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께서 오후에 저희 회사로 전화를 주셨지요?
"나 ○○○ 작가요!"
"○○○ 선생님이요? …… 아, 네네. 선생님. 저는 편집부 ∆∆∆입니다."
저는 제가 미처 알지 못한 저자분이 계신가 하고 과도하게 반가운 인사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통화를 조금 이어 나가면서 알게 되었지요. 선생님께서는 저희 회사와 관계하는 저자분이 아니라는 것을요. 선생님께서도 저의 반가운 인사에도 불구하고 뭔가 미심쩍으셨는지 당신을 모르냐, 모르면 '네××'를 봐라. 거기에도 나와 있다,고 하셨죠. 네, 통화 도중에 바로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선생님의 블로그가 보이더군요;;;
*
네?
10년 전에 보내신 작품을 찾으러 오시겠다고요?
전설의 그분이시군요.
오셔서 또 문이라도 부수시려고요?
괜한 수고이십니다.
저희는 그때보다 훨씬 강화된 경비 시스템을 갖추었고, 심지어 저희 출입문은 안에서 열어드려야만 들어오실 수 있으니까요.
*
……
네, 받았습니다. 보내주신 쑥개떡을 제가 먹었습니다.
하지만 회사 주소, 편집부 앞으로 멀리서 보내온 그 떡을 저희가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요?
다시 보내드리자니 떡이 쉴 것 같고, 그렇다고 버리자니, 아니 어떻게 멀쩡한 음식을 버릴 수 있겠습니까. 떡을 먹은 게 제 직업윤리에 어긋나기라도 하는 건가요?
책임을 물으시겠다고요? 어떻게요? 욕만은 하지 마세요!
그 떡은 이미 제 배 속에도 없고 어디 멀리 다른 곳에 있을 텐데요.
조처를 취하시겠다면 그렇게 하세요. 저와 그 떡을 나눠 먹은 저희 회사 직원들, 그리고 몇 분의 편집 위원과 함께 대응 방안을 고민하겠습니다.
*
지금 선생님의 책을 출간하고 싶은 출판사가 바로 계약을 하러 오겠다고 한다고요?
500만 원이면 된다고 했다고요?
좀 비싼 거 같은데 가격을 조금 낮춰주면 원고를 저희에게 주시겠다고요?
죄송합니다. 저희는 자비 출판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
한 달이면 책상 옆에 사오십 부의 투고 원고 봉투가 쌓인다. 매일같이 서너 통의 출간 문의 전화는 기본이다. 그런 전화일수록 때를 가리지 않는 법이라 출근 직후이기도 하고 휴식을 취하고 싶은 점심시간이기도 하며, 짜증 넘치는 야근 시간 때이기도 하다.
"자비 출판은 하지 않습니다. 투고 원고는 편집위원회의 검토를 거치게 되며 기간은 보름에서 석 달 정도 걸리고요, 이메일로 보내주시면 이메일로 결과를 통고해드립니다. 우편으로 보내신 원고는 원칙상 반송 불가 합니다…."
소설에 대한 열정이 다들 참 대단하다.
| ▲ <소설 거절술>(카밀리앵 루아 지음, 최정수 옮김, 톨 펴냄). ⓒ톨 |
내가 일하는 회사의 경우 투고의 원칙을 지켜 기성작가, 계약이 있는 작가의 경우도 완성된 작품이 들어오면 편집위원회의 검토를 거친다. 앞서 얘기한 미등단 투고자의 작품도 절차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단연 부결 통고는 미등단 투고자에게 몰리게 마련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경우면 다행인데 특별한 이유랄 것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부결 통고를 할 때는 몹시 조심스럽고 미안한 마음도 있다. 어떻게 하면 곤란함을 해소하고 유감의 뜻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
마침 재미있는 책이 출간되었다. <소설 거절술 : 편집자가 소설 원고를 거절하는 99가지 방법>(카밀리앵 루아 지음, 최정수 옮김, 톨 펴냄)이다. 캐나다의 한 소설가가 출판사들이 자신에게 보내온 거절 편지 99통을 각 특성에 맞게 제목을 붙여 묶어냈다. 맨 앞의 글은 근래 겪은 출판 투고와 관련된 개인적 에피소드를 이 책의 형식을 빌려 적어본 것이다. 물론 머릿속 생각일 뿐이지 평소에는 언제나(!) 그렇게 솔직하게 대응하지는 못한다.
특별히 내게 이 책이 반가운 이유가 있다. 하루에도 수십 건의 투고 원고와 독촉 전화를 받는 와중에는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윤희기 옮김, 열린책들 펴냄)에 등장하는 명망 있는 편집자 이본 마멜의 '안목'보다도 적절한 거절 멘트를 작성해내는 게 더 큰 능력인 것만 같기 때문이다.
책에서 소개하는 거절의 편지들은 가짓수만큼이나 그 내용도 가지각색이다. 우리 회사에도 몇 가지 매뉴얼이 있긴 한데, 그건 이 책 제일 앞에 나오는 클래식한 공문서 버전('편집 방향'과 맞지 않다는 것이 만국 공통이라는 것은 실로 놀랍다)과 유사한 정도다. 클래식 버전에 이어 '실패작' '똥 덩어리' '노! 노! 확실히 노요!'라고 퍼붓는 직설적 맹비난과 32년이라는 편집자 생활을 고단하게 한 이런 허접한 원고가 지긋지긋해 이제는 직업을 바꿔야겠다는 분풀이, 그리고 거짓이 아니라면 실로 유감인 재정난 호소와 더불어 전망이 밝은 다른 직업을 추천하는 "때리고 어르기"식의 편지들은 수북하게 쌓인 원고를 보고 난감해하며 주로 "검토 중" "말 돌리기"식으로 얼버무려야만 했던 기억을 잊고 한참을 웃게도 만들었다.
한데 읽다 보니 저자의 의중이 의심스러웠다. 본문을 읽어가다 재차 다시 프롤로그로 돌아가기도 했다.
"당신은 그 원고를 출간해줄 편집자를 절대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내 말을 믿어라. 이런 일에 관해서라면 내가 좀 안다. 분명 지금 당신은 아무것도 짐작하지 못할 테지만." "당신도 알게 되겠지만, 이쪽 업계 사람들은 무명 작가의 원고를 거절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서슴지 않는다." "부디 용기를 내시라."
솔직히 놀리는 건가, 싶었다. 투고자에게 포기하는 게 현명하다는 지혜를 유도해내고 선지자로 남겠다는 건가, 싶기도 하고. 나도 자신이 '박경리, 황석영보다 못 한 근거를 대라'는 분들 앞에서는 세상에 더 행복한 일이 많다는 것을 알려주고 소설 따위는 포기해버리라고 말해주고 싶기는 마찬가지지만 이 땅의 문학적 성과를 위한 그 큰 열정 앞에서 가당키나 하겠는가. 이 책의 저자도 누구보다 숱한 거절과 모욕을 견디고도 소설을 쓰는 소설가가 아닌가. 그런데 이 책이 말하려는 것,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닐까.
이 책에는 투고 원고에 대한 적어도 서른 번의 분노와 스무 번의 조롱 그리고 열두 번의 위로가 담겨 있다. 읽다 보면 또 뭐라고 하려나 싶은 호기심과 어쨌든 "탈락!"을 말하는 반복이 지루함을 불러오지만 그래도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면 한번, 이 안에 담긴 노고를 치하하면서도 약을 올리고 모든 편집자의 분노를 대신하기도 할 조롱·비아냥·폭언의 총알을 받아내 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사이 전사하는 사람들도 좀 생기겠지!)
그것을 다 받아내고도 살아 있다면 다시 글을 쓰면 된다. 그리고 다시 원고를 보내면 된다. 피곤하겠지만 검토하는 일은 우리의 일이고 쓰는 건 당신의 일이니. 기꺼이! 어떤 성공한 기성작가는 한때 우리 회사에서 받은 부결 통고를 "작품을 무시하지 않고 대응해줘서 고맙다"(분명히 반어적인 느낌)고 말하며 한때를 추억하기도 하더라. 조금은 당당하게. 부디 그런 날을 위해, 그러니 건필을 빈다!!
(p.s. 내용을 미리 밝히기는 좀 아까워 간단히 덧붙이자면, 이 책을 한 편의 콩트로 완성하게 하는 마지막 반전이 주는 깨알 재미도 있다. 고로 뒤에서부터 읽는 건 반칙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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