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간척사업을 둘러싼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이 새만금 간척사업이 농지조성 목적 상실을 시인하며 새로운 '대안'을 찾을 것을 지시한 현재, 새만금 사업의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발걸음이 분주하다.
이러한 노력의 하나로 지난 14일 열렸던 ‘새만금 바다도시’ 중간 세미나에서 중간평가보고를 맡았던 백낙청 RTV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이 현재 진행중인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한 논란과 발전 방향에 대한 발표 전문을 소개한다.
백낙청 선생은 현재 개발과 환경의 첨예한 대립점에 있는 새만금의 '대안'을 찾기 위해 지난해부터 다각적 대안을 모색중이며, 그동안 이와 관련한 '바다도시'안 등 여러 대안을 <창작과 비평> 등에 소개해 왔다. 이라크전, 북핵 위기 등으로 어지러운 현시점에서 한량한 문제제기가 아니냐는 독자분들의 반론도 있을 수 있으나, 개발과 환경보호라는 화두 역시 한반도의 평화 못지 않게 간과해서는 안되는 '생명'에 관련된 사안인 까닭에 백 선생의 새만금 대안을 소개한다. 편집자
***1. 말머리에**
제가 ‘중간평가보고’를 하는 것으로 돼 있습니다만 객관적인 평가를 하기에는 부적절한 인물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제가 대표하는 시민방송 RTV에서는 작년 9월 개국과 더불어 ‘새만금, 대안은 있다’라는 표어로 캠페인을 벌여왔습니다. 김석철 교수의 바다도시 구상이 곧바로 대안이라고 지목한 것은 아니고 환경운동가들의 시각에서부터 농업기반공사의 입장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소개해왔습니다만, 김교수의 제안을 계기로 어떻게든 간척공사가 아닌 다른 대안이 있다는 확신을 갖고 바다도시안을 집중적으로 소개했습니다.
게다가 저 개인으로서는 김석철 교수의 구상에 깊은 관심을 갖고 그와 대화를 나눠온 것이 2년도 더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김 교수가 아직 무르익지 않은 구상이니 보안을 하자고 했었지만 2001년 후반부터 제 주변에 알리기 시작했고, 작년 들어서는 환경운동가, 전북지역 인사 등을 상대로 몇 차례의 비공식 설명회를 제가 주선하기도 했습니다. 김 교수 자신은 좀더 많은 준비기간을 원했습니다만, RTV의 개국 캠페인에 맞추려는 타산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간척공사가 계속 진행중인 상황이라 제가 공론화를 다그쳤던 것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바다도시안은 어디까지나 김석철의 안이며 제가 당사자로서 ‘보고’를 할 처지도 아닙니다. 오히려 일정한 거리를 두고 ‘평가’하는 것이 제격일지 모릅니다. 따라서 RTV나 김 교수와 별개의 한 개인으로서 일종의 중간평가를 시도하면서 저간의 경위를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약간의 보고도 곁들이고자 합니다.
<사진1>백낙청 이사장
***2. 배경: 새만금간척사업을 둘러싼 기존의 갈등**
아시다시피 새만금간척사업은 군산반도와 변산반도를 잇는 33km의 방조제를 쌓아 4만ha의 토지(및 담수호)를 조성한다는 사상 최대의 간척사업입니다. 누가 보나 정략성이 짙은 결정에 따라 1991년 11월 착공했고, 시화호 간척사업의 폐해가 널리 알려지면서 1997년 말경부터 환경단체들의 반대운동이 시작됐습니다. 그 결과 1999년 5월부터 약 2년간 일시 중단되었으나, 2001년 5월에 역시 석연치 않은 절차에 따라 정부의 재개결정이 내려져 현재 막바지 방조제공사가 진행중입니다.
환경운동가들은 간척사업으로 사라질 갯벌과 바다의 생태적 중요성, 간척지에 조성될 담수호의 수질 문제 등을 강조함은 물론, 경제성 면에서도 사업의 타당성이 없음을 지적해왔습니다. 농지 또는 산업용지를 만들어봤자 전라북도의 발전에 별 실익이 없으리라는 점은 비단 환경운동가들만의 주장도 아닙니다. 애초에 정부 안에서 새만금사업의 시작 자체를 주로 반대했던 것이 경제부처였으니까요.
또한 새만금사업이 애초의 결정이나 일시중단후의 재개 과정에서 민주적 절차가 결여되었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입니다.
이러한 지적들은 대부분 설득력이 강함에도 불구하고 사업이 지속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듯합니다.
1) 낙후된 지역경제가 활성화되기를 바라는 전라북도 도민들의 강렬한 욕구가 새만금사업에 집약되었으며, 이것이 지역주의 정치구도를 통해 정치권 전체에 거의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해온 점을 들 수 있습니다.
2) 게다가 사업과 관련된 각종 기득권세력이 각계에 포진하여 이러한 정서를 업고 지역여론을 좌우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3) 사업이 이미 상당부분 진척된 시점에서야 시작된 반대운동이 ‘백지화’를 요구했을 때, 계획단계에서 반대여론을 일으켜 성공한 동강댐의 경우와 달리, 한결 설득력이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4) 문자 그대로의 백지화 즉 이미 쌓아놓은 제방마저 모두 철거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태에서의 ‘중단’을 요구할 경우에도, 앞서 말한 지역정서를 외면하거나 너무 가볍게 봄으로써 지역주민설득에 실패한 점입니다. 실제로 ‘지역정서’라는 표현 자체가 명분과는 별도로 어찌해볼 수 없는 감정상의 현실이라는 뉘앙스를 풍깁니다만, 새만금을 통해서라도 전북이 남들처럼 발전해야겠다는 ‘정서’ 속에는 단순한 한풀이가 아니라 국토의 균형발전에 대한 정당한 요구와 차별에 반대하는 민주주의적 명분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아무튼 방조제의 남은 세 군데 틈(Gap)마저 시시각각으로 메워져가고 있는 상황에서 설득력있는 대안을 시급히 내놓지 않고서는 방조제 완공과 그에 따른 환경파괴를 막기 어렵게 된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3. 김석철의 바다도시 구상**
간척사업을 더는 진행하지 말되 이미 시공한 방조제를 활용하여 새만금 일대에 바다도시를 건설하자는 김석철 교수의 제안은, 1) 전북도민의 정당한 개발욕구를 충족시키면서 2) 갯벌과 바다를 대부분 보존할 수 있는 독창적인 방안으로서, 새만금문제에 대한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을 뜻하기도 합니다. 물론 획기적인 만큼이나 쉽게 이해되기 어렵고, 독창적이기 때문에 더욱 철저한 검증을 요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김석철 교수는 그의 구상을 ‘다섯 키워드’로 설명하고 있지요. 제가 보기에 그중 셋은 새만금과 직접 관련된 것이고 나머지는 더 큰 맥락에 대한 설명인 셈인데, 나머지 둘 중에 하나는 좀 부수적이랄까 일종의 부연설명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다섯 개의 핵심용어 중에서 새만금과 직결된 가장 기본적인 단어는 ‘안바다’입니다. 어떤 의미로는 기존의 새만금 논의에 가장 친숙한 낱말이기도 하지요. 생태관광, 수상관광, 조력발전, 풍력단지 등 기존의 대안구상들이 비록 ‘안바다’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더라도 새만금 내해(內海)의 존재를 전제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진행중인 간척사업과는 정면으로 반대되는 논리지요. 바다도시안에 대한 환경운동측의 반응은 아직 흔쾌한 편이 못됩니다만, 김석철 교수와 대다수 환경운동가들이 기본적으로 ‘안바다’라는 키워드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나 기성의 둑을 활용하되 바닷물이 드나드는 상태를 ‘안바다’라는 말로 표현한 것 자체가 김석철 교수의 독창성입니다. 이 표현이 베네찌아의 라구나(Laguna)를 떠올리는 데서도 짐작되듯이 김석철 구상에서 ‘안바다’는 ‘바다도시’라는 또하나의 키워드로 연결됩니다. 즉 그간의 방조제공사로 만들어진 새만금의 내해를 천혜의 인프라로 삼는 수상도시(aquapolis)를 건설하자는 것입니다. 물론 그중에서 ‘항만도시’의 외항이나 ‘해상관광도시’의 일부는 바깥바다에 위치하게 되지만, 어쨌든 안바다를 살려놓고 이미 쌓은 방조제와 일부 갯벌 위에다 5개의 소도시(‘중간도시’ 포함)를 짓는다는 것이지요.
<사진2>어반 클러스터
‘바다도시’는 또하나의 키워드 ‘도시연합’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인근의 군산․익산․전주․김제․정읍은 새만금바다도시의 존재를 통해서만 상호연계와 경쟁력확보가 가능해지고, 새만금바다도시 또한 이들 도시와 연합을 이룸으로써만 환황해권(環黃海圈)의 거점지역으로 성립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새만금에 대한 이러한 구상은 환황해권(김석철의 첫째 키워드인 ‘황해도시공동체’)의 역사적․경제지리적 변화에 대한 인식을 전제합니다. 수백년동안 침체해 있던, 특히 냉전시대에 거의 죽어 있던 황해가 교역과 교류의 중심지로 되살아나면서 새만금을 포함한 한반도의 서해안 일대에 전에 없던 기회와 도전을 던져주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여기에는 개혁․개방 이래 중국의 급속한 성장뿐 아니라 한반도의 화해교류 기운도 작용하고 있는데, 어쨌든 기존의 간척사업 찬반논쟁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사고를 요구하는 대목입니다.
나머지 하나의 키워드는 때로는 ‘서해안 어반 클러스터’, 때로는 ‘메가씨티’로 규정되곤 합니다. 어느 경우든 ‘황해도시공동체’를 부연설명하면서 새만금과 연결시키는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사진3>황해공동체
***4. 바다도시에 대한 그간의 반응들**
앞서 말씀드렸듯이 바다도시 제안은 한편으로 그것이 매우 독창적이어서 검증할 여지가 너무도 많기 때문에, 다른 한편 발상이 획기적이어서 기존의 사고방식으로는 접근이 어렵기 때문에, 여러모로 엇갈린 반응을 낳고 있습니다.
먼저 간척사업을 지지해온 쪽의 반응을 정리한다면 대략 세가지로 나눌 수 있을 듯합니다.
1) 현실적으로 가능만 하다면 전라북도를 위해서나 한국을 위해서나 더이상 좋을 수 없겠다고 환영하는 입장, 그러나 아직은 이것이 과연 가능하겠냐는 선의의 의문이 많은 상태입니다.
2) 처음부터 현실성이 없는 안이 오로지 간척사업중단을 위한 구실로 제시되었다고 의심하는 경향.
3) 간척사업을 고집하는 입장에서는 바다도시가 설혹 실현가능하라도, 어쩌면 실현가능하면 할수록 끝까지 반대하게 마련이겠지요.
<사진4>간척계획도
환경운동측의 반응도 다양합니다.
1) 현실적으로 가능만 하다면 절묘한 해법이라는 조건부 환영론을 여기서도 만날 수 있는데, 역시 선의의 의문이 지배적입니다. 개중에는 도올 김용옥 기자와 같은 소신있는 적극지지 선언(문화일보 03.1.27 및 2.12일자)에 내심으로 공감하는 이도 있을지 모르겠으나, 환경단체들의 전반적인 정서에 비추어 공개적인 환영발언 자체가 드문 편입니다.
2) 바다도시 자체는 실현가능할지라도 또다른 환경파괴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와 반대.
3) 같은 반대론이면서 바다도시 건설이라는 발상 자체가 ‘개발논리’의 연장이라는 좀더 원칙적인 주장이 있습니다. 실제로 2와 3은 겹치기 일쑤며, 특히 현지 어민측의 반대운동은 이 두 논리를 동시에 동원하는 듯합니다.
<사진5>새만금 생명의 소리
***5. ‘전주발언’ 이후의 새 국면**
이런 상황은 노무현 대통령당선자(당시)의 2003년 2월 11일 전주 국정토론회에서의 발언으로 새 국면을 맞았다고 하겠습니다. 그 발언에 대한 해석 또한 분분합니다.
1) 전북도 당국(및 간척사업 추진주체들)은 ‘새만금사업 계속’에 대한 당선자의 약속이 ‘방조제완공’을 뜻하며 조성된 간척지를 농지로 써야 한다는 제약마저 풀어준 것으로 해석하고 크게 환영했습니다. 대다수 환경단체도 같은 취지로 이해하여 당선자의 발언을 비판하며 규탄했습니다.
2) 다른 한편 일부 환경운동가들은 달리 해석하기도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2월11일 토론회에서 ‘간척지를 얼마나 간척, 개발하며, 어떻게 활용하느냐를 새롭게 검토해야 한다’고 발언하였다. 간척의 정도나 활용방법을 전면 재검토해야 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우리는 이 발언의 중요성에 주목하고 있다.”(이시재 「새만금사업의 결정과정과 문제점」, 2003.3.4 환경운동연합 시민환경연구소 주최 ‘새만금 지역을 살리기 위한 한․독 공동심포지움’ 자료집 34면)
이 해석을 따른다면 바다도시 건설에 필요한 만큼만의 간척을 하고 안바다를 살리는 길도 열린 셈입니다.
발언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그 발언으로 인해 새로운 국면이 전개된 점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1) 농지확보라는 그간의 간척사업 명분을 국정의 최고책임자 스스로가 부인한 꼴이므로 결과적으로 반대운동의 명분과 입지를 크게 강화한 것이 사실입니다. 농림당국은 여전히 간척사업을 고집하면서 새만금사업을 주도할 의지를 굳히고 있으나, 정부의 공식 입장이 ‘농지 이외의 대안’으로 정리될 경우 당장에 공유수면매립허가의 취소를 청구할 법적인 근거가 생기는 셈이지요.
2) ‘친환경적 개발’이라는 용어를 설혹 발언자 자신이 큰 무게를 두지 않고 사용했다 하더라도, 지금은 간척사업 재개결정 당시의 ‘친환경적 순차개발’ 같은 기만적인 어법으로 넘어가기는 어려운 시대입니다. 새로운 사업계획을 세울 경우 새로이 환경영향평가를 해야 하는데, ‘참여정부’ 자체의 명분으로 보나 국제연대를 포함한 간척사업반대운동이 다시 불타오르고 있는 현실을 보나 이 문제를 어물어물 넘길 수는 없게 되어 있으니까요. 다만 논의가 분분한 가운데 이미 예산이 할당된 간척사업이 기계적으로 진행되면서 환경파괴가 돌이킬 수 없는 수준에 이를 가능성은 엄연합니다. 이 현실적 위험에 우리 모두가 특별한 경각심을 갖고 대처해야 할 것입니다.
3) 개발을 소망해온 전북도민의 입장에서는 새 정부가 ‘대안없는 중단’을 하지 않을 것임을 재확인한만큼 ‘중단을 목표로 하는 위장대안’에 대한 두려움을 덜고 여러가지 방안을 논의해볼 조건이 마련된 셈이기도 합니다.
***6. 향후 과제**
앞으로의 과제를 관련된 주체들에 따라 개관해보고자 합니다.
***전라북도민들에게**
먼저 전라북도 도민들의 경우, 새만금간척사업이 다수 전북도민의 열망을 집약하기는 했지만 환경보존이나 경제성, 민주적 절차 등 그 어느 면에서도 지역주민들의 실질적 이익을 보장하는 사업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제야말로 현지의 주민과 지식인들이 바다도시안을 포함한 모든 가능한 대안을 활발하게 논의해서 진정으로 친환경적이면서 친도민적인 방안에 합의함으로써 전라북도뿐 아니라 한국 전체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기존의 간척사업에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얽힌 도 안팎의 소수 기득권층이 ‘2백만 도민’의 이름으로 대안에 관한 논의 자체를 봉쇄하는 작태를 극복하는 일은 새만금문제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민주적 개혁을 위해서도 긴요한 과정입니다.
***환경운동가들에게**
환경운동에 관해 말씀드리면, 운동의 본디 소임은 제시된 사업안에 대해 환경상의 문제점을 적시하는 일이지 환경운동가들 스스로가 무슨 대안사업을 마련해줘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따라서 대안을 내놓기 전에는 반대의견을 말하지 말라는 추진자측의 요구는 원칙적으로 부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새만금문제는 백지상태에서 환경상 최선의 안을 검토하는 문제가 아니라, 막강한 세력이 추진중이며 완공을 거의 눈앞에 둔 방조제공사를 어떻게 친환경적으로 마무리하느냐에 중지를 모아야 할 과제이므로, 새만금사업이 애당초 잘못되었다는 원칙론을 되풀이하거나 ‘보존 대 개발’의 흑백논리로 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물론 바다도시안이든 다른 어떤 안이든 그것이 환경에 미칠 영향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공식적인 지지를 보낼 수는 없는 것이지만, 갯벌과 바다 등의 생태계에 바다도시가 미칠 영향을 열린 마음으로 검토하면서 다른 현실적 대안들과의 우열을 가릴 일이지, 안바다를 남기는 제안과 바다를 온통 메우는 사업을 대동소이한 것으로 매도한다든가 제방의 철거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것은 도리어 간척사업 추진세력의 입지를 강화해줄 위험마저 있는 것입니다.
***김석철 교수에게**
다음은 김석철 교수를 비롯한 바다도시 구상의 설계자들께 몇 가지 주문을 할까 합니다. 금년 6월까지는 동료 연구자들과 더불어 훨씬 구체화된 제안과 설계를 제시할 예정인 것으로 압니다. 제가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이미 연구중이거나 해결중인 과제들이라 믿지만, 저로서는 특히 다음 사항들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1) 바다도시안을 원천적으로 거부하는 일부 간척사업추진자 및 갯벌보존론자를 빼면 대다수는 이 화려한 구상이 과연 실현가능한가에 관심이 쏠려 있습니다. 구조공학상의 어려움은 없다는 점을 지난번 ‘새만금바다도시 국제학술회의’(2002.12.2)에서 이창남 센구조연구소 소장께서 강조했고, 이희윤 유일종합기술단 회장께서 새만금이 항만건설의 적지라는 점을 말씀하신만큼, 기술적인 타당성은 어느 정도 검증되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아직도 사람들이 가장 궁굼해하는 것이 자금조달 내지 투자유치 문제일 텐데, 이에 대해 진행중인 연구가 6월까지 설득력있는 결과를 낳기를 기대하겠습니다.
2) 도시건설 자체의 가능성뿐 아니라 진정으로 친환경적인 도시를 만들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어야 합니다. 물론 바닷물이 드나드는 안바다가 남고 갯벌의 극히 일부만이 부지로 쓰인다는 사실만으로도 간척사업에 비하면 엄청나게 친환경적이라는 점에 저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생활하수의 처리방안이라든가 동진강․만경강에서 흘러나오는 토사 문제라든가 그동안의 공사로 이미 훼손된 갯벌의 복원가능성이라든가, 이러저러한 구체적인 환경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책이 최종안에 포함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는 간척사업추진자와 일부 환경운동가들이 일치해서 바다도시의 새로운 환경파괴가능성을 지적하는 상황에서 전략적으로도 특별히 중요한 대목이겠지요.
3) 환경은 자연환경뿐 아니라 주민들의 생활문화 전반을 포함합니다. 따라서 바다도시가 외국자본을 끌어들여서 지역주민들은 구경꾼이나 들러리로 세워둔 채 ‘저들만의 화려한 잔치’를 벌이는 일종의 점령구역이 아니라, 전북도민 전체의 삶의 질 향상에 어떻게 기여할지를 연구해야 합니다. 이는 ‘호남평야 도시연합’ 구상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집중적으로 다룰 수 있으리라 보는데, 실제로 전북 일원이 경제뿐 아니라 교육․문화면에서도 약진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바다도시 자체도 성공하기 어려우리라고 봅니다.
4) 부연하자면 ‘도시연합’을 단순히 ‘메가씨티’가 불가능한 입지에서의 차선책으로 볼 것이 아니라, 거대(과대)도시 위주의 개발모델에서 벗어나 적정규모의 도시들 사이사이에 농촌과 어촌이 살아 숨쉬는 새로운 개발 패러다임을 창출한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새만금바다도시가 ‘중간도시’를 매개로 기존의 5개 육상도시와 연합하는 과정에서, 새만금과 그 주변에 살아남을 농어촌이 어떤 몫을 맡을 것인지를 밝힘은 물론, 도시연합의 배후지에 해당하는 농촌과 산촌들과는 어똔 상생관계를 이룰지도 배려하는 바다도시안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진6>인공위성에서 본 새만금
한마디로 새만금사업은 개발독재시대의 대표적인 유산입니다. 개발독재 특유의 무모하면서도 강력한 추진력의 산물일 뿐 아니라, 이 과정에서 정부와 정치지도자들의 자의적인 의사결정, 행정당국 및 소수 기득권층의 여론조작과 국민기만, 적잖은 지식인들의 직무유기 내지 배임 등이 얽혀들어 있는 것이 이제까지의 새만금사업입니다. 동시에 잘못된 유산이라고 아예 없었던 일로 돌릴 수는 없는 것이며,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면서 슬기롭게 처리할 때 뜻밖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유산이기도 합니다. 이제 한국사회에 개혁문화를 정착시키고 한반도 전역에 걸쳐 분단체제가 허물어져가는 시점에서, 일반 국민들과 지식인들은 지난 시대 유산의 ‘청산과 활용’이라는 시각에서 새만금문제를 곧 자신의 일로 생각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나아가 새만금은 동북아시아가 세계경제의 중심지역으로 대두하는 과정이 인류문명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를 좌우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동북아 특히 ‘황해도시공동체’는 세계적인 인구밀집지역인데다 중국의 대대적 성장을 포함하는 동북아시대는 이미 지구환경파괴가 위험수위에 도달한 시점에서 열리게 되었으므로, 이 지역이 기존의 발전모델에 따라 경제성장을 지속한다면 인류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지 않을 수 없는 실정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새만금바다도시가 대안적 발전방식을 창출하는 하나의 의미 있는 시도가 된다면, 이는 비단 한국인이나 동북아시아인만이 아니고 전세계인의 공동관심사가 되어 마땅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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