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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적'이 된 이란, 한국에게는…

[중동의 가려진 진실] 이란은 왜 공공의 적이 되었나

세계의 관심이 또다시 이란에 집중되고 있다. 핵 문제를 둘러싼 서방 측과 이란의 갈등은 이제까지 성과 없는 협상만 중단과 재개를 거듭하면서 경제 제재와 전쟁 위협론이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특히, 지난해 초에는 이스라엘의 이란 선제공격설과 이란전쟁 시나리오까지 공개되었다. 하지만 이달 초 이란의 새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핵 문제를 해결하자는 새로운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미국과 이란의 직접·양자 회담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6월 14일 제11대 이란 대통령 선거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개혁-중도 연합의 하산 로하니가 4일 대통령에 공식 취임했다. 성직자 출신에 중도 성향인 그는 취임 연설에서 "이란은 제재를 통해 항복을 강요받거나 전쟁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며 "국제 사회가 이란과 교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를 통해 상호 신뢰와 존중의 관계를 만드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이란에 적대적인 국가들에 대해서 "적절한 반응을 얻고자 한다면 제재의 언어가 아닌 존중의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6일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지혜와 희망의 정부'를 모토로 내세우면서 "이란은 핵 프로그램을 둘러싼 논쟁에서 진지한 대화와 협상에 임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조속한 시일 내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 및 독일(P5+1)과 핵 협상을 재개할 것이라고 말했고, 만약 미국이 진정성을 보이고 협박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양국 간 대화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취임 이후 두 차례의 공식 발표를 통해 로하니 대통령은 서방과 관계 개선을 피력했고, 사실상 미국과 직접 대화를 제안한 것이다.

▲ 제11대 이란 대통령 선거에서 개혁-중도 연합을 통해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성직자 출신의 중도파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4일 공식 취임했다. 사진은 취임식 모습. ⓒAP=연합뉴스

그러나 이스라엘과 미국은 이란에 대한 기존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달 14일 CBS 방송에 출연해 로하니에 대해서 "양의 탈을 쓴 늑대"라고 비난하면서 이란은 변함없이 핵무기 개발을 추진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하원도 지난달 31일 사실상 이란산 원유 거래를 전면 금지하는 'H.R.850' 법안을 통과시켰다. 물론 미국은 로하니 대통령 취임식 이후 "이란 정부가 진지한 자세로 국제 의무를 준수하고 핵 문제 해결을 위한 평화적인 해법을 찾는다면 미국은 적극적인 파트너가 될 것"이라면서 이란과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미국과 이란의 관계 개선은 가능할 것인가? 물론 쉽지는 않다. 양국 간 대립과 반목의 역사가 지속하고 있고.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란은 한때 '중동의 헌병', '페르시아만의 경찰'이라 불리던 미국의 최대 동맹국이었다. 하지만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모든 것이 변했다. 미국과 이란은 1979년 11월 4일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을 계기로 외교 관계가 단절되었고 그 대립 관계는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다. 미국은 이란을 '깡패 국가', '악의 축', '이슬람 파시즘'이라고 부르고 있고, 이란도 미국을 '거대한 사탄'이라고 규정하면서 서로 협박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미국의 중동 정책에서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이란이다. 미국은 한편으로는 이스라엘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친미 아랍 국가를 축으로 안정적인 석유 자원 확보와 이스라엘의 안보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란은 미국의 중동 질서 재편을 반대하면서 시아파 연대를 통해 미국의 영향력 확대를 저지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에너지 전략은 페르시아만과 카스피해를 연결하는 것이다. 페르시아만은 세계 원유 매장량의 3분의 2 이상, 카스피해는 5분의 1 이상이 매장되어 있는 '자원의 보고'이다. 이란은 페르시아만과 카스피해를 연결하는 지구상의 유일한 국가다. 이란은 자원이 풍부한 나라로 석유 매장량 세계 4위, 천연가스 매장량이 세계 2위이다. 이뿐만 아니라 아연(세계 1위), 구리(세계 2위), 철광석(세계 9위) 등 엄청난 광물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이란은 '세계 에너지의 생명선'이라 불리는 호르무즈 해협을 끼고 있는데, 이 해협은 세계 석유의 3분의 1, 세계 석유 총 거래량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원유 수송 요충지이다.

하지만 미국과 이란의 관계 개선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양국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현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몇 차례에 걸쳐 논의와 협력을 진행해 온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2001년 9.11 사태 직후 미국과 이란은 반(反)탈레반 전선이라는 공동의 이해관계를 해결하기 위해 관계 개선을 추진했다. 미국은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북부동맹과 연결할 고리가 필요했다. 이란은 탈레반과 적대 관계에 있는데, 탈레반은 시아파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다. 바넷 루빈(Barnett R. Rubin) 뉴욕대 교수이자 국제협력센터 소장은 2001년 가을, 북부동맹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이슬람 혁명수비대 장교가 만나서 논의했고 이란을 통해 자금과 무기가 타지크족 지도자 랍바니에게 지원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반(反)탈레반을 고리로 무르익었던 양국 관계는 2002년 1월 부시의 악의 축 발언 이후 급속히 냉각되었다. 또한 2009년 10월 1일 제네바에서 열린 이란 핵 협상에서 미국 수석대표인 윌리엄 번스 국무부 차관과 이란 대표인 사이드 잘릴리는 직접·양자 회담을 했다. 이 회담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과 독일(P5+1)의 다자 협상과는 별도로 진행된 것으로, 1979년 국교가 단절된 이후 30년 만에 열리는 미국과 이란의 공식적인 첫 번째 고위급 대표 회담이었다. 앞으로 미국과 이란 간 직접적인 양자 회담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첫 번째는 앞선 진행된 방식으로 이란 핵 관련 다자 협상에서 별도로 추진될 양자 회담이다. 두 번째는 올해 9월에 개최될 유엔 총회에서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만나는 등 다양한 형태의 양자 회담이 추진되는 것이다. 윌리엄 헤이그 영국 외무장관은 이번 유엔 총회에서 이란 외무장관과 만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미국의 적'인 이란은 우리에게 어떤 나라일까? 적인가, 우방인가? 두부모 자르듯 쉽게 양자택일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니다. 다음과 같은 역사적 과정과 실상들을 살펴보자. 한국과 이란은 오는 10월 23일에 수교 52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서울에 '테헤란로'가 있듯이 테헤란에는 '서울로'가 있다. 수교 40주년을 기념해서 2002년 테헤란에 '한국 광장', 2003년에는 '서울 공원'이 조성되었다. 이렇게 도로, 광장 그리고 공원 이름으로 한국이 언급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물론 양국 간 관계가 좋았던 것만은 아니었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은 친미 국가에서 반미 국가로 바뀌었고, 이어서 1980년에서 1988년까지 이란-이라크 전쟁 시기에 북한이 이란에 군수품을 지원하면서 정치·군사적인 동맹 관계를 강화하자 우리와는 불편한 관계가 되었다. 한국은 1981년 7월 7일 이란을 대사대리급으로 격하했다가 1989년 1월 24일 대사급으로 정상화하면서 활발한 경제 교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란은 한때 한국의 중동 최대 교역국이자 해외 건설의 6위권을 차지했던 큰 시장이었다. 2010년 7월 1일 미국의 '포괄적 이란 제재법'이 발효된 이후 우리 정부는 9월 8일 '대이란 유엔 안보리 결의안 1929호 이행 관련 정부 발표문'이란 이름으로 미국의 대이란 제재에 동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이란 수출 규모는 꾸준히 증가해 2011년 60억6800만 달러, 2012년 62억5700만 달러로 늘어났다. 하지만 2013년 7월 1일 미국의 국방수권법 발효에 따라 교역 부문도 점차 타격을 받게 되었다. 이란산 원유는 2011년 전체 원유 수입량의 10퍼센트에서 2012년 6퍼센트로 떨어졌다. 한국의 에너지 해외 의존도는 97퍼센트 수준에 이르며, 국가별로는 사우디아라비아가 가장 많고 이어서 쿠웨이트, 카타르, 이라크, 아랍에미리트, 이란 등이다. 석유공사에 따르면 재작년 이란산 원유 평균 단가는 배럴당 103.20달러로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다른 지역 106.64달러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지역의 원유로 대체하면 도입 단가가 상승하고 국내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것이다.

산업연구원(KIET)은 지난달 19일, '이란 신정부 출범 이후 대이란 교역 전망'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의 대이란 교역이 단기적으로는 미국의 대이란 제재 강화로 어려운 상황이 지속될 것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제재 완화 이후에 대비한 포석이 필요하다고 전망했다. 앞으로 전개될 미국의 대이란 정책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미국과 이란이 적대 관계이더라도, 우리나라와 이란은 그런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은 사실상 이란과 거래를 끊어도 별다른 피해가 없지만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 미국의 이란 정책은 철저하게 실리주의와 현실주의에 입각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도 일방적으로 미국의 입장에 동조하기보다는 국익에 맞추어서 추진해야 할 것이다. 또한 경제 우선주의를 벗어나 문화·예술·스포츠를 통한 공공 외교를 펼쳐야 한다. 진정한 공공 외교란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다. 이란은 우리의 적이 아니다.

필자 소개

유달승 교수(한국외국어대학교 이란어과)는 중동 정치 전문가로 이란 테헤란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동은 불타고 있다>(나무와 숲, 2011), <이슬람 혁명의 아버지 호메이니>(한겨레출판(주), 2009) 등의 저서가 있다. 역서로는 <예루살렘 전기>(시공사, 2012), <정치적으로 왜곡된 이슬람 엿보기>(도서출판 인간사랑, 2009), <중동의 비극>(한울 출판사, 2007), <팔레스타인/이스라엘>(한울 출판사, 200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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