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문열 씨는 촛불 집회를 두고 "미국산 쇠고기만으로는 끝나지 않을 거라고 짐작했다"고 말했다. 어쩌면 그의 말이 맞을지 모른다. 지난 5월 2일 시작된 촛불 집회는 이제 대운하, 민영화는 물론 현 정부의 각종 실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지는 '진짜 광장'이 돼 버렸다.
그렇다면 촛불을 든 이들에게 촛불은 대체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언제까지 계속될까? 최근 삼삼오오 모이는 곳이면 어김없이 화제로 떠오르는 이 질문을 10여 명의 르포 작가가 대신 '촛불'들에게 던졌다. 이들은 지난 2003년 결성된 '삶이 보이는 창 르포문학팀' 소속 작가들이다. 그간 청계천 사람들의 삶을 기록한 <마지막공간>과 세계화 시대 비정규직의 이야기를 담은 <부서진 미래>를 펴냈던 이들은 이제 촛불 집회를 기록하기 위해 광장을 찾았다.
이들이 가진 공통된 문제의식은 촛불 집회가 단순히 미국산 쇠고기 문제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이들은 '신자유주의 정책이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임계치에 다다른 지점'에 서 있던 이들로부터 터져 나온 것이라고 보았다. 감성이 열려있고 예민한 10대가 먼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계기로 거리로 뛰쳐나왔지만, 그간 사회의 밑바닥에서 사회적인 고통을 견뎌온 세력이 참여하면서 사회 전반의 문제를 해결하는 광장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촛불 집회는 과연 어디까지 갈 것인가. 문제제기로 그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사회를 위한 가치들과 행동규범들이 만들어 내는 변혁의 과정이 될 것인가.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고 회의하고 새로운 시선을 만들어 내면서 르포작가들은 촛불시위에 참여한 사람들과 함께할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현장에서 만나서 의논하도록 하자." <편집자>
소설가 박민규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들은 "세계가 '깜박'한 인간들"이었다. 지난 5월 2일 청계광장에서 그들이 촛불을 들기 전까지는 분명 그랬다. 말 많고 탈 많았던 학교자율화조치에 대해 말 깨나 한다는 사람들은 한마디씩 거들었지만 정작 그들의 의사는 중요하지 않았다. 본고사가 학력고사로 바뀔 때도, 학력고사가 수능시험으로 바뀔 때도 마찬가지였다. 교복이 없어질 때도, 다시 부활했다며 입으라고 할 때도 당사자의 의견 따위는 없었다. 묵살된 것이 아니라 의견자체가 있을 수 없는 집단이 학생이고 10대 청소년이었다. 그러나 5월 2일이 지나자 각종 언론은 10대의 목소리를 받아 적기 여념이 없다. 누구는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웹2.0에 비유해 '2.0세대'라 호명했고 어떤 이는 인터넷으로 의식화하고 휴대전화 문자로 무장한 새로운 세대의 출현이라며 희망을 감추지 않았다. 앞으로도 한동안 각종 분석과 진단이 난무하겠지만 우리는 과연 그들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고 있을까? 아니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던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을까? 이런 의문이 이 작업을 시작하게 했다. 지난 6월 5일 72시간 연속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가 시작된 첫날에 거리에서 그들을 만났다.
"살려면 학교를 다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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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 올라 자유발언을 하는 10대들은 당돌하고 거침이 없는데다가 재기발랄하기까지 하다. "미친 소 너나 먹어!"를 외치는 그들의 얼굴은 분노가 아니라 웃음이 넘쳐난다. 그 활력이 "이명박은 땅 파지 말고 귀를 파라!"라거나 물대포에 대항해 "이왕이면 온수를!"이란 발칙한 구호들을 만들어낸다. 다음날이 공휴일이어서인지 예상보다 많은 청소년이 집회에 참여했고 늦은 시간까지 남아 있었다.
지난 5월 2일 첫 집회부터 참여했다는 조한영(가명, 고1)양은 스스로가, 그리고 같이 했던 친구들이 자랑스럽다. "그렇게 많이 모일 줄 몰랐어요. 완전 감동이었죠. 그리고 나중에 첫 번째 거리 행진 때도 있었는데 조금 놀랐지만 재미도 있었어요." 같은 학교 친구인 최나영 양은 인터넷을 통해 물대포를 쏘는 동영상을 보고 새벽에 울음을 터트렸다. "국민을 국민으로 대접하지 않는 거잖아요. 이번 일을 계기로 정치에 관심이 높아졌고 앞으로 내 인생에 많은 영향을 줄 거 같아요."
"정부가 초반에 조금만 유연하게 했으면 이렇게까지는 안 됐을 거예요. 괴담이다 배후다 그러니까 진짜 열 받았죠. 누가 배후조종 한다고 그게 되겠어요? 우리를 정말 너무 모른다는 거죠." 오늘 소풍을 갔다가 바로 이곳으로 달려왔다는 김성연(가명, 고3)양은 아는 게 없어서 인터뷰를 못한다고 손사래를 치더니 정작 인터뷰가 시작되자 말문이 터졌다. "공부는 고3의 숙명이죠." 명쾌한 답변에 옆 자리에 있던 친구들이 까르르 웃는다. 아침 7시에 집을 나가 12시가 되어야 집으로 돌아온다는 성연 양은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너무 힘들 때가 많다. "우리가 기계도 아니고 인간인데 아프거나 피곤하면 쉬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야자(야간자율학습)를 빠질 수 있는 쿠폰을 학기 초에 나눠주는데 그게 딱 한 장인 거예요. 너무 하지 않아요?" 정부도 정부지만 학교도 문제가 많지 않느냐는 유도질문에는 "교장실 앞에 건의함이 있는데 어디 형광등이 나갔다 그런 거 적으면 바로 바꿔주죠. 그 정도에 만족하며 다녀야죠."라며 이번에는 웃음으로 얼버무린다.
부천에서 왔다는 조성훈(가명, 고3)군의 하루도 다르지 않다. 고3이 되자 야자(야간자율학습)가 너무 심하다며 특히 잠을 많이 못 자는 게 가장 힘들다. "밥 좀 먹자! 잠 좀 자자!"는 구호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또한 학생이어서 어쩔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아서 답답하다. "학교를 그만둔다면 모를까 안 그러면 답이 없는 거 같아요. 찍어내듯 창의력은 완전 무시하고 공부만 시키는데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거든요. 그래도 살려면 학교 다녀야 하고 선생 말 들어야 하고 그렇죠. 그래도 나는 고3이니까 얼마 안 남았지만 이제 중3들, 고1 후배들 보면 불쌍하죠. 지금 해야 하는 공부도 너무 많은데 더 시키려고 하니…." 학교생활은 담임을 잘 만나면 할 만하고, 잘못 만나면 1년이 피곤해진다. "그야말로 운이죠. 저는 가수가 되고 싶지만 그것도 운이 따라야 하니까 힘들죠. 돈도 많이 들고."
남양주에서 온 엠건(별칭, 고3)양도 1, 2학년 때 담임선생님에게는 불만이 많지만 다행히 지금 담임선생님은 이야기가 통하고 차별이 없어서 마음에 든다. 그렇지만 "쉬는 시간에 공부하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라면서 이야기를 못 하게 해요. 한달 넘게 쉬는 시간에도 선생님이 교실에 와서 지키고 있었다니까요. 아이들끼리 이야기를 못하니까 너무 답답하죠. 같은 반인데도 다른 반가서 이야기하고 오는 경우도 있어요"라며 담임이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학교에서의 소통은 불가능하다.
이름을 밝히길 꺼려하는 성훈 군의 친구는 고등학교 올라와서 학교폭력을 경험했다. "힘들어서 학교를 그만두거나 전학 갈까 생각도 했지만 도망치는 거 같아서 참았어요. 지금은 그런 애들 보면 그냥 불쌍해요. 나중에 깡패밖에 더 되겠어요? 한심한 거죠. 오히려 그런 애들은 몇 명 안 되는데 그냥 무관심하게 지켜보는 대다수가 더 문제죠. 아마 왕따나 맞는 친구들은 그럴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그는 학교폭력을 당하는 동안 선생님에게도 부모님에게도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지금도 그 선택이 옳았다고 믿고 있다. 아버지가 자상하셔서 제법 대화가 잘 된다는 양미영(고3)양도 "학교 이야기나 공부 이야기만 나오면 부모님과 벽을 느껴요. 선생님 하고요? 그건 다들 포기하고 다니는 거 아닌가? 안 그러면 못 다녀요."라고 말한다.
"이렇게 모이면 반드시 정부가 재협상을 하게 만들 수 있다"고 낙관하며 "또 열 받는 일이 생기면 꼭 다시 거리로 나오겠다"고 다짐하는 그들에게 학교는 더 이상 아무런 기대도 미련도 없는, 그저 대학과 사회로 가기 전에 있는 지나야 하는 마지막 터널일 뿐이다.
"아무도 꿈을 키우라고 말하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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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을 등지고 남대문 방향으로 앉아서 휴대전화기로 기념촬영에 여념이 없는 한 무리의 청소년들이 눈에 들어온다. 수원에서 올라왔다는 중3 학생들이다. 그들도 매일은 아니지만 일주일에 3일은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그런 날 집에 돌아오면 밤 11시가 다된다. "고등학교 3년만 죽었다 생각하고 버텨야죠, 뭐."라고 답하는 그들에게는 꿈이 뭐냐고 물었다. "대기업에 들어가는 게 꿈이에요. 돈도 잘 벌 거 같고 일하는 것도 재미있을 거 같아요." 하지만 어떤 대기업인지, 들어가서 어떤 일을 할지는 아직 빈 칸으로 남아있다. "경찰이 되어서 범죄를 줄이고 싶어요. 흉악범이 너무 많아요. 특히 청소년 성범죄." 경찰이 됐다가 촛불시위 막으러 나오게 되면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시위 막는 경찰은 안 하겠다"고 이야기한다. 경찰이나 군인은 시키면 해야 하는 직업이라고 하자 혼자 생각에 잠기는 눈치다.
자리를 옮겨 서대문 방향 편의점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이들에게 다가가 인터뷰를 요청하니 슬그머니 캔맥주를 감추며 겸연쩍은 웃음을 보인다. 부천에서 정보산업고를 다니는 김윤성(가명, 고2)군은 "인터넷에서 보니 초등학생, 중학생들이 나오는 거 보고 부끄러워서"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실업계이니만큼 공부에 대한 부담은 상대적으로 덜하다. "인문계간 친구들이 많이 부러워하기도 해요. 그렇지만 정보산업고 다닌다고 그러면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이 많죠. 이제는 익숙해졌지만…." 한식 요리사가 꿈인 그는 언젠가는 대학을 갈 생각이다. "집안 형편도 그렇고 해서 학교 졸업하고 바로 대학 갈 생각은 없어요. 요리사 되고 더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그때 내 돈으로 가려구요." 시선이 대학을 넘어 사회에 가 있기 때문일까. 그의 고민은 현실적이고 깊이있다. 지난해부터 하이테크 특성화 학교가 된 이후 갑자기 두발단속이 시작되었다는 윤서 군의 친구는 "학교가 좋아지는 거는 좋지만 학생들 의견을 무시하는 거는 열 받는다"라며 요즘 학교 다니기가 점점 싫어진다고 한다. "선생님이 항의를 하려거든 학부모들에게 해라."라는 말에 할 말이 없다. "결국 참고 다니든가 때려치우든가 둘 중 하나인데 알아서 해라라는 거죠." 그의 꿈은 어떤 직업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는 것이다. "돈은 뭐든 하면서 벌고 그걸로 여행 다니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고 싶어요. 모르죠. 나중에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길지." 하지만 미래가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특히 부모님을 보면 점점 한국이 살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다.
"시시때때로 학교를 그만두고 싶지만 벗어날 용기도 없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도 있어서 그냥 무기력하게 견디는 거죠." 청계광장 벤치에서 담배연기를 피해 여기로 왔다는 조민주(가명, 고2)양은 촛불집회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자비를 털어 음료수 봉사를 하고 그런 것에 감동을 받는다며 학교에서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나 관심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냥 친하게 수다는 떨지만 그걸로 끝이죠. 다들 대학가면 지금보다 자유로워지니까 그거 하나 보고 다니는 거예요." 민주 양의 꿈은 한비야와 같은 세계적인 자원봉사단체에서 일하는 것이다. "저는 제 꿈을 꼭 이루고 싶은데 주위에서는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아요. 비현실적이래요. 누구도 네 꿈이 뭐냐? 꿈을 키우고 이루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
김민경(고3)양은 보컬트레이너가 되기 위해서 실용음악과에 갈 생각이다. 고3이면 공무원이나 교사, 대기업 직원 같은 안정된 직업이 인기 있지 않느냐고 물어보니 너무 평범하고 재미없을 거 같다며 손사래를 친다. 하지만 "대학 가면 현실적이 되어서 바뀔지도 모르죠"라며 여운을 남긴다.
"학교는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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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기준으로 보면 좀 특별한 10대도 있다. 지난 5월 17일 등교를 거부하자는 문자가 퍼지면서 학교 안팎의 '어르신네들'을 잔뜩 긴장시킨 '5.17 청소년공동행동의 날' 집회. 거기서 사회를 본 한지혜(17세)양은 지난 4월 학교를 그만둔 탈학교 청소년이다. "해금 연주자가 되고 싶어서 해금을 배우고 있었는데 담임이 공부를 열심히 안 하면 저질 예술가가 된데요, 길거리서 연주하는. 나는 길거리에서 연주하고 싶은데.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하니까 설득한다고 하면서 하는 말이 자기도 학교 그만두려고 한 적 있는데 그때 그만뒀으면 배추장사나 하고 있을 거라는 거예요. 아니 배추장사가 뭐 어때서요. 어떻게 선생님이란 사람이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 지혜 양은 중학교 때부터 한 청소년 교육공동체의 인문학 교실에 나가기도 하고 인권캠프에도 참여하면서 학교 밖 세상을 엿보게 된 드문 경우다. 학교를 그만 둔 것도 학교 다니기를 너무 힘들어하는 자신을 보고 어머니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고 한다. "제일 망설였던 거는 친구들을 자주 볼 수 없다는 것이었어요. 그것 외에는 학교에서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혜 양과 함께 그날 사회를 받던 또또(별칭, 18세)군은 "학교가 없어져야 한다"고 거침없이 주장한다. "교사가 체벌하는 거는 정말 끔직한 짓인데도 교사나 학생들이 같이 웃으며 즐기는 분위기죠. 그건 미친 거죠. 공부를 잘 해서 학교 다니기가 즐겁다는 애들도 없겠지만 실제로 그런 애들이 있다면 그것도 미친 거라고 생각해요. 오로지 대학 가려는 목표 아래서 다 같이 미친 채로 살아가는 데가 학교 아닌가요?"
그는 학교 밖, 세상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지난 5월 31일 촛불집회에 참여했다가 연행이 되기도 했던 그는 "청소년이니까, 학생이니까 빨리 풀어줘야 한다고 하는데 그런 것도 불만이에요. 청소년이니까 뭔가 미숙하고 보호해줘야 한다는 보호주의가 깔려 있거든요. 한 번은 국가보안법 폐지 기자회견을 갔는데 사회자가 청소년들도 국가보안법이 얼마나 나쁜 법인지 배우기 위해 이 자리에 와 있습니다, 그러는 거예요. 황당했죠. 우리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참여한 건데."
이 글을 쓰면서도 언론에서 미성년자의 이름 뒤에 '군'과 '양'을 붙이는 관행에 대해서 고민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아마 그가 이 글을 본다면 "어쩔 수 없는 비청소년이군" 할지도 모른다. 10대 청소년을 학생과 탈학교 청소년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은 비행과 선행 청소년으로 나누는 것만큼이나 턱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10대에게 학교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다. 학교는 미쳤다는 탈학교 청소년의 말에 학교에 있는 이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결국 경쟁 사회이기 때문에 이렇게 집회에 나오면 손해를 보는 줄 알지만 "안 나오면 양심에 걸릴 거 같아서" 자주 나온다는 최미솔(고2)양은 "미쳤다기보다는 죽은 거 같은 데요"라며 더 많은 친구들이 집회에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학교에서의 분위기는 정말 다르다고 한다. "솔직히 여기 나오는 애들은 아주 소수에요. 한 반에 대여섯! 명 정도. 다른 친구들은 별 관심도 없고 관심이 있더라도 왜 그런데 가냐? 그런다고 뭐가 바뀔 거 같냐? 그런 애들이 더 많죠." 한 인터넷 카페 회원들과 같이 나온 보이저(닉네임, 고2)양도 "우리 세대가 뭔가 할 수 있을 거란 기대는 별로 안 해요. 이명박이 0교시 부활시키고, 우열반 만들고 그러면 열 받고 촛불 들고 나오는 학생들도 있겠지만" 그걸 막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학교 교문에 들어서는 순간, 아니 집에서 교복을 입고 나서는 순간 다른 사람이 되는 거 같아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그냥 공부만 하는…."
애인의 변심에 부대를 이탈한 병사 하나 때문에 새벽에 비상 걸려 뛰어다니면서 여기가 군대가 아니라 감옥이고, 군대와 감옥은 같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던 것 같다. 학교는 땡땡이를 쳐도 잡으러 가지는 않는다. 다음날이면 제 발로 돌아와야 하니까. 그런 점에서 학교는 더 거대한 감옥이고 이 사회는 또 하나의 학교가 아닐까. 한 중년의 남자는 촛불집회 자유발언에서 "촛불을 처음 들었던 우리 학생들의 정신을 이어받아서 끝까지 비폭력으로 승리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열네 살 때부터 전단지, 주유소, 편의점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어요. 좋았던 아르바이트요? 없어요. 돈 제대로 준 데도 없고 인격적으로 대우해준 곳도 없어요. 덜 나쁜 아르바이트는 있지만." "접시를 떨어뜨렸더니 매니저가 미쳤냐고 욕을 해요. 너 돌았냐? 그것도 손님들이 있는데서…." "주유소에서 기름 총을 쏘다가 몇 방을 흘렸어요. 근데 차가 가자마자 직원이 발로 허리를 차는 거예요." "하루 12시간 넘게 일했는데 시간당 2800원 받았어요. 나중에 100원 올라서 2900원."
촛불집회에서 10대를 만나기 하루 전인 6월 4일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가 주최한 '청소년 노동인권 실태보고' 토론회장에서 나온 말들이다. 한편 우리나라 중고생 중 20%가 학업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으며, 실제 하루에 한 명 꼴로 청소년들이 자살을 하고 있다. 거리에서의 10대와 노동현장에서의 그리고 학교에서의 10대는 다른 이들이 아니지만 그들이 처한 환경과 조건,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너무나 판이하다. 새로운 주체라며 희망할 수도, 먹이사슬의 가장 아래 있는 약자라며 체념하고 절망할 수도 없는 갈림길에 10대들은 서있다. 2008년 촛불집회가 가능성과 한계를 가지고 있듯 그들도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짊어진 채 광장이 되어버린 거리에 서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들의 촛불은 아직 켜지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 작가 소개 삶창르포문학팀 4기. 격월간 인권담론지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에서 편집기자로 일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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