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두 사람의 살았던 시기는 20년의 간격이 있는데다 몸담았던 공간도 미국과 한반도 남쪽이니만큼 한·미 양국의 '진보 언론 영웅'은 여러 가지 점에서 많이 다르다. 예컨대 리영희는 베트남 전쟁 등에서 드러난 미국의 행태를 관찰한 뒤 "미국 자본주의는 그 본성으로 인해 국제 사회에서 잔인무도할 수밖에 없으며 약소민족에 대한 전쟁 없이는 그 제국주의적 정치·경제·군사·과학기술 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고 확신했다. 반면 스톤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속성에 비판적인 자세를 보이면서도 토마스 제퍼슨으로 상징되는 건국 초기의 건강한 정신을 유지하는 것이 미국의 과제라고 여겼다.
그러나 국가 권력의 탄압과 협박, 보수적 주류 언론의 질시와 배척에 결코 굴복하지 않고 저널리스트 본연의 책무를 다했다는 것, 방대한 자료의 섭렵과 치밀한 고증을 통해 눈앞에 보이는 현상의 뒤편에 숨어있는 진실을 캐냈다는 것 등은 이러한 차이점을 뛰어넘은 공통점이라고 하겠다.
스톤은 미국 정부와 주류 언론에 의해 가려졌던 베트남 전쟁의 본질을 가차 없이 파헤쳤고, 반전 운동에 뛰어들었으며, 매카시즘과 인종 차별 등 인간의 자유와 기본권적 권리를 억누르는 모든 압제에 맞서 싸웠다. 리영희 역시 박정희·전두환 군사 독재 정권과 보수 언론의 선전 선동에 의해 잘못 알려졌던 베트남 전쟁의 이면과 중국 혁명의 핵심을 대중들에게 하나하나 일깨워나갔다. '우상 파괴자'에서 마침내 시대의 우상이 된 스톤, 우상에 도전하다가 시대의 이성이 된 리영희. 너무나 근사하게 닮았지 않은가.
| ▲ <모든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마이라 맥피어슨 지음, 이광일 옮김,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
그는 이러한 노력을 토대로 전설적인 언론인 스톤의 파란만장한 삶과 그가 언론인으로서 활약한 20세기 격동의 현대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또 스톤이 현대 저널리즘에 끼친 깊은 영향을 하나하나 되짚으면서 언론과 정치, 언론과 사회, 언론과 문화의 관계 및 상호 역할 등에 대해서도 성찰적 문제제기를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 책의 가치를 높여주는 또 하나의 덕목은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사찰 파일과 옛 소련의 기밀문서 등 일반의 접근이 어려운 흥미롭고도 소중한 자료들을 입수한 뒤 낱낱이 공개했다는 사실이다. 1600쪽에 이르는 FBI 문건에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이 수사 기관이 자신들을 불편하게 하는 스톤을 얼마나 증오하고 얼마나 철저하게 사찰·감시했는지 생생하게 소개돼 있다.
말이 나온 김에 FBI가 스톤의 뒤를 얼마나 집요하게, 얼마나 시시콜콜 캐고 다녔는지 알아보자(471~504쪽). 얼마 전 국내 언론에 의해 공개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 사찰 문건에는 한 사정기관의 고위 간부의 일거수일투족이 '분' 단위로 적혀 있었다. "밤 10시 30분 차 밖에서 선 채로 내연녀와 이야기하다가 가볍게 뽀뽀를 하고 헤어질듯 하더니 같이 아파트로 걸어 들어갔다." "병맥주 2병과 과자 3봉지를 구입했으며, 계산을 하려다 내연녀가 맥주 1병을 떨어뜨려 깨뜨렸다. 당신 딸에게 뭘 사주지라고 이 간부가 묻자 내연녀는 초콜릿이면 된다고 말했다." 지극히 가까운 거리에서 이들을 미행·관찰하거나 도청을 하지 않으면 작성이 불가능한 내용들이다.
60년 전의 FBI도 대한민국 공직윤리지원관실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1953년 11월 6일 워싱턴 DC. 표적(스톤을 뜻함) 거주지 인근에서 오후 7시50분 감시 시작." 1600쪽 분량의 사찰 파일 가운데 한 쪽은 이렇게 시작된다. 스톤의 집에 온 손님들의 자동차 번호판을 적어 "방문객들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판단한 FBI 요원들은 스톤 부부와 손님 부부 6명이 함께 극장에 가자 극장 안에까지 뒤따라가서 동태를 살폈다. 극장 입장권을 사지 않은 요원들은 주차해 놓은 스톤 일행의 자동차 내부를 뒤져 자동차 등록증, 뉴욕 우체국의 소인이 찍힌 봉투 하나, 뉴저지에서 온 엽서, 동부 연안 여러 주의 자동차 여행용 지도 등을 몰래 훔쳐갔다. 이런 문건도 있다. "1951년 9월 27일 스톤이 집에서 나온 뒤 걸어서 렉싱턴 애비뉴로 갔다. 2분 뒤 스톤이 맥스 슈워츠 담배 가게로 들어갔다. 1분 뒤 스톤이 나왔다. 시가를 한두 개 샀을 것이다."
FBI는 이런 식으로 스톤이 사망할 때까지 무려 40년 동안 불법 미행과 사찰을 했지만 스톤 본인은 까맣게 몰랐다. 그러나 FBI에게는 실망(?)스럽게도 아무리 먼지 털듯이 털고 털어도 스톤에게는 불륜 행각 따위의 도덕적 일탈이 전혀 나오지 않았고, 당연히 내연녀와의 달콤한 속삭임 따위도 작성할 수 없었다. 저자 맥피어슨은 "오로지 아내에게만 그토록 충실한 스톤을 보고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라고 비꼬고 있다. 스톤의 도덕적 염결성이 사찰 문건의 내용을 무미건조하고 볼품없게 만들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불세출의 기자였던 스톤이 FBI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었겠는가. 그는 자신이 그들에게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몰랐지만 FBI 내부에 있는 익명의 제보자, 즉 '딥 스로트'로부터 중요 정보를 입수한 뒤 폭발력 있는 기사를 쓰곤 했다. 물론 그는 제보자의 신원에 대해서는 죽을 때까지 단 한 번도 발설하지 않았다. 평생 자신을 감시했던 FBI에 그 나름대로 카운터펀치를 날렸던 셈이다.
스톤은 '너무나 일찍 준비된 진보 언론인'이었다. 그는 고작 15세 때인 1922년 동네 신문 <진보>를 창간했고, 고등학교 때는 지역 신문 통신원으로 일했다. 명문 펜실베이니아 대학에 들어가 철학을 공부하던 중 신문 잉크 냄새에 홀린 듯 이끌려 학업을 중단하고 기자의 길을 걸었다. 1933년 26세의 젊은 나이에 당시로서는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던 신문 <필라델피아 레코드>의 논설위원이 됐고, <더 네이션>
이처럼 잘 나가던 저널리스트였던 그가 무엇 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딴 1인 주간신문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을 주기 위해, 내가 직접 본 그대로의 진실을 쓰기 위해, 무능력에 따른 한계를 빼놓고는 그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기 위해, 내 욕망 이외의 그 어떤 주인도 따르지 않을 자유를 누리기 위해, 진정한 언론인이라면 어떠해야 하는 지를 실천하기 위해, 그리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서였다."
스톤이 신문을 창간하던 1953년은 그 유명한 조지프 매카시의 '빨갱이 사냥'이 미국 전체를 휩쓸고 있던 시기였다. 스톤이 다니던 신문사들은 매카시즘의 위세에 눌려 납작하게 엎드렸고, 당연히 그가 공들여 작성했던 탐사 보도 기사들은 누락되기 일쑤였다. 따라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신문을 만들어 진실을 알리는 일 뿐이었다.
하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진보적 언론인이 매카시즘의 광기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정치권력의 불법비리를 강도 높게 비판하는 신문을 만든다는 것은 그야말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이러한 위험성 외에도 취재, 기사 작성, 편집, 발행, 배포를 전적으로 혼자 도맡고 광고는 전혀 싣지 않은 채 구독료만으로 버티면서 매주 4쪽짜리 신문을 만든다는 것은 보통의 열정과 헌신성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두려움 없이, 피곤해하는 것조차 잊어버린 채 혼자서 미친 듯이 북치고 장구를 쳐댔다.
맨 첫걸음을 옮겨 놓을 때 들릴 듯 말 듯 했던 북소리와 장구소리는 시간이 흐르면서 우렁차게 변했다. 북소리는 대중들의 가슴을 울리는 뇌성벽력이 됐고, 장구소리는 머리를 맑게 하는 각성제로 발전했다. 이 신문은 1971년 스톤이 건강상의 이유로 폐간할 때까지 17년 동안 미국 지식인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1956년 스톤이 소련을 둘러보고 쓴 기사가 실리자 상당수의 독자가 떨어져 나가는 일이 발생했다. 보수주의자들은 이를 '소련에 대한 스톤의 고집스러운 숭배' 때문이라고 헐뜯었지만 사실은 그가 스탈린주의 소련을 강력히 비난하자 당시 소련을 우호적으로 여기던 좌파 독자들이 신문을 끊은 것이었다.
광고주의 압력과 이로 인한 지면의 왜곡 가능성을 누구보다 일찍 인식한 스톤은 지면에 광고를 전혀 싣지 않았으나 단 한 번의 예외가 있었다. 의회 출입 프레스 카드(기자증)를 발급받기 위해 어느 양복점 광고를 게재하면서 광고료 대신 양복 한 번을 공짜로 얻어 입은 것이었다. 그러나 의회는 "광고 수입이 어느 정도는 돼야 한다"면서 프레스 카드 발급을 거부했고, '특별 방청인 카드'라는 이상야릇한 증명서를 대신 만들어 주었다. 결국 그는 '방청인'의 신분으로 취재를 해야만 했다.
'인류의 양심을 시험한 두 전쟁'이라는 스페인 내전과 베트남 전쟁에 대해서도 스톤은 '인류의 양심이자 저널리스트의 소명'을 큰 소리로 외쳤다. 프랑코 파스시트들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공화파를 지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확신한 그는 지면을 통해 자신의 믿음을 널리 알렸다.
베트남 전 보도에서도 그는 수많은 진실을 알렸지만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기념비적 업적이 바로 통킹 만 사건 특종 보도였다. 1964년 8월 미국 정부는 베트남 통킹 만에서 미 군함이 북베트남의 어뢰정 공격에 격침됐다고 발표하면서 확전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당시 거의 모든 언론이 정부 발표를 확성기처럼 확대 재생산했을 때 그는 조목조목 의문점을 제기하면서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7년 뒤인 1971년 국방부 기밀문서가 언론에 폭로됨으로써 이 사건은 날조극이었음이 확인됐다. 맹목적 애국주의와 광신적 냉전주의의 광풍이 몰아치고 있는 상황에서 스톤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감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러시아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아버지의 아들답게 그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인종주의적 편견과 탄압이 얼마나 잔혹한 것인지를 잘 알았다. 그가 평생 약자의 편에 선 일이나, 1920년대와 1930년대 유럽에서의 유대인 대학살을 비판하는 기사로써 파시즘의 위험성을 그 누구보다 먼저 경고했던 일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뒷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억압했을 때는 가차 없이 이를 비판했다. 유대인들은 스톤을 '동족을 배신한 자'로 몰아붙였지만 그는 이에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
스톤의 미국에서는 일종의 금기처럼 돼 있는 '유대인 비판'의 뇌관을 건드렸다면 이와는 다소 맥락이 다르지만 리영희는 남한 사회의 금기인 '호남 문제'를 정면으로 부각시켰다. 그는 신문 칼럼에서 "호남인들이 '한국의 유대인'으로 억압받고 차별받았다"면서 압제자들인 군부 독재자들과 영남 패권주의자들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스톤은 언론과 권력의 유착을 무엇보다 경계하면서 언론의 자율성과 독자성을 강조했다. 그는 "워싱턴에서는 정조대를 차야 언론인으로서의 처녀성을 지킬 수 있다. 국무장관이 당신을 초대해 이런저런 의견을 물어본다면 당신은 이미 끝난 것이다"라고 신문 칼럼에서 썼다. 권언유착과 권력의 언론조작을 비판하기 위해서였다. 스톤의 이러한 경고는 권력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제 스스로 정조대를 벗어 내던지는 언론, 광우병에 대한 시민 대중의 우려를 권력과 손을 맞잡고 '괴담'이라고 생떼를 쓰는 언론, 권력의 아픈 곳을 알아서 쓰다듬어주고, 적당히 '마사지'해서 진실을 왜곡하는 언론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겨냥한 것처럼 들린다.
2001년 편집국 차장 시절 나는 신문의 창간 특집 인터뷰를 위해 리영희를 만났다. 당시 그는 뇌졸중이 완전히 치유되지 않아 말하는데 불편이 적지 않았는데도 한국 언론의 현실을 말하는 대목에서는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눈빛도 특유의 형형함으로 되돌아온 듯 했다. 그는 "나는 이 땅의 기자들을 언론인이라고 부르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마땅히 언론사 종사자라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지금 기자들은 불의에 맞서는 기백과 진실을 향한 열정 등 언론인으로서 갖춰야 할 본연의 자세를 잃어버린 채 기능주의적 생활인, 권력의 눈치를 살피는 기회주의적 인간으로서의 요소만 많이 가지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스톤은 말했다.
"나는 기본적으로 우리 모두에게 어느 정도의 이성이 있다고 하는 민주주의적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발전의 기초로 삼아야 할 모든 것이다. 그런 신념이 없다면 저널리스트를 해야 할 이유가 없다."
리영희와 스톤, 두 진보 언론 영웅의 말을 종합하면 '모름지기 저널리스트는 이성에 대한 신념을 가진 진정한 언론인이 돼야 한다'는 것쯤이 될까. 기자라는 이름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 기자가 되려는 사람, 직업으로서의 기자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더라도 언론의 작동 방식이나 언론과 권력과의 관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 무엇보다 민주주의를 지키려 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책을 읽기 전과 읽은 뒤, '비포 앤드 애프터(Before & After)'는 확연하게 차이가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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