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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들에 맞서는 중산층 투쟁 지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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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들에 맞서는 중산층 투쟁 지침서?!

[프레시안 books] 톰 하트만의 <중산층은 응답하라>

<중산층은 응답하라>(톰 하트만 지음, 한상연 옮김, 부키 펴냄), 이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떠오른 건 (아마 의도한 것이겠지만) <응답하라 1997>이다. 최근 화제가 된 케이블방송 드라마다. 물론 이 책과 그 드라마는 아무 관련이 없다. 그러나 묘하게 비슷한 정서가 흐르고 있다. 아름다운 시절에 대한 향수다. <중산층은 응답하라>와 <응답하라 1997>은 추억을 현재로 소환해 내는 행위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

<중산층은 응답하라>는 학구적인 책이 아니다. 일종의 선동문 내지 팸플릿이다. 경쾌하게 읽히고 선명하게 이해된다. 미국 사회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한국 독자에게 다소 생경할 수는 있다. 그러나 어떤 역사적 사실이나 사건에 대한 배경 설명이 비교적 친절하고, 대부분 한국인에게도 대강은 알려진 사건들이다. '어쨌든 술술 잘 읽힌다'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미국 사회에 관한 책이라는 점이 정작 문제가 되는 지점은 따로 있다. 과연 미국 중산층에 대한 이야기가 한국인에게, 좀 더 콕 집어 말하자면 '한국의 중산층'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간단치 않은 문제다. "미국은 미국이고 한국은 한국"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고 "사람 사는 꼴은 어디나 비슷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겠다. 큰 틀에서 톰 하트만이 이야기하고 있는 미국 사회의 여러 문제점은 한국 사회에서 이미 발생한 것이다. 당연히 구체적인 양상이나 처방은 다를 수 있겠지만, 미국의 중산층에게 일어난 재난은 지금 한국의 중산층에게도 벌어지고 있다. 이것을 '양극화'라고 부를 수도 있고, '1대99의 사회'라고 부를 수도 있을 테지만, 어쨌든 사회의 부가 극소수에게 집중되고 중산층이 빈곤화하는 경향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유사하며 양국 모두에서 커다란 이슈인 것만은 분명하다.

악마들의 명단 그리고 최강의 주술

▲ <중산층은 응답하라>(톰 하트만 지음, 한상연 옮김, 부키 펴냄) ⓒ부키
저자 톰 하트만은 이론가가 아니라 선동가이다. 미국 경제의 여러 문제들을 늘어놓고 분석하는 식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미국 중산층이 '정치에 속고 자본에 털렸다'고 전제한 다음, 곧장 '악마들의 명단'을 읊기 시작한다. 중산층의 피를 빨아 자신의 배를 채워온 '악의 축'은 다양하다. 군산복합체, 초국적기업, 기업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정치인들, 자본의 이익을 국익이라 포장하는 거대 언론, 그리고 트리클다운 경제학…. 이 모든 악들의 교집합은 보수(conservative), 즉 공화당이다. 오늘날 미국 중산층이 이렇게 막다른 길에 몰리게 된 계기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취임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전까지 200년 남짓 동안의 경제학은 이해하기 그리 어렵지 않았다."(29쪽) 그러나 1981년 레이건은 이른바 트리클다운(trickle-down) 경제학이라는 것을 도입했다.

"부자가 단시간 내에 급속도로 많은 돈을 벌 수 있도록 경제 및 사회 구조 전반을 재편하면, 부자는 그 돈으로 공장을 건설하고 직원을 더 고용할 것이고, 그 부가 흘러넘쳐 노동자에게로 서서히 내려갈 것이다." (29쪽)

말도 안 되는 헛소리였지만 이 경제학에 바탕을 둔 각종 법안들(대부분 감세안이었다)은 공화당과 일부 민주당 의원들의 동조와 방조 속에 의회를 통과했다.

"레이건은 백만장자와 억만장자에 대한 소득세 최고 한계 세율을 70퍼센트에서 50퍼센트로 인하했고 급기야 1988년에는 28퍼센트 수준으로까지 떨어뜨렸다." (30쪽)

저자가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지속적으로 환기시키는 메시지는 '기업 사회'에 대한 경고다. (저자가 "기업 사회"라는 단어를 언급하지는 않는다. '기업 사회'는 사회학자 김동춘이 1997년 이후 한국 사회를 분석하기 위해서 만든 개념이다.) 저자는 기업, 그것도 소수의 거대 기업들이 자본의 힘으로 정치를 좌우하는 것이야말로 최악의 케이스라고 지적한다.

그런 사회는 자신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서 혹은 손실을 회피하기 위해 공공의 복리 따위는 얼마든지 으깨고 짓밟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활개 치는 곳이다. 그리고 이런 사회에서는 민주주도 뿌리내리기 어렵다.

트리클다운 경제학과 보수 세력이 30년간 미국 사회의 '월마트화'와 중산층 붕괴를 주도해온 결과, 노동자의 권리는 물론이고 인권과 민주주의까지도 기업의 위세에 짓눌리고 있다는 게 하트만의 진단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눈을 1930년대로 돌린다.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0년대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은 '경제 귀족'이라 불리던 독점 기업 집단이었다. 익히 알려진 카네기, 록펠러, 듀퐁 같은 자본가들은 노동권과 인권을 잔혹하게 유린하며 자신의 이익을 탐욕스레 채워가고 있었다.

그러나 거대하게 쌓아올린 부의 성채에 감히 철퇴를 가하려는 정치인이 등장하였으니 그가 바로 프랭클린 루스벨트였다. 그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 미국은 최저임금법을 제정했고, 법인세율과 소득세율을 높였다. 사회 보장 제도도 확립했다. 그리하여 20세기 중반부터 거의 30년간 미국은 절정의 호황을 만끽하며 중산층의 나라가 됐다.

온건한 주장, 섹시한 수사

저자의 대안은 무엇일까. 그는 중산층을 살리기 위해 시민이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노동조합을 강화하고, 생활 임금을 보장하는 등 여러 실질적 방안들을 제시한다. 대부분 설득력 있고 합리적인 제안이긴 하지만 본질적인 의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의 미국이 다시 중산층의 나라가 되어 아름다운 시절(Belle Epoque)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것은 곧 한국의 중산층에게도 적실한 의문이다. 우리가 완전 고용에 가장 가깝게 다가섰던 시기, 중산층이 팽창하고 국내 총생산(GDP)이 현기증 날 정도로 뛰어오르기만 하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오히려 중산층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아름다운 추억이 다시 재연될 수 있다는 달콤한 판타지가 아니라 앞으로 펼쳐질 혹독한 장기 불황기의 생존 가이드가 아닐까? 더욱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지금 다시 성장할 수 있다고 믿고 맹렬히 돌진할 때가 아니라 성장 중심주의의 한계를 성찰할 때가 아닐까?

하트만은 미국의 '아름다운 시절'이 마치 루스벨트라는 구세주의 등장으로 가능해진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경기 변동을 그렇게 설명하는 것은 거의 사기에 가깝다. 저자의 주장과 다르게 이것은 매우 논쟁적인 대목이며 여러 가지 대안적 설명이 가능하다. 또 저자는 중산층이 기업과 보수 세력에게 일방적으로 농락당한 희생양인양 묘사하고 있지만, 이들이 일방적 희생양인지 아니면 공모자에 가까운지는 또한 사회학적으로 꼼꼼하게 따져봐야 할 주제다.

또 한 가지. 저자는 서문에서 중산층과 민주주의의 관계에 대해 논하며 "동물 사회에서도 민주주의가 표준"이며 "중산층과 민주주의의 관계는 우리 DNA에 각인되어 있다"고 단언한다. 황당한 주장이다. 동물 사회를 행태적으로 관찰한 결과를 민주주의라고 의미화할 수 있는지부터 문제이고, 백번 양보해 만약 그렇다 해도 동물의 본성이 인간의 사회적/윤리적 목표를 결정할 수는 없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이런 사이비 진화 생물학 담론으로 정치적 선동을 하는 유명 인사들이 부쩍 자주 출몰하는 것 같다. 이 책의 내용과는 별개로 매우 우려스러운 현상이다.

<중산층은 응답하라>는 중산층이 처한 문제의 본질을 통찰력 있게 분석하거나 발본적인 문제의식으로 뒤통수를 때리는 책이라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토록 온건한 주장을 저토록 '섹시하게' 버무려내는 솜씨는 온전히 톰 하트만의 재기요 능력일 것이다. 한국의 사회 현실에 문제의식이 막 생기기 시작한 중산층이라면 도움이 될 만한 '참고서'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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