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해리포터와 호그와트는 결국 '전쟁'을 택했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해리포터와 호그와트는 결국 '전쟁'을 택했다!

[프레시안 books] <일제고사를 넘어서>

'해리포터' 시리즈의 마지막 영화인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2>를 보다 보면 초반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애버포스의 초상화 속에서 호그와트와 연결되는 비밀 통로를 통해 등장한 네빌 롱바텀의 얼굴은 푸르스름한 멍과 파인 자국투성이다. 해리포터 일행은 네빌을 따라 통로로 들어서며 도대체 그 얼굴은 어찌 된 일이냐고 묻는다. 네빌의 설명은 이렇다. 규율부장을 맡은 아마커스라는 자가 학생들로 하여금 징계 대상 학생에게 저주의 마법을 걸게 한다는 것이다. 네빌은 그 조치에 저항했다가 징계 대상자가 되었다.

이런 설정은 판타지 영화 속 어둠의 세력에 의해 장악된 호그와트 속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총기 난사 및 계속 되는 자살로 드러난 해병대의 인권 실태는 더욱 기괴하다. 기수 열외된 선임병을 기수 열외 취급 하는 데 동참하지 않는 후임병 역시 여지없이 기수 열외 대상이 되어 저주의 폭력을 당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 사태를 해결하는 방식이 못 마땅하다. 해당 소초에만 문제가 있는 것으로 설명하고, 그래서 소초장 정도만 구속한다. 이건 흡사, 호그와트 교장만 물갈이하면 마법사 세계에 평화가 도래할 것처럼 보는 방식이다. 정작 "그"는 따로 있는데 말이다.

기수 열외 문화를 가장 이른 시기에, 가장 체계적으로 학습하는 곳은 바로 학교다. 불편한 현실이지만 부정할 수 없다. "개기면 잘린다"는 협박은 이제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들에게도 적용된다. 논리는 비슷하다. "다른 아이(교사)들에게 피해가 되니까." 지난 2008년 12월에 당시 서울시교육감 공정택에 의해 전격 결정된 '교사 7명 해임·파면'은, '정직 3개월 정도 나오지 않을까?' 하고 어렴풋이 생각했던 교육 관계자와 기자들의 심리적 저지선을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이들 징계에 대해 법원이 "이유 없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과도하다"며 대부분 복직을 시켜준 지금 시점에서 더 충격인 것은, 어쨌든 개기면 안 된다는 행동 법칙이 학생·교사의 무의식 속에서 더욱 강고하게 작용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나는 진보 교육감이 있다는 전라북도에서도, 기존 서열식 교육을 탈피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대안 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교사가 되기 전에는 정부의 일제고사 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기사를 써댄 기자였다. 하지만 이번 7월 12일에 치러진 전국 단위 학업 성취도 평가에서, 나는 아무 말 없이 시험 감독을 수행했다.

▲ <일제고사를 넘어서>(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엮음, 살림터 펴냄). ⓒ살림터
바쁜 업무 속에서 아무런 질문을 던지지 못한 채 어느 날 갑자기 성취도 평가일이 다가왔고, 들어가야 한다고 해서 감독을 들어갔고, 그리고 무사히(?) 지나갔다. 그 과정에서 "이게 얼마나 중요한 사안인지 아느냐, 국가적으로 아주 난리다. 그런데 업무 담당자는 왜 이 정도밖에 신경 쓰지 못하느냐"는 질책과, "학업 성취도 평가가 있으니 주말에는 공부 좀 하렴" 하는 호소가 들렸을 뿐이다.

얼마나 중요한 사안이었는지 알고 싶어서, 업무 관리 시스템 문서 대장에 쌓여 있는 공문들을 살펴보기로 했다. 세 달 앞서 4월에 이런 공문이 오긴 했다. "국가 수준 학업 성취도 평가 시행과 관련하여 (…) 평가 대비 문제 풀이 수업 운영 등 교육 과정의 정상적 운영을 저해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학업 성취도 평가로 인해 얼마나 교육 현장이 파행으로 치달았으면 저런 공문까지 내려 보낼까 싶었다. 그런데 정작 문제 풀이 열심히 시켜서 점수가 올라가면 칭찬하는 것이 교육과학기술부의 행태 아니던가?

한 달 후인 5월에는 전라북도 교육청이 내려 보낸 공문에는 희망적인 표현이 있었다. "학교별 미응시자를 위한 대체 프로그램 준비. 대체 프로그램 참여자에 대한 출결 처리는 학교장 고유 권한임. 교육과학기술부 공문은 원본대로 이첩할 예정임. 끝."

미응시자를 위한 대체 프로그램을 준비하라고 하고(밑줄까지 쳐줬다!), 이에 대해 학교장 마음대로 출석 처리하도록 하라는 것은, 사실상 학생이 원치 않으면 응시하지 않아도 좋다는 표현인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에서 교육과학기술부 공문을 원본대로 이첩하겠다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어떤 교육과학기술부 공문들이 오게 될까?

아, 여기서 내 사정을 덧붙이자. 모든 것을 논의로 결정하는 걸 좋아해서 수시로 회의를 여는 우리 학교에서, 학업 성취도 평가 미응시자에게 어떤 대체 프로그램을 마련해줄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단 한 차례도 진행된 적이 없다. 왜일까?

그리고 7월에 들어서자 교육과학기술부의 공문이 물밀듯 '원본대로 이첩'되었다. 물론 체계상 '전라북도교육청'의 이름을 달고 있다. 예상했던 대로 "체험 학습 신청 학생(학부모)이 있으면 승인을 불허하고, 체험 학습 가는 학생을 '무단 결석' 처리하라"고 했다. "평가 거부 학생을 위한 별도 프로그램 사전 준비 금지"라는 문장도 있다. 아! 이로써 전라북도 진보 교육감의 고귀한 뜻은 휴지통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예년에는 없었던 새로운 내용이 이목을 끌었다. 네이스(NEIS)를 통한 응시현황 보고 시스템이다. 새로 부여된 성취도 평가 입력 탭을 보면 교시별로 응시 현황을 기록하게 되어있다. 네이스에 집적해야 할 정보는 해가 갈수록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심지어 '일제고사에 개기는 학생이 있는지 없는지'까지 보고하게끔 한 것이다.

또 그 탭을 보면 대상 학생 구분 항목이 있는데 일반 학생은 모두 '의무'로 지정된다. 학생들은 자기도 모르게 시험 볼 '의무'를 부여받은 셈이다. '의무'니까 거부하면 안 된다. 다른 학교에선 특수 학급 일부만 '제외'로 지정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제외'를 제외한 특수 교육 대상 학생, 다문화 학생, 탈북 학생은 참여는 '의무'이되 학교 정보 공시 평균 점수에서는 '제외'해 준다고 한다. 학교나 지역 교육청 입장에서는 참 고마운 일이겠으나 해당 학생들에게는 어떻게 느껴질까?

네이스에 새로 생긴 기능이 있다는 것은 사실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지 않으면 놓치기 쉽다. 그래서 입력을 못하면 어떻게 될까? 평가일 전날 교육과학기술부가 내려 보낸 공문에 이런 경고문이 새겨져 있다. "네이스 학교 응시 현황 미입력 및 미마감 처리 등, 원활한 평가 시행을 조직적으로 방해하거나 저해하는 행위 발생 시 징계 사유가 되니…" 그러니까 네이스에 '개기는 학생 있는지 없는지' 제때 보고 안 하면 '조직적 방해 행위'로 판단하여 '자르겠다'는 것이다.

7월 12일 평가 당일. 학생 수의 세 배나 되는 시험지 인쇄물과, 바코드 붙은 답안지 회수 상자와, 계속 들어오는 공문과 까다로운 규칙 등등이 교사들에게 큰 위압감을 주었다. 여기에 쓰이는 돈을 차라리 저소득층 학생 지원 사업으로 돌리면 얼마나 좋을까? 감독을 서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아이들을 보았다. 한 번호로 다 찍고 엎어져 자는 학생들을 보면서 오히려 쾌감을 느꼈다. 그 학생들이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학업 성취도는 너희들의 그따위 장치로는 측정할 수 없는 거야'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지금 방식의 일제식 학업 성취도 평가는 근거도 미약하고 더욱이 교육적 효과는 전무한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 여러 교육학자와 교사들이 <일제고사를 넘어서>(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엮음, 살림터 펴냄)를 통해 내린 결론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이명박 정부의 일제고사 정책이 무엇을 모델로 하여 탄생한 것이고 그것이 한국적 맥락에서는 어떤 부작용으로 다가올 것인지, 실제로 일제고사가 가져온 파행은 어떤 양상이며 이에 대한 저항과 탄압은 어떻게 진행됐는지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그리고 일제고사의 대안으로서 긍정적 의미의 평가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탐구했다.

물론 내가 있는 곳은 고등학교이고, 고등학교에서 느끼는 문제의식은 (초등학교, 중학교보다는) 그리 크지 않다. 책에서 이계삼이 표현한 대로, "아이들이 학창 시절 치르는 골백 번의 시험 중 한 번에 불과하다. 각 과목별 전국 석차까지 세세하게 가르쳐주는 수능 모의고사에 비하면 매우 느슨한 시험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제고사가 이렇게 폭발적인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은, 인터넷에 공시된 학교 간 자료들을 조합하면 금세 전국 석차가 나오게 되고, 이는 곧 국가가 공인한 학교 서열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학교도 이제 전국에서 몇 등이고 전라북도에서 몇 등인지, 주요 일간지에 실릴 표에서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대안 학교임에도 학업 성취도 평가에 참여하기로 한 까닭은, 위로부터 강요된 정책의 특성이 작용했을 것이고, '자기 수준도 모르고 열심히 공부 안 하는' 아이들에 대한 학교의 '경각심' 따위도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학업 성취도 평가에 응할지 응하지 말지에 대해 교사들끼리 논의하고 결정하는 구조도 없었고, 그런 분위기도 없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도 그냥 따라갔다. 그리고 대부분의 학교가 그랬을 것이다. 아마도 그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그것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까. 따라가지 않으면 기수 열외를 당하니까.

그런 점에서 책 속에서 양은주가 던진 질문 "우리는 진정으로 어떤 교사를 희망하는가?"가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교사가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진실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능동적인 존재가 되기를 원한다면, '기존의 표준화된 체제'를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심지어 지성, 합리성, 교육 등의 가치조차도 당연하게 여기며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과연 인간이 지성적으로 합리적으로 행위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에서 수행하는 교육 정책들은 과연 모두 정당화될 수 있는가? 이런 종류의 질문을 교사 스스로 던지지 않는다면, 학생들에게도 그들의 경험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알아가기 위한 탐구로 이끌 수 있는 물음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교육의 본질적 목적에 대해 물으면서 다양성을 용인하는 자율적 교사가 될 것인가? 아니면 별 탈 없이 교실을 획일적으로 통제하면서 정부 정책을 교육 목적과 동일시하여 따르는 국가의 대리인이 될 것인가? 우리는 무수히 많은 잡무 때문에 생각할 시간이 없어진 교사들이지만, 그래도 "이 지옥에서 유일한 희망은 우리가 만들어낼 저항과 혼란뿐"이라는 이계삼의 제의를 한번 곱씹어보는 것은 어떨까? 참고로 호그와트 교사·학생 일동은 불의한 평화보다는 정의로운 전쟁을 택했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