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의 우리에게 있어 국제 경제 문제에 관한한 빅 브라더는 바로 미국이었다. 끊임없이 우리 통상 압력을 가하고 자신의 뜻에 맞추어 행동하도록 요구하는 미국과 미국의 경제계 인사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대던 '슈퍼 301조'는, 자신의 뜻을 어긴 자를 가차없이 제재해버리는 빅 브라더의 어떤 영향력보다 무서웠다. 그들의 요구는 단 하나였다.
"한국의 시장을 개방하라! 무역역조를 시정하라!"
원인은 한미간 무역에 있어 무역역조가 너무나 심하다는 것이었다. 당시의 미국 대통령이었던 레이건의 정책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강력한 미국' 건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레이거노믹스란 바로 이러한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우리와 같은 나라들을 밀어붙이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미국은 이를 위해 미국의 상·하원 의원, 정부 관료, 경제계 인사 등으로 사절단을 구성, 한국에 파견했다.
그러나 공산품에서 농산물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 품목에 걸쳐 시장을 개방하라는 미국의 요구는 당시 우리의 산업구조로 볼 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형편이었다.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구입하는 엄청난 무기들을 생각한다면 무역역조는 오히려 우리가 주장해야 할 판이었다. 이것을 쏙 빼고 일반 교역품만을 따져서 무역역조를 주장하고 나섰다.
정부 역시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당시의 우리 정부로서는 미국에 큰소리를 칠 입장이 아니었다. 10·26에서 12·12를 거쳐 5·17, 5·18에 이르기까지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던 전두환 정부로서는 미국의 지지가 절실한 처지였다.
이때 조직되었던 것이 이른바 '대통령 사절단'이었다. 이는 또 몇 달 전 방한했던 미국의 '대통령 사절단'에 대한 답례의 형식을 띤 것이기도 했다.
정주영 회장과 남덕우 무역협회장이 민간측 교체 단장으로 조직된 이 사절단은 금진호 당시 상공부 장관이 정부측 대표로 함께 떠나게 되었다. 그것은 국제 관례상 '대통령 사절단'의 격을 맞추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정부와 정주영 단장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 30대 재벌 총수들이 거의 모두 방미 사절단에 포함되었다. 사실 정회장의 요청이 아니더라도 30대 재벌의 입장 역시 미국의 강경한 요구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기도 했다. 이에 따라 방미 일정 역시 한 달 가까이 되는 아주 긴 기간을 설정했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정신없이 뛰기 시작했다. 미국 경제계 인사들과 관련 부처는 물론 영향력 있는 매체의 기자들을 불러 일일이 한국의 입장을 설명했다.
우리의 설득 논리는 정주영 회장의 평소 스타일대로 단순·명쾌한 것이었다.
"한국은 미국의 큰 시장"
'우리도 시장 개방의 필요성은 인정한다. 그리고 우리는 반드시 개방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을 두고, 준비를 한 다음 열겠다. 당장 한국 시장을 열면 물건이야 좀 더 팔 수 있겠지만 결국 한국 경제가 추락하고 나면 미국은 커다란 시장 하나를 잃게 되는 셈이다. 장기적으로 보아 한국 경제를 살리는 것이 상호간에 이익이 되는 것이다.'
대규모 구매계획 발표를 포함한 우리들의 활동은 미국의 경제계와 언론에 좋은 반향을 일으켰다.
대부분의 일정을 마친 우리는 비교적 홀가분한 마음으로 백악관을 찾았다. 미국 상무부 장관 말콤 볼드리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볼드리지는 레이건 정부가 들어설 때부터 미국 상무부를 맡아온 레이거노믹스의 핵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 하지만 이미 대부분의 협의가 끝난 상태였기 때문에 그와의 대화는 짧게 끝났다.
그러나 무슨 할 말이 더 남았던 것일까? 악수를 마치고 일어선 그는 우리를 배웅하는 대신 옆에 서 있던 제임스 젠킨스 대통령 특별 보좌관을 눈짓으로 불렀다. 몇 달 전 미국 대통령 사절단의 일원으로 방한하여 구면인 인물이었다.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일행이 안내되어 간 곳은 장관실 옆의 한 작은 회의실이었다. 백악관 내의 회의실답지 않게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무언가 열심히 서류를 뒤적이던 사람들이 우리를 맞았다. 그들은 바로 중국시장 진출 방안을 연구하는 중이었다. 일종의 태스크 포스(Task Force)였던 셈이다.
당시 중국은 오랜 장막을 걷고 막 자본주의의 길에 들어서기 시작한 때였다. 때문에 세계 각국은 거대한 중국 시장의 기회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를 놓고 몰두하고 있었다.
우리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 일행의 방미 목적을 생각한다면, 참으로 엉뚱한 곳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에게 중국 시장 진출의 비법을 가르쳐줄 리는 만무할 테고, 그렇다면 우리를 이 회의실로 안내한 이유는 뭘까?
그 까닭은 곧 밝혀졌다. 한동안 중국의 역사나 중국인의 성격, 중국 시장의 특성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던 그들은 곧 중국 시장 진출의 어려움을 이미 겪은 실패담과 함께 토로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중국 시장을 뚫을 만한 좋은 아이디어가 없겠느냐는 것이 바로 그들이 정주영 회장과 우리를 그 방으로 불러들인 이유였던 것이다.
순간 정회장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뭔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는 정회장만의 신호다.
아니나 다를까, 정회장은 특유의 웃음을 씩 짓고는 그중 한 사람을 돌아보며 정중하게 부탁을 했다.
"여기 큰 종이 한 장만 가져다 주시겠습니까?"
영문을 모른 채 정회장을 쳐다보던 그는 젠킨스 보좌관의 눈치를 본 뒤에야 서둘러 자기 자리로 가 커다란 종이 한 장을 가지고 돌아왔다.잠시 헛기침을 하고 좌중을 둘러본 정회장은 펜을 꺼내 커다란 종이에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우리나라 지도였다.
"중국 시장을 연구하신다니, 이게 뭔지도 아시겠죠?"
"아, 그것은 한국 지도 아닙니까?"
"예, 맞습니다."
"중국진출 묘안 없겠소?"
그리고 정회장은 이어서 중국을 그리기 시작했다. 곧 종이 위에는 한반도와 중국의 산둥반도,가 나란히 그려졌다. 그리고 정회장은 들고 있던 펜으로 지도를 짚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기, 한반도의 서해안 쪽을 잘 보시오. 아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이쪽에는 산도 별로 없고 땅이 아주 넓어요. 게다가 노동력도 아주 풍부하지요. 또 서울에서도 아주 가깝고. 접안시설을 만들기도 쉽습니다."
잠시 말을 멈춘 정회장은 사무실 내의 사람들을 쓱 한번 훑어보았다. 처음 지도가 그려질 때부터 정회장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던 대 중국 태스크 포스 팀은 어서 계속하라는 듯 정회장의 입만 바라보고 서 있었다.
"자 이번에는 중국 쪽을 봅시다. 여기 베이징이 있고, 여기가 텐진, 여기가 칭따오, 그리고 여기는 상하이죠. 잘 보세요. 한국의 서해 즉 중국의 동해가 어떻게 보입니까? 아주 가깝죠? 이건 바다가 아니라 호수예요, 호수. 한나절 거리의 호수. 여기 인천에서 저녁에 배를 띄우면 다음날 아침 중국 동해안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얘깁니다."
우리나라 서해안과 중국의 동해안을 연결하는 바다가 바로 황해. 육지와 육지 사이를 연결하는 내해(內海)라고 할 수 있는 황해는 평균수심이 50미터에 불과한 전형적인 대륙붕이다. 수심이 깊은 중심부라 해도 80미터를 크게 넘지 않는다.
이런 조건은 곧 중국과 한국을 잇는 최단거리 무역 항로가 될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이야기. 즉, 무역거래에 있어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물류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정회장이 서해안을 주목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이제 사람들의 얼굴에는 비로소 알아들었다는 듯 웃음이 감돌았다. 정주영 회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예,그렇습니다. 바로 여기 서해안에 한미합작으로 대 중국 수출 전진기지를 만들자는 겁니다. 그 형태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우선 첨단 기술을 요하는 핵심 부분을 미국에서 생산하고 한국에서 이를 조립해서 중국으로 보내는 형태가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물건은 무엇이든지 좋습니다. 미국의 기술과 한국의 우수한 노동력 여기다 서해안의 입지조건까지 합쳐지면 중국 시장 진출은 대단한 경쟁력을 갖게 됩니다. 사실 여러분들이 어렵게 중국 시장을 열어놓았지만 미국에서 중국까지 물건을 실어 나르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때문에 자칫 중국과 바로 붙어있다시피 한 일본에만 좋은 일을 시키는 꼴이 되기 쉽습니다. 한국과 미국이 손을 잡는다면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중국이 바로 우리의 문전옥답이 되는 셈이 아닙니까?"
대중국 태스크 포스팀은 또 감탄을 연발했다.
그리고 좌중의 웅성거림이 가라앉은 후, 젠킨스 보좌관은 즉석에서 정회장에게 굳게 약속을 했다.
"정회장님 감사합니다. 좋은 말씀, 구체적으로 검토하여 좋은 방안을 찾아보겠습니다."
회의는 끝났다. 그리고 며칠 뒤 우리 일행은 이제 찬바람이 가시기 시작하는 서울의 거리로 돌아왔다.
사절단의 미국 방문 성과는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전히 미국에서는 '슈퍼 301조'를 들이대긴 했지만 그 강도는 현저히 낮아졌고, 미 경제계의 거센 항의나 의회에서의 성토도 많이 줄어들었다. 그것은 바로 백악관에서의 즉석 브리핑이 가져다준 성과였다.
사실 결과적으로 볼 때 정회장의 제안이 실행되지는 않았다. 서해안 시대를 대비해서 구입해놓은 정회장의 서산 농장도 제 빛을 잃게 되었다. 하지만 미국의 중국 진출에 특기할 만한 것으로 이때 논의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그들의 도움으로 바로 중국의 유전개발을 위한 강관을 현대그룹의 계열사인 인천제철에서 선적했던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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