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올해로 환갑을 맞이한 정전체제와 한미동맹을 대하는 두 정상의 태도는 너무나도 상반된다. 한미동맹에 대해서는 '한미 동맹 60주년 기념 공동선언'을 채택하면서 찬양 일색의 태도를 보였다면, 또 다른 동갑내기인 정전협정체제를 평화협정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말은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한미동맹의 공헌이나 필요성을 전적으로 부인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불안한 정전체제에 의존하는 한미동맹은 결코 미래지향적일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한반도 평화와 대한민국 안보의 수단이어야 할 동맹이 갈수록 목적이 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더욱 중요하게는 한미동맹이 정전체제에 의존할수록 그 정전체제는 더더욱 불안해질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한반도 위기도 구조화·상시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경고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실종된 평화체제
평화협정이나 평화체제라는 단어 자체가 한미동맹의 비전에서 사라진 지 어느덧 6년째로 접어들었다. 노무현 정부 때만 하더라도 이렇지는 않았다. 참여정부는 까다롭기로 유명한 부시 행정부를 설득해 한미동맹의 주요 성명이나 선언에 평화체제를 명시하려고 노력했었다. 평화체제가 북한의 핵포기를 유도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이자 대한민국의 안보를 튼튼히 하고 평화적 통일로 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관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 결과 2005년 11월 17일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공동선언을 통해 "한반도에서 군사적 위협을 감소시키고 현 정전체제로부터 평화제제로 이행하는 것이 한반도에서의 완전한 화해와 평화 통일에 기여할 것이라는 데 동의"하였고 이것이 "한미동맹의 평화적 목표"와도 부합한다고 했다. 이후에도 양국의 주요 문서에는 평화체제가 줄곧 명시되었다.
그러나 뒤이어 집권한 이명박 정부는 자신의 대북정책은 물론이고 한미동맹의 비전과 목표에서도 평화체제라는 단어 자체를 아예 삭제해버렸다. 대신 사실상 흡수통일을 염두에 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칙에 입각한 평화통일"이라는 표현을 한미 간 주요 합의에 포함시켰다.
안타깝게도 MB 정부의 대북정책을 개선시키겠다고 공언해온 박근혜 정부는 자신의 대북정책에서도, 또한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도 실종된 평화체제를 찾으려는 어떠한 노력도 보이질 않았다. 오히려 MB와 마찬가지로 "비핵화,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원칙에 입각한 평화 통일"이라는 표현을 공동선언에 명시하고 말았다.
갈수록 공허해지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하여 한미 양국 정부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흡수통일을 겨냥한 표현을 사용하면서 어떻게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가능한가? 평화체제에 대한 최소한의 공감대도 형성하지 못해놓고는 어떻게 비핵화를 달성할 수 있는가? 아직도 대북 제재와 압박을 통해, 그리고 중국에 대북정책을 아웃소싱하면 북한의 언행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가? 한반도 문제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서 글로벌로 향한다는 한미동맹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북핵이라는 한반도 평화의 독버섯은 정전체제라는 비정상적인 토양에서 자라난 것이다. 그리고 핵무기를 "만능의 보검"으로 착각하고 있는 북한은 그 보검의 위력을 믿고 정전체제를 끝장내려고 한다.
이러한 북한을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방법은 동맹을 강화하고 다양한 핵 투발수단을 동원해 무력시위를 하는 데에 있지 않다. 북한의 핵 능력 강화와 한미동맹 강화는 '적대적 의존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평화체제라는 60년간의 미완의 과제를 해결하겠다는 적극적이고도 능동적인 자세만이 북한의 거친 입을 다물게 하고 비핵화의 문을 열게 할 수 있다.
정전체제에서 누려온 기득권을 지키려는 오바마 행정부, 핵의 위력을 믿고 정전체제를 무력화하려는 김정은 체제, 정전체제가 얼마나 비정상적인 상황인지를 애써 외면하는 박근혜 정부. 안타깝게도 한반도 냉전의 핵심인 정전체제 60주년을 맞이한 한반도의 시계는 냉전에서 평화로 가는 것이 아니라 냉전과 열전(熱戰) 사이를 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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