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왜 뒤늦은 인기인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왜 뒤늦은 인기인가

영웅에 대한 초시간적인 몰입

2001년의 한 해도 저물어간다. 인류 역사 전체로 보면 단지 찰나에 불과한 지난 10년 동안 우리 사회는 디지털 혁명, IMF로 인한 환란,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탄생’을 맞았다. 이런 변화로 우리 국민은 6.25전쟁을 네 번이나 치른 것이나 마찬가지로 큰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우리가 이런 변화를 의연하게 헤쳐 나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난 10년간의 변화는 엄청났다.

이 같은 신기술 불안, 경제불안, 고용불안, 정치불안에다 시시때때로 닥쳐오는 환경불안까지 겹치면서 전반적인 위기감이 비등해짐에 따라 대중의 피로감은 날로 누증돼왔다. 이런 고통을 겪으면서 대중이 책을 찾는 성향 또한 크게 바뀌었음은 당연하다.

독자(reader)들은 갈수록 유저(user)로 바뀌었다. 개인주의로 치달은 그들의 관심은 감동(떨림)과 엔터테인먼트로 집중되었다. 독자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대중소설이 득세를 한 반면, 우리 사회의 전체성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하는 본격(순수)소설을 기피하기 시작했다.

역사, 철학서들이 침체한 반면 인간의 원형적 경험을 다룬 신화 관련서들은 상종가를 기록했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스펜서 존슨), 『The Blue Day Book』(브래들리 트레버 그리브), 『로빈슨 크루소 따라잡기』 등 모든 분야에서 서사적인 스토리텔링의 책들이 커다란 인기를 끌었다.

동물을 다룬 책들의 유행, 예술서 시장의 확대 등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대중은 인간 본연의 감성과 표정을 추구하게 되었다. 그런 변화는 방송, 출판, 게임, 광고 등에서 인간의 모습을 띤 사이보그보다 피가 흐르는 동물의 모습이 넘치게 만들었다.

지난 10년간의 지난했던 삶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 앞에는 명료한 미래 세계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대중은 지금까지의 고난했던 삶은 어떻게 잊는다 하더라도 아직도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숨막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미래 예측서나 트렌드 서적을 통해 자신의 미래 모습을 상정해보기도 하고, 사회변동에 발맞추기 위해 가지가지의 처세서를 파고들었지만 그런 책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허탈감만 늘어났을 뿐이었다.

20세기의 70-80년대만 해도 세상은 명료했었다. 우리가 오를 정상, 혹은 뚫고 들어가야 할 중심이 명확했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학생운동권 내의 NL과 PD 등 언제나 방향을 다툰 싸움이 끊이지 않았지만, 그 어느 것이든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자신이 추구하는 이정표만은 확실했었고 사회는 활력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대중은 방향타를 상실했다. 모두 신자유주의의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기 삶을 옥죄는 현실을 잊기 위해 때로는 서양 신화에 심취하거나 티벳 열풍에 편승해보거나 인류가 축적해놓은 지혜에 열중하는 것이다. 그런 책을 통해서 시간을 초월하는 ‘힘’을 느끼면서 자기 위안을 삼는 것이다.

***과거에 심취했던 ‘이데올로기적 영웅’에 매료**

그런 그들이 즐기는 책 중의 하나가 바로 인물이야기다. 그 인물은 평범한 개인 중에서 어느 날 갑자기 대중의 주목을 받는 의외의 인물인 경우가 없지 않다. 1999년에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팔다리가 없는 청년의 인생대만족을 다룬 『오체불만족』(오토다케 히로타다)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그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생각의 속도』의 빌게이츠, 『끝없는 도전과 용기』의 잭 웰치, 『영혼이 있는 승부』의 안철수 등과 같은 경제 경영의 리더, 헬렌 니어링, 헨리 데이빗 소로우 등과 같은 ‘반문명’을 추구한 ‘정신적 영웅’, 체 게바라, 마르크스, 레닌, 호치민, 트로츠키, 마오쩌둥 등 ‘반자본주의적 영웅’ 등이 대중의 폭넓은 관심을 이끌어낸다.

경제 경영 리더들의 이야기는 일종의 출세기로 읽히며 어느 시대나 인기를 끈다. 자본주의의 속도전쟁과 물질만능주의의 풍토에 거부감을 갖는 ‘반문명’ 또한 당연한 추세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의 칼바람을 맞으며 위태롭게 서 있는 대중이 왜 새삼스럽게 이 시대에는 ‘용도 폐기’된 것처럼 보이는 이들 ‘반자본주의적 영웅’에 심취하는 것인가?

현실정치가들은 여전히 이전투구에만 몰두한다. 기업가들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직원들을 헌신짝처럼 내던져버릴 자세를 견지하며 자기 직원들을 신자유주의 질서에 익숙하게 만들기 위해 변화의 당위성을 역설하는 듯하지만 철저한 환경순응의 철학을 ‘강요’하는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하이파이브』(이상 켄 블랜차드외), 『펄떡이는 물고기처럼』(스티브 C. 런던) 등을 다량 구매해 읽히려든다.

문화 ‘판’에서는 여전히 상업적인 문화상품들만 판칠 뿐 비전을 보여주는 것이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이제 그들 앞에는 그야말로 믿고 따를 수 있는 ‘현실적인 인물’이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지난 세기에 자신이 심취했던 이데올로기를 희석하고 자기 자신을 정리하기 위해서라도 반자본주의적 영웅에 매료된다.

지난 시대에는 『전태일 평전』(조영래)이나 『아리랑』(김산) 등의 ‘금서’를 몰래 숨죽이며 가슴으로 읽었다. 세계적인 반자본주의적 혁명가들의 일대기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책들을 읽으면서 대중은 그들의 삶을 자기 삶의 전범으로 삶고자 했었다. 그 책들을 읽는 것은 일종의 정치적인 행위였다. 그러나 오늘날은 문화적 캐릭터로 읽힌다.

최근에 이 책들의 유행을 몰고 온 『체 게바라 평전』의 경우를 살펴보자.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 : RATM. 1990년대 초 탄생해 빌보드차트를 휩쓴 미국의 하드코어 록 밴드)은 공연할 때마다 체 게바라의 얼굴이 새겨진 셔츠를 입거나 기타 앰프에 체 게바라 사진을 붙여놓는다. 그들의 노래는 공격적인 사운드에 ‘반제국주의’ ‘반자본주의’ ‘혁명’ 등 정치적 저항성이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오늘날의 20대는 RATM의 노래에 맞춰 헤드뱅잉을 하며 체 게바라의 전기를 읽고 그의 브로마이드를 방에 붙이고 배지를 가방에 붙이는 동일한 맥락의 문화적 행위를 즐긴다. 출판사는 대중의 그런 욕구에 맞는 상품, 즉 책과 셔츠와 브로마이드와 배지를 함께 판매한다. 『체 게바라 평전』은 바로 20대의 이런 욕구에 적합했기 때문에 대학가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판매부수를 10만 부까지 늘렸다.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에 독자 감성 자극**

하지만 이런 유형의 책을 주로 읽는 독자들은 지난 시대의 사고틀을 해체하고 새로운 사고틀을 구축하려는 이른바 ‘386세대’ 전후의 사람들이다. 30대에서 40대 초반에 이르는 이들은 지난 시대에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혁명적으로 바꿀 수 있음을 몸소 체험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지난 시절에 반자본주의적 영웅들의 삶을 원전 혹은 팜플렛으로 읽으며 그 인물들이 추구했던 ‘공동선’(共同善)을 자기 삶의 좌표로 삼았었다. 철저하게 정치적인 프로파간다로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의 인간적인 모습에 매료되면서 책을 읽는 행위를 통해 자신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세계와의 화해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출간되는 책의 내용은 ‘영웅’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마르크스 평전』(프랜시스 윈)에서 칼 마르크스는 ‘피’와 ‘살’을 가진 완전한 한 인간으로 ‘복원’됐다. 자식들의 죽음을 방치할 수밖에 없었던 무능한 가장이면서, 아내를 배신하고 하녀를 임신시킨 남편으로, 그리고 친척과 친구들에게 구차한 편지를 수없이 써야 했던 궁핍한 생활인으로서의 모습 등 수많은 약점을 지닌 허약한 인간으로 여과 없이 그려지고 있다.

그가 20세기 인류역사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상가이고 당대 모순을 저항하고 투쟁했던 거인이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이제 그를 주로 자기 고뇌를 지닌 인간으로, 즉 휴머니즘적 시각으로 읽고 있는 것이다.

반자본주의적 영웅들의 평전이 유행하는 것은 신문의 출판면 확대와도 맞물려있다. 최근 북섹션을 별도로 발행하며 책 소개 지면을 늘려온 주요 신문들은 뉴스 가치가 있는 그럴듯한 이야기의 발굴에 몰두해왔다.

최근의 신문을 꾸미는 기자들 또한 정도는 다르지만 대중과 비슷한 갈등을 겪는다. 최근 주요 언론들은 정부와의 갈등과 인터넷신문과 같은 ‘게릴라식 언론’의 등장으로 그들의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 이런 그들의 심정을 대변하듯 최근 신문들은 정치적 권력 구조나 헤게모니를 다룬 책, 문화적 헤게모니 혹은 트렌드가 있는 책, 휴머니티가 있는 성공 혹은 감동 실화를 다룬 책들을 주로 소개하며 자신들의 심정을 나타냈다.

한 일간신문은 올해 북섹션 프론트면 톱으로 다룬 책이 모두 이 주제에 합당한 책으로 볼 수 있을 정도였다. 반자본주의적 영웅들의 평전은 바로 이들의 입맛에 꼭 맞아떨어지는 하나의 코드였던 셈이다.

지금의 경제적 위기상황은 쉽게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기업의 구조조정이 계속되면서 대중이 비정규직이나 계약직으로 내몰리는 일은 일상화될 것이다. 그들은 단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맞벌이를 하는 것은 기본이고 끊임없이 근무시간을 늘려나가야만 할 것이다. 불굴의 의지를 갖고 혁명적 삶을 영위했던 인물들의 일대기는 그래서 어떤 형태로나마 여전히 대중의 가슴속에 살아 꿈틀거릴 것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