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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공존과 관용의 사회'를 거부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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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누가 '공존과 관용의 사회'를 거부하나?

<기고> 세계병역거부자의 날, 다시 '한국'을 돌아보다

매년 5월 15일은 세계병역거부자의 날(International Conscientious Objectors' Day)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조직된 반전단체 WRI(War Resisters' International·전쟁저항자 인터내셔널)가 정한 이 날은 1982년 시작돼 이어져 내려 오고 있다. 한국에서도 2003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과 그 지지자들의 모임인 '전쟁 없는 세상'이 결성된 이후 이 날을 기념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정부는 복무기간 단축 등을 포함한 새 병역제도를 발표했다. 그러나 여기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인정'은 포함되지 않았다. 지난해 UN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법적 처벌과 사회적 차별은 기본권 침해사항"이라며 대체복무제를 권고했으며, 이에 앞서 국가인권위원회도 2005년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할 것을 국회의장과 국방부 장관에게 권고했지만, 정부는 "시기상조"라는 말로 일관할 뿐이다. 전세계적으로 징병제를 유지하면서도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는 국가는 독일과 러시아, 스웨덴, 스위스, 덴마크, 노르웨이, 폴란드, 체코, 오스트리아,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35개국에 이른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도 종교 등을 이유로 한 국내 병역거부자들은 2003년 561명, 2004년 755명, 2005년 828명, 2006년 781명 등으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또 '전쟁 없는 세상' 등 평화단체들을 중심으로 이들을 지지하는 움직임도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민주노동당 당원인 김영진 씨(27)도 병역거부를 선언한 뒤 수감됐던 '양심적 병역거부자' 중 한 사람이다. 지난 2005년 다른 2명과 함께 병역거부를 선언했던 그는 1년이 넘는 수감 생활 끝에 지난달 30일 출소했다.

그가 세계병역거부의 날을 맞아 <프레시안>에 글을 보내왔다. 병역거부을 선언하게 된 까닭과 수감 생활을 돌이켜본 그는 "감옥에서 나는 또 다른 군대를 경험했다"며 "관용과 공존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 사회는 언제쯤 바뀌게 될까"라고 안타까워 했다. <편집자>

지난 4월 30일 오전 10시. 1년3개월여 영어의 생활을 뒤로 하고 담 밖으로 발을 디뎠다. 다른 병역거부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마냥 좋았다.

출소를 환영해 주기 위해 오신 분들에게 반갑고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담배를 태우고 있는 선배에게 한 모금을 청했다. 구속 전에 담배를 끊고 갔지만, 15척의 담 안과 밖, 금지된 것과 금지되지 않는 것의 차이를 일러주기에 그 담배 한 모금은 충분한 표식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담 밖으로 나왔지만 역시 이 사회는 구속 전과 다름없이 병역거부자에게 공존을 인정하지 않는다.

내게 '사회주의'는 반전과 평화에 대한 문제의식이었다

내가 병역거부를 하게 된 것은 특별한 계기나 사건 때문이 아니었다. 적어도 내 주변의 비종교적인 이유로 거부한 이들은 대부분 그랬던 것 같고, 범위를 좁혀 내 경우만 말한다 해도 어느 한 순간에 병역거부를 결심한 것이 아니었다.

그건 내가 그 동안 살면서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과 입영영장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병역거부라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그래서 입영일 즈음 "정치적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겠다"면서 "나는 사회주의를 지지하고 있으며 그 사상을 한국 사회에서는 적대적으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사회주의에 관한 나의 관심은 일상적인 것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경제적인 불평등에 대한 고민, 불평등의 역사와 마주치면서 사회주의에 대한 생각을 이어갔으며 그 생각을 삶 속에서 이어갈 공간을 물색하던 중 민주노동당에 입당했던 것이다.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이 사회주의라는 말을 들으면 일단 북한을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한반도의 아픈 역사다. 그러나 나는 북한을 사회주의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몇 개의 사회주의적 시스템을 가지고 있을 뿐, 사회주의 체제라고 부르긴 무리다. 오히려 내게 사회주의의 이미지는 북유럽이나 서유럽의 사회주의에 닿아 있다. 사회주의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어떻게 사회주의자들이 전쟁에 저항했는지 알게 됐다. 제1차 세계대전 전 전운을 감지한 그들의 반전행동, '군국주의는 자본주의적 모순 속에 생겨났다'는 사회과학적 인식 등 사회주의 내에서 반전과 평화에 대한 문제의식은 상당했다.

그렇게 알게 된 것들은 내 삶 속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분명하게 만들었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관계, 자본주의 속에서 군대가 갖는 성격, 군비에 의한 의료·교육·사회복지 예산의 축소, 그리고 유사시 희생당할 피지배층에 대한 생각이 나를 의정부306보충대가 아닌 의정부교도소로 가게 만든 이유였다.

한국적 상황에서 '정당'하지 않기 때문에 실형을 선고받다
▲ 지난 2005년 김영진 씨 등 3명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쟁없는 세상

2005년 12월 1일. 나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과 후원인들의 모임인 '전쟁 없는 세상'의 활동가 이용석, 김태훈 등과 함께 입영을 거부하겠다는 의지를 기자회견을 통해 밝혔다. 그 후 2006년 2월 7일 경찰서에 출두했고 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뒤 같은 달 10일 영등포구치소에 수감됐다.

'여호와의 증인'의 신자들이 그동안 닦아놓은 길(?)이 있어서 그런지 재판은 형식적이었다. 재판부는 병역거부 이유에 대한 심리를 두 번에 걸쳐 진행했고, 한국적 상황에서 내가 병역을 거부하는 이유는 '정당한' 이유가 아니라는 판결과 함께 1년 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나는 1심 이후 항소하지 않았다. 한국 사법부의 반복되는 판결, 그리고 보수정당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입법부의 대체복무제도 법안에 대한 변하지 않는 부정적인 태도로 인해 희망이나 기대를 걸지 않았기 때문이다. 6월 말 나는 의정부교도소로 이감됐다.

여기가 교도소인지, 군대인지…짓궂은 감옥의 현실

교도소는 사회의 연장이었다. 그래서 그곳의 생활은 밖의 것과 많이 닮아 있다. 물론 외적으로는 엄청나게 다르다. 갇힌다는 것이 그렇지 않다는 것과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근간에 유행하는 미국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에 나오는 교도소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드라마 속 배경은 미국이고 여긴 한국이다. 한국의 재소자들은 그런 시설을 보면 아마 호텔이라고 하지 않을까).
▲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하는 이들의 이유는 다양하다. 그러나 한국 정부와 사회는 이와 같은 '다양성'의 공존을 인정하지 않는다. 지난 2003년 한국의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며 병역거부를 선언했던 강철민 이병. ⓒ연합뉴스

단 그 곳의 작동원리는 외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재소자의 계급성과 자본력은 담장 밖의 것이 그대로 들어와 있었다. 거칠게 말해 '돈 있고 권력 있는 자'는 편히 살고, 그렇지 못한 자는 힘들게 산다. 혹자는 "그래봤자 교도소의 재소자"라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그 차이는 크다. 간단한 예를 들면, 돈이 있는 사람이 수 년의 형을 받고 살아도 그의 가정은 온전히 보전된다. 그래서 상당히 안정적인 수형 생활을 할 수 있는 반면, 돈이 없는 사람은 수용돼 있을 때 가정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내 주변에 그런 사례들이 종종 있었다.

교도소 내의 사람들은 밖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남성 재소자들은 한국사회 대부분 남성들과 다르지 않게 남성 중심적 사고방식과 국가관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경험한 재소자들은 그 안에서도 군대 이야기를 하곤 했다. 짓궂은 감옥의 현실이다.

그들은 나에게 밖에서 사람들이 한 것과 비슷한 질문을 해 왔다. 남과 북의 대치상황, 그리고 내가 사회주의자라는 사실을 두고 북한과의 연결고리를 찾으려고 했다. 이런 인식은 재소자이건 재소자를 관리하는 교도관이건 큰 차이가 없었다. 한국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편협한 것인가를 내게 증명하듯 그들은 계속 말을 걸어 왔다. 난 굳이 설득하려 들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있는 곳이 교도소인지 군대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반공주의가 여전히 '먹히고' 있는 '자유로운' 한국 사회의 공간을 사실 구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구별할 필요도 없었다. 이곳에서도 사상의 관용과 공존보다는 억압적 방식이 작용했을 뿐이었다.

감옥에 들어가는 이를 지지하는 모순, 언제쯤 없어질까

출소 후 나는 그간 도움을 준 분들을 찾아뵙고 있다. '전쟁 없는 세상'과 내가 활동하는 단체인 '평등사회로 전진하는 활동가연대(준)'와 민주노동당 당원들은 갇혀 있는 동안 내게 많은 힘을 주었다.

'전쟁 없는 세상'은 내가 출소한 후에도 예전과 마찬가지로 분주하게 움직인다. 누군가가 총 대신 평화를 선택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갇혀 있는 동안 여러 명의 친구들이 구속되었고, 나와 같이 기자회견을 했던 친구들은 나보다 나중에 구속되었기 때문에 아직 영어의 몸이다. '전쟁 없는 세상'의 그 '분주함'이 결코 좋은 소식으로만 다가오지 않는 이유다.
▲ 2002년 5월 15일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을 맞아 벨기에 브뤼셀 나토(NATO) 본부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평화운동가들. ⓒwww.wri-irg.org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기도 하지만,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이기도 하다. 또 한 명이 이날을 맞아 기자회견을 준비 중이다. 나는 그 곳에서 지지발언을 할 예정이다. 마음이 편치 않다. 누군가 또 감옥으로 들어가는 걸 지지한다니 모순이 아닐까. 모순 맞다. 이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해결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사회가 관용의 사회로 모습을 바꾸기를 거부한다면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공존하는 곳이 되기 힘들 것이다.

갇혀 있는 동안 몸이 안 좋아 여러 차례 담 밖 병원을 가곤 했다. 출소 후 지금도 병원을 다니고 있다. 병원에 가면 그때 기억이 난다. 병원 갈 때면 수갑 두 개를 착용하고 포승줄을 매야 했다. 그리고 도주를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여러 명의 직원이 나를 감시한다. 진료를 받으려고 진료실 앞 의자에 앉아 있으면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차가운 시선들 가운데서 어느 여성의 손을 잡고 진료를 기다리는 아이의 맑은 눈이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는다. 그 아이는 자유로운 땅에서 살 수 있을까.

* '전쟁없는 세상'은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을 맞아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견지동 평화박물관건립 추진위원회 사무실에서 수감을 마친 11명의 병역거부자에 대해 유엔에 인권침해 여부를 가려줄 것을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할 예정이다. 또 이들은 병역거부자들에게 여권을 발급하지 않고 대학 입학을 허가하지 않는 콜롬비아에 대한 항의 행동으로 서울 종로 콜롬비아 대사관 앞에서 1인시위를 진행할 예정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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