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지난 7월 3일 61년 만에 이루어진 2차 쿠데타는 이집트 역사상 최초의 민선 대통령을 축출했다. 이어서 쿠데타에 항의하던 무슬림형제단을 향해 군부가 무차별 총격을 가해 1000여 명이 사망하는 등 최악의 유혈사태도 일어났다. 그리고 마침내 8월 22일 30년간 장기집권하며 '현대판 파라오'로 불린 무바라크가 석방되었다. 이는 과거 독재 시대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가? 군부의 유혈진압을 비난하면서 부통령직을 사임한 엘바라데이를 자유주의세력이 중심이 된 구국전선은 '배신자'라고 불렀고 그는 현재 '국민을 배신했다'는 혐의로 기소 위기에 처해 있다. 2년 전 무바라크를 퇴진시키며 '이집트의 봄'을 주도한 주역들은 이번 무바라크의 석방에 침묵하고 있고, 단지 좌파 성향의 '4월 6일 청년운동' 만이 이를 비판하며 항의시위를 계획했다가 취소했다.
이집트의 위기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 위기는 과연 어디에서 시작되었나? 이것은 이슬람주의 세력 대 세속주의 세력이라는 단순한 대립구도가 아니다. 여기에는 기득권 세력 대 도전 세력 그리고 친서방 세력 대 반서방 세력 등 다양한 요인들이 복잡하게 결합되어 있다. 이번 위기의 출발점인 쿠데타를 둘러싸고 희한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무력으로 정권을 빼앗는 일'을 쿠데타라고 규정하고 있다. 쿠데타는 쿠데타다. 아무리 미화하고 포장해도 쿠데타는 쿠데타다. 무르시 정권이 아무리 실정을 했더라도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선출된 대통령을 쿠데타로 축출하는 것은 불법이다. 미국은 처음부터 애매모호한 입장만을 취했고 아직까지도 쿠데타 여부를 명확히 규정하지 않고 있다. 미국의 입장은 독재냐 민주냐가 아니라 친미냐 반미냐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 쿠데타는 맞지만 쿠데타가 아니란다.
이집트의 현대정치사는 군부 정치개입의 역사이다. 이집트 군부는 2012년 6월 30일에서 2013년 7월 3일까지 무함마드 무르시 통치기간을 제외하고는 1952년 쿠데타 이후 사실상 이집트를 장악해 왔다. 물론 무르시 정권이 실제로 이집트를 통치했는지도 미지수이다. 이집트 군부는 단순한 군인이 아니다. 그들은 군대 뿐만 아니라 정계, 관계, 재계, 언론계 등 모든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1962년 사회주의 국가를 표방하면서 기간산업체와 기업들을 국유화했지만 사실상 군부가 이 모든 것을 장악했고 심지어 은행과 언론사까지 차지했다. 이집트 경제에서 군부가 차지하는 자산 규모는 25%에서 40%에 이른다고 한다. 정확한 통계수치를 알 수 없는 이유는 그 실체를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군 예산은 의회에 공개되지 않고 외부기관의 감사도 받지 않는다. 군부는 평면 텔레비전과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에서 올리브 오일과 생수 등 다양한 생필품은 물론 심지어 여행사, 부동산, 주유소 등 손을 뻗치지 않은 곳이 거의 없을 정도로 방대한 '경제 제국'을 형성하고 있다. 카이로 아메리칸 대학의 칼레드 파흐미(Khaled Fahmi) 교수는 이를 군산복합체의 회색 경제(grey economy)라고 부른다.
군부에 의한 무르시의 축출은 사실상 무슬림형제단의 패배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무슬림형제단의 실패요인은 무엇일까? 첫째, 무슬림형제단은 정치, 경제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오히려 무시했다. 2011년 무바라크 정권 붕괴 이후 무슬림형제단은 자유정의당을 창당해 사회정치 단체에서 정당으로 변신을 시도했고 2012년 총선에서 47%의 의석을 차지해 제1당이 되었다. 그 이유는 다른 정당에 비해 뿌리 깊은 대중적 기반을 바탕으로 탄탄한 조직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유정의당은 이집트 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지 못한 채 비선출 위원회로 구성된 무슬림형제단의 지도부에 의해 전적으로 의존하는 폐쇄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이는 무르시의 통치스타일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독단적인 국정운영으로 세속·자유주의 세력과 소수 기독교계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되었다.
둘째, 무슬림형제단은 이집트의 이슬람주의 세력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데 실패했다. 강경 이슬람주의 세력인 살라피스트의 알 누리 당은 2012년 총선에서 약 25%를 득표하며 제2당이 되었다. 알 누리당은 한때 무르시 정권의 지지기반이었지만 쿠데타에 동조하면서 이슬람주의 세력 대 세속주의 세력 간의 대립으로 표면화된 갈등구조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어 이슬람주의 대 이슬람주의의 대립과 갈등이라는 명분을 주었다. 사실상 이슬람주의 세력의 분열을 확산시켜 무슬림형제단을 더욱 고립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현재 무슬림형제단의 앞길에는 많은 난관이 놓여있다. 군부는 강경일변도로 무슬림형제단을 무력탄압하고 과도정부의 하젬 엘 베블라위 총리는 내전도 두렵지 않다면서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지만 이에 대한 무슬림형제단의 대응도 효과적이지 않다. 이는 변화된 이집트 내부의 역학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무바라크 시대에서 무슬림형제단은 유일한 반정부세력이었지만 포스트 무바라크 시대에서는 무슬림형제단 이외에도 다양한 정치세력이 등장해 활동하고 있다.
무르시는 이집트의 에르바칸이라 할 수 있다. 1995년 12월 터키의 에르바칸 총리가 이끄는 복지당은 제1당의 지위를 차지하면서 터키 역사상 최초의 이슬람 집권당이 되었다. 에르바칸 정권이 친미 노선을 탈피해 이슬람 노선을 강화시키자 1997년 3월 군부는 에르바칸 총리를 쫓아내고 복지당을 해체시켰다. 현재의 집권당인 정의개발당은 복지당의 후신이다. 터키의 이슬람주의 정당은 단순한 저항이 아니라 합리성과 중도를 표방하면서 2001년 정의개발당을 창당했고 현 에르도안 총리는 2003년 집권한 이후 세 번째 연임해 성공했다. 터키의 경험은 무슬림형제단에게 많은 교훈을 줄 수 있다. 즉 이슬람주의 정당이라 하더라도 함리성과 중도를 지향한다면 현실 정치세력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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