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분쟁 등 한일 간에 해상 마찰이 빚어지고 있는 가운데 '한일 간 군사 분쟁'을 담은 강우석 감독의 초대형 야심작 <한반도>가 촬영을 마쳤다. '미래에 일어날 수도 있는 한일 간 군사적 대립'에서 시작된 이 허구의 이야기는 최근에 잇달아 터지고 있는 한일 외교분쟁 사태와 맞물리며 점차 그 '폭발성'을 더해 가고 있다. 영화처럼 한국과 일본은 실제로 '한판 붙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영화가 현실을 닮아가는 것인가, 현실이 영화를 닮아가는 것인가. <한반도>쯤이 되면 현실이 영화를 복제하고 있는 꼴이 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7월 13일 개봉을 목표로 한창 <한반도>의 후반 작업에 매달려 있는 강우석 감독에게 그같은 최근의 한일 정세는 당혹스러운 일일까, 반가운 일일까? 분명한 건, 다른 때와 달리 강우석 감독이 자신의 영화에 대해 극력 말을 아끼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그만큼 영화 내용이 갖는 휘발성이 만만치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강우석 감독을 만나 <한반도>를 놓고 여러 얘기를 나눴다.
강우석 감독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 영화 <한반도>는 한·일 간의 군사 분쟁을 다룬다. 공교롭게도 독도 영유권 분쟁 등 현재 한국과 일본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정치, 군사적 문제와 영화가 흐름을 같이 하고 있다. "<한반도> 기획은 2년 전에 이루어졌다. 촬영은 작년 10월에 들어갔고. 조금씩 군국주의적 모습을 갖춰가는 지금의 일본과 계속 논쟁이 돼 왔던 독도문제, 교과서 사건 등을 보면서 앞으로 군사적 갈등으로까지 번지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2010년대쯤 되면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 거라 막연히 생각했는데 촬영 기간 중에 한일 관계가 급격히 나빠졌다. 조금 당혹스럽다.(웃음) - 전작 <실미도>에서는 분단 이데올로기의 가장 예민한 지점까지 건드렸다. <한반도>에서의 남북은 이미 화해무드도 한참 지난 관계다. 우리의 주적은 일본이라는 느낌을 준다. 상업영화를 추구하면서도 어떻게 보면 항상 시대를 조금씩 앞서가며 작업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시대적 감각은 어디서 나오나. "시나리오, 영화 제작 단계에서 많은 이들과 합의해서 만들어내는 것이지 나 혼자 하는 일은 아니다. 대신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새롭냐, 처음 시도되는 영화냐' 이런 것에 닿아 있다. 그걸 가장 먼저 생각한다. 내가 만드는 것뿐 아니라 기획도 마찬가지다. <혈의 누><오로라 공주>를 기획할 때도 새로움을 가장 눈여겨봤다. <실미도>는 왠지 내가 찍으면 재미있게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제목이 '한반도'다. 민족적 감정을 굉장히 자극한다. 일본의 군국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역으로 우리의 국가주의적 정서를 건드린다. 어떤가? 영화 속에서라도 제대로 한판 붙는 건가? "전쟁이 곧 일어날 것처럼 군사적 대치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 정도만 얘기하겠다. 관객들이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속이 후련해 할 수도 있겠고 아니면 오히려 더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다. 일본에서 이 영화를 본다면 '이럴 수 있느냐'는 격한 반응을 할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기획 단계에선 근미래에 이런 상황이 올 수도 있겠다 여겼다. 두 나라의 관계가 악화되는 '픽션'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의 국가 정세 때문에 영화가 점점 논픽션화 되어 가는 것 같아 걱정도 된다. 그리고 당신이 얘기하는 것처럼 이번 영화를 만들면서 내가 가장 신경을 썼던 것도 이 영화가 강성 우파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는 꼴이 돼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영화가 어느 쪽을 지향하는지는 영화를 보고 나면 알게 될 것이다." -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를 해보자. 영화가 내린 이념적 결론은 어떻게 되나? "영화감독이 쓸데없이 직접 입으로 이념, 사상 이런 걸 왜 말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 영화는 정치적 선동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일제시대를 거친 과거와 달리 지금의 한국은 일본에게 그저 약자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미래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이제는 과거와 달리 대처한다는 거지. 혹은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 거나. 역사적 인식을 새롭게 하고 현실의 국제정세에 대한 새로운 자각, 뭐 그런 게 이 영화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쉽게 얘기하면 예컨대 이런 거다. 최근의 독도 영유권 문제 등으로 인해 우리나라 사람들 마음에 '차라리 한판 세게 붙자'는 생각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우리나라 군사력과 일본 자위대 군사력은 엄청난 차이가 난다. 우리가 한참 뒤떨어진다. 한일간의 문제는 따라서 냉철한 판단, 현실적인 판단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반도>에는 그런 고민들이 많이 담겨 있다."
강우석 감독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 아무튼 비록 영화에서이긴 하지만 이제 일본보다 북한을 더 가깝게 생각하게 된 것 같아 재밌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모두 통일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니까. 그 당위성을 모두 받아들이니까. 영화는 때론 현실을 정확하게 모사하는 법이다. 최근의 국제정세, 특히 미일 동맹이 이루어지는 것 등등은 우리를 둘러싼 현실이 결코 쉽게 돌아가고 있지 않다는 것, 우리는 우리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나는 <한반도>가 지금의 시대에 있어 민족주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주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 - 근데 그런 얘기는 상업적 흥행에서는 별반 도움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안 그래도 한창 후반 작업중인 <한반도>를 본 사람이 '일본 수출은 생각도 안하냐, 왜 일본 시장을 포기하냐'고 말하더라. 하지만 난 내수시장에 대한 애정이 더 크다. 수출 등 여러 가지 문제는 2차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에겐 우리의 정서를 나눌 수 있는 우리 관객이 더 중요하다. 내수 시장을 지키는 게 내 몫이라고 생각한다." - 대략 알려진 내용은 그저 '한·일 군사적 대립'이지만 사실 고종이 잃어버린 국쇄를 찾는 과정부터 이야기가 이어지는 걸로 안다. 따라서 영화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은 물론 한일합방부터 거의 120년을 그린다. 스케일이 굉장히 크다는 얘기다. "많이 아는군.(웃음) 맞다. 고종 때 국쇄가 없어졌다. 해방이 되면서 맥아더가 일본에서 다시 빼앗아 돌려줬다는데 한국전쟁 때 또 없어졌고. 문제는 한일 합방을 할 때 이 국쇄가 안 찍혔다는 거다. 중요한 건, 을사늑약 전인 100여 년 전과 지금의 현실이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이고 그게 이 영화의 키 포인트다. 그 당시 대신이 하는 멘트가 지금의 각료들이 할 법한 얘기와 비슷하고. 프랑스, 영국, 러시아, 청나라 등 열강에 둘러싸인 과거의 구도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이야말로 100여 년 전 역사가 되풀이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영화의 구성도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넘나들도록 꾸몄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 편집되면서 두 시대와 두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묶여나간다. 그렇게 해놓고 보니 영화가 기대보다 훨씬 다이내믹해졌다." - 내용도 내용이지만 촬영 규모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해상 신이 특별히 많았을 것 같은데 해상 촬영들은 어떻게 했나. "실제 바다에 나가서 하지 어떻게 했겠나. 남해는 진해와 부산 사이에서, 동해는 포항에서 독도로 가는 방향에서 찍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어떻게 해보면 스펙터클이 살 것 같지만 사실 컴퓨터 그래픽은 화면을 대형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일 뿐이다. 다 실제로 찍었다. 그런 면에서 아마도 지금까지 만들어진 한국영화 블록버스터 가운데 최고의 대작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우리 영화계로서는 그같은 해상 신 촬영은 매뉴얼도 별로 없었을 것이다. "우선은 하늘이 도왔다. 날씨가 너무 좋았고, 촬영 전에 정확하게 계획을 하고 나가서 다시 찍을 일은 없었다. 장비 면에서 처음 시도된 것들도 많았고. 그렇게 해서 얻어낸 해상 장면들은 골라내는 것이 고민일 정도로 풍부하게 마련되어 있다. '저게 뭐야?' 이런 말은 절대 안 나올 거라고 확신한다. 미국에서도 많이 해보지 않은 해상 신도 찍었고. 그림, 영상만으로 드라마가 충분히 전달될 만큼 잘 나왔다."
강우석 감독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 당신의 영화는 캐릭터 간의 긴장감이 뚜렷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한반도>는 어떤가? "우선 한국과 일본이라는 국가적 대립각이 있지. 하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항상 내부에 적이 있게 마련이다. 강대국에 대해서는 오로지 순응하고 살아야 한다는 세력들이 현실에도 꼭 있듯이. 그런 면에서 한일관계보다 오히려 내부 대립에 더 초점을 맞췄다. 이번 영화는 한두 명의 배우가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8~10명 정도가 이야기를 끌어간다. 입체적으로 모든 인물을 끌고 가면서 다양한 인물의 다양한 소리를 담으려고 했다." - 안성기, 문성근, 차인표, 강수연, 조재현. 초호화 캐스팅이다. "모든 연기자들의 강력한 협조가 아니었으면 이번 영화는 불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미도> 때도 그랬지만 나는 연기자 복이 많다. 이번엔 연기자들에게 유독 잔인하게 군 것 같은데도 말이다." - 스타 시스템이면서도 스타 시스템이 아니라는 얘기인가? "맞다. 외형적으로 보면 스타시스템의 영화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 캐스팅할 때 누가 그 역할에 가장 설득력이 있나를 따지고 따졌다. '적역'을 캐스팅하려고 노력했지, 스타를 캐스팅하려고 노력한 영화는 아니다. 혹자는 너무 스타급들이 많이 나오니 오히려 각각의 배우가 약해 보인다고 하더라. 원래 '대작'은 연기자 한둘이 끌고 가긴 어렵다." - 총 제작비 규모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시작할 때 순제작비로 100억을 잡았다. 거기서 오늘까지 딱 96억2000을 썼으니까 남았다.(웃음) 홍보, 마케팅까지 다 합치면 120억~130억 정도 들지 않을까 싶다."
<한반도> 촬영 현장 ⓒ이노기획
- 한국영화시장을 놓고 볼 때 그 정도 제작비면 큰 영화다. 내수 시장만 생각한다면 위험 요소가 꽤 많을 듯한데. 그런 면에서 당신은 승부사 같다. "사실 그 동안의 영화들은 운이 좋았다. 흥행 쫓겠다 생각하고 실패한 적은 없다. 새로운 영화들은 물론 위험부담이 크지만 내가 잘만 만들면 손해 보지는 않는다. 투자해서 망한 경험 꽤 있다. 하지만 그런 구멍은 다른 영화가 또 채워주더라. 그보다 관객 기대에 못 맞추면 어쩌나 하는 게 가장 큰 걱정일 뿐이다. <공공의 적><실미도>보다 못하단 소리를 들으면 어쩌나 하는 거 말이다. 돈이 아니라 영화가 비난 받을 때 그게 가장 큰 문제 아닌가." - <실미도>에서 <한반도>까지. 당신은 영화적 소재를 이제 벌릴 만큼 벌렸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앞으로는 더 할 얘기가 남아 있지 않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떤가? "처음에 상업영화 만들면서 제목에 '한반도' 이렇게 달다니 내가 너무 건방졌구나 하고 후회했다. 그리고 지금도 부담된다. 하지만 찍고 나서 보람을 느꼈다. 진부하게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내가 한국인이구나"라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됐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우리의 이야기를 계속 하고 싶다. 사회성을 건드릴 수 있는 얘기들. <투캅스><공공의 적>과 같은 얘기, 소재는 아직도 내겐 무궁무진하다. 당신 걱정과는 달리 난 계속해서 영화를 만들 것이다." - 진행: 오동진 프레시안 무비 수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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