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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꽃미남 스타, 알고보니 옥수동 '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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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꽃미남 스타, 알고보니 옥수동 '일진'?

[프레시안 books] 최지운의 <옥수동 타이거스>

'젊은' 감각으로 '사회성' 짙은 문제의식을 담은 소설. 제1회 <한국경제> 청년신춘문예 당선작인 최지운의 <옥수동 타이거스>(민음사 펴냄)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다. 대중문화적 감수성과 거침없는 스토리텔링으로 편하게 술술 읽히면서도 재개발과 교육 현실에 얽힌 불평등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었으니, "재미와 깊이를 다룰 줄 알고 문무를 두루 겸비한 메이저급 신인의 출현"(은희경, 장은수, 박성원의 심사평)이라는 기대 어린 찬사를 이끌어낼 만도 하다.

작가의 뚜렷한 주제의식은 '당선 소감'에도 분명히 밝혀져 있다. "<옥수동 타이거스>는 '빈부 차'와 '학벌 차'에 대한 이야기다. 부모·지역·학교에 따라 오늘이 결정되는 기이하고 부조리한 상황……. 부모·지역·학교에 따라 내일도 결정되는 무섭고 잔인한 세상! 이건, 많은 성장 소설에서 하나같이 말하는 '개인의 내면적 성숙'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봤다. 내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얘기다.

▲ <옥수동 타이거스>(최지운 지음, 민음사 펴냄). ⓒ민음사
그렇다면 기존 성장 소설의 틀에 박힌 접근방식에서 벗어나 이 같은 사회 문제를 소설화하기 위해 작가가 실제로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살펴봐야겠다. 우선 이 소설은 옥수동 재개발 사업 이후 '대한민국 상위 5퍼센트'(옥수동에서 분리돼 나온 서당동 지역)와 '하위 5퍼센트'(아직 남아 있는 옥수동 달동네)가 맞붙어 있는 매봉산 일대를 배경으로 한다. 서당동 주민들의 요구에 따른 용공고 폐교 조치가 핵심적인 갈등 요인으로 떠오른 가운데, 소설의 하이라이트에는 용공고 일진 '오호장군'과 신설 명문사립 중앙외고의 '캡틴 파이브'가 벌이는 '4차 응봉 근린공원 전투'(26장)가 버티고 있다. 소설 초반부터 일치감치 예고되어 기대감을 갖게 하는 이 대결은 말 그대로 계급간 혈투의 성격을 띤다.

하지만 이 소설은 심각하고 무거운 분위기와는 아예 거리가 멀다. 전통적인 이야기꾼을 연상시키는 화자의 과장되고 능청스런 말투는 오호장군 멤버 다섯 명(성혁, 재덕, 규태, 지선, 현승)을 무협지의 주인공들처럼 그려내고, 그들의 '대표전투'를 길이 남을 전설속의 무용담과도 같이 소개한다.

"서로의 주먹이 '붕'하는 소리를 내며 허공을 가를 때마다 상대방의 이빨과 핏방울이 공중에 난무하였다. 살과 살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맞부딪칠 때마다 여기저기서 외마디 비명이 새어나왔고 그럴 때마다 구경꾼들 사이에서는 짧은 신음소리가 터졌다. 다리가 부러져 엉금엉금 기어 도망가는 녀석의 등짝도 사정없이 쇠 파이프로 내리찍었고 정수리에서 뿜어져 나온 피로 붉게 염색된 머리통에도 회심의 발차기를 날렸다.

경찰차와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떡볶이 골목 가득 울릴 때까지 목장갑을 낀 성혁의 360도 회전 발차기는 콤보로 작렬하였고 재덕의 쇠 파이프와 규태의 타이어 렌치, 현승의 큐대와 지선의 T자는 검붉은 피를 잔뜩 붙이며 상대를 패고 또 팼다. (…)

이후 용공고 학생들은 이 싸움을 신당동 떡볶이타운의 옛 이름을 따서 '떡촌 대첩'이라고 불렀다." (31~32쪽)


그러면서도 이 소설은 인터넷 세대의 새로운 감각을 자유자재로 빨아들인다. 오호장군 다섯 명을 게임(MMORPG) 캐릭터에 빗대어 각기 다른 능력치를 도표화한 블로그를 비롯하여 인터뷰와 신문기사, 토론광장과 싸이 미니홈피 글 등 온갖 이질적인 말하기 방식들이 화자의 목소리를 수시로 가로지른다. 참여정부 말부터 MB 정부 초까지의 정치사회적 사건들과 2006년에서 2008년에 걸친 옥수동 재개발 열풍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작가의 상상력으로 실제를 허구화하고 인터뷰, 신문기사, 다큐 영화, 연표 등을 동원하여 허구를 실제화하는 '가짜 사실주의(psuedo-realism)' 경향의 스타일도 흥미롭다.

그런데 막상 소설을 읽다보면, 처음엔 흥미진진하다가 중간엔 다소 지루해지고 결국엔 씁쓸함을 느끼게 된다. 용공고의 폐교가 기정사실화되어 있듯, 영웅적 주인공인 오호장군은 최후의 대격전 '응봉 근린공원 전투'에서도 전설적인 승리를 거둘 것이 뻔하다. 이들이 나중에는 꽃미남 액션 배우(성혁), 모델 출신 스타 여배우(지선), 한국 최대 이동통신사 소속 프로게이머(현승), 대형 횟집 체인점의 젊은 사장(재덕), 그리고 가장 권위 있는 그랑프리에서 우승한 카레이싱 팀 정비팀장(규태)으로 성공하게 된다는 사실도 처음부터 알려져 있다. 그러니 소설적 긴장감은 급격히 약화될 수밖에 없다.

오호장군의 캐릭터(6~10장)와 캡틴 파이브의 캐릭터(12~16장)를 한 명씩 소개하는 일련의 장들에 이어, 용공고생들이 제작한 기념 영상 속에서 오호장군 각각이 펼치는 회상의 장들(21~25장)이 차례로 배치되면서, 이야기가 정해진 틀에 따라 너무 쉽게 관성적으로 굴러가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적어도 싸움의 세계에서는 예금 빵빵한 체크카드가 없다고 낙오자가 되는 건 아니다. 마음만 맞고 싸움만 잘하면 아버지가 청소부든 의원님이든, 사는 집이 궁궐이든 판잣집이든 상관없이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는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전교 등수는 물론 인문계, 실업계 같은 구분도 필요 없다. 오직 깡, 깡만이 중요할 뿐이다. 반드시 상대를 꺾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누구든 최강자가 될 수 있는 곳이 바로 싸움의 세계였다. 이 세계로 말할 것 같으면 노력하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진리가 유일하게 통하는 곳이기도 하였다."(117~118쪽)

삶의 어디에서도 정의나 평등은 찾아볼 수 없다는 짙은 패배감과 회의감이 '싸움의 세계'에 대한 이 같은 판타지를 낳았을지 모르나, 이는 고등학교 일진 이야기의 초라하고 뼈아픈 진실마저 외면하거나 회피하는 태도가 아닐까? 용공고의 오호장군이 중앙외고의 캡틴 파이브를 이길 수 있는 세계(그것은 이 소설의 세계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 대리만족과 소망 충족의 판타지는 빈부 차와 학벌 차에 짓눌린 이 사회에 대해 과연 무엇을 말해 줄 수 있을까? 폐교 후 매봉방송고로 다시 태어난 모교에서 오호장군 멤버들이 "현재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다섯 명의 선배들을 초청하는 특강"의 연사들로 한 자리에 모이는 '이야기의 끝'(28장)은,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우리 현실과 대조를 이루며 허탈한 쓴웃음을 짓게 만든다.

<옥수동 타이거스>는 개인의 내면적 성숙이라는 고답적인 테마를 벗어나 사회적 부조리와 불평등을 적극적으로 문제 삼는 성장 소설의 필요성을 온당하게 지적했지만, 그 소설적 형상화의 길은 아직 요원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소설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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