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의혹이 빗발치는 가운데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던 '바다 이야기' 사태가 소강 국면으로 접어드는 것 같다. 이제 사태의 방향타는 검찰로 넘어갔다.
이런 시점에 맞춰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바다 이야기' 문제에 대해 "마음으로 사과 드린다"고 공식 언급하기도 했다.
이날 노 대통령은 문제가 터진 지 한참 뒤에야 사과한 이유에 대해 "진작 그 사과를 하지 않았던 것은 대체로 위로 수준의 사과라면 쉽게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정책적 책임이라든지 오류에 대한 책임으로서의 사과는 좀 더 신중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노 대통령은 '바다 이야기' 사태는 "아주 복합적인 원인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 대책을 세우기가 어렵다"며 "우리가 비싼 수업료를 낸다고 생각하고 좀 인내해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이런 노 대통령의 발언을 접하고 답답해하는 이들이 많다. '바다 이야기'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을 짚지 못 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박에 빠진 사회는 병든 사회다. 그런데 왜 한국 사회는 그토록 쉽게 건강성을 잃어 버렸는가? 이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신과 전문의 김현수 씨도 이런 생각을 품은 이들 중 하나다. 김 씨는 급격하게 진행된 사회 양극화에 따른 심리적 공황이 한국 사회를 순식간에 도박 공화국으로 몰아갔다고 지적했다.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너도 나도 '대박'의 환상에 사로잡혔다. 성실한 노동을 통한 계층 이동의 통로가 차단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박'으로 통하는 길은 정보와 권력에 접근할 수 있는 소수에게만 열려 있다. 결국 이런 소수에서 배제된 다수의 서민들은 '도박을 통한 대박'이라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도박을 통한 대박'을 꿈꾼 결과는 참혹하기 그지없다. 최근 '바다 이야기' 류의 도박 게임이 창궐하면서 수많은 이들이 이런 함정에 빠져들었다. 그들은 단지 돈만 잃어버린 게 아니다. 정신이 황폐화되고 인간관계가 단절됐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정신질환으로 이어진다.
정신과 전문의로 활동하며 다양한 도박 중독자들을 만나 본 김 씨는 이런 질환은 단지 개인의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노동을 통해 꿈꿀 수 있는 희망이 사라진 사회의 필연적인 결과라는 것이다.
김 씨가 이런 생각을 담을 글을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김 씨는 "도박에 빠진 아버지,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는 어머니, 인터넷 중독에 빠진 아들로 이루어진 가족을 진료하던 중 이글을 쓰게 됐다"고 밝혔다. 〈편집자〉
부자가 되는 것. 그것은 2006년을 살아가는 많은 한국인들의 꿈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큰돈을 벌 수 있을까?
우선 떠오르는 게 정경유착을 통한 방법이다. 그 다음으로는 부동산 투자가 있다. 또 주식 투자를 통한 길도 있다. 이도 저도 안 되면? 마지막으로 도박이 있다.
로비와 투기로 얼룩진 '바다 이야기'…한국 사회 '부의 법칙' 잘 드러나
최근 '바다 이야기' 사태를 둘러싸고 말이 많다. '바다 이야기'라는 성인오락에 관련된 사람들이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고 한다. 한마디로 횡재를 한 것이다. 이런 소문을 듣고 업종을 바꿔가며 '바다 이야기'에 빠져든 이들도 적지 않았다.
성인오락과 관련된 이권으로 큰 돈을 번 이들의 이야기는 한국 사회에서 작동하는 부(富)의 법칙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자본주의의 세련된 실현은 별 도움이 안 된다. 로비와 투기라는 후진적인 방식이 부에 접근하는 지름길이다.
아둥바둥 일하느니 한 번의 '대박'을 꿈꾸겠다
언론을 통해 이런 이야기를 계속 접한 이들이 어떤 생각을 갖게 되겠는가. 당연히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으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군사 독재 시절에는 정경유착의 과정을 지켜보며 그런 생각을 품었고, 지금도 여전한 부동산 투기의 과정을 지켜보면서도 그랬다. 코스닥 열풍이 불던 시절 주식투자를 통해 부자가 된 이들을 보면서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온 국민이 열광했던 로또 열풍도 마찬가지다.
성인 오락을 통해 돈을 번 이들, 또 그들이 설치한 도박 기계 앞에서 밤새워 도박을 하던 이들도 모두 비슷한 바람을 품고 있었을 게다. 모두들 '대박'을 꿈꾼 것이다.
도박이 계층 이동의 유일한 통로?
도박 기계를 설치한 이들, 그래서 '대박' 터뜨린 이들은 잠시 논외로 하자. 그 기계 앞에서 도박을 하는 이들은 무슨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일까? 정말 도박을 통해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일까? 물론 도박으로 '대박'을 터뜨릴 가능성은 매우 낮다. 다들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많은 이들에게 도박은 계층이동을 위한 거의 유일한 통로가 돼 버렸다. 너무나 희박한 가능성이지만 '대박'만 터뜨리면 계층이동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것이다.
"노동이 부끄러운 사회"
그래서 노동은 도박 앞에서 부끄러운 존재가 돼 버렸다. 어차피 아무리 해도 희망을 주지 못하는 '노동'보다 실낱같은 희망이나마 던져 주는 도박이 더 아름답게 비친다.
노숙자들이 노숙 상태에서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하는 가장 흔한 이유가 바로 도박이다. '언제 돈을 모아 집을 사들이겠는가', '언제 다시 가정을 세우겠는가' 하는 생각에 빠져드는 순간 도박의 매력에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일거에 모든 것을 회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인 까닭이다. 도박이 계층이동의 희망이 꺾인 사회에서 창궐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삶에 지친 중년 남성들에게 우리 시대는 너무 어렵다.
'바다이야기'를 드나든 이들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 게 40대에서 60대 사이의 성인 남성들이라고 알려져 있다. 필자도 최근 바다이야기에 빠진 이들을 만날 기회가 종종 있었다. 주로 가족들이 그들을 병원에 데리고 온다. 필자가 만나본 이들의 면면은 이렇다.
대형 할인 마트에 잡아먹힌 구멍가게 주인, 패밀리 레스토랑에 밀려난 김치찌개집 아저씨, 중소기업에 다니지만 고액연봉은 꿈꿀 수 없는 기름때에 절은 봉급장이, 교통체증과 사납금에 스트레스로 충전된 택시 기사 등이다.
중년의 생산직 노동자, 소자본가, 중소기업 직원인 이들에게 지금의 시대는 너무 난해하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했기 때문이다. 사회는 돈이 없는 이들에게 점점 더 가혹해져 간다. 그래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세 가지 방법, 즉 정경유착, 부동산 투자, 주식 투자는 평범한 중년 남성에게 모두 너무 어렵다.
'도박'을 통한 '대박'…"고스톱은 성적 순이 아니다"
"부동산 투자는 과학"이라고 한다. 그래서 과학과 친하지 않은 보통 사람은 주눅부터 든다. 주식투자는 아예 용어부터 알아 먹기 어렵다. 정경유착을 해보라고? 권력을 쥔 이들이나 공무원들과는 원래부터 친하지 않았다.
어느새 공부를 하지 않으면 돈 냄새 자체를 맡기 힘든 시대가 돼 버렸다.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답답하고 헷갈린다.
그런데 공부를 별로 안 해도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눈이 번쩍 뜨이지 않겠는가. 그게 바로 도박이다. 어차피 "고스톱은 성적 순이 아니다."
도박의 창궐은 계층이동 욕망의 사회적 표현…"자식 때문에 도박한다"
그런 점에서 도박의 갑작스런 창궐은 우리 사회의 계층 이동 욕구를 잔뜩 머금고 있는 욕망의 표현인 셈이다.
사실 자본주의 체제의 가장 큰 매력은 계층 이동의 가능성이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갖고 있는 이런 매력이 사라져 가고 있다. 이제는 누구나 노동을 통한 계층 이동이 불가능해지고 있음을 안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도 자본주의 이전의 신분제 사회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신분제 사회라는 게 뭔가. 자식에게 자신의 신분을 물려주는 사회다.
중장년 상당수 남성들은 불안해진다. 자식에게 자신의 신분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다. 아무리 노동을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굴레를 물려주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야기한다. "자식 때문에 도박을 하고 가족 때문에 도박을 한다"고.
저성장과 양극화, 퇴행의 조건
그런 서민들의 피고름이 모인 돈이 또 몇몇 기획자들과 작전 세력들에 의해 갈취를 당했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도박업계는 다름 아닌 뱀파이어 연합이었고 서민들은 깜깜한 밤길에 줄서서 뱀파이어들에게 헌혈해주러 들락날락해준 꼴이 되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역대 정권 중 가장 왼쪽에 서고자 했던 정부 하에서 일어났다고 하니 더 기가 막힐 노릇이다.
저성장 사회에 양극화 사회가 더해지면, 사회는 한편으로는 무기력해지고 한편으로는 탈관습화된다. 새로운 활기가 사라진 상태에서 기존의 관습과 질서가 해체되면 사회는 퇴행한다.
한국보다 먼저 저성장 사회를 경험한 일본의 경우를 보라. 일본의 우경화는 이런 퇴행의 결과다. 파시즘도 이런 사회심리적 조건에서 발흥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금 박정희를 그리워하고 있는가.
심리적 공황이 낳은 극단적 행동, 도박…어차피 "모 아니면 도"
저성장은 기대를 꺽고 양극화는 기회를 뺏는다. 기대가 꺾이고 기회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심리적 불안 상태에 빠진다. 그리고 이런 상태에서는 불안을 달래기 위해 극단적인 행동을 저지르기 쉽다. 극단적인 판단 중의 하나가 바로 "All or Nothing", "모 아니면 도"라는 식의 판단이다.
도박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장면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가진 것 전부를 거는 베팅 말이다. 그것이 바로 도박심리이고 심리적 공황기에는 누구나 이런 도박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미래에 대한 기대가 사라졌다…남은 것은 '대박'의 열망뿐
근대화 초기에 적극 장려했던 저축이 사라지고 있는 것도 위험한 징후다. 환자들과 상담하다보면 "저축보다 도박이 낫지 않나요"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애써 아껴 일주일에 몇 만원을 저축해서 얼마 이익도 보지 못하느니, 차라리 집에 들어갈 때마다 잘 골라놓은 번호들로 기입된 로또복권에 투자하고 왼쪽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이 더 낫다는 게다.
성실하게 일하고 차곡차곡 저축하는 것을 통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는 기대심리가 사라진 것이다. 기대심리가 사라진 자리에 들어선 것은 오직 '대박'을 향한 간절한 열망뿐이다.
게다가 어느새 종신고용은 사라졌다. 젊은 나이부터 퇴직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복지가 엉망이라 기댈 곳은 없다. 자영업은 포화 상태다. 그래서 회사를 나오면 마땅히 할 일이 없다. 게다가 곧 국민연금이 고갈된다는 뉴스가 잊어버릴만 하면 한 번씩 나온다.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일은 많지만 시원한 물을 끼얹어주는 이야기는 없는 셈이다. 부모를 잘 만났거나 이미 한 몫 잡은 사람들이 아닌 바에야 누구에게도 참 어려운 세상이다.
누구나 알면서 속는 게임, 도박
그래서 먼저 한 몫 잡은 이들이 너무 부럽기만 하다. 자식들이 자신처럼 부모 잘 만났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마음이 급해진다. 어서 달려가는 수밖에 없다. 도박장으로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도박이 그런 꿈을 실현해줄 리 만무하다. 도박은 모든 사람이 횡재하고 돈을 따는 자선 행위가 아니다. 도박은 언제나 잃는 사람이 더 많다. 처음 들고 온 돈을 다시 가져가는 사람이 몇 안된다.
더구나 바다이야기처럼 기계와 하는 도박은 더욱 그렇다. 프로그램에 따라 얼마든지 조종 가능한 디지털 게임들이다. 기계와 하는 도박은 사람과 하는 도박과 달리 개평도 없다. 그래서 도박하는 사람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업주들이 돈을 벌고 관련 인사들과 세력들만 돈을 벌게 된다.
도박의 부산물은 속임수와 폭력
이런 사실을 모르는 이는 드물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잘 아는 이들도 한번 '도박을 통한 대박'의 유혹에 빠지면 쉽게 헤어나오지 못 한다.
왜일까? 대박의 유혹이 강한 만큼 돈을 잃었을 때 드는 '본전에 대한 아쉬움'도 강렬하기 때문이다. 본전만 뽑으면 손을 떼겠다는 허망한 약속을 남발하게 된다. 결국 약속은 깨지고 정신을 차려보면 이미 가산은 탕진한 상태다.
도박에 빠진 이들이 이도저도 안 되면 어떻게 될까. 속임수를 쓴다.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도박에 속임수와 폭력이 따르는 것은 수많은 도박 영화의 단골 장면이 아니었던가.
'바다 이야기'는 사라져도 마음 속의 도박장은 남아 있다
그래서 도박이 무서운 것이다. 설령 도박으로 쏠렸던 사회가 잠시 후 정상으로 돌아온다 해도 도박의 부산물인 속임수와 폭력은 남는다.
어차피 사람들을 도박장으로 이끌었던 사회심리적 조건이 사라지지 않은 한 곧 새로운 도박장이 들어설 것이고 사람들은 다시 열광할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도박이 낳은 새로운 속임수와 폭력이 우리 사회를 할퀴고 갈 것이다.
'바다 이야기'는 정부의 단속으로 곧 사라지겠지만 이미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새로운 도박장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도박장은 새마을 운동 식의 계몽이나 단속으로 없앨 수 있는 게 아니다.
신기루와 투기의 자리에 희망과 노동을 심자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문제를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 정확한 진단이 이뤄져야 치료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도박이 창궐하는 사회는 어떤 곳인가? 앞서 장황하게 이야기했지만 사실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다.
도박이 횡행하는 사회는 희망이 없는 곳이다. 희망은 없고 신기루만 있는 사회다. 도박이 횡행하는 사회는 노동이 없는 곳이다. 노동은 없고 투기만 있는 사회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신기루와 투기가 있던 자리에 희망과 노동을 심을 수 있을까?
다소 추상적이지만 방법은 하나다. 갈수록 허망해져가는 우리 시대의 소외된 생산자들이 자유주의, 저성장,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해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다. 새로운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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