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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잘하는 나경원이 미움 받는 이유는?

[프레시안 books] 조제희의 <논쟁 vs. 언쟁>

민주화와 더불어 시작된 토론 문화는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과 대학에서의 토론 수업으로 이어졌고 이제는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와 <나는 꼼수다>와 같은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일방통행 방식의 언론은 더 이상 새로운 매체와 토론에 익숙한 사람들의 주목을 끌지 못하고 있고 스스로 여론을 만드는 일에 가담하고 있는 사람들을 더 이상 시청자나 독자라고 부를 수 없게 되었다. 이제는 방송을 장악하고 대국민 선전을 위해 많은 돈을 써보아도 똑똑한 국민들은 더 이상 쉽게 속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토론 문화는 건전한가? 우리는 논쟁을 제대로 알고 토론에 임하고 또한 구경하며 평가하고 있는가?

이번 서울 시장 선거에서 다소 어눌한 박원순이 화려한 말솜씨를 자랑하는 나경원을 이겼다. 왜 말을 잘하는 사람이 결국 패배했을까? 진보 성향의 사람이 나경원을 미워하는 이유와 보수 성향의 사람이 진중권을 싫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너무나 이치에 맞게 말은 잘 하지만 왠지 모르게 신뢰감이 가지 않고 심지어 얄밉기까지 한 사람이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조제희가 쓴 <논쟁 vs. 언쟁 : 아고라 전장에서 살아남는 법>(들녘 펴냄)은 이러한 궁금증에 적절한 답을 해준다.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으로부터 현대의 각종 수사학 이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자료에 근거해 논쟁이란 무엇이고 바람직한 논쟁을 하기 위해 우리가 갖춰야 할 요건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천박하고 부질없는 말싸움으로 전락하지 않고 의미 있는 논쟁을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하고 있다. 이 책은 글쓰기나 토론 혹은 이론으로서의 수사학에 머물지 않고 그 경계를 넘나들면서 진리 탐구의 길로서의 논쟁, 설득의 기술로서의 논쟁에 대해 종합적으로 접근한다.

저자는 논쟁을 "자신이 속한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서로 머리 맞대고 의견을 교환하면서 최선을 창출해 가는 과정을 청중이나 독자에게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장"(5쪽)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논쟁이 '새로운 그 무엇'을 창출하려는 노력이라고 한다. 그에게 논쟁은 싸움이 아니라 진리에 이르는 최선의 방법이다. 논쟁은 진리를 발견하거나 진리를 만들어가는 공동의 작업이다. 저자는 논쟁이 말싸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힘주어 말한다.

▲ <논쟁 vs. 언쟁 : 아고라 전장에서 살아남는 법>(조제희 지음, 들녘 펴냄). ⓒ들녘
제1부에서 저자는 논쟁 준비를 위해 갖춰야할 원칙, 개념, 구성 요소를 설명한다. 논쟁은 상호 존중과 객관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이성적 언어와 추론의 과정을 거쳐 진리에 다가가는 과정으로 민주주의의 기본적 전제가 된다. 논쟁 상황은 사안이 중대하여 텍스트로 만들어지고 그것이 문제 제기자와 청자의 관심을 끌 때 성립된다. 주제는 공적이고 너무 뻔하거나 모호하지 않아 논쟁할 충분한 이유를 가져야 한다. 논쟁은 상대보다는 독자/청중을 설득하는 데 목적이 있다. 따라서 호의적, 적대적, 중립적, 무관심한, 고집스러운 독자/청중의 성향에 맞는 설득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제2부에서는 실제 논쟁에서의 전술과 전략 중에서 논쟁의 수단, 규범, 구조, 장르를 설명한다. 우선 설득의 수단으로 인성(ethos), 이성(logos), 감성(pathos)의 여러 전략을 소개한다. 청중의 신뢰를 얻어야 하고 합리적이어야 하며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구상, 배치·구성, 스타일, 기억, 강연·출판의 다섯 단계의 논쟁의 규범을 소개한다. 논쟁의 핵심적 구조로 배경, 한정사, 정의, 주장, 근거와 이유, 반론을 들고 설명한다. 또 중요한 논리적 오류도 설명한다. 논쟁의 장르로 고전적 논쟁법 외에도 툴민, 로저리언, 새파이어 등 여러 가지 논쟁 방법을 소개한다.

제3부에서는 논쟁의 언어에 있어 유의할 점들에 대해 말한다. 여기서는 표절에 대한 주의, 명확·간결·정확한 표현, 상대의 언어 사용, 감성적 언어 사용의 자제 등 여러 주의할 점에 대해 말한다.

이 책은 논쟁에 대한 본격적인 전문가에 의한 종합적 접근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토론 교육의 현장에서 쌓여진 경험이나 외국의 이론에 의존해서 만들어진 책들과는 구분되는 깊이가 있다. 논쟁의 상황, 당사자, 전략, 구조, 종류, 언어 등 여러 분야에 걸친 이러한 종합적인 접근은 전문가가 아니면 불가능한 작업이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아쉬운 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책 자체가 겨냥하는 초점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 토론에 관한 책인지 글쓰기에 관한 책인지 아니면 수사학에 관한 책인지 분명하지 않다. 아니 이 세 마리의 토끼를 모두 쫓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러다 보니 어느 하나도 만족스럽지 않다.

사실 말로 하는 논쟁과 글로 하는 논쟁은 다르다. 이는 글쓰기와 토론을 모두 가르쳐본 사람이라면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저자는 그 차이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을 아끼고 있다. 따라서 글쓰기 논쟁의 지침서로서도 말하기 논쟁의 지침서로서도 아쉬운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둘째, 논쟁에 있어 경쟁이라는 과정보다는 합의라는 결과를 중시하는 경향은 현실적 접근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저자는 상대방을 배려하고 협력적으로 진리를 같이 추구하는 논쟁을 이상적으로 묘사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논쟁의 결과인 진리가 된다. 여기서 논쟁의 과정이 가지는 의미는 축소된다.

그런데 논쟁은 일종의 놀이이다. 하위징아의 <호모 루덴스>에서 볼 수 있듯이 논쟁은 서로 같이 싸우면서 즐기는 일종의 놀이이다. 논쟁의 경쟁(agon)적 요소는 논쟁을 즐겁게 만들어준다. 그것은 각종 토론(대회)에 참여하는 사람이나 구경하는 사람이 느낄 수 있는 특권이다. 그런데 논쟁과 언쟁(말싸움)의 이분법을 너무 엄격하게 적용하면 이러한 즐거움이 사라질 염려가 생긴다.

셋째, 몇 가지 세부 내용과 용어 번역에 있어 오해의 소지가 있다. 저자는 책의 여러 곳에서 '사실(pistis)'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이를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서의 주요 개념으로 소개한다. 그런데 그리스어 'pistis'를 '사실'로 번역하기에는 무리가 따르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는 사전적 의미로 볼 때나 그리스 철학에서의 쓰임새로 볼 때나 좋은 믿음(의 서약), 신념, 확신 혹은 개연적인 설득의 수단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특히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의 두 번째 단계로 '사실(pistis)'을 언급한 것에는 상당한 오해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저자는 정의를 내리는 여러 방법 중 하나로 '사전적 정의'를 설명하면서(190쪽 이하) 사전에 나와 있는 정의라고 말하고 또한 어원을 분석하는 것도 이에 포함시키고 있다. 그런데 사전적 정의보다는 내포적 정의 혹은 본질적 정의를 소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 저자가 토론(debate)이라는 말 대신 논쟁(argument)이라는 말을 사용한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하다. 왜냐하면 'argument'는 논쟁(論爭)의 의미도 있지만 논증(論證)의 의미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저자는 토론이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고 그 대신 논쟁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이 없다. 더 나아가서 토론, 토의, 논쟁, 말싸움 등 관련되는 개념들에 대한 정교한 비교와 분석이 아쉽다.

이러한 몇 가지 불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우리에게 강한 메시지와 소중한 교훈을 전달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논쟁 없이 민주주의 없고, 민주주의 없이 논쟁도 없다"(46쪽)고 말한다. '다양성 속에서 하나(e pluribus unum)'를 추구하는 배려와 설득과 인내를 통해 민주주의가 만들어지고 그러한 민주적 풍토 속에서만 진정한 자유가 보장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한 나라의 법률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의결할 때 제대로 된 논쟁은 없었다. 논쟁 없는 민주주의는 과연 가능할까? "이 같은 논쟁이 없으면 다수의 구성원들은 무엇이 왜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지 못해 결국 무지함 속에서 타인의 결정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48쪽)라는 그의 말은 열린 토론이 없는 사회는 지금 우리에게 불통과 복종을 강요하게 된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또 저자는 천안함 침몰은 논쟁이 있을 필요조차 없었다고 말한다. 증거를 찾아내고 이성적인 언어로 현실을 복원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보다는 서로 상대방을 비난하기만 했다는 것이다. 확실한 증거 없이 상대에게 믿으라고 강요하면서 믿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에게 부당한 색깔을 씌우는 사람들에게는 말싸움은 있었지만 논쟁은 있을 수 없다. 논쟁거리도 안 되는 것에 대해 논쟁하려고 덤비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논쟁거리도 안 되는 것을 논쟁거리로 만들도록 의혹을 부풀려준 사람들도 있었다.

이 책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지나쳤던 중요한 사실을 깨우쳐주기도 한다. 저자는 '무상 급식'이라는 말이 논쟁에서 중립적인 표현이 아니라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반대론자들이 '무상=공짜=공산주의'라는 도식의 심리적 효과를 교묘하게 이용했는데 찬성론자들은 아무 생각 없이 여기에 말려들었다는 것이다. "아차" 하는 말을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사람들은 이 책에서 진정한 논쟁의 의미를 다시 찾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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