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권력과 대치한다는 것은 사실 적의 심장부를 겨누는 것이기 보다는 적들이 방패삼아 내세운 죄 없는 사람들과 한 판 벌이는 꼭두각시놀음이나 마찬가지였다. 누구나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이제 그만 이명박 정권이 퇴진하기를 원하고 있었고 그만큼 마음들이 급했다. 옆에 있는 사람이 소화기에 맞아 쓰러지고 방패에 찍혀 피를 흘리고 있는데도 전경들을 불쌍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 사람은 민주주의를 벌레 눌러 죽이듯 짓이겨 버린 이 정권에 아직 인간을 인간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빼앗기지 않은 사람이었다. 어쩔 수가 없었다. '2 + 2는 4'라고 알고 있는 모든 상식적인 사람들이 화를 내고 있었지만 정권은 간단한 산수 문제조차 풀지 못해 틀린 답을 우기기만 하는 못난이 학생처럼 고집만 부리고 있었다.
나는 6월 8일 하룻밤 동안에 광화문 네거리에서 있었던 일을 밤을 꼬박 새우며 수첩에 꼼꼼히 적었고 그 자료를 바탕으로 일주일 동안 짬짬이 A4 오십여 장에 이르는 긴 글을 하나 썼다. 소설도 아니고 르포도 아닌 어중간한 글은 내가 그날 밤에 보고 들은 많은 것들을 담아내고자 한 나름의 노력이었고 또한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뛰쳐나와 몸과 마음을 아낌없이 바치고 있다는 사실에 늘 부끄러워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나의 응답이었다. 하지만 글은 너무 장황했고, 다른 사람들에게 잠깐만 시간 좀 내서 이것 좀 읽어보라고 하기엔 오십여 장이라는 분량에 비해 글 내용에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나누든가 줄여야 했다.
그날 밤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하지만 세상과 삶이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정말 꿈만 같은 밤이었다. 하지만 나는 태어나서 서로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한뜻으로 뭉쳐 뭔가를 이루어 보겠다고 나선 한복판에는 서로의 마음에서 자기 안에 있는 것과 같은 것을 보려는 사람들만 있지는 않는 것을 보았고 그것을 기록했다. 물결들이 서로 부딪치고 휩쓸리며 휘돌아 나가는 것처럼 서로 다른 목소리들은 파도처럼 우렁우렁하게 광화문 네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고 나는 그것들을 기록하며 우리가 어깨를 걸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려면 우선 우리들 사이에서, 저마다의 마음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크고 작은 싸움들을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 새벽 2 : 30 ]
|
갑자기 대오 앞 맨 오른쪽에 있던 전경 버스가 움찔움찔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밧줄을 가지고 와 버스에 묶고 여럿이 달라붙어 당기고 있는 모양이었다. 버스가 점점 흔들리기 시작하자 전경들이 그쪽으로 몰려와 엄청난 기세로 소화기를 퍼부었다. 잠깐 사이에 뒤덮인 연기로 버스 쪽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대오 뒤쪽에서 심상치 않은 말들이 들리는 것 같아서 나는 얼른 그곳으로 가보았다. 둥글게 모인 사람들 한 무리가 잔뜩 흥분한 모습으로 언쟁을 하고 있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우리가 지금 전경들이랑 싸우러 온 거야?"
"지금 쇠파이프까지 나왔어요! 이대로 가다간 적들에게 폭력진압의 명분을 주게 됩니다!"
"왜 대책위에서는 저걸 말리지는 못할망정 자꾸 선동만 하고 있지요?"
"방송차에만 달라붙어가지고 자기네들끼리 뭐하는 거야!"
"하지만 어쩔 수가 없어요! 우리는 지금 정당한 방법으로 청와대까지 가겠다는 거 아닙니까! 그게 잘못인가요? 전경들이 막고 있으면 우리는 어떻게든 뚫어 보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우리는 끝까지 비폭력으로 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시위가 자꾸 폭력적으로 치달으면 우리도 저들과 똑같은 놈들이 되는 거에요!"
"우리의 도덕적 명분도 다 사라져요!"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우리가 직접 대책위 방송차로 가서 우리 의사를 전달해야 합니다!"
"이거 보세요! 나도 소속 같은 거 없이 자발적으로 나온 시민입니다! 말이 좋아서 비폭력이지 우리가 서로 손만 잡고 저 앞으로 간다고 해서 변하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왜 우리가 무기력하게 당하고만 있어야 합니까! 전경들이 방패로 찍고 소화기 뿌리는 걸 왜 고스란히 다 받아줘야 합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쇠파이프에 소화기까지 나와야 하나요?"
"소화기는 저 새끼들이 먼저 뿌린 거에요! 최소한의 방어적 폭력은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막말로 이쪽에 있는 사람들, 대오 뒤쪽에서 한 게 뭐 있습니까? 앞에서는 우리를 믿고, 우리가 뒤를 받쳐 주리라 믿고 저렇게 피 터지게 싸우고 있는데 여기서는 퍼질러 앉아 술 처먹고 있질 않나, 멀찍이 서서 비폭력이나 외치고 있질 않나…."
"뭐라구요? 나도 자발적으로 나온 시민인데 말씀이 너무 심하시네요! 여기서 고생 안한 사람 있습니까? 다 지금 밤새우고 있어요! 싸우는 사람들만 고생합니까? 대책위만 고생해요?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발끈한 한 사람이 거칠게 다가서며 목소리를 높이자 주위에서는 싸우지 말라며 황급히 달랬다.
"여기서 우리끼리 싸우자고 하는 게 아니잖아요! 대책위로 갑시다!"
"이명박이가 원하는 게 바로 이런 거에요! 우리끼리 싸우는 거!"
"나도 시민인데 저 사람 말을 너무 막 하잖아!"
"촛불시위가 이렇게까지 국민들의 성원을 얻은 게 무엇 때문입니까! 비폭력 평화시위라는 명분 때문이었습니다! 저들의 폭력에 맞설 수 있는 무기는 오로지 비폭력뿐입니다! 비폭력은 무저항이 아니에요! 길게 보고 가야 합니다!"
"아 씨발 진짜 지도부만 있었어도…"
"그럼 저 앞에서 우리 대신 얻어터지며 싸우고 있는 사람들은 다 뭐가 됩니까!"
자기 얘기를 하려다가, 다른 사람이 끼어들다가, 서로의 말이 허공에서 부딪치다가, 잠시 그렇게 입씨름을 하던 사람들은 결국 대책위 방송 차량으로 직접 가보기로 의견을 모았다.
"여기서 이러지 맙시다! 중요한 건 우리끼리 단결하는 거에요! 일단은 방송차로 가요!"
"그럽시다! 가서 얘기해요!"
"면담 거부하면 우리가 끌어내립시다!"
흥분한 사람들은 방송 차량 쪽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도대체 무슨 말이 나올지 궁금해서 나 역시 그들을 뒤쫓아 갔다. 방송 차량에 가까이 가니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출력 높은 음향에 고막이 터질 것 같았다. 몰려간 사람들은 방송 차량 옆에 서 있던 대책위 측 사람과 몇 마디 큰 소리로 말을 나누더니 스피커 소리가 덜 미치는 방송 차량 뒤쪽으로 함께 자리를 옮겼다.
"대책위가 말이에요. 사실 지금 저렇게 방송차 가지고 방송하면서 우리를 대표하고 있긴 하지만, 실은 여기 모인 사람들은 아무 소속 없이 온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요. 그거 아시죠?"
"네. 알고 있습니다."
대책위 측 사람의 얼굴은 이렇게 대책위 차량으로 몰려온 사람들을 처음 대하는 것이 아닌 듯 여유 있는 표정이면서도 살짝 말려 올라간 입 꼬리에 피곤함이 역력히 묻어나 있었다.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선동 당할 이유가 없고 그쪽도 우리를 선동해야 하는 이유가 없어요. 우리는 개개인의 의사를 표현하러 이 자리에 나왔지 대책위가 동원한 한 떼거리가 아니란 말입니다. 아시겠어요?"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고 싶으신 말씀이…"
"그런데 왜 자꾸 선동합니까? 지금 저 앞에서 버스 다 때려 부수고 소화기 쏘고 사람들 두들겨 맞는 거 안 보여요? 쇠파이프까지 나왔어요! 폭력 진압하지 말라고 우리가 목이 터지게 외치고 있는데 정작 저 앞에서는 너무 막 나가고 있잖아요! 전경들이랑 대치하고 있는 것까지는 좋다 이겁니다. 그런데 분위기가 너무 과열된다 싶으면 방송차에서 흥분한 사람들 진정시키기도 해야지 이건 뭐 계속 싸움 붙이겠다는 식으로 노래나 틀고... 도대체 어쩌겠다는 겁니까? 이대로 가다간 경찰에게 폭력 진압의 명분을 주게 된단 말입니다!"
"선동이라 말씀하시면 좀 그렇구요. 저희도…"
"그리고 노래는 왜 자꾸 틀어요? 노래 소리 때문에 의료진 부르는 소리도 잘 안 들린단 말예요! 우리가 외치는 구호도 잘 안 들리고…. 왜 우리가 대책위에서 일방적으로 정해 주는 구호를 앵무새처럼 따라 외쳐야 합니까?"
"네.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그건…"
"대책위 말도 좀 들어 보자구요!"
"아니 자꾸 우리 우리 하시는데, 우리가 지금 촛불집회 시위대라는 이름 아래 뭉쳐 있긴 하지만 알고 보면 우리도 저마다 다 다른 곳에 속해 있는 사람들 아닙니까? 우리라고 해서 다 똑같은 사람들만 있는 것도 아니에요. 제가 안국 쪽에서 본 바로는…"
"거 말 좀 막지 말고 대책위 말도 좀 들어 보자니까요!"
"방송차 스피커 좀 끄라니까!"
"안국 쪽에 조금 아까 다녀왔는데… 거기서 제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요! 프락치가 있었단 말이에요! 전경들 몰려 있는 쪽으로 자꾸 가자고 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었어요! 가면 연행될 거 뻔한데 왜 거기로 가자고 하겠어요?"
"그러고 보니 대책위 말 들어보자는 저 아저씨 어디서 본 거 같아!"
"무슨 말입니까 그게?"
"아저씨 아까 저기서 사람들 이상한 데로 몰고 가려고 했던 그 사람 아니에요? 맞아! 그 사람이야! 똑같이 생겼어?"
"뭐? 무슨 소리야?"
"이거 보세요! 저 아까 청계 광장에서 문화 공연 사회 보던 사람입니다!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씀하지 마세요!"
"아니야. 저 얼굴이야! 내가 봤다니까!"
"거 참 말씀 심하게 하시네요!"
"그러지 마세요! 왜 무고한 사람을 프락치로 몹니까?"
처음에 말을 꺼냈던, 안경을 쓰고 손수건으로 눈 밑까지 얼굴을 가린 사람이 계속 이야기를 이어 갔다.
"이거 봐요. 우리도 당신네들 사정 모르는 거 아니야. 하지만 아까 거리에서 행진할 때도 그렇고. 지금 여기서도 그렇고. 저렇게 큰 스피커로 방송만 꽝꽝 때리면 어떡해요? 왜 우리의 의사가 대책위로 잘 전달되지 않는 겁니까? 예? 또 어제랑 그제는 새벽 두시 세시 쯤 되니까 방송차만 싹 빠지고…. 대책위가 지금 이 상황에서 어느 정도 대표성을 가지고 있다는 건 인정하겠는데 그렇다면 끝까지 우리와 함께 자리를 지켜 줘야 하는 거 아뇨? 방송차가 빠지면 사람들도 점점 빠져 버린다고! 그러다가 동 트면 전경들이 까맣게 몰려와서 얼마 안 남은 사람들 싹 밀어 버리잖아! 어제 아침에 우리 시청 앞까지 밀리는 거 봤어요? 못 봤지?"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그건 사실이 아니구요…"
"대책위라면 끝까지 책임을 지고 남아 있어야 하는 거 아뇨! 안 그래요?"
"이제 제가 좀 말씀드려도 될까요?"
"거 왜 자꾸 혼자만 말하려고 그래? 대책위에서 말 좀 하게 둬!"
"그럼 어디 한 번 말씀해 보세요."
"우선 저희는 이 자리를 절대로 떠나지 않았습니다. 어제랑 그제 아침 상황도 다 보아서 알고 있구요. 방송 차량은 저희도 빌린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새벽이면 빼야 합니다. 저희가 성금 거둔 거 다 어디 들어가는지 아세요? 차량 빌리는 거랑 음향 장비에 쏟아 붓는 걸로 다 들어갑니다. 이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서요…."
"어젯밤에 있었다고? 못 봤는데…"
"난 봤어요! 사회자랑 자원봉사자들이랑 다 있었다니까!"
"저희도 방송 차량 끌고 나와서 무엇을 할지 사전에 프로그램을 다 짭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오만 십만 이렇게 모이다 보면 정말 별의별 분들이 다 계세요. 방송 그만하고 내려오라고 생수병 던지시고, 차량에 올라와 진짜 저희들 끌어내려고 하고… 저희도 그래서 행진할 때나 아니면 자유발언 시간 진행할 때 일일이 주변에 계신 시민 분들께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어봅니다. 그리고 저희는 여러분께서 말씀해주시는 대로 합니다. 하지만 저희가 이렇게 많이 오신 분들의 의사를 전부 받아들일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광우병 대책위와 함께 하고 있는 시민 단체가 몇 개 인줄 아세요? 천오백 개 정도 됩니다. 그 단체들 의견 다 수렴하기도 버거운데 여기 오신 분들 의견을 들으려면… 저희도 정말 죽겠어요. 대책위 상황실에서 일하는 사람들 하루에 한두 시간밖에 못 잡니다."
"하지만요. 차량은 빌린 거니까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밤새도록 대책위가 시민들과 함께 있는 모습은 보여 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차량 빠지고 나면 진짜로 사람들도 점점 숫자가 줄어요. 그리고 방송을 하시는 건 좋은데 저 앞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자꾸 자극하기만 하는 방송만 하시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보이시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방패에 찍히고 소화기 분말에 범벅이 된 환자가 수도 없이 실려 오고 있어요! 게다가 어떤 사람들은 소화기 휘두르고 쇠파이프 휘두르고 난리가 아니에요. 그런데 방송차에서는 자꾸 폭력경찰 물러가라고만 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이나 틀고 방송이 너무나 자극적입니다! 음악 소리 때문에 우리 목소리가 잘 들리지도 않아요!
"그건요. 저희도 어쩔 수가 없는 부분입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집회 대오 앞쪽에서 전경을 바로 눈앞에 두고 대치하고 계신 분들은 전경이랑 밀고 당기다 보면 흥분하시게 되어 있어요. 더구나 지금은 저쪽에서 먼저 방패로 찍고 소화기 뿌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대책위의 입장이 아니라 저 개인적으로는, 경찰들이 막아 놓은 저 전경 버스들을 뚫고 청와대로 진격해 가겠다는 시민들의 행동은 당연한 분노에서 나온 상식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말 안 들어주는 대통령한테 우리가 직접 가서 따지겠다는데 경찰들이 자기네들이 뭐라고 앞길을 막습니까? 안 그런가요? 광화문을 뚫고 가겠다는 우리의 정당한 요구를 저렇게 폭력으로 저지하려고만 하는데 우리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앞쪽에서도 아마 그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적극적으로 사다리를 놓고 버스 위를 타고 넘어가시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걸 막으려는 전경들과 부딪치다 보면 몸싸움도 하게 되고 또 전경들이 마구잡이로 때리니 거기에 맞서기도 해야 할 테고… 소화기 뿌리고 방패로 찍는 부당한 폭력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그걸 보고 있는 사람들도 다함께 분노하고 있는데, 그런 분노를 다 받아 안고 가면서 그걸 표현하고 경찰 측에게 전달하는 것이 또 대책위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폭력경찰 물러가라 평화시위 보장하라 이런 구호들을 방송차에서 격하게 외치는 거구요. 그렇다고 해서 이 사태가 폭력적으로 크게 번지기를 저희가 원하고 있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일단 저희에게 보이는 상황이 시민들이 일방적으로 당하고만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고… 저희도 좀 애매한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나가다간 큰일 납니다! 쇠파이프까지 나왔는데 또 무슨 무기가 나올지 몰라요! 비폭력 집회라는 명분을 잃는다면 촛불집회는 끝장입니다!"
"대책위 입장도 잘 알겠는데, 방송만큼은 어떻게 해주실 수 없나요? 차라리 자유발언을 했으면 했지 이 상황에서 노래를 틀거나 자꾸 자극적인 구호만 외치는 건 좀 아닌 거 같아요. 우리는 대책위에게 끌려 다니기만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자유발언도 저희가 애초에 시간을 잡은 대로 시작할 수 있는 게 또 아니에요. 말씀 드렸지만 중간에 갑자기 시민 분들이 오셔서 생수병 던지시고 욕하시고 그런 거 하지 말라고 막 한꺼번에 주장하시면… 저희는 아무것도 못하고 꼼짝없이 물러나야 합니다. 아무튼 방송에 대한 건 제가 차량 위로 올라가서 얘기해 보겠습니다."
"저 아저씨는 자꾸 우리라고 하지만 저는 여기 모인 이 많은 사람들을 단순히 우리라는 범주에 넣기는 힘들다고 봅니다. 어차피 자기 생각과 자기 개성 가지고 서로 다른 곳에서 온 사람들끼리 모인 건데, 대책위 분들도 이 많은 사람들 아우르느라 얼마나 힘드시겠습니까. 다만 이미 대책위가 촛불집회 대오를 대표할 수 있다는 일종의 공신력을 얻고 있는 분위기니 만큼 책임을 가지고 끝까지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그래도, 우리가 대책위한테 우리를 통제할 권한을 위임한 적은 없잖아요!"
"누가 통제권을 위임했대? 지금까지 촛불집회를 주관하고 판을 기획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대책위잖아!"
"무엇보다 중요한 게, 지금까지 이렇게 우리 같은 시민들이랑 대책위랑 집회 현장에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던 것 같아요. 안 그렇습니까? 현장에서 전혀 소통이 안되니 대책위도 자꾸 헤매면서 시민들 정서랑 안 맞는 행동을 하고, 우리도 계속 우리끼리 싸우기만 하지 정작 우리의 요구사항들을 대책위에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거 아니겠어요?"
"얼마 전에는 대책위가 시민들이랑 면담할 수 없다고 거부하기까지 했다는데!"
"뭐 대책위도 나름대로 사정이 다 있으시겠지만 그래도 시민들이랑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은 확보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힘드시겠지만, 지금 대책위에 불만을 품고 있는 시민들도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좀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요."
"저희도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제가 여러분께 부탁 드리고 싶은 것은… 처음에 저희가 시민 여러분과 함께 집회를 시작했고 한 달이 넘도록 지금까지 진행해 오고 있는 만큼 여러분께서도 저희를 좀 믿어주셨으면 좋겠어요. 대책위가 무슨 득을 보겠다고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겠습니까. 다 여러분이랑 함께 하려고, 저렇게 경찰이나 동원하는 이명박 정부 끌어내리자고 하루에 한두 시간 자며 여기에 버티고 있는 거에요. 여러 가지로 부족하긴 하지만 그래도… 저희를 좀 믿어주세요."
"저희들도 대책위를 부정하려는 말을 하려고 찾아온 건 아닙니다. 힘드신 거 압니다. 어쨌든 저희들의 요구를 잘 좀 전달해주시구요. 다 같이 힘내십시다!"
"그래요! 우리끼리 힘을 합쳐야 명박이를 때려잡을 수 있습니다!"
"어청수도!"
"아침이 올 때까지 열심히 싸웁시다!"
"시간 아직 많이 남았어요!"
대책위에 속해 있는 단체가 천오백 개라니… 그러니까 천오백 개의 의견들과 매일매일 광화문으로 몰려오는 수만 명의 서로 다른 주장들을 대책위는 모두 짊어지고 가야 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일부 사람들이 인터넷 상에서 하는 말이라고는 '당신네들이 뭔데 우리를 통제하려고 하느냐' '왜 촛불집회가 당신들 명의로 알려져야 하느냐' 이렇게 힘 빠지게 만드는 말들이었다. 꼭 사람들이 집단으로 '선동 콤플렉스'에 걸린 것 같았다. 누가 무엇을 조금 소리 높여 외치기라도 하면 조건 반사와도 같이 '선동'을 떠올리고 마는 희한한 강박. 자존심에서 비롯한 것인지 아니면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한다는 철학 공부를 너무 많이 한 탓인지 그 근원을 통 알 수 없는 노이로제. 차라리 아까처럼 대책위로 몰려와 마음에 안 드는 점들을 항의하고 답변을 얻어내려 한다면 소통의 끈을 아직 놓고 싶어 하지 않는 마음을 피차 드러내려 한 것이라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아닌, 단지 '우리'위에 군림하는 것 같은 모양새가 꼴 보기 싫어서, 운동권인 것처럼 보여 왠지 거부감이 들어서, '우리'의 허락을 받지 않았으니까, 이런 이유들로 아예 마음의 문을 꼭 닫아 버리려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물론 대책위라는 조직이 위태롭게 유지하고 있는 대표성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더할 나위 없이 느슨한 게 사실이지만 어차피 집회에 나온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입만 있다는 식으로 마구 떠들어 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보면 확실한 확성기 역할을 해 줄 대표자는 하나쯤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워낙에 많은 단체와 사람들이 몰리느라 집회를 꾸려가는 데 있어 문제점도 많고 서로 소통도 매끄럽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것은 마땅히 힘을 모아 극복해 가야 하는 성질의 것이지 등을 돌리고 외면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나는 큰 소리로 외치고 싶었다.
[ 새벽 3 : 45 ]
|
쇠파이프로 두들겨 뚫린 듯한 구멍으로 전경이 자꾸만 소화기를 쏘아 대자 누군가 우산을 들고 사다리 위에 올라가 그 구멍을 우산으로 막아 보려 하고 있었다. 바로 머리 위에선 전경들의 방패가 춤을 추고 있었다. 정말 아찔한 상황이었다.
사다리 중턱까지 올라간 그 사람은 기어이 우산을 펴서 소화기 분말이 쏟아져 나오는 구멍을 막아 버렸다. 전경들은 소화기를 잠시 끄고 구멍에 박힌 우산을 잡아 뽑으려 하는 것 같았다. 한동안 우산을 두고 밀고 당기기가 계속 되자 한 전경이 화가 났는지 구멍이 뚫려 있는 방어벽 밑 부분을 방패로 마구 찍어 대었다.
그러자 우산을 겨냥한 게 잘못 맞아 방패는 방어벽 아래쪽을 정통으로 찍었고 그 바람에 방어벽 일부가 우지직 소리와 함께 버스 지붕에서 떨어져 나가 버렸다.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자 미친 듯이 환호했다. 일부가 뜯어져 버린 방어벽은 버스 밑에 있던 사람들이 끌어당기는 대로 우지끈 소리를 내며 줄줄이 부서졌다. 마침내 버스 한 대 지붕에 있던 방어벽이 모조리 부서지고 지붕 위에서 대기하고 있던 전경들은 고작 방패를 들었을 뿐인 맨몸을 순식간에 드러내고 말았다. 나는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방어벽을 잃은 전경들은 방패로 몸을 가릴 생각도 못하고 얼쯤하게 서 있었다. 전경들도 당황했지만 대오에 있는 사람들도 뜻밖의 상황에 잠시 굳어 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곧 여기저기서 수많은 생수병들이 전경들을 향해 포탄처럼 날아들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발을 구르며 환호성을 질렀다. 나도 모르게 "어, 저러면 안되는데. 전경들이 위험해요!"라고 외치자 옆에 있던 사람이 "안되긴 뭐가 안된다고 그래? 저놈들은 맞아도 싸!"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보이지 않는 힘을 미워하는 것보다는 역시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미워하는 것이 더 쉬운 일일까를 생각한 것도 잠시, 액션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극적인 장면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기다란 쇠파이프를 든 아저씨가 사다리를 잽싸게 타고 올라 버스 위로 올라가서는 보기에도 무지막지한 쇠파이프를 마구 휘두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 어! 저거! 저거!"
"아저씨! 꺄―악!"
"안돼요! 내려와요!"
방패 대신 무전기를 들고 어딘가로 연락하고 있던, 간부쯤으로 보이는 경찰의 머리를 정확히 겨냥하고 휘두른 쇠파이프는 다행히도 간부가 쓰고 있던 헬멧에 맞아 퉁 하는 소리를 내며 비껴갔고 쇠파이프의 묵직한 무게 탓에 힘껏 휘두른 방향으로 무게중심이 온통 쏠리고 만 아저씨가 휘청거리는 틈을 타 전경들이 떼 지어 덤벼들었다. 어느 틈에 넘어져 버린 아저씨를 전경들이 마구 깔아뭉갰다. 쇠파이프는 빼앗겨 버스 뒤쪽으로 넘겨졌고 전경들은 계속 발버둥치는 아저씨의 등과 목을 거리낌 없이 방패로 찍었다. 눈앞에서 흉기로 사람이 난도질 당하는 꼴을 볼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은 길길이 뛰며 소리를 질렀다.
"때리지 마! 찍지 마! 이 새끼들아!"
"살인마 새끼들아!"
"저 아저씨 죽는다! 어떡해! 이 미친 새끼들아!"
"비폭력! 비폭력!"
"폭력경찰 물러가라!"
버둥대는 아저씨를 부여잡고 전경들은 차례로 버스 뒤로 내려가 버렸다. 아무도 남지 않은 텅 빈 버스 위로 생수병들이 줄기차게 날아들었다.
나는 수많은 집회 현장에서 벌어져 왔던 온갖 참혹한 일들을 그동안 적지 않게 보아 온 터라 쇠파이프나 소화기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할 수 있었다. 자전거 체인으로 죄 없는 철거민들을 후려갈기는 용역 깡패들, 굵다란 대나무 몽둥이로 전경들을 내리치는 농민 분들, 자기 할아버지뻘 되는 사람을 넘어뜨리고 곤봉으로 마구 두들겨 패는 전경들, 가스통을 끌어안고 너희 경찰들 다가오면 다 죽여 버리겠다고 위협하던 어느 노동자 아저씨, 용접봉에 머리를 맞아 결국 목숨을 잃고 만 어느 노조원, 먹던 술병을 깨고 전경들에게 시퍼런 유리조각을 들이 대던 어느 농민 아저씨…. 볼 때 마다 가슴이 아팠고 이후에도 꿈속에까지 쫓아다니며 나를 힘들게 하던 그런 장면들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항상 우리들 위에서 군림하면서 끊임없이 갈등과 폭력을 자라나게 하는 더 큰 폭력에 대해 생각했다. 무엇이 용역 깡패들의 손에 자전거 체인을 쥐어 주는가? 과연 무엇이 노동자들로 하여금 쇠파이프를 휘두르게 하는가? 왜 서로 알지도 못했던 사람들이 편을 갈라 상대방에게 무기를 휘두르는 것일까? 도대체 무엇이 그러한 안타까운 상황을 만들어 내는가?
하지만 집회에 나와 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 쇠파이프는 단순히 기다란 쇳덩이가 아니라 '비폭력'이라는 어떤 추상적인 상태를 단번에 박살내 버리는 충격적인 상징물이었다. 더구나 버스 위에 올라 마치 누가 이것 좀 사진으로 찍어 주시오 하는 것처럼 완벽한 자세를 취하며 쇠파이프를 꼭 부웅 하는 소리가 들렸을 것만 같이 크게 휘두른 그 아저씨는 '순수한' 시민들이 모인 '비폭력 평화 집회'를 순식간에 '폭력 집회'로 '선동'한 몹쓸 '데모꾼'이 되어 버렸다.
비폭력이라는 명분을 금과옥조로 떠받들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폭력 선동이라는 말로 또 얼마나 비난의 화살을 퍼부어 댈까, 촛불집회에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으면서 집에서만 컴퓨터 앞에 붙어 앉아 폭력 시위네 불법 집회네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대기만 하는 인터넷 백수들은 이게 웬 떡이냐 하고 또 얼마나 활개 치며 다닐까를 생각하며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람들은 벌집을 들쑤셔 놓은 듯 아우성이었다.
"연행된 건가? 연행된 거 맞지?"
"저건 프락치야! 폭력 진압의 빌미를 만들려고 경찰 쪽에서 매수한 놈일 거야!"
"그래! 어쩐지 빗맞았다 했어!"
"아, 씨발 큰일 났다! 이제는 비폭력 시위라고 할 수도 없게 됐어!"
"야, 지금까진 그럼 뭐 비폭력 집회였냐?"
"저 미친 아저씨 때문에 우리가 졸지에 폭력 시위대라고 욕먹게 생겼잖아!"
"아니 도대체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 거야?"
"왜 꼭 청와대로 넘어 가겠다고 이 난리야 글쎄!"
도대체 누구였을까. 혹시 얼마 전에 분신하신 분이 소속해 있던 공공노조 노동자 분이었을까? 아니야. 노조 아저씨라면 지도부 지침에 따르지 않았을 것이 분명한 저런 무모한 행동을 할 리가 없지. 그렇다면 평범한 시민? 맨 정신에 쇠파이프를 들고 전경들과 맞닥뜨릴 수 있을 정도로 배짱 좋은 시민도 있을까? 술 한 잔 걸치셨을까? 아니면 정말 사람들 말대로 경찰 측에서 몰래 시위대로 잠입시킨 프락치? 끄나풀? 쇠파이프 아저씨의 정체를 나름대로 추측해 보고 있는 내 옆에서 갑자기 시끄럽게 목소리를 높이며 말다툼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불필요하고 감정적인 대치를 굳이 할 필요가 있습니까?"
"아니 이게 왜 불필요한 대치입니까! 잘못하고 있는 대통령한테 따지러 청와대로 가자는 게 잘못인가요? 가려는데 막아 놓으니까 지금 우리가 여기 모여 항의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쇠파이프로 경찰 때리는 게 항의입니까? 그건 폭력이에요!
"이봐요. 저 앞쪽 분위기를 잘 모르시나 본데. 앞에서 전경들이랑 대치하다 보면 자연히 분위기가 싸우는 쪽으로 가게 돼 있어요! 우리가 먼저 때렸습니까? 우리가 먼저 방패로 찍었어요? 우리가 먼저 소화기 뿌렸습니까? 아니잖아요! 넘어가겠다는데 쟤네들이 막겠다고 하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뒤에서 비폭력만 외치고 있어야 합니까?"
"청와대로 넘어간다고 해서 정말 이명박이가 우리 만나 준답니까? 어차피 넘어간다는 것도 다 상징적인 거 아니에요? 못 가게 막아 놓은 걸 우리가 굳이 넘어야 하는 이유는 뭡니까? 경찰들이 순순히 넘어가게 놔두지 않을 거라는 거 다 아는 사실인데, 그런데도 억지로 넘어가겠다고 하는 건 결국 경찰들이랑 싸우겠다는 거 아닙니까! 저 환자들 안 보이세요? 우리는 끝까지 비폭력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들도 끝까지 우리를 지지해 줄 수 있어요!"
어느새 주위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자꾸만 격해져 가는 입씨름을 구경하고 있었다.
"우리라니요! 지금 어떤 게 우리입니까? 대오 앞쪽이랑 뒤쪽을 보세요! 앞쪽에서는 중고등학생들까지 나서서 싸우고 있는데 뒤쪽에 있는 사람들은 뭡니까! 앉아서 얘기나 하고, 기타 치며 노래 부르고, 동창들 만나 술이나 먹고, 이게 다 뭐하는 거에요! 앞쪽에서 시위대가 전경 버스 유리창 하나만 깨도 뒤쪽에서는 멀찍이 서서 비폭력만 외칩니다! 이제 더 이상 그놈의 비폭력만으로는 안돼요!"
"비폭력만으로는 안된다니, 그럼 우리가 단체로 쇠파이프라도 들고 나서야 한다는 건가요? 그게 언제 적 시위 방식입니까! 우리도 저 전경들이랑 똑같은 놈이 될 수는 없습니다! 최소한의 방어적 폭력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폭력도 정당화될 수 없어요!"
듣다 못한 나는 아저씨들 틈으로 끼어들어 큰 소리로 말했다.
"아저씨들, 말씀 중에 죄송한데요! 옆에서 듣다가 도저히 모르겠는 부분이 있어서 그러는데, 도대체 어디까지가 폭력이고 어디까지가 비폭력인가요?"
나의 갑작스런 질문에 서로 삿대질까지 하며 싸우던 두 아저씨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말을 이었다.
"그렇잖아요. 폭력이다 비폭력이다 말은 쉽게 하시는데… 전경들이 방패로 찍는 건 확실한 폭력이지요? 그렇죠? 그럼 저 앞에서 시위대가 하는 행동 중에서는 어떤 게 폭력이고 어떤 게 비폭력인 건가요? 제가 보기엔 이 점에 대해서 여기 모여 있는 사람들끼리 공유한 바가 전혀 없기 때문에 자꾸만 폭력 비폭력 논쟁이 벌어지는 것 같아요!"
비폭력만으로는 더 이상 안된다고 하던 아저씨가 나를 보면서 이야기했습니다.
"이봐요 젊은이! 이 중에서 쇠파이프로 전경을 두들겨 패는 걸 가지고 비폭력이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을까요? 나도 그런 식의 집회는 거부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어떠한 저항도 해서는 안된다고 말해서는 안되는 거 아닐까요? 비폭력이라는 게… 학생 말 잘했네, 그 비폭력이라는 게 결국 우리 모두가 주머니에 손 넣고 마냥 구호만 외치자는 거잖습니까! 경찰이 막으면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입으로만 비폭력을 외치자는 거 아니에요? 그걸로 도대체 뭘 할 수 있습니까?"
"어허, 그게 아니라니까 자꾸 그러시네! 이 젊은이는 비폭력이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비폭력은 모든 저항을 그만둔다는 것이 아니에요! 비폭력이 얼마나 큰 무기가 될 수 있는지 아직 잘 모르시겠습니까? 오늘 이렇게 광화문에 십만 명 가까이 모일 수 있게 된 것도 우리가 그동안 한결같이 비폭력 평화 집회를 표방했기 때문입니다!"
두 아저씨는 나를 흘끗 보더니 다시 상대방과의 언쟁에 열중하느라 내게서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그걸 누가 몰라? 지금 상황을 보세요! 비폭력이고 평화 집회고 다 좋은데 지금 상황을 보란 말입니다! 청와대로 가겠다는 게 잘못이에요? 우리가 지금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겁니까? 우리가 언제 청와대를 다 때려 부수겠다고 했나요? 그냥 이명박이한테 국민으로서 항의 좀 하러 가겠다는 걸 저렇게 버스 수십 대로 길을 다 막아 놨어요! 그것도 모자라 민중의 지팡이라는 것들이 국민들한테 소화기 쏘고 방패질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비폭력이란 저 뒤에서나 외칠 수 있는 한가한 소리일 뿐이에요!"
"그래요, 그쪽 말대로 저 앞에서 전경들이랑 대치하다 보면 분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방어적 폭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칩시다! 그런데 말입니다! 방어적 폭력이라는 게 말이 되는 소립니까? 폭력은 어찌 됐건 폭력 아니에요? 때리면 도망가면 되고 맞으면 다함께 항의하면 되는 겁니다! 우리까지 맞서서 싸울 필요는 없어요! 이명박한테 항의하는 것도 좋고 청와대로 밀고 가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까지 경찰들이 막으면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넘어갈 필요는 없는 거 아닙니까?"
"그럼 저 앞에서 우리 대신 열심히 싸우고 있는 사람들은 뭡니까? 바보들인가요? 폭도들입니까? 저 사람들 전부 다 우리 믿고 싸우고 있는 거에요! 우리가 열심히 뒤를 받쳐줄 것이라 믿고 저렇게 끄떡없이 버티고 있는 겁니다! 아까 환자 얘기도 나왔는데, 전경들한테 처맞고 뒤로 실려 오면서, 그냥 앉아서 아무 것도 안하고 입으로만 비폭력을 외치는 사람들을 보면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고마울까요? 나는 이렇게 싸우다가 얻어맞고 뒤로 실려 오는데 쟤네들은 지금 뭐하고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그럼 어쩌자는 겁니까? 말씀 좀 해보세요! 환자들한테 미안하니까 우리도 앞으로 가서 전경들 다 때려 눕혀야 합니까? 버스 위로 기어 올라가서 순순히 연행되는 수밖엔 없나요? 우리가 왜 그래야 합니까? 전경들은 또 무슨 죄가 있어요? 이 싸움 길게 가는 싸움입니다! 괜한 곳에 동력을 소모할 필요가 없어요! 우리는 끝까지 살아남아야 합니다!"
"아니, 그러려면 광화문에 왜 나왔습니까? 거리에 왜 나왔어요? 청계 광장에서만 집회 하다가 거리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게 된 이후로 상황이 얼마나 급진전했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처음에는 거리로 나오는 것부터가 불법이었어요! 지난 5월 31일 밤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습니까! 게다가 지금은 사람 한 명이 죽었다는 소문까지 나도는 판이에요! 도대체 비폭력이라는 구호로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전경 버스 유리창 깨고, 버스에 줄 걸어서 끌어내고, 전경들한테 생수병 던지고, 버스 위로 넘어가려 하는 걸 비폭력이라고 말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그 이상의 것을 우리가 해야 하는 때가 지금이라면, 그렇습니다! 우리는 기꺼이 폭력 시위대가 돼야 합니다! 안 그러면 상황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요!"
"이 사람 말이 안 통하는구만! 우리가 그렇게 나가기 시작하면 국민들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게 될지 생각해 봤어요? 조중동 같은 언론이 우리를 어떻게 보도할지 생각해 봤어요? 다음에도 이렇게 십만 이십만이 모일 것 같습니까? 왜 이기는 싸움을 지는 싸움으로 만들려고 하는 겁니까? 당신 같은 사람 때문에 우리가 도매금으로 욕을 먹는 거야! 알아?"
"뭐? 저 뒤를 봐! 똑똑히 보라고! 당신이 말하는 자랑스러운 비폭력 시위대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보란 말야! 소풍 나왔나? 무슨 구경났어? 입만 살아서 비폭력이라고 외치기만 하면 다야? 이게 무슨 집회야! 얻어터지는 사람 따로 있고 구호 외치는 사람 따로 있는 게 무슨 얼어 죽을 놈의 집회냐고! 이명박이는 지금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있단 말이야!"
"이거 사람 치겠네? 어디 쳐 봐! 날 전경이라고 생각하고 쳐 봐!"
언쟁은 엉뚱한 곳으로 번지며 기어이 주먹다짐으로 이어지나 싶더니 주변 사람들이 달려들어 뜯어말리는 통에 두 사람은 교보문고 쪽으로 각기 사라지며 상대방에게 큰 소리로 험한 말을 쏟아 냈다. 나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었기에 언쟁에 끼어들었을까를 생각하며 한숨을 쉬었다.
도대체 어떤 시위가 폭력 시위고 어떤 시위가 비폭력 시위인가? 인터넷 공간 여기저기에서 마구 떠들어 대는 사람들의 기준은 제각각 다 달랐다. 청계천 소라 광장에서 열리던 집회가 어느 날 갑자기 거리 시위로 번져 수많은 사람들이 도로로 뛰쳐나간 것을 두고 폭력 집회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사람들한테 방패를 휘두르는 전경들에게 생수병 던진 것을 두고, 전경 버스 지붕에 올라간 것을 두고, 먼저 치고 들어오는 전경들과 맞서 싸우다 연행된 것을 두고, 사람들이 청와대까지 가려 했던 것을 두고 마치 칼로 무 자르듯 단칼에 폭력 집회라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내가 보기에, 전경으로 대표되는 공권력은 결코 부당한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부류들이거나, 아무리 부당한 공권력이라 할지라도 그것과 맞서 싸워서는 안되며 끝까지 비폭력으로 나가야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에 젖어 있는 부류들이었다.
나는 아무런 대안이 없는 비폭력이란 그저 명분론에 취한 환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비폭력이란 구호를 마구 방패질을 하는 전경들에게 외치는 것이 아니라 대오 맨 앞에서 전경들과 대치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외치는 사람들은 오로지 대오 뒤쪽에서만 있으려 할 뿐 결코 전경들 쪽으로 가려고 하지 않았다. 구호는 대신 외쳐 줄 테니 몸싸움은 당신네들이 해라, 나는 위험해 보이는 그쪽으로는 가고 싶지 않다, 나는 언제까지나 이곳에서 비폭력 시위를 옹호할 것이다, 집회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나는 대오 뒤쪽에서 한가롭게 길바닥에 앉아 잡담을 나누다가 좀 앞쪽이 시끄럽다 싶은 순간에만 벌떡 일어나 비폭력을 외치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보았다. 그들에게 비폭력이란 자기네들은 용감한 민주 시민이지 적어도 폭력 시위대는 아니라는 것을 과시할 수 있는 유용한 구호에 불과했다. 몸에 주렁주렁 매다는 액세서리 같은 것이었다. 방안에 틀어박혀 인터넷 기사로만 촛불집회 소식을 접한 채 폭력 불법 집회는 안된다고, 비폭력 합법 집회여야 한다고 떠들어 대기만 하는 인터넷 백수들과 하나도 다를 게 없었다.
내가 보아 온 바로는, 어느 집회든지 자기 삶이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고 생각하는 절실한 사람들이 가장 치열하게 싸웠다. 싸우지 않으면 당장 굶어 죽게 생긴 사람들, 싸우지 않으면 자기 자식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먹일 수 없는 사람들, 싸우지 않으면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도 일터에서 쫓겨나게 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무서움보다 분노와 억울함이 앞서는 탓에 공권력이 쳐들어온다 해도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켰다.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고 잃을 것도 없는 사람들이기에 전경들 수십 명이 달려들어 양 팔 양 다리를 하나씩 잡고 연행해 갈 때까지 그들은 끝까지 싸웠다.
마찬가지로, 나는 공권력에 대한 두려움보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분노와 혐오감이 앞서는 사람들이 대오 맨 앞까지 나와서 전경들과 치열하게 싸우는 것이라 생각했다. 잘못 맞으면 고막이 터지고 사람이 날아가는 물대포를 끝까지 온몸으로 맞아 내며 버티는 사람들을 보면서, 동이 트든 말든 전경들이 비켜날 때까지 이 자리에서 싸우겠다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그렇게밖에 해석할 수 없었다. 그들은 누군가에게 선동이나 세뇌를 당한 것이 아니라 오직 자기 자신만의 의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 다른 대안은 없었다. 무조건 청와대로 가야 했다. 가서 독재 정권의 우두머리인 이명박 대통령과 담판을 지어야 했다. 민주냐 반민주냐? 이명박에게 그렇게 물어야 했다. 윤똑똑이들이 고집하는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그 어떤 것도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정부와 수구 언론과 인터넷 백수들과 윤똑똑이들은 한 뼘이라도 더 청와대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시위대의 몸싸움을 폭력이라 불렀다. 거리로 뛰쳐나가 좀 더 많은 서울 사람들에게 뜻을 알리고자 했던 노력은 그들에겐 불법이었다. 그들, 정부와 수구 언론과 인터넷 백수들과 윤똑똑이들은 그들이 학교와 사회에서 배운 대로 체제와 공권력에 얌전히 복종하지 않는 사람들을 싸잡아 과격한 불순분자들이라 불렀다. 전경들과 시위대가 똑같이 서로에게 폭력을 행사해도―똑같다는 말은 물론 어폐가 있다―공권력은 언제나 합법과 준법이라는 가면을 쓴 채 어깨를 으쓱하며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면 그만이지만, 시위대는 청와대로 가는 길 하나 뚫기 위해 전경 버스 한 대만 빼 내도 폭력 집단이라 매도당한다. 청와대로 가기 위해 전경 버스 위에 올라가기만 해도, 공권력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버스 유리창을 깨기만 해도 폭력 집단이라 욕을 먹는다. 그 사람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는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오로지 합법적으로만 행동하고 비폭력으로만 나가면 무엇이든 다 해결될 것처럼 사람들은 편하게 이야기한다.
물론 대오 뒤쪽에서 시시덕거리며 입으로만 비폭력을 연호하고 폭력경찰 물러가라고 외치던 사람들을 두고 그들은 촛불집회에 온 것이 아니라 단지 관광을 온 것일 뿐이라 잘라 말하기는 힘든 일이다. 비폭력을 외치는 사람들 대다수가 전경이든 누구든 아무도 다치게 하지 않고 서로 웃으며 거리에서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는 소박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런 소박한 마음들이 모여 이룬 촛불의 물결에 감동을 받아 태어나서 처음으로 집회라는 것에 몸을 섞게 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나 역시 쇠파이프를 들고 전경들과 몸싸움을 벌이는 광경보다는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촛불을 들고 한 발 한 발 마치 조용한 파도가 조금씩 해안가를 잠식해 가듯 거리를 행진해 가는 광경이 더 좋다. 더 많이 와 닿는다. 물대포나 방패춤은 싫다. 사람들 사이의 가장 넓고 깊은 공감대는 평화와 비폭력이라는 구호로서만 갖추어 품을 수 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가 사람들의 그러한 소박한 마음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매일 저녁을 집에서 편하게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할 사람들을 자꾸만 거리로 불러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아무도 화 내지 않고 아무도 욕하지 않는 방식으로 민주주의라는 것을 틀어쥘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만 지금 그게 안되고 있으니 사람들이 매일 밤 개고생을 하는 것이다. 전경 버스를 때려 부수고 버스 위에 올라가 전경들과 몸싸움을 하는 것이다. 아무리 말하고 소리쳐 봤자 청와대에서는 듣는 척도 안하니 분노가 불길처럼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선량한 사람들이 불의와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 분노하는 것은 지극히 평화스럽고 당연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평화라는 것이 깃들어 있지만 단지 표현 방법이 조금씩 다를 뿐이라고 생각했다. 표현 방법이 다른 것은 저마다 속에 품고 있는 절실함의 깊이가 사람들마다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중요한 것은 폭력을 일삼는 대오와 비폭력을 내세우는 대오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둘은 결국 같은 말을 다른 방식으로 하고 있다는 것, 폭력과 비폭력이라는 이분법을 집어 치우고 더 많은 길거리 난상토론을 해 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폭력'이나 '과격함'이라는 말 보다는 나는 그것들을 '행동력'이라 부르고 싶었다. 촛불집회의 중요한 고비 때마다 언제나 길을 열어 준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행동력이었다. 쇠파이프로 전경들을 두들겨 패지 않고도, 전경 버스를 폭파하지 않고도, 종로 경찰서장을 인질로 잡지 않고도 그들은 그들이 가진 행동력으로 늘 돌파구를 마련해 왔다. 길거리에서 즉석 토론회를 열고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그 자리에서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끝끝내 논쟁을 통해 모두의 의견을 모으려는, 또랑또랑한 눈빛을 가진 사람들을 나는 많이 보았다. 그런 이들의 행동력은 폭력과 비폭력이라는 이분법을 가볍게 뛰어넘는 것이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6월 22일 일요일이다. 어제도 밤 열한 시까지 시청에 있다가 집에 들어왔다. 개도 안 걸린다는 오뉴월 감기에 해롱거리면서 노트북 앞에 앉아 6월 8일의 밤을 더듬어 보고 있다. 콧물을 닦은 휴지가 휴지통에 한 가득 쌓여있다. 지금도 아마 시청에서는 오늘 밤에 벌일 촛불 집회 준비가 한창일 것이다.
어젯밤 늦게 들어와 광화문 쪽 생중계를 보면서 실시간으로 계속 올라오는 인터넷 뉴스들을 읽다가 나는 더럭 불안에 사로잡혔다. <프레시안>이나 <민중의소리>, <오마이뉴스>, <참세상> 같은 뉴스 사이트들에서는 촛불 집회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을 엄혹한 시대에 함께 고생하고 있는 우리의 벗들이라 여기고 기사를 쓰고 있었지만 다음, 네이버, 엠파스, 싸이월드 같은 사이트들에서는 그 사람들을 '촛불시위대'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기사를 읽는 사람과 완전히 분리시키고 있었다. 집에서 통닭이나 뜯으며 인터넷만 하는 사람들에게 '촛불시위대'란 무협 영화에 등장해서 칼부림하는 자객들이나 다름이 없을 것이었다. 조금 아까까지 광화문에서 같이 있었던 이의 말이 떠올랐다.
"이대로 가다간 언론도 전면 통제될 것이고, 촛불 집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만 가는 것을 두고 언론은 소수 노동자랑 극렬 운동권들만 집회에 나오게 되었다는 식으로 왜곡 보도를 할 거야. 이 자리에 나오는 사람들이랑 일반 시민들을 완전히 분리해 버리는 작전을 쓰겠지. 그럼 촛불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모두 고립되고 말 거야."
정부가 동원한(것이 틀림없어 보이는) 어용 단체들은 요새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활개를 치고 다닌다. 어제도 청계 광장 쪽에서 마치 자기네들 빼고는 애국자들이 다 죽어 버린 것처럼 신나게 태극기를 휘날리며 집회를 하시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나는 몹시 착잡했다. 냉전 시대에나 통했을 사고방식을 바꾸기엔 너무나 늦어버린 저 분들과 촛불 집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서로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를 생각했다. 하루 이틀 생각해 본 것도 아니지만 결론은 늘 같았다. 불가능했다. 시간이 더 흘러 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태평로 쪽에서 광우병 대책위가 진행하는 본집회가 벌어지고 있을 무렵,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을 둘러친 전경 버스들 앞에는 '토요일에 퇴근도 못하고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 하냐'는 뚱한 표정으로 서 있는 경찰 아저씨들이 소위 말하는 '폴리스 라인'을 이루고 있었고 그 앞에는 이젠 전경들도 함부로 못 건드린다는 '다음 아고라'에서 나온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나는 옹기종기 둘러 앉아 구호를 외치며 즐거워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지금 경찰들 앞에 앉아 있는 아고라든 어디어디 동네에서 나온 사람들이든 촛불소녀든 의료지원단이든 인터넷 동호회에서 나온 사람들이든 이명박 정부가 보기에는, 저쪽 청계천에서 애국집회를 열고 있는 뉴라이트들이 보기에는, 이문열이나 조갑제 같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직도 우리나라는 미국에 은혜를 더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어르신들이 보기에는 오로지 그 자리에 앉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모두 운동권이며 빨갱이들이다. 이명박 정권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은 단지 그 이유만으로 이명박 정권에게는 좌파 빨갱이들로 인식될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운동권이란 아주 오래 전부터 조작된 이미지에 불과하고 그 이미지는 독재 정권의 탄압 대상이 되고 싶지 않다는 보신주의와, 내 삶에 끼어드는 낯선 것들―정치적인 것들―에 대한 막연하고 추상적인 거부감이 무럭무럭 키워낸 흉악한 괴물 같은 것이 아니었던가. 중요한 것은 운동권과 비운동권의 구분이 아니라 행동하는 사람과 행동하지 않는 사람의 구분이라는 것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깨달아야 한다. 안 그러면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고립되고 말아.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도 어느새 '운동권'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을까. 촛불은 이제 꺼져야 한다고 이죽거리기만 하는 인터넷 좀팽이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겠지. 운동권이든 뭐든 무엇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든 상관없이 인간이 가장 인간다워지는 순간이 분명 있다는 것을.
오십여 장이나 되는 글 속에서 나름대로 중요하다 싶은 장면들만 어쨌든 간추려 보았다. 그날 밤이 아직도 생생하다. 알싸한 소화기 분말의 맛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밤 지치지도 않고 시청으로 모여드는 이유도 꿈만 같은 광경이 현실처럼 펼쳐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무슨 일이 벌어질까?' 우리 한국 현대사에서 이런 집회가 또 있었던가? 이건 꿈이자 현실이자 꿈과 현실이 마구 뒤섞인 난장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현장이다. 이 싸움 길게 간다. 모두가 알고 있듯 아픈소 쇠고기 문제가 끝이 아니다. 다들 몸조심하시기를.
| <작가 소개> 삶이 보이는 창 르포문학팀 5기 |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