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일생에 몇 번의 전환점을 가지는 것 같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게 그 전환점은 몸과 정신이 완전히 무너진 뒤에 찾아왔다. 정신과 몸이 결코 나뉠 수 없으며, 몸이 아프면 정신도 아프다는 것을, 그냥 그것은 하나라는 깨달음을 얻은 뒤에야 다시 부활할 수 있는 시간이 나에게 찾아온 것이다.
1991년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가족들이 있는 고향에서 조그만 치과를 열었다. 요즘 사람들은 치과의사라는 직업에 다양한 매력을 느끼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 일은 소음과 분진, 친환경과는 거리가 먼 약재나 재료들 속에서 이루어진다. 육체적 노동 강도도 강할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적지 않은 직업이다.
그래서인지 늘 피로에 젖어 있었고, 출산할 때는 임신중독증에 걸려 병원에 한 달간 입원하면서도 정상 분만을 하지 못하고 9개월 만에 제왕절개로 딸애를 낳았다. 그 후 둘째를 낳으려고 무던히 애썼지만 특별한 이상도 없이 아이가 들어서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2차 불임이라고 진단을 내렸고,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둘째를 갖지 못하였다.
사실 그때 이미 내 몸에 나쁜 변화들이 왔는데도 그걸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본래 병약한 체질인데다 치과 일이 힘들어서 그러려니 하면서 몸을 방치해버린 것이다. 그런데 마흔이 넘으면서 몸에서 느껴지는 많은 변화를 알 수 있었다. 끊임없는 이명과 어지럼증, 가슴 두근거림, 빠른 맥박, 극심한 피로...
병원에선 수치만 들여다보며 이상이 없다고 했다. 병이 없다는 말에 안심하면서 나의 예민함을 탓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 몇 년 후 자궁 근종이 발견되었고, 이 모든 증상이 근종 때문이라 단정 짓고 자궁 적출 시술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수술 후 오히려 혈압이 높아지고 어지럼증이 심해져 응급실에 실려 가기까지 했다.
여러 증상들로 인해 몹시도 힘들었는데 의사들은 정상범위에 있는 여러 수치들만 보고 "문제없다"고만 되풀이했다. 나도 현대의학을 공부한 의사지만 종양이 생기거나 수치상의 어떤 범위를 벗어나야만 '병'으로 여기는 현대의학의 한계를 순간순간 절감했다.
양현당(養賢堂)을 찾게 된 것은 오래 지속된 몸의 불안정이 정신의 불안으로까지 이어져 공황장애라는 진단을 받고나서였다. 몸에 대한 염려와 걱정이 무의식속에서 정신을 무너뜨렸던 것이고 상담을 통해 치료를 받으면서 '이 모든 것을 뛰어넘을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먼저 관점을 바꿔 보았다.
내가 믿는 게 다 옳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 각도에서 되새겨 보았다. 그래서 자연의학에 관한 여러 책들을 보았고, 장두석 선생님을 알게 되었다. 아니, 좀 더 엄밀히 말하면 선생님의 명성은 오래 전 주위 사람들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연의학을 하는 사회운동가 정도로만 알고 평생 나와는 무관한 사람이리라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수면제 없이는 잠을 잘 수 없었던 그때, 그 절박감에 무작정 선생님을 만나러 무등산자락 민족생활교육원인 양현당을 2012년 6월달에 교육수련에 참가하게 되었다. 수련과정에서 장두석 선생은 <병은 없다>라는 책을 엮어내는 중이었다.
양현당에서 나는 한번 깜작 놀랐고 크게 두 번을 크게 울었다. 처음 놀란 것은 병의원에서 버림받은 많은 중증 환우들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수련에 참가한 것을 보고 저분들을 어떻게 다스려 지도할 것인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으로 내가 두 번 운 것은 자기소개시간에 나를 소개할 때와 '40분 합장 수행'을 할 때였다. 소개할 때 운 것은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잘못 살아온 부끄러움, 내 몸을 사랑하지 못한 어리석음, 가장 달콤하고 맛있는 것, 갖은 욕망과 탐욕이 병들게 했는데도 그걸 알지 못했던 무지가 부끄러워서 울었다. 그것은 이제껏 살아 온 것과는 다르게 살겠다는 결심이기도 했다. 그때 나에게 21일간의 단식은 단순히 밥을 굶는 것이 아니라 삶을 바꾸겠다는 약속이었다.
수련과정의 하나인 '40분 합장'을 할 때도 울었는데, 40분 동안 내내 울었다. 그건 신에 대한 나의 헌사였다. 신이 나를 사랑하시어 큰 병을 주지 않으시고 적당한 병을 주시어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한 감사, 그 감사에 대한 고마움으로 울었다.
10박 11일의 민족생활학교 교육 과정은 하나하나가 인생의 지침이 될 주옥같은 40여 강좌로 이루워져 우리 전통문화의 우수성과 민족의 정체성을 다시금 불러 일으켜 나와 나의 가족에게 많은 생활의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이제껏 주방에 들어가 보지도 않던 내가 김치를 직접 담그고, 오곡밥도 짓고, 모든 반찬을 직접 만들게 되었다. 그것이 나를 살리고 내 가족의 생명을 살린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날마다 냉온욕을 하고 물과 죽염, 다양한 잎채소와 뿌리채소의 즙을 내어 먹고 소식이 주는 즐거움과 행복을 맘껏 누리고 있다. 나는 지금 평화롭다. 삶을 찬미하고 싶다. 하지만 환자들에 대한 나의 염려와 걱정은 더욱 커지고 있다.
우리들 중엔 타고난 면역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환자들 중엔 구강의 위생 상태와는 상관없이 이가 건강한 사람들이 있다. 정말 축복 받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건 소수이고 대부분은 나쁜 습관과 음식에 노출되면 결국에는 이뿐만 아니라 몸도 병들게 마련이다.
요즘 몇 년간 청소년들의 구강검진을 하면서 우려는 깊어지고 있다. 뼈보다도 더 단단한 몸의 가장 강한 경조직인 이가 마치 비스켓처럼 부서지고 있는 것이다. 이가 온전히 건강한 아이는 찾기 힘들다. 짐작건데 나쁜 양치습관의 문제도 있지만 오랫동안 인스턴트 음식에 길들여진 것이 더 큰 문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가 이럴진대 아이들의 몸은 10년 후, 20년 후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런 걱정을 말금히 씻어내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 바른생활건강법에 있으니 어찌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있겠는가?
장두석 선생님의 신간 '병은 없다'의 서평을 대신해 이렇게 내 개인의 경험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것은 이 책 속에 내 삶의 모든 것을 바꿔놓은 생활의 지침이 있음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정기적인 건강검진이 예방의학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예방의학은 식의주생활 그 자체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바른생활건강법을 알면 모두가 병 나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것을 '인생의 전환'이라는 혁명에 가까운 일을 치르고야 깨닫게 되었다.
지금 모두가 아프다. 지구도, 인류도... 과학문명의 이기와 자본의 논리만을 따라가는 인류에 대한 인과응보인지도 모른다. 혁명적 변혁 없이는 우리에게, 우리 아이들에게 건강한 미래는 오지 않을 것 같다. 희망을 말할 수 없는 세상, 자본이 인간을 끊임없이 쥐어짜 몸과 영혼을 앗아가는 불우한 이 시대에 장두석 선생님이야말로 촌철살인(寸鐵殺人)으로 시대를 깨우는 의인(義人)이시다.
이 책이 우리 모두의 필독서가 되고 생활의 지침서가 될 때 정말 우리에게 병은 없을 것이라는 믿음이 마음 깊은 곳에서 샘솟는다. 바른생활건강법으로 살아가면 결단코 '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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