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정신적 영역이라고 여겨지는 문화와 관습, 예를 들어 '인도인이 소를 안 먹는 이유' 같은 종교적 계율의 뒤에 물질적 배경이 깔려 있다는 점을 마빈 해리스의 책을 통해서 깨달았다. 그러니까 나에게 유물론은 포이어바흐나 마르크스가 아니라 해리스를 통해 찾아온 것이었다.
10여 년이 지난 오늘, 에두아르도 포터의 <모든 것의 가격>(김홍래·손민중 옮김, 김영사 펴냄)을 읽으며 잊고 지냈던 마빈 해리스의 기억을 소환했다. 이 책을 두고 '21세기 판 <문화의 수수께끼>'라고 칭하면 지나치게 무리한 찬사가 되겠지만, 이 책의 지향점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데는 유용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 ▲ <모든 것의 가격>(에두아르도 포터 지음, 김홍래·손민중 옮김, 김영사 펴냄). ⓒ김영사 |
포터에 따르면 노예 해방의 이유는 노예의 가격이 비싸지고 자유 공장 노동자의 가격이 싸졌기 때문이다. 중세 일부다처제 사회가 일부일처제 사회로 바뀐 이유는 '아내의 가격'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가장 재미있는 장면은 신앙과 종교 생활에 가격을 매긴 것이다. 포터는 개신교 종교 혁명의 이유를 가격으로 설명한다. 개신교 신앙의 가격이 가톨릭 신앙의 가격보다 더 쌌기 때문에 사람들이 개신교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또 여성이 남성보다 교회에 더 많이 가는 이유도 여성이 교회에 가는 시간의 가격이 더 낮았기 때문이다.
포터는 가격이 어디에나 있고 무엇이든 값을 매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생명이나 행복과 같은, 눈에 보이지 않고 상품이 아닌 것에도 가격이 있다. 예를 들어 책 67쪽에는 다양한 생명의 가격을 메뉴처럼 정리해 놓았다.
"미국 환경보호국의 지침에 따르면 2010년 화폐 가치로 볼 때, 한 생명의 가격은 약 750만 달러이다. 영국 환경부는 건강한 삶은 매년 2만9000파운드의 가격을 갖는다고 밝혔다. 2007년 인도 시민의 가격을 평가한 세계은행의 조사에서 한 사람이 한 해 동안 누린 삶의 가격은 3162달러인 것으로 밝혀졌으며, 전체 인생의 가격은 9만5000달러에 약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행복에도 가격이 있다.
"1만6500~2만4500 달러의 공돈이 생기는 것은 결혼을 했을 때와 거의 비슷한 행복도 증가를 가져온다, 또 17만8300~18만7600달러를 잃는 것은 자녀의 죽음을 경험하는 경우와 비슷한 불행감을 가져온다."
이 가격표는 물론 저자가 임의로 정한 것이 아니라, 설문 조사 등 다양한 기법을 통해 학계와 정부 기관이 연구한 결과다.
이런 가격 매기기는 한국 같은 사회에서 자칫 악용될 소지가 있다. 오늘도 아침 막장 드라마에선 재벌2세 아들이 "얼마면 돼?"라고 외친다. 천민자본주의, 시장 지상주의가 판치는 사회에서는 이미 남녀의 사랑에도 가격표가 붙어있다. 하지만 <모든 것의 가격>은 시장을 찬양하는 요즘 흔한 그렇고 우파 복음서와는 출발점이 다르다.
포터는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가격에 있다는 사례를 나열하면서도,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시각을 놓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어떻게 대기업이 가격 체계를 최대한 복잡하게 만들어 소비자를 혼란시키는지를 소개하는 부분에선, 왜 한국 휴대 전화 요금이 그토록 복잡한지를 이해하게 만든다. 대기업과 소비자 사이의 가격 전쟁에서 기만당하지 않으려면 이 책의 팁 몇 개를 볼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포터는 가격 맹신을 경계한다.
"가격이 종종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경우를 보게 될 것이다. 2000년부터 2006년까지 미국 주택 가격의 급상승으로 발생한 경제적 재앙에 대해, 하나의 문명으로서 얼마의 비용을 지불해야 좋은지를 우리는 아직도 알아내지 못한 상태다. 한 세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1990년대의 저유가 시대를 환경에 헤아릴 수 없이 커다란 해를 끼친 시기로 기억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렇듯 가격은 유익한 동시에 위험할 수도 있는 것이다."
실상 포터가 하고 싶은 말은 가격이 그만큼 위험하기 때문에, 가격을 더 잘 알고 통제해야 한다는 점이다.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개념은 '억제되지 않은 이기심'으로부터 탈피하여 상대적 부의 분배가 개인의 만족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는 세상에 적합하도록 수정돼야 한다."
어차피 가격을 매길 수밖에 없다면 제대로 매기자는 것.
"인간의 모든 측면을 포함시킨다면 경제학은 우리가 지난 50년 동안 익숙해져 온 것보다 더 지저분하고 수학적으로 덜 고상한 분야가 될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경제학은 세상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가격 맹신론자와 싸우기 위해서는 가격 환산 자체를 거부하기보다는 '제대로 된 가격'을 매기도록 요구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한국 현실에 비유하자면, 4대강 반대 운동을 할 때, 에두아르도 포터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한 자연의 가치, 어머니 젖줄과 같은 강"이라는 종교적 접근법보다는 "4대강 공사로 잃어버리는 환경의 가격이 개발 편익 가격보다 더 크다"는 걸 증명하는 쪽으로 향할 것 같다.
에두아르도 포터는 <뉴욕타임스> 경제 기자 출신으로 정통 경제학자나 인류학자는 아니다. 마빈 해리스 같은 대학자의 깊이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기자 특유의 쉬운 전달력이 돋보이고 무엇보다 흥미로운 사례가 풍부하다(그 중에는 한국 개고기 문화도 있다). 외국에선 기자들이 수준 높은 경제 서적을 쓰는 일이 흔한데(그러고 보니 <세계화의 덫>은 <슈피겔> 기자들이 썼다) 그게 참, 부럽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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