가 당황스런 표정을 지으면서 "핵사찰을 단계별로 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반문하자, 김 부상은 다시 "그런 것 다 중략하고 핵시설물과 핵무기까지 모두 폭파시켜 없애 버릴 테니, 이 모든 것을 일시에 정리해 버리면 미국에서는 어떤 것을 북측에 해 줄 수 있느냐"라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김 부외상은 덧붙이기로 "행동 대 행동, 말 대 말, 이런 것 더 필요 없으니, 일시에 전부 정리해 버리면 미국이 어떻게 할 것인가"라면서 힐 차관보를 또 다시 다그쳤다고 한다. 그래도 힐 차관보가 아무런 답변을 하지 못하자 김 부상은 다시 힐 차관보에게 "다음 6자회담장(중국)에 나올 때까지 이에 대한 답을 가지고 나오라"고 했고, 힐 차관보는 김 부외상이 뉴욕 방문을 마치고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 이에 대한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을 전달하지 못했다. 바로 오는 27일 영변의 핵시설 폭파는 지금으로부터 1년 3개월 전에 김 부외상이 뉴욕을 방문하여 힐 차관보를 만난 자리에서 제안했던 내용이 미국으로부터 받아들여진 결과인 것이다. 엄격히 말해 김계관-힐의 합작품인 것이다.
(이 부분과 관련하여 필자는 2007년 4월에 국내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폭파제안의 일부 내용을 공개한 바 있다.)
이런 충격적인 북측의 제안 이외에도 김 부외상은 북미관계 정상화를 위해 "중간연락 사무소 설치 문제 같은 것들을 모두 생략하고 곧 바로 (북미)수교로 가자"고 제안 했는가하면, "고농축 우라늄(HEU) 프로그램을 북한이 먼저 공개할 수도 있다"는 파격적인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당시 힐 차관보는 자신이 먼저 고농축 우라늄 문제를 꺼내지도 않았는데 김계관이 먼저 이 문제를 스스로 언급하고 나서서 매우 놀랐다고 말했다.
지금 많은 북핵 비관론자들은 북한이 27일 냉각탑 폭파쇼를 하여 핵시설을 해체 시키면 이는 곧 2단계 '불능화, 신고'의 마무리이자 3단계 "핵폐기'의 돌입을 의미한다고 말하면서도 앞으로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핵이전, 핵물질 등 민감한 많은 문제들이 산적하게 쌓여있기 때문에 완전한 핵폐기까지는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을 것이라는 회의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26일 북한이 핵신고서를 중재국인 중국에 제출하고 27일 영변 핵냉각탑을 폭파시키면 미국은 이제 북한을 테러지원국가의 명단에서 해제시키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는 '영구전쟁구조'인 한반도가 '영구평화구조'로 전환되고 있음을 알리는 작지 않은 서곡이 될 것이며 남북정상회담 이후 또 하나의 데탕트 역사가 한반도에서 시작됨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북미관계 정상화의 궁극적 목표는 중국으로부터의 탈식민화, 탈종속화, 탈변방화
만일, 미국만 행동 대 행동의 원칙을 잘 지켜 나간다면 북한의 핵폐기까지는 고난의 행군이 되겠지만 행군의 최후 목적지인 핵폐기는 결국 이뤄질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갖는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핵협상을 통한 북미관계의 정상화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이유는 김계관 부외상의 뉴욕 방문 중에 일부 밝혀졌다고 본다.
김 부외상은 방미 중 토론회에서 북미양자 협상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미국의 북한 전문가들에게 "중국은 우리를 이용만 하려 한다(이는 얼마 전 시진핑 부주석이 방북하여 김정일 위원장에게 올림픽 참관 요청을 한 내용을 연상시킴)", "중국은 우리에게 영향력이 없다. 미국은 핵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에 너무 기대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리고 "미국이 지난 6년간 핵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에 의지해 왔지만, 나온 것이 무엇인가. 우리는 미사일도 쏘고 핵실험도 하면서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을 다 했으나 중국은 하나도 해결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북핵문제가 진전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의 중재역할이 아니라 6자회담틀 내에서 북-미간 직접회담이 주효했다는 북한의 역설이다. 그리고 중국은 미국이 생각한 만큼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크지 않으니 북핵 문제를 중국을 통해 해결하려 하지 말고 북미 직접 대화로 해결하자는 북한의 대미요구인 셈이다.
북한은 미국이 체제보장과 관계정상화만 이룬다면 지금 워싱턴의 네오콘들이 의심하고 있는 핵물질, 핵시설, 핵무기, 고농축 우라늄 등을 포함한 그 모든 것들을 일제히 해체시키고 폭파시킬 용의가 있음을 이미 1년 전에 밝혔다.
그리고 북한이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된 특별한 이유는 남북한 간의 군비 격차, 경제적 빈곤의 심화, 국제사회로부터의 고립 등 여러 가지의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중국의 식민지' 혹은 '중국의 변방화'로 전락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백두산 천지를 사이에 두고 있는 북한은 지금 중국과 국경선 분쟁 상태에 놓여 있고, 갈수록 경제력이 피폐화되어가고 있는 자신들에 비해 대국굴기(大國崛起)를 꿈꾸며 욱일승천하고 있는 중국의 팽창과 영향력 확대가 두렵게 느껴지고 있는 것이다. 핵보유는 외부의 침략을 억제시킬 수 있는 수단이 될지는 몰라도 내폭(implosion)으로 인한 체제붕괴는 막지 못하며 더군다나 중국에 대한 북한의 경제적 의존도가 점점 커짐에 따라 자신들이 중국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막고 보호할 수 있는 충분한 수단이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북측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가능한 한 미국을 하루빨리 끌어들여 중국으로 흡수될 가능성이 있는 자신들을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그 일환으로 약소국 외교의 비책이라 할 수 있는 줄타기 생존전략을 미-중 사이에서 다시 구사해 나갈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 있어서 미국과의 핵협상 카드는 지금 이런 목적으로 변용되고 있고, 그 기나긴 핵폐기 여정의 초입단계에서 영변의 냉각탑 폭파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핵시설을 해체하여 미국과 새로운 관계정상화를 맺은 다음 과거 냉전시대의 중-소 대결 사이에서 줄타기 자주외교로 국익의 포션을 극대화시키면서 자주적 생존의 길을 걸어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21세기 새로운 미-중간의 패권대결을 이용하여 또 한 번의 줄타기 외교로 자주적 생존을 도모하고자 지금 놓고 있는 포석이 바로 미국과의 핵협상인 것이다.
북한은 핵 보유를 원치 않는 미-중의 협공을 받아 자주적 국방과 경제적 자립의 길을 모두 잃고 중국의 변방으로 전락하고 말 것인가 아니면, 핵 해체를 통해 중국과 미국으로부터 단기적인 경제적 지원을 끌어내면서, 장기적으로는 미-중간의 대결구조 속에서 중국의 변방으로 전락할 기회를 사전에 차단하고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새로운 자립의 길을 보장받을 것인가라는 딜레마 가운데서 후자의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의 초기 이행조치가 바로 오는 27일, 전 세계인들 앞에서 공개화 될 영변핵시설 폭파 작업인 것이다.
결론 : MB의 대북정책으로 한국, 6자회담에서 배제될까 걱정
북핵, 한반도, 동북아를 감싸고 돌아가는 주변 정세는 매우 급박해 보인다.
2006년 10월 9일 북한의 갑작스런 핵실험에 이어, 2008년 6월 27일에 북한은 또 다시 핵시설을 폭파한다.
한반도는 다시금 전쟁의 '큰 위기'에서 평화의 '큰 기회'로 전환되고 있다.
핵을 통한 분단의 영구화로부터 핵폐기를 통한 공존과 통일로 한반도 역사의 문은 다시 열리기 시작했다. 미국의 뉴욕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평양 연주에 이어 이번에는 평양 필이 미국연주회를 준비하고 있다. 북미간의 협연이 진행 중에 있고 이 모든 것은 지금 남한을 경유하지 않고 북미간의 직거래 라인으로 구축되고 있다.
북한은 지금 생존의 몸부림 속에서 핵 문서를 미국에 전달하고 핵자료를 중국에 제출 하고 있다. 그리고 북일 국교정상화를 위해 일본과 접촉하면서 급기야 영변핵시설 폭파계획을 전 세계에 공표하는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 체면과 자존심을 체제유지와 주권보존의 양 기둥으로 여겨온 북한으로서 국가 최고의 기밀문서인 핵서류를 모두 미국과 중국에 제출하고 신고한다는 것은 북한 체제상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런 상상이 불가능한 일들이 지금 현실이 되어 우리 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물론 최후의 무기와 결정적 자료는 제출하지 않았을 것이란 가정과 의구심도 잔존한다. 그러나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중국의 핵파워 앞에서 북한의 핵폭발력이 파워풀하지 못하다는 것은 북측 자신뿐만 아니라 세계 군사전략가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북한은 이미 콘돌리자 국무장관의 방북맞이 준비를 끝낸 상태
이런 와중에 서진핑 중국 부주석은 북한에 경제협력이란 보따리를 들고 가 풀어 놓으면서 김정일 위원장의 올림픽 참관을 요청했다. 그리고 부시 대통령과 후쿠다 일본 수상이 중국 올림픽에 참관하면 북미간 정상회담을 중재할 생각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미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방북을 맞을 준비를 마쳤다고 한다. 다만 미국의 결심만 남았다고 한다. 그리고 북일간 국교정상화를 향한 발걸음은 더욱 빨라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최근 북측 인사가 북한을 방문한 남측 인사에게 한 말이 생각났다. "미 국무성의 성 김 과장이 얼마 전 평양에 들어와 핵 서류를 갖고 미국으로 떠났는데, 떠나기 직전에 청와대에 들렀나요? 아니면 바로 미국으로 가버렸나요?"
한국은 지금 외교가 실종된 느낌이다.
최우방인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시켜 놓겠다고 방미하여 오히려 동맹관계를 더욱 불편한 관계로 만들어 놓고서 밤마다 촛불 끄느라 정신없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50년간 적대적 관계를 유지해 왔던 북한과의 관계를 우호적인 관계로 돌려놓으라고 요구한다면 이는 너무 가혹한 요구일까.
우방국가와의 쇠고기 협상에서조차도 실패한 정부에게 적대적 국가와의 핵협상을 성공으로 이끌어 달라는 외교력을 기대한다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인가?
자국의 영토인 한반도내에서조차도 대한민국의 영토 주권이 더욱 적대적 무시를 당하고 있고, 한반도 역외에서는 대외주권의 고립이 심화되고 있어 어떻게 이 험난한 국제적 파고를 이명박 정부가 헤쳐 나갈지 걱정스럽다.
북핵 문제가 국제적인 문제임과 동시에 한반도 문제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명박 정부는 북한이 핵시설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어떤 전략을 갖고 대응해 나갈지 그것이 궁금하지만 과연 전략이라도 갖고 있는 것인지 그것이 더욱 궁금하다.
MB의 대북정책, 북핵해결의 훼방꾼, 한미관계 갈등 고조 원인 될 수 있어
한반도 문제에 관한한 남북한 당사자의 독자성을 주장하면서 미국과 중국이 협상에 참여하는 2+2 모델을 국민의 정부에서는 내심 추구해 왔으나, 지금 상황은 북미가 당사자이고 한국과 중국이 조력자로 전락해 버렸다. 아니,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는 한국은 아예 조력자의 위치에서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지금과 같이 남북관계가 소통부재의 단절된 상태로 지속된다면 차제에 북한은 6자회담에서조차 한국을 밀어내려 시도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만일, 그렇게 되어 한국이 완전히 소외된 채 지금의 북핵 6자 회담이 한국만이 빠져 버린 5자회담으로 변형되어 버리는 상황을 맞게 된다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될까. 한반도의 군사 안보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에 한국이 완벽하게 소외되는 날이 올까 정말 큰 걱정이다.
만일 지금보다 남북관계가 악화되어 개성공단이 문을 닫고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어 북한이 그런 태도를 보여 온다면, 지금처럼 남북관계가 냉각된 상황에서 한국은 어떻게 탈출구를 찾을 것인가. 미국에 바짝 달라붙어 북측의 통미봉남(通美封南) 정책에 남측은 통미봉북(通美封北) 정책으로 맞대응해 나갈 것인가. 아니면 미국이 절대로 남한이 빠진 회담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미국만 믿고 앉아 기다릴 것인가. 나의 이런 상상이 과도한 기우이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이와 반대되는 남북관계가 펼쳐졌으면 하는 바람이 짙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과 같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현상유지정책이 지속된다면, 한국은 향후 한반도 평화 논의 구조에서 배제되어 모든 것을 잃거나 빼앗기게 될 지도 모르며, 한반도 평화 문제는 미국과 북한 그리고 중국이라는 3각 구도 속에서 진행되어 버릴 공산이 크다고 판단된다.
북미간에 진전된 핵폐기 협상이 남북간의 갈등고조에 발목이 잡혀 북한이 남한을 6자회담에서 배제하길 원하고, 이 문제가 해결 되지 않으면 더 이상 핵협상을 할 수 없다고 고집을 피우게 될 경우, 이명박 정부는 북핵 해결의 훼방꾼으로 전락 될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한국외교는 지금보다 훨씬 더 깊은 수렁에 빠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명박 대통령은 생각이나 해 봤을까. 그렇게 되면 갈 길 바쁜 부시의 대북 외교적 성과가 MB의 대북정책으로 인해 발목 잡히고 한미간의 갈등의 폭은 지금보다 훨씬 더 커질 수 있다는 미래를 이명박 대통령은 상상이나 해 봤을까.
이 대통령이 북한 문제를 보다 거시적인 통찰과 폭넓은 포용으로 접근해 들어갈 필요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지 않으면 북한 문제는 분명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마지막 날까지 가장 큰 위협이자 도전으로 작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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