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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급 250원 계산원? 실은 천문학의 '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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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급 250원 계산원? 실은 천문학의 '대모'!

[프레시안 books] 조지 존슨의 <리비트의 별>

노란색 종이봉투에 들어있던 사진 건판을 일일이 나누어 준 측광학 조교는 건판을 조심해서 다루어주길 당부에 당부를 거듭했다. 한눈에 보아도 오래된 자료였다. 불이 켜진 측광용 책상 위에 사진 건판을 올려놓고 그 위에 무수히 흩뿌려져 있는 수많은 점들의 크고 작음에 따라 밝기를 알아내는 게 그 학기 측광학 과제였다.

5분도 지나지 않아 눈은 밝은 불빛에 극심하게 피로해졌고 그것이 그것 같은 수많은 점들은 최면 상태를 지나 심지어 울분 상태를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10분이 지나자 인내심은 극에 달했고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간 이후로 한 학기 내내 측광학실은 기피 대상 1호였다. 그때 우리에게 주어졌던 사진 건판은 고작 한 장이었다. 그때 들었던 리비트라는 이름은 그저 대단한 인내심의 상징으로 무심하게 귓가를 스쳤을 뿐이었다.

두 번째로 리비트라는 이름을 들은 것은 논문을 쓰던 중 동료들과 차를 마시며 무심하게 이야기할 때였다. 어떻게 그 많은 자료들을 꾸준하게 관찰하고 정리할 수 있었는지 놀라운 일이라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그저 무심히 들어왔던 그녀의 이름은 이야기 말미에 던져진, "수많은 방대한 자료들을 꾸준히 정리하고 관리하는 것은 여성만이 가지는 특별한 능력"이라는 칭찬인지 비하인지 알 수 없는 말 한마디와 함께 마음속으로 쑤욱 힘차게 들어왔다.

그녀의 이름과 세 번째 조우한 것은 학회를 가기 위해 비행기로 이동 중일 때였다. 옆자리에 앉은 동료가 읽고 있던 책표지 위에서 그녀의 이름은 조용히 손짓했다. 조지 존슨의 .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사서 단숨에 읽어내려 갔다. 이제 다시 읽으려고 들춰보니 찾을 길이 없다.

하지만 이번에 <리비트의 별>(조지 존슨 지음, 김희준 옮김, 이명균 감수, 궁리 펴냄)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에 왔으니 이제 자세히 물어보기로 하자. "뭐 하세요, 리비트 양?"


▲ <리비트의 별>(조지 존슨 지음, 김희준 옮김, 이명균 감수, 궁리 펴냄). ⓒ궁리

하버드 대학 천문대 작업실에서 당시 최저 임금인 시간당 25센트를 받으며 '계산원(그들은 그녀를 컴퓨터라 불렀다)'으로 사진 건판을 들여다보던 리비트는 후일에 은하수 너머의 거리를 재고 우주의 지도를 그리는데 출발점이 된 방법인 '마젤란 성운에 속한 변광성의 주기-광도 관계'를 발견했다.

이 책을 읽는 재미는 헨리에타 스완 리비트라는 여성의 개인적인 삶에서 시작해서 그녀의 일과 그 일에 관계된 20세기 초기 천문학계, 그녀의 일이 천문학계에 남긴 영향 등을 과학적인 사건으로 전개시키는 작가의 글 솜씨에 휘말릴 수밖에 없는 데 있다.

'좁은 협곡'에 있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먼 세계의 모습은 그 먼 세계를 바라보며 거리를 가늠하는 그들의 기술과 경험, 세계관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로 시작한 작가의 이야기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여성으로서 고등 교육을 받고도 시대적 한계 때문에 단순 노동자로서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나 단순 '계산원'으로 머무르지 않고 독립적으로 연구를 지속하는 그녀를 대하던 당시 천문학자들의 태도, 그녀의 연구 결과는 이용하면서도 그녀를 '천문학자'로 인정하지 않았던 당시의 사람들의 '좁은 우주'를 들여다 볼 수 있게 한다. 예를 들어보자.

"변광성을 찾는데 귀신"이었던 리비트는 1906년 '마젤란 성운의 1777개 변광성'이라는 논문을 하버드 천문대 연례 보고서에 게재하며 16개의 별을 집어내서 별도의 목록을 만들고 '변광성이 밝을수록 주기가 길다'는 주기와 밝기의 관계를 보여주었다. 자신의 데이터를 과대 해석하고 싶지 않았던 리비트에겐 더 많은 측정을 할 수 있는 검증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천문학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을 축적하는 것"으로 믿고 있던 당시 천문대장 피커링은 이론을 만드는 것을 장려하지 않았다.

또 그는 자신의 스태프가 일하기를 바랐지 생각하기를 바라지는 않았기 때문에 리비트를 다른 프로젝트에 묶어두어서 그녀가 주기-광도 관계 연구를 계속할 수 없게 만들었다. 더욱 확실해진 패턴을 나타내는, 마젤란 성운의 변광성 25개의 밝기를 한축으로, 주기를 다른 축으로 삼아 그린 그래프로 나타난 연구 결과는 "소마젤란 성운에 들어있는 25개 변광성의 주기에 관한 다음 내용은 리비트 양이 작성했다"는 언급과 함께 결국 피커링의 이름으로 1912년 하버드 회보에 실렸다.

작가는 리비트라는 사람의 개인적인 발견이 히비 커티스의 섬 우주론과 '우리 은하 너머를 보지 못한' 할로 섀플리의 거대 은하수 이론의 대립 가운데 에드윈 허블을 위시한 여러 천문학자들에게 어떻게 이용되었고,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그 가운데 벌어지는 서로 다른 이론의 충돌에서 우리 우주의 '본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이 어떠했는지 역시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있다.

천문학 교과서에서 무미건조하게 언급되던 천문학자들의 이름과 그들의 연구 행적이 극적으로 서로 얽히고 대립되며 다시 융화되는 과정은 마치 한편의 드라마와 같다. 우주는 팽창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단지 빅뱅 때문만이 아니라 천문학적 지식의 폭발과 함께 팽창하기도 한 것이다.

리비트의 주기-광도 관계는 우리가 바라보는 우주의 지도를 그리는데 이용되었다. 여전히 뜨거운 논란의 한가운데에서도 이제 우주의 나이는 약 140억 년이라는 의견이 중론이다. 어느 점에서 우주를 관찰하더라도 관찰자는 모든 방향으로 볼 수 있는 만큼 광년 크기 버블의 중심에 있게 될 것이다. 아무도 중심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편 모두가 중심에 있다. 우리가 어디에 서 있든지 어느 곳에서나 일어났지만 어느 특정한 위치에서 일어난 것은 아니다.

끝까지 리비트에게 주어진 역할은 '조수'였지만 더 나은 건강, 더 나은 시대가 주어졌다면 그녀는 섀플리나 허블과 선두를 이루었을 지도 모른다. 섀플리나 허블이 그녀의 관찰을 이용해서 얼마나 멀리까지 갈 수 있었는지를 알았다면 그녀 스스로도 매우 놀랐을 것이다.

그녀가 주기-광도 관계를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다른 누군가가 언젠가는 발견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발견이지 발견자는 아니다. 그녀는 그저 과학이라 불리는 위대한 일의 작은 부분을 묵묵히 수행한 것이다. 그녀는 루쉰이 말한 것처럼 한걸음 한걸음이 조상을 뛰어넘는 새로운 인간 창출의 길을 간 것이다.

그녀가 죽기 1년 전인 1920년에 인구 조사원이 린네 가에서 사는 그녀에게 직업이 무엇이냐고 묻자 리비트는 솔직하게 그러나 약간 도전적으로 "천문학자"라고 답했다고 한다.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사진 속 그녀의 수줍은 얼굴에 우리의 질문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뭐 하세요, 리비트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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