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3편으로 구성된 이번 기획의 두 번째 주제는 '정당정치의 위기와 민주노동당'으로, 서복경 국회도서관 입법정보연구관이 썼습니다. 이 글은 코리아연구원(www.knsi.org)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편집자>
Ⅰ. 위기, 위기, 위기…
작년 말 이후 집권당이 정체성의 위기로 요동을 치는 가운데 그 여파는 안정적으로 보이는 대통령 선거 후보를 확보한 한나라당에도, 17대 처음 원내에 진출한 민주노동당에도 여지없이 미치고 있다. 정당은 반드시 단일한 정체성을 가진 개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내 구성원 각각의 정체성에 연동하게 된다는 진리를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특히 원외에서 출발해서 이념정당·대중정당을 표방하며 첫 의회정치를 경험한 민주노동당이 현재 정당정치의 격변을 어떻게 맞이하는가는 향후 변화될 정당정치의 모습을 가늠하는 데 중요한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1950년대 이후 우리나라 정당사에서 계급과 노동의 담론을 정면으로 내건 최초의 정당이고 대중조직의 집단적 지지에서 출발한 유일한 정당이며 당비 납부 당원이 100%에 이르는 정당모델을 실험하고 있기에, 이 실험이 어떤 결과를 낳든 향후 우리나라 정당사에서 중요한 평가지점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최근 민주노동당이 겪는 파동은 생각보다 심각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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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1일 민주노동당 집권전략위원회에서는 '위기의 진보진영, 대반전 가능한가?'라는 제목의 토론회를 개최했고, 그 자리에서 민주노동당 기관지위원회 위원장은 '민주노동당 중심의 진보대연합'을 제안했다. 한편 지난 2월 10일 민주노동당 2007년도 제1차 중앙위원회에서는 대선후보 선출과 관련하여 '민중경선제'라는 것이 제안되어 당 대회 의제로 의결되었다. 최근 민주노동당의 일련의 행보를 보면서 두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 하나는 정당으로서 민주노동당의 '위기'의 내용이다. 다른 하나는 '민중경선제'라는 것이 다른 정당들이 고민하는 '개방형 경선제'와 어느 지점에서 만나고 또 분기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민주노동당 집권전략위원회는 '위기의 진보진영'이라는 상황인식과 함께 자신들을 위기의 한가운데로 밀어 넣었다. 그런데 과연 민주노동당의 '위기'를 구성하는 내용은 무엇일까? 2004년 17대 총선 이후부터 두드러진 집권당 내부, 그리고 집권당과 정부 간의 정책갈등은 집권당의 정체성 위기를 논하기에 충분한 근거를 제공한다. 당이 표방했던 정체성에 해당하는 정책영역에서 사사건건 충돌했던 당과 정부, 그리고 당내의 첨예한 갈등은 하나의 정치적 결사체를 더 이상 유지하기 힘들다는 선언과 줄 이은 탈당이 있기 이전에 이미 유권자들의 평가를 받았다. 집권당의 '위기' 인식과 대안모색은 이유가 있다.
하지만 이해하기 힘든 점은 민주노동당이 그 한가운데 뛰어들어 위기에 충분히 공감하고, 단계를 뛰어넘는 '진보대연합'과 '민중경선제'라는 대안을 채택하려 하고 있는 현 상황이다. 현재의 정치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기에 이런 대안의 구조 속에 놓이게 된 걸까?
Ⅱ. 위기→?→민주노동당 중심 진보대연합
우선 '위기→자기중심의 대연합'이라는 담론구조를 살펴보자. 우리나라 유권자들, 특히 스스로 진보적이라 생각하는 유권자들에게는 아주 익숙하고도 고통스러워서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은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논리구조가 아닐 수 없다. 권위주의에서 탈출하려고 몸부림칠 때도 그러했고 민주화 이후에도 선거 때마다 등장했던 '반대'의 동원논리이자 새로운 갈등을 배태했던 논리가 그것이었다.
우리나라 정당들은 '위기의 원인진단→대안의 정체성에 대한 합의→선거연합의 다양한 단계에 대한 모색과 각 정치세력의 높은 결의에 따른 후보전술'이라는 수순을 밟아본 경험이 없다. 항상 위기는 그 자체로 모여야 하는 압박으로 치환되었던 것이다. '무엇을 위해, 어떤 기준에서, 누구와 함께 혹은 누구와 따로'라는 지극히 정상적인 논리구조는 막상 정치의 구조에 들어서면 사라져버렸고, 격변의 시간이 지나면 단계를 뛰어넘은 '대연합'이 낳은 후과에 몸살을 앓아야 했다.
그런데 기존 정당체제 전체와 이념적으로, 또 조직적으로 차별을 선언하며 등장했던 민주노동당이 지금 시점에서 왜 이러한 내용이 전제되지 않은 '수'의 논리를 끌어와야 하는 걸까? 정말 위기라고 생각한다면 위기의 원인진단과 대안마련을 위한 협의구조를 제안하고 그 속에서 자당의 입장을 밝혀 서로 함께 할 수 있는 지점과 따로 서야 할 지점이 분기되었을 때 즈음, 당원들의 동의를 얻어 적정한 수준의 선거연합을 제안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항상 '그들'의 진보와 '자신들'의 진보는 이념과 정책에서, 사회적 기반에서, 당의 조직적 기반에서 '다르다'고 선언했던 정당이라면, 적어도 그 차이와 함께할 수 있는 지점에 대해 당내에서 먼저 논의를 조직하고 당원들의 결정을 위임받아 선거연합을 논했어야 한다. 그 전제가 누락되었다면, 민주노동당의 행보는 '다른' 이념정당을 표방했던 정체성과 당원들에게 당의 정책결정권을 부여하는 유일한 정당이라는 대중정당의 정체성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위에 다름 아닌 것으로 보인다.
Ⅲ. 민중경선제?
민주노동당의 지도부가 중앙위원회에 '민중경선제'를 제안하고 이를 옹호한 논리구조는 정확히 '개방형 경선제' 혹은 '오픈 프라이머리'를 둘러싼 파동 범위 내에 있다. 문제의식은 민주노동당에 우호적인 대중조직, 더 정확히 말하자면 민주노동당에 우호적인 활동가들이 지도부에 포진해 있는 대중조직에도 민주노동당 대통령 선거 후보 지명권을 공유하게 하여 지지기반을 넓혀보자는 것으로 해석된다. 혹은 2월 21일의 토론회에서 발언 수위를 보면 열린우리당이 대안이 아니라고 인식하는 진보진영의 다른 정치집단들과도 경선의 형태로 선거연합을 모색하자는 안까지 나아갈 수도 있겠다.
필자가 문제로 보는 것은 선거연합이 아니다. 정당의 공식적인 의결절차를 거쳐 후보전술까지도 대상으로 하는 수준 높은 선거연합이 필요하다고 결정된다면, 하면 된다. 단, 그 전에 왜 그처럼 수준 높은 선거연합이 필요한가에 대해 정면으로 당원들에게 문제를 제기하고 설득하고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리고 그 제안과 결정은 비당원 개인 선거인단에게 후보지명권을 부여하는 방식이 아니라 집단으로서 누구와 어떤 기준으로 어떤 수준에서 연합할 것인가에 대해서 솔직히 제안하고 동의를 얻는 방식이어야 한다. 그것은 대중조직이든 정치단체든 상대방도 마찬가지다.
민주노동당이 표방하는 대중정당 노선은 이해관계에 따라 집단으로 조직된, 혹은 집단적 이해관계에 기초한 유권자 집단의 지지를 동원하기 위한 조직전략이다. 이를 위해서 각 집단 내에서 정당의 강령을 설득하고 지지를 조직화할 훈련된 당원들의 합력을 극대화하는 것이 대중정당 노선이다. 후보지명전에 참여할 선거인단의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념과 정책을 매개로 결사한 당원들이 설득할 수 있는 유권자 집단의 크기가 중요한 것이다.
반면 '개방형 경선제'는 의회 의원을 중심으로 결사하여 개별유권자들의 개체화된 지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고안된 후보지명방식이다. 일상적인 시기에 정당과 유권자 집단을 매개할 상시적인 채널이 없거나 필요로 하지 않는 정당에서는 선거 시에 미디어를 통해 힘을 과시할 수 있는 당원수가 중요하다.
민주노동당이 지향하는 정당노선에서 대통령 선거 후보 지명은 일상적인 시기 다양한 정책결정과정을 통해 훈련된 당원들의 최고의 권한행사 과정이자 훈련과정의 집약된 결과다. 그런데 그들의 결정과 후보지명 과정에서 일회성으로 결합한 사람들의 결정이 동질의 가치로 놓이게 되는 순간, 정당은 개별 비당원의 지지를 얻는 것이 아니라 오랜 노력을 투자해서 훈련해 온 당원들의 충성심을 상실하게 될 수 있다. 정당이 당원들만으로 후보를 선출하는 것이 폐쇄적이며 후보지명 과정을 개방하는 것이 참여의 확대라는 논리에 빠져드는 순간, 당은 적지 않은 시간동안 당원들의 시간과 노력과 재정을 들여 만들어 온 '정체성'과 눈앞에 보이는 '수'의 유혹을 바꾸는 결과를 낳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현재 40~50%에 이르는 정당지지 유보층, 그 가운데 자신의 문제를 대표할 정당이 없어 손을 놓고 있는 유권자군의 지지를 조직할 기회를 상실하게 만들 수 있다. 지금 그 유권자들은 자신이 지지를 유보하거나 관심이 없는 정당의 후보지명전에 초대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목소리라도 꾸준히 자신의 삶과 직결된 문제를 제기하고 조직하기 위해 곁에서 애쓰는 그 당 당원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Ⅳ. 정당정치의 위기와 민주노동당
다시 처음의 문제제기로 돌아가면, 현재 민주노동당의 '위기'의 내용은 다름 아닌 단계를 뛰어넘은 '진보대연합' 주장과 '민중경선제'를 채택했던 상황인식에서 확인된다. 그리고 지금 민주노동당의 모습은 우리나라 정당체제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 즉 끊임없는 정체성 변환과 참여자 수 변동으로 선거를 앞두고 스스로를 정치집단으로 조직할 유권자들에게 '비전의 선택'이 아닌 '위기의 회피'를 강요하는 관행에 포획된 또 다른 현상으로 보인다.
현재 언론과 여러 지면을 통해 전개되는 '진보진영의 위기' 논의는 개별 정당의 위기와 차원을 달리하는 문제다. 국가권력을 획득하고 운영하겠다는 정치집단의 시야가 당장 눈앞에 놓인 선거일정까지밖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 그 자체가 '진보진영의 위기'를 구성하는 핵심지점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한때 부패하고 수구적인 정당으로 보수적 유권자들에게조차 외면을 받았던 한나라당이 지금 전성기를 구가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는 '누구'를 대표할 것인가를 정확히 지켜내면서 보수적 유권자들이 철회했던 지지를 되돌려줄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는 점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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