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만들고 나누어 먹으며 서로 상찬하거나 돌아앉아 타박하는 것이 사람의 일일진대는, 어떤 음식에든 인격이 개재하게 마련이다. 인격이 음식으로 표현되었을 때 그것을 뭐라 부를까. 식격(食格)? 이게 좋겠다. 또한 음식에서 깨달음을 찾고 먹는 데서 구원을 궁구하는 무리들이 걷는 길은 식도(食道)요, 그 무리는 식도(食徒)겠다.
밖에서 얻어먹는 일이 많은 나로서는 이 식격에 유난히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아무리 유명하고 맛있다고 소문난 음식이라 하더라도 식격이 느껴지지 않으면 ‘오리지널리티가 없는 스테레오 타입’이라고 되지도 않는 영어로 씨부렁거리곤 했다.
비싼 돈 들여 먹고 나서 투덜거리지 않으려면 먹기 전에 어떤 음식에 식격이 있는가, 없는가, 또는 그 격이 높은가 낮은가, 또 내게 어울리겠는가, 황감하겠는가, 서럽겠는가를 판별할 만한 기준이 있어야 하겠는데, 그걸 가지게 되기까지 서럽고 황감하고 어리둥절한 경우를 꽤나 겪어야 했다.
근자에 그 판별 기준 중 하나를 얻었는데 그 출전은 옛적에 여행과 음식으로 일가를 이룬 정자(鄭子)다. 정자 가로대, ‘주막의 음식 맛은 그 집(혹은 주인)의 상(象)과 주막강아지의 생김새로 알아볼 수 있다’('食經', 감정편).
(여담이지만 정자는 '식경'에서 음식을 먹는 법, 완상하는 법에 대해서만 만리 길을 걸으며 체득한 이론을 도도하게 펼쳐놓았다. 이는 전설적인 염제 신농씨가 '식경'에서 몸에 이로운 음식과 조리법을 박물지적으로 열거한 것과 다른 태도이다. 보통 음식에 관한 책이라 하면 흔한 게 요리책이고 어디의 음식점이 어떻게 해서 맛있다고 유혹하는, 막상 가보면 엉터리인 식당 연합회 홍보지 같은 책이 많은데 오로지 먹는 방법에 대한 고찰, 먹는 동안 인격을 도야하는 그윽한 대자연인의 경지를 논했다는 점에서 식경이 과연 ‘경’이라는 이름을 얻을 만하다고 여긴다.)
이 구절에 대해 주를 단 저간산(沮看山)은 ‘상(象)은 상(相)과 상(狀), 상(常)에 두루 통한다. 괴이하거나 후덕하거나 치우침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의 몸을 닦아서 드러내는 청결함, 불필요한 장식으로 미혹에 빠지지 않게 함으로 충분하다.
주막강아지가 말랐으면 그 집의 음식은 대체로 아름답다. 손님과 주인이 음식을 남기지 않아 강아지가 비루먹은 것이다’라고 했다. 이 구절을 본 이후에 나는 음식점에 갈 때에 피치 못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집과 주인의 관상부터 먼저 보게 되었다.
언젠가 ‘묵집의 원조’에 다녀온 일을 이야기 삼아 꾀죄죄하게 글로 썼더니, 그 글을 실었던 잡지의 편집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리공저리공하여 바로 그 원조 묵집의 주인이 연락을 해왔다는 것이며, 내가 도무지 한 번 가보고 찾지를 못했다는 말을 듣고는 안타까워하며 내 연락처를 묻더라는 것이다.
내가 연락처를 알려줘도 상관없다고 하자 이윽고 바로 그 원조 묵집의 주인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원조 묵집이 바로 우리집인데 원조가 이름이나 말이 아니고 진짜 원조가 맞노라. 한 번 와서 옛적의 맛을 확인하는 것이 어떠하냐’고 자못 상쾌하게 제의하는 것이었다.
그는 내게 자세한 지리를 가르쳐 주었다. 나는 그 집이 내가 이따금 지나치던 길가에 있는 집인 줄 새삼 깨닫고 한 번 가마고 대답했다. 그렇지만 일부러 가기에는 도시 쑥스러웠고 지나칠 일도 없어서 그냥 머릿속에 담아두었다.
그러던 중 2월 어느 날, 먼길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조금 돌아서 그 집으로 가보게 되었다. 내 동행은 음식이라면 못 먹는 게 없는데 그 중 맛있는 거라면 불원천리하고 갈 태세가 되어 있는 모범적인 ‘식도(食徒)’였다.
그와 동행한 사흘 동안 이런 일도 있었다. 내가 아는 곳에 칼국수를 잘 하는 집과 콩나물밥을 잘 하는 집이 이삼백 미터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있다. 아침은 또 시내의 기념할 만한 해장국집에서(이 해장국집의 해장국은 한 마디로 세계적 수준인데, 그 수준은 무차별적이고 싼 서민성에서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꿀리지 않는 데 기인한다) 먹은 탓에 점심시간이 되는 동안 일을 보고 한참을 망설인 끝에 콩나물 집에 가서 콩나물밥을 먹었다.
그 뒤로 1백50여 킬로미터를 달려가며 일을 보고 저녁 무렵이 되었다. 그는 문득 칼국수를 먹으러 가자고 말해 왔다. 내가 점심 때 한꺼번에 두 가지를 먹지 못하는 것을 한탄하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의 배려가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웠다. 그래서 우리는 백리 길을 멀다하지 않고 다시 돌아가 칼국수를 먹었다. 이러니 내가 그를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여일하게 식도(食道)를 걷는 도반이라 아니할 수 있으랴.
각설하고, 원조 묵집은 내가 기억한 대로 어느 아늑한 산 아래 동네에 있었는데, 그 마을의 이름은 대략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산전리였다. 산전리에는 상산전리와 하산전리가 있었는데 어느 쪽이었는지, 길눈 어두운 이 인간은 기억할 수 없다.
그 집을 찾고서도 조금 헷갈렸는데, 그 전에 있던 담을 허물고 마당을 주차장으로 삼아서 그런 듯했다. 남아 있는 한쪽 담벼락에는 ‘원조 도토리’인지 뭔지 하는 글자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그 외에는 근처의 다른 집과 다를 바 없는 농가의 상이었다.
동행이 차를 대는 사이 주춤거리며 가서 알미늄 문을 열었다. 안쪽에 있었던 안경 쓴 사람이 나를 보고는 “어서 오세요!” 하고 명랑하고 친근하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아이고, 그 순간 나는 내가 누구인 줄 들킨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사람은 나에게만은 아니고 내 뒤를 따라오는 동행에게도 똑같은 어조, 태도로 인사하는 것이었다.
마루에는 상이 두어 개가 있었고 방에는 상이 세 개 붙여져 있었으며 왼쪽이 주방이었다. 우리는 방으로 들어가 앉았다. 내가 앉은 벽 위쪽에 젊은 신랑 신부의 결혼식 사진이 걸려 있는 게 인상적이었고 아마 그 신랑이 내게 인사를 한 사람인 듯 했다. 사진에는 없는 아기가 마루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콜콜 자고 있었다.
우리는 그저 방에 바보처럼 앉아 있었는데, 젊은 주인이 물을 가져오고 곧 “묵밥 두 개요?” 하고 물어왔다.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주방 쪽으로 나갔다. 묵은 자개장이 벽 하나를 차지하고 있었고 방바닥은 식탁과 마찬가지로 깨끗했다. 점심때라 그런지 우리 뒤를 이어서 다른 손님들이 한 무리 들어왔다. 곧 방과 마루의 상은 손님으로 그득하게 되었다.
사진에 나오는 신부로 보이는 여인이 묵밥을 날라왔다. 동치미와 썬 김치, 고추양념이 반찬이었다. 넉넉하게 썰어넣은 묵밥 위에는 김과 썬 김치가 고명으로 얹혀 있었다. 묵밥을 먹기 전에 맛본 동치미는 약간 짜고 또 썼다. 덮어놓고 입에 달라붙는 공연한 애교가 없어서 첫 느낌이 좋았다.
우리 옆의 손님들은 반주로 소주 한 병을 시켜 나누어 먹어가며 식사를 했다. 손님들은 단골인 모양인지 주인과 “할머니는 잘 계시느냐?” 는 등의 인사를 나누었다. 듣자 하니 원조 묵밥의 창시자인 할머니는 아흔 살이 넘었는데, 아직도 부엌에 나오신다고 한다.
맛은 전반적으로 그 전에 먹었던 것보다 강했다. 양념을 넣기 나름이겠다. 소 무릎도가니로 우려냈다는 육수는 따라나온 밥을 말아먹기에는 조금 모자라는 듯한 느낌이었다. 좀 많다는 느낌으로 먹었는데 의외로 수월하게 그릇이 비었다. 조심스럽게 동행에게 맛을 물었더니 “별미로 먹을 만하다”고 긍정적인 대답을 했다. 손님이 자꾸 닥쳐서 오래 지체할 수가 없었다.
“두부를 판다고 하셨지요?”
계산을 하려다 내가 물었다. 전화로 두부도 있다고 한 게 기억났기 때문이었다. 젊은 주인은 그렇다고 했다. 두 모 쯤 사가겠다고 하자, 부엌 안쪽에서 식칼을 든 노인이 나왔다. 나는 그 노인이 원조 묵밥의 창시자인가 싶어 바짝 긴장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젊어 보였다. 몸빼를 입고 있었고 얼굴의 선이 강인했으며, 어딘가 모르게 기품이 있었다. 진작에 그 노인의 상을 보았더라면 내가 그 집을 몰랐더라도 그 집의 음식에 대해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얼굴은 자신의 인생을 살아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얼굴이었다.
“두부가 좀 비쌉니다. 집에서 만드는 것이 돼서....”
노인은 경기도 특유의 아름답고 군더더기 없는 말씨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묵밥은 한 그릇에 삼천 원인데 두부는 한 모에 삼천오백 원이었다. 그렇지만 비싸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두부는 자신감과 오랜 경험에서 만들어진 특별한 두부였다. 나중에 동행에게 들으니 아주 맛있었다고, 그날 밤에 다 먹었노라고 했다. 그러면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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