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이 심상정 비상대책위를 출범시키고 전열 정비를 모색하고 있지만 지금껏 전개돼 온 당 진로 논란이 깔끔하게 매듭지어지기는 쉽지 않을 듯 보인다. 특히 자주파와 평등파 진영의 강경한 인사들에게 종북주의 논쟁은 심상정 체제 등장 이후에도 진행형이다.
심 위원장이 당 쇄신의 의지를 밝힌 14일 <프레시안>에는 두 학자(강정구 동국대 교수, 조현연 성공회대 교수)의 기고문이 도착했다. 강 교수는 종북주의의 허상을 지적하며 평등파 진영을 논박한 반면, 조 교수는 민노당에 종북파가 실존한다며 진보신당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두 사람은 민노당 싱크탱크인 진보정치연구소의 이사(강정구)와 전직 부소장(조현연)이라는 점에서 민노당 이념갈등의 단면을 보여준다. <편집자>
2007년 12월 대통령 선거, 민주노동당에 대한 징벌과 심판
민주노동당은 죽었다! 2007년 12월 19일. 이 날은 민주노동당이 유권자들로부터, 아니 노동자와 서민들로부터 배반에 대한 징벌과 심판을 받은 날로 기록될 것이다. 사표 심리도 작동하지 않은 호조건이었음에도 17대 대선은 민주노동당의 존재감이 사라진 선거였다. 비전도 전략도 메시지도 그 어느 것 하나 없었다. 감동이 없는 것은 당연했다. 진보정치연구소 여론조사에 따르면 당 지지자의 76%가 투표했고, 이 가운데 23.5%만이 권영길 후보를 찍었다고 한다. 3.01%에 712,121표는 그 당연한 결과였다.
불과 몇 년 전인 2004년 4월 15일. 17대 총선을 통해 민주노동당은 그토록 소망하던 정치적 시민권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루며 당당하게 원내로 진출했다. 가난한 다수의 보통사람들은 자신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며 희망을 설계해낼 새로운 대안 정당이 출현할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희망을 가졌다. 그에 따라 민주노동당에 대한 인지도와 호감도가 가파른 상승곡선을 탔으며, 한 때 당의 지지율은 20%를 넘는 가운데 미래의 유력 정당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진보학계에서도 "단순히 진보정당이 아니라 한국전쟁으로 분단이 고착화된 이후 최초의 정당다운 정당의 출현", "근대적인 사회적 균열에 기초한 정당이자 역사적 비전과 대안을 제시하는 정책정당이며 진성 당원 중심의 당내 민주화를 진행해 온 민주적 대중정당", "자본주의적 산업화에 따른 사회적 모순에 뿌리를 둔, 전후 세대를 중심으로 한 제2세대 진보정당이자 기층대중조직의 조직적 역량에 기초한 진보정당의 원내 진출", "'기대-실망-좌절과 거부 사이클'의 반복적 악순환이라는 한국정치의 고질적인 특성을 해소시켜낼, 그리하여 기성 정치에 대한 대중적 분노를 '기대-희망-신뢰와 참여 싸이클'의 선순환 구조로 바꿔낼 중요한 정치적 전기의 마련" 등 민주노동당에 대한 찬사를 쏟아냈다.
그러나 그 날의 감격을 잊지 못한 채 당 활동가라는 자긍심으로 비록 힘들지만 즐겁게 살아온 많은 사람들, 바로 그 사람들이 민주노동당이 스스로 진보정당임을 포기한 것에 대해 언제부턴가 좌절하고 분노하면서 이제는 하나둘씩 당을 떠나 일상으로 돌아가거나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모색을 하고 있다.
대중들의 지지 철회와 활동가들의 이탈, 이것은 후보 개인을 넘어서 당에 대한 해산 요구이자 총체적 파산 선고에 다름 아니다. 민주노동당이 안팎으로 극한의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 우여곡절 끝에 얼마 전 심상정 비대위가 중앙위원회를 통과하였다. 한쪽에서는 회의의 눈빛이, 다른 한쪽에서는 경계의 눈빛이 혁신을 통한 제2창당을 내건 비대위에 가해지고 있다.
비대위는 어떤 혁신안을 당대회에 제출할 것인가? 난파당한 민주노동당은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그것은 일단 위기의 근본 원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그에 기초한 정확한 처방이 제시되고 실현될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위기를 가져왔는가? 위기의 근원은 무엇보다도 민주노동당이, 아니 당의 지도부와 당권파로서의 지배 정파가 반응(responsiveness)과 책임(accountability)이라는 현대 민주정치의 기본 원칙을 저버린 데 있다. 17대 대선 결과는 그것의 집약적 표현이었다. '긴 과정의 마지막 의식(ceremony)'인 득표 결과는 기본적으로 긴 과정의 잘잘못에 대한 '인민의 평결'이라는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온 민주노동당의 역사, 보이지 않는 권력에 의해 거부된 책임정치
2004년 총선 이후 지금까지 민주노동당의 역사는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온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역사적 궤적은 민주노동당이 유권자와 지지자들의 요구와 문제 제기에 응답하거나 반응하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는 과정과 한 짝을 이루면서 진행되었다.
사실 민주노동당 지지자들과 잠재적 지지층은 2005년 울산북구 보궐선거와 2006년 지방선거 등 선거와 실망과 항의의 여론을 통해 계속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적색 경고등이 커졌음에도 그에 대한 당 지도부의 반응은 묵묵부답이었다. 책임을 회피한 것이다. 특히 참패로 끝난 2006년 지방선거의 경우 평가도 책임 주체도 없었다. 당권파인 자주파는 모르쇠로 일관했고, 소수파인 평등파는 당이 깨질까봐 결과적으로 이에 공모했다. 지지율은 하향곡선을 그렸고 대중은 계속 멀어져만 갔다. 당은 당대로 무기력에 빠졌고 당 내부 시스템은 붕괴되었으며 위기는 계속 쌓여만 갔다. 지지자의 눈에 비친 민주노동당은 편협한 정파 이익을 추구하는 권력기회주의적 정치집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당의 산파이자 최대 주주인 민주노총이 운동적 건강성과 노동계급 대표성을 포기 또는 상실한 채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이익집단화 경향을 보여온 것 역시 부정적 효과를 만들어냈다.
대통령 후보 경선과정에서도 인민의 신호에 대한 무시는 마찬가지로 진행되었다. 세대교체를 통한 변화와 새로움을 기대한 지지자들이나 유권자들의 뜻과는 달리, 결과는 민심과는 동떨어진 후보의 선출이었다. 보이지 않는 권력으로서 당내 지배 정파가 자신의 특정한 이해관계 관철을 위해 경선 결과를 왜곡시킨 것이었다. 그것은 결정적인 것으로, 지지자의 실망에 따른 항의 이탈은 확정적인 것이 되었다. 이처럼 경고에 대한 지속적인 당의 무시와 거부에 대해 지지자들은 17대 대선에서 표로써 복수를 감행한 것이다.
누군가 갈파한 것처럼, "민주노동당은 경선을 끝으로 대선을 미리 끝내 버렸다. 대선의 결과는 그 의미를 확인해주는 절차에 불과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당내 지배분파와 후보뿐이었다."
대선 참패 이후에도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은 채 파행의 연속이었다. 선거 후 당권파인 자주파, 특히 그 핵을 차지하고 있는 종북파의 태도는 마치 멈춰버린 고장난 시계를 연상시킨다. 하루 24시간 동안 딱 두 번 맞는 걸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그 시계는 지금의 사태가 얼마나 엄중한지를 이해할 실력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다자 대결구도 등 객관적으로 불리한 조건 때문에 대선 결과는 어쩔 수 없었다거나, 모두가 책임이라거나, 힘을 합쳐도 3%이기 때문에 합심 단결해야 한다거나, 또는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책임을 전가하면서 있지도 않는 종북이 아니라 분열을 꾀하는 종파가 문제의 근원이라거나, 분당하고 싶으면 조용히 나가라거나 하는 등등이 그것이다. 이런 목소리가 나오면 나올수록 책임 실종의 상황은 반복되고 상황은 더 악화될 뿐이었다.
'9월테제' : 민족지상주의-통일지상주의-반미자주화로 무장한 종북파는 분명 있다
왜 이들에게는 진심어린 반성과 성찰이 없는 것일까? 왜 스스로의 실체를 부인하는 것일까? 명확하게 있는 것을 없다고 부정하면 유령과의 싸움만 전개될 뿐 소통은 불가능하다. 자기 성찰 역시 당연히 있을 수 없게 된다.
물론 자주파 전체가 종북주의 노선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민족지상주의-통일지상주의-반미자주화로 무장한 종북파가 자주파를 장악하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비종북 자주파의 자유 선언이 없었다는 것, 민주노동당을 숙주로 해서 종북파가 자신들의 숙원사업을 하나씩 전개해온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데 있다. 이들의 기본 노선과 숙원사업은 2001년에 마련된 59쪽 분량의 <3년의 계획! 10년의 전망!>, 이른바 9월테제라는 문건에 잘 드러나 있다.
그 핵심 골자는 "자주·민주·통일이라는 우리의 거룩한 대강령" 아래 "조국통일의 대사변기를 맞이하여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과 연방통일조국 건설을 기필코 이루고야 말겠다는 각오로 10년의 전망을 바로 세워내고, 그를 위해 승리의 조직적 담보인 강고한 민족민주전선과 (자주민주통일을 강령으로 정치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민족민주정당 건설을 위한 3년 계획의 수립"이다. 그리고 "이남의 변혁운동의 전략적 중심방향"으로 반미자주화 투쟁을 설정하고 있으며, 이 투쟁은 "이남 민중만의 과제가 아니라 전민족적 과제이며 반미자주화를 실현하는 힘 역시 전체 민족자주역량으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자주·민주·통일을 대강령으로 하고 있는, 그리고 1930년대식 통일전선전술의 사고를 담고 있는 9월테제의 내용은 '민주 평등 해방의 새 세상을 향하여' 새로운 길을 찾는 민주노동당의 강령과 기본정신을 자신의 길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선언한 것에 다름 아니다. 결국 자주파가 온갖 불법·편법을 저지르면서 지역과 중앙을 장악하면서 당권파가 된 것, 당권파가 된 후 승자독식의 원칙 아래 저질러온 숱한 패권주의적 행태들, 다수의 횡포를 통해 이루어진 독선과 독단의 사례들, 재정문제를 둘러싼 여러 의혹들, 북핵문제에 대한 상식 이하의 태도나 이른바 '일심회 사건', 코리아연방공화국 파동 등은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시대착오적인 9월테제의 내용을 억지로 현실화시키려는 데서 필연적으로 빚어진 것이다.
이처럼 9월테제의 내용 및 그것의 폭력적·비상식적 관철과정과 함께, 북한의 김정일 체제가 전체주의 체제이며 그 내부에 심각한 인권문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반미와 민족의 이름으로 이를 일관되게 부인하는 것은 민주노동당의 핵심 질곡이 무엇보다도 종북-패권주의에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딴 소리를 하면서 진실을 감추려고 한다. 연북은 있어도 종북은 없다는 어설픈 항변이나, 당의 질곡을 정확히 지적하면서 그동안 누적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을 해당분자·분열주의자로 몰면서 출당조치를 요구하는 것이 그것이다. 지금 민주노동당의 활동 평가와 향후 진로를 둘러싼 안팎의 논란은 한마디로 상식과 비상식의 싸움 바로 그것이다.
종북-패권주의 문제 해결 없이 민주노동당의 미래는 없다
만약 종북-패권주의 문제를 거론한 조승수, 김형탁, 한석호, 김종철이 해당분자라면, 홍세화와 이덕우도 해당분자일 것이며, 나 역시도 해당분자라는 낙인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조선노동당이 아닌, 한국사회 진보정당이 새롭게 거듭나기를 바라는 의지와 활동에 찍힌 영광스런 낙인이자 자랑스런 상처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종북-패권주의 문제를 가볍게 보고 정당 내부에 정파적 갈등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목소리도 들린다. 또 민주노동당에 그동안 들인 공인 아까워 이 문제에 대해 일정한 타협책을 제시하면서 미봉적인 화해를 조성하려는 분위기도 있다. 또 양비론의 시각에서 이른바 평등파의 문제를 이와 대등한 위치에 두고 낡은 정파구도 일반의 청산이 신뢰 회복에 더 중요하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 진정성 여부와는 달리 민주노동당을 일종의 '식물 정당·사오정 정당'으로 만드는 길이자 결국은 완전한 사망에 이르게 하는 지름길일 따름이다.
물론 성찰과 혁신을 통한 새롭게 거듭나기는 평등파에게도 요구된다. 그동안 의도와는 상관없이 적대적 공존의 구도 속에서 문제를 봉합하면서 공생해온 것이 사실이며, 따라서 <전진> 그룹을 비롯한 평등파가 책임져야 할 몫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임에도 경중이 있고 선후가 있어야 한다. 차원이 다른, 드러난 실체와 드러나지 않은 정체불명의 권력에 대한 구분도 필요하다. 당내 책임을 지지 않는 비가시적인 권력의 존재는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종북-자주파에 의해 저질러져온 숱한 해당 행위에 대해 정확한 진상규명과 해결 없이는 누적된 상처와 좌절과 분노는 가라앉지 않을 것이며, 또 이반된 민심 역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다른 종류의 새로운 대안정당의 필요성과 운동질서의 전면적 재편
물론 종북-패권주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풀리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단지 새로운 정치적 실천을 위한 첫 출발일 뿐이다. 철저한 성찰적 반성을 통해 진보정당의 새로운 그릇을 만들어야 하고 그것은 구체적 삶의 터전인 생산현장과 생활현장, 그 만남의 접점으로서 지역현상에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튼튼한 뿌리를 내리는 가운데 오늘의 운동 현실을 돌파해내는 실마리를 만들어내야 한다.
지금 한국사회의 운동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지배 속에서 자기 전망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구조적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 학생운동은 물론이고 한 때 잘 나가던 노동운동을 비롯한 기층 민중운동과 각종 시민사회운동이 위기에 처한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변화해야 할 때 변하지 못한 데 따르는 혹독한 대가를 치루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현실은 운동질서의 전면적 재편을 강제하고 있다. 한 정치학자의 말처럼 이것은 "대안정당 없이 운동의 힘으로 이끌어 온 1단계 민주화가 이제 종결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자, 동시에 민주노동당 실패의 경험을 교훈으로 삼아 새로운 대안정당 건설이 시급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 그 긴장과 갈등을 더 강화된 형태로 보여줄 이명박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다른 종류의 새로운 정당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민주노동당의 전면 혁신을 통한 제2창당의 길과 새로운 진보신당의 길 두 가지가 존재한다. 제2창당의 길이 반성적 성찰을 통해 앞서 말한 혁신의 과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진보의 재구성에 나선다면 두 개의 길은 한 개의 길로 합쳐질 수 있다.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후자의 길인 새로운 진보신당 건설은 두 가지 현실로부터 출발한다. 변화와 새로움을 갈망하는 대중들의 요구에 반응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 그 하나라면,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민주노동당은 이러한 요구에 반응할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종북-패권주의 문제의 해결을 거부하는 정파가 위력적으로 존재하는 한, 비대위가 총선 등을 이유로 이 문제의 근원과 실체를 전면적으로 드러낼 의지가 없는 한 혁신을 통한 제2창당의 길은 임시방편용 봉합과 총선용 수습으로 귀결될 것이다. 결국 이념적, 조직적 기초가 다르고 세계관이 상반된 두 흐름이 적대적 공생관계로 한 울타리 안에 공존하는 것은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게 될 것이다.
1997년 여름 국민승리21 대선공약개발단에 첫 발을 들여놓으면서 '합법'진보정당 활동과 인연을 맺은 지 어언 10여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힘들긴 했지만 즐겁고 보람된 시간이었다. 뜻을 같이 하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꿈과 희망을 같이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미운정 고운정 다 든 이런 민주노동당에 대해 애정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마도 나 자신을 속이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내심 민주노동당이 전면 혁신을 통해 새롭게 거듭나 이미 흔들려버린 내 마음을 잡아줬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 조금이나마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섣부른 예단일지 모르지만, 위기의 일차적 책임 집단에 대해 비대위가 준엄한 판정을 내리고, 또 그것을 임시당대회가 수용할 것이라는 것을 현실적으로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열려져 있는 가능성의 공간
새로운 진보신당에게 가능성의 공간은 열려져 있다. 무엇보다 그것은 심각한 사회적 균열과 다양한 사회적 이해관계를 대표할 수 없는 현재의 정당정치 지형과 폐쇄적인 정치적 기회구조에서 비롯된다.
민주정부 10년 동안 보수독점의 정치적 대표체제는 변화 없이 온존되고 있다. 특히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뒤 보수화로의 정당 수렴 현상은 강화되었다. 제도권 내에서 정부여당과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보수정당 간에 실제 차이를 찾아보기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민생과 사회경제적 의제를 외면한 채 경제성장 제일주의라는 담론과 가치와 최우선의 지위를 차지하게 된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처럼 사회를 파편화시키고 다수의 사람들을 생존의 공포로 밀어넣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 한나라당과 대통합민주신당은 중첩되는 공간에 위치한다. 지금의 대통합민주신당은 정당이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권력기회주의적 집단의 선거용 프로젝트 정당에 불과하다. 한편 조만간 출범하게 될 이명박-한나라당 정부는 우리 사회의 상층 기득권 집단의 이익과 이해관계를 대표한다.
이들이 대표할 수 없는 넓은 공간이 여전히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경향신문 특별취재팀의 민주화 이후 20년의 열망과 절망(후마니타스, 2007)은 87년 이후를 열망과 절망이라는 열쇠말로 접근하면서, 오늘의 한국사회 모습을 '패자부활전이 없는 사회', '무한경쟁의 냉혹사회', 일할수록 빚이 늘어나는 현실' 등으로 그리고 있다. 그리고 "정권교체도 이뤘지만 변한 건 없습니다. 결국 6월의 꿈은 짧았죠."라는 표현으로 민심의 한 단면을 전하고 있다. 이와 함께 "무능한 진보가 부패한 보수보다 더 싫다", "휴머니즘이 사라진 진보"로 진보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있기도 하다.
바로 이 열망과 절망의 공간이 새롭게 거듭난 진보정당이 성장할 수 있는 사회적 공간의 존재를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즉 한국사회의 지형 자체가 빈부격차와 사회 양극화의 심화, 농업 피폐화, 녹색 위기의 가속화 등 심각한 구조적 위기를 안고 있고, 현 보수정치세력이 이 문제를 풀 의지나 비전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휴머니즘의 기초 위에 새로운 가치와 실력을 갖춘 대안의 진보정당이 성장할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은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불행한 것은 소외된 다수의 대중들이 자신이 선호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이들의 의사를 합리적으로 대표할 수 있는 좋은 정치적 조건, 즉 정당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현대 대의제 민주주의 하에서 선거는 '그네들만의 잔치판'이 아니라 가장 격렬한 계급투쟁의 집약적 공간이다. 그럼에도 좋은 정당 대안을 찾지 못한다면 유권자들이 좋은 역할을 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투표를 하지 않거나 엉뚱한 후보에게 표를 던지거나, 아니면 체제 밖으로 나가서 정치 일반에 대해 극도의 불신과 저항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뿐이다. 핵심은 대안의 구조가 바뀌면 대중적 지지와 선거에서의 투표 성향은 복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종류의 대안정당, 어떻게 거듭날 것인가?
새로운 대안정당으로서 진보신당의 필요성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하에서 대안정당 없이 가난한 다수의 보통사람들을 보호할 방법이 없다"는 기본적인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앞으로 건설될 '새로운' 종류의 대안정당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앞서 말한 것처럼 한 때나마 기대를 모았던 민주노동당은 정치체제 전반에 충격을 줄만한 다른 종류의 대안정당을 건설하는 데, 한국정치를 설명하는 독자적 변수로 자리매김하는 데 실패했다. 민심이 떠났다는 것뿐만 아니라, 이념정당이라는 규정이 무색하게도 편협한 정파 논리가 지배하는 가운데 통일된 강령과 규율은 사실 존재하지 않으며, 결과에 대한 책임의 문제도 제도화되어 있지 않다. 진성당원제라는 제도가 있음에도 평당원들과의 소통도 단절되었고 사회에 뿌리를 내리거나 대중적 지지를 확장하는 데도 성과를 내지 못했다.
새로운 종류의 대안정당은 이러한 민주노동당 실패의 경험을 기반으로 해서, 위기의 근원에 대한 성찰적 진단과 전망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민주노동당 위기의 근원은 종북주의에 기초한 패권주의와 민주노총에 대한 과잉 의존 두 가지로 모아진다. 북한문제와 민주노총이라는 이 두 개의 성역을 깰 때, 잘못된 과거의 경험을 반면교사하되 그것과의 철저한 역사적 단절을 통해 비로소 진보신당은 상처를 치유하고 사회에 뿌리를 내리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한편 정당도 조직이기 때문에 조직이 성장하고 커지면 커질수록 필연적으로 대면해야 할 주요 딜레마가 있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직시할 필요가 있다. 문제 해결의 단초는 숨김을 통해서가 아니라 드러냄을 통해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박상훈(후마니타스 주간·정치학)은 그것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대표를 통해 대중의 권익을 실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내는, 대표와 대표되는 자들의 불평등 관계가 불가피하게 증가하게 되는 딜레마(대표의 딜레마), 자발적 동원과 협력에 의존하던 데에서 인센티브 구조의 관리 없이는 참여를 확대 또는 지속하기 어려운 딜레마(참여의 딜레마), 권력을 통해 이념을 실현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이념추구자 중심의 당 조직을 지속하기 어려운 반면, 지위추구자의 증가와 수혜-후원관계의 성장에 따른 딜레마), 체계와 안정성을 위한 제도화가 불가피하게 가져오는 일상화, 형식화, 관료화의 딜레마(제도화의 딜레마), 끝으로 목표의 바람직함과 현실 가능성 사이의 불확정적 관계로 인한 심리적 불안의 딜레마(확신의 딜레마) 등.
이러한 딜레마를 풀기 위한 기제로서 중요한 것은 기성의 지배 이데올로기와 경쟁할 수 있는 대안적 이념의 발전과 리더십의 발전을 통해 정당이 성장하는 것이다. 정당은 인간의 공동행동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 대중의 확신을 조직하는 문제에 대한 책임을 제도화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정치의 중심 영역에서 정당의 형태로 민중적 요소가 다투어지지 않는 한 민주주의와 진보의 가치는 실현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진보신당이 지향해야 할 이념과 가치는 노동의 이해와 열정에 기초를 둘 수밖에 없다. 문제는 노동에 기초하되 다양한 새로운 진보의 가치들과 접속하면서 진보(이념과 가치)의 재구성을 이뤄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녹색과 평화와 소수자 인권 등을 적녹연대, 계급연대-사회연대를 통해 새로운 진보의 다양한 가치를 개방적으로, 수평적으로 재구성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진보정치연구소에서 얼마 전 발간한 <사회국가, 한국사회 재설계도>는 새로운 진보의 재구성을 위한 사회적 상상력의 날개를 펼칠 수 있는, 상대방을 새로운 세상으로 안내하는 축제로서 좋은 토론과 논쟁의 기초 자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진보의 재구성을 위한 소통과 실천 과정에서 대안의 좋은 리더십도 새롭게 만들어질 수 있다.
새로운 10년을 다시 시작하기 위하여
이러한 대안정당의 정치적 프로젝트는 소외된 대중들과 운동 사이에 가로놓인 거대한 철옹성의 벽을 뚫고 사회적 에너지와 병행할 때만 실현 가능한 것이다. 즉 소외된 하층의 목소리와 배제된 새로운 진보의 가치를 대표하고 조직할 때, 그리하여 대중들과 소통 가능한 새로운 언어 속에서 진보의 가치를 실현할 새로운 대중이 탄생될 때, 새롭게 거듭나면서 건설될 진보신당은 한국정치와 사회의 지배질서를 바꾸어내는 핵심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은 당원과 지지자들의 상처받은 자긍심을 치유해내면서, 한편으로는 다양한 운동과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가운데, 다른 한편으로는 학계, 법조계, 문화예술계 등 진보적 지식사회와의 결합을 통해 좀 더 앞당길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이 과정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새로운 10년을 다시 준비하는 데는 버거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기회가 찾아왔을 때 족쇄에서 벗어나 자유를 향한 첫 번째 행동을 시작해야 한다. 기회란 자주 방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첫 걸음은 잘못된 일체의 부조리와 비상식에 대해 은근슬쩍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아니오'라고 말하면서 세상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에서, 민주노총에서, 시민사회운동에서, 대학에서, 지역과 곳곳의 현장에서, 비록 조직되지는 않았더라도 각계각층의 사람들로부터 가슴 깊이 울려나오는 '아니오'라는 공통의 자유선언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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