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문제를 다루는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나는 늘 경제면 뉴스를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런 나를 요즘 괴롭히는 것은 5개월째에 접어들었음에도 어느 한구석 시원하게 풀리지 않는 삼성그룹 비자금 사건이다. 특검에서는 차명 계좌가 분명하다는데, 명의가 도용된 이들은 그것이 자기 계좌라고 우기고, 뇌물을 준 사람은 있는데 받은 사람은 없다. 특별검사가 수사를 위해 나오라는데도, 삼성그룹 임직원은 바쁘다며 특검의 요청에 불응했다. 배짱 두둑한 삼성 임직원의 행태는 검찰(경찰)이라는 전화 너머 목소리에도 급격히 졸아드는 마음을 갖고 사는 사람들에게 이해불가, 상식 밖의 일이다. 혀를 끌끌 차게 만드는 무소불위의 삼성은 아들을 끔찍이 사랑하사 대한민국을 쥐고 흔들어서까지 '삼성'을 물려주겠다고 결심한 이건희 회장과 그를 보위하는 임직원들의 합작품이다.
비단 삼성뿐만 아니다. '물량 몰아주기 거래'라는 생소한 용어를 친숙하게 만들어준 현대자동차그룹의 글로비스, 총수 일가에게 저가에 지분이 넘어간 한화그룹의 한화에스앤씨 사례에서 우리는 경영권을 아들에게 물려주고픈 재벌 회장의 집착이 사회적으로 어떤 물의를 일으키는지 똑똑히 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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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이 문제의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발행 사건 이후 10년이 다되도록 경영권 불법 승계 문제로 가시밭길을 걷고 있는 것을 보고 느낀 바가 있었을까? 삼성그룹에서 분리된 신세계그룹 총수일가는 2006년 5월 떳떳한 상속을 하겠다며, 정재은 명예회장의 신세계 지분을 자식에게 증여하겠다고 발표했다. 증여세만 3500억 원, 국내 재계의 상속·증여세 납부액 중 역대 1위 규모였다. 신세계 총수 일가의 어마어마한 금액의 증여세 납부는 신세계그룹에 윤리 경영이라는 도덕적 이미지를 선물해줬다. 그러나 신세계그룹의 과거 행태는 그렇게 좋게 보아줄만한 수준이 되지 못하였다.
지난 2006년 4월 경제개혁연대(당시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는 '38개 재벌 총수 일가의 주식 거래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보고서는 재벌 총수 일가에 이익이 되고 회사에 불이익이 돌아가는 유형의 이른바 '회사기회 유용 사례'를 지적했다. 경제개혁연대는 그 사례들 중 현대자동차의 글로비스 물량 몰아주기 거래와 더불어 신세계그룹의 '광주신세계' 경영권 포기 사례 역시 총수 일가의 이익을 위해 회사 경영진이 유망한 사업 기회를 포기한 사례로 지적하고, 당시 신세계 경영진과 광주신세계 경영진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삼성그룹이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저가로 발행한 후 이재용 전무에게 삼성그룹을 통째로 넘겨주는 일에 한창 몰두하고 있던 1990년대 말, 신세계는 고성장이 예상되고 있던 자회사 '광주신세계'의 경영권을 정용진 부회장에게 넘기는 거래를 했다.
자세한 경위는 이렇다. 1998년 4월 신세계가 100% 지분을 보유 중이던 광주신세계는 50만 주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그러나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던 신세계의 경영진은 자회사인 광주신세계의 주주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틀 후 50만 주의 실권주는 전부 당시 신세계 이사로 재직하고 있었던 정용진 부회장이 인수한다. 그 결과 신세계의 광주신세계 지분율은 100%에서 16.7%로 급감한 반면, 정용진 부회장은 83.3% 지분을 취득하고 광주신세계의 경영권을 장악한다.
당시 광주신세계의 1주당 유상증자 가격은 5000원. 광주신세계의 성장 가능성과 매출 현황 등을 고려할 때 상당히 저가였다. 이를 놓고 2008년 검찰은 당시 광주신세계의 유상증자 가격이 적정한 평가 방법을 거쳤을 경우 8409원에서 1만9434원으로 책정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러나 경제개혁연대는 검찰이 유상증자로 늘어난 주식수를 기준으로 적정 가격을 산정하고, 경영권 프리미엄을 고려하지 아니하는 등 판단을 잘못하였다고 생각한다. 경제개혁연대의 추정액은 최소 주당 8만9055원이다. 검찰이 정용진 부회장 등 당시 신세계 경영진에 대해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지만 경제개혁연대는 이에 승복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광주신세계는 향후 성장 가능성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회사였다. 그런데도 신세계 경영진이 당시 겨우 20억 원의 유상증자 대금이 아까워서 광주신세계의 대주주 지위를 포기했다는 신세계측 주장은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 비록 검찰이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하였지만 경제개혁연대는 포기하지 않고 당시 신세계 경영진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신세계 주식을 6개월 이상 보유한 주주로부터 1886주의 주식을 모으면 주주대표소송 제기가 가능하다. 그러나 주주대표소송 원고 모집을 위한 경제개혁연대의 주주명부 등사 요청에 신세계는 "단 1주의 주식만을 소유한 귀 단체의 요구에 응할 경우, 선의의 다른 주주에 대한 법률 문제 또는 법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뿐 아니라, 법적 책임과는 별도로 당사 기업 이미지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논리로 불응하였다.
원래 주주명부 등사는 1주의 주식을 갖고 있든, 10000주의 주식을 갖고 있든 주주라면 누구나 요청할 수 있는 권리이다. 더구나 경제개혁연대는 다른 목적이 아니라 신세계에게 도움이 되는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하기 위해 주주명부의 열람 및 등사를 요청했던 것이다.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하고자 하는 경제개혁연대에 대한 신세계의 행태는 현 경영진이 회사의 이익보다는 총수일가에 대한 소송을 방어하는데 더 주력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신세계가 스스로 얘기했듯이 윤리적인 기업으로 거듭나고 싶다면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현재 주주명부 등사에 대한 신세계 측의 비협조로 주주대표소송에 원고로 참여할 주주를 모집하는 작업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1998년 신세계 경영진을 상대로 한 주주대표소송에 뜻을 같이 할 신세계 주주 여러분의 연락을 기다린다. (경제개혁연대 : 763-5052, ☞바로 가기)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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