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우리 스스로 더 태워 내기를"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우리 스스로 더 태워 내기를"

[촛불의 깊이, 10개의 르포르타주 ③] 촛불 집회서 만난 울산 노동자들

울산 촛불 집회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여러 노동자들의 생각과 모습을 취재하고 담는 내내 내 마음 한구석을 떠나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지난해 가을에서 올해 2월, 내가 취재차 방문했을 때 까지도 현대 자동차 공장안에 작은 섬처럼 파란 천막을 치고 있었다. 비정규직법이 도입되자마자 법의 위력이라도 보여주듯 몇 년씩 잘 다니던 공장을 하루아침에 쫓겨났던 현대 자동차 사내 하청 경남 산업의 해고 노동자들. 나는 '파란 섬, 활화산을 보셨나요?'라는 제목의 르포를 통해 그들의 삶과 투쟁을 공장밖에 알렸고 그 르포가 부디 그들에게 작은 힘이나마 되기를 소망했을 뿐, 더 이상 그들과 연락이 닿지 않은 채 봄이 지났고 여름이 왔다.

촛불이 뜨겁게 타오르던 2008년 여름이었다. 87년 여름 이후 20년만이라는 대투쟁의 열기는 대단했다. 세상의 모든 카메라와 입들이 모두 촛불에 대해 보고할 때 역설적이게도 나는 자꾸만 그 작은 천막이 걱정스럽게 떠올랐다. 안 그래도 고독하고 외로웠던 투쟁, 이 열기 속에서 혹시 그들은 더 소외되고 밀려나 있는 건 아닐까? 그 천막을 무사히 지키고나 있을까? 나는 서둘러 그들 중 한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천막을 비우고 바깥에 나와 있다는 그의 목소리에서는 한여름의 무더위가 묻어나는 듯 했다. 볼일 때문에 잠시 나와 있고 곧 천막으로 돌아갈 거라고 했지만 무더운 장마와 따가운 여름 햇살 아래에 천막을 지키며 복직투쟁을 한다는 게 도무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 노동자는 강해져야 하는 건가, 아님 독해져야 하는 건가? 그들의 여름이 얼마나 잔인할지는 도무지 상상으로도 가늠하기 어려웠다. 곧 공장으로 다시 한 번 더 들어가겠다는 약속과 함께 나는 그에게 촛불 집회에 관한 생각을 듣고 싶다는 부탁을 했다. 그리고 곧 그에게서 메일이 도착했다.

촛불 집회를 간접적으로 인터넷 혹은 뉴스로 시청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대통령인 이명박 정부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노동자들에게 많은 노동을 강요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본에 이익이 된다면 국민이야 어떠한 일이 생기든 아무 상관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익을 위해서는 많은 비정규직노동자 및 한시하청노동자들을 자본의 이익을 위해서 필요로 한다면, 전국의 모든 국민이 비정규직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 노동자들이 많이 나서서 촛불을 같이 하고 있지는 못합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노동자들 역시 촛불을 밝힐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땅의 모든 국민들과 노동자들 그리고 학생들까지 나선다면, 정부에서 하는 힘의 논리는 물러나지 않을까요?

이 촛불을 지키고 발전시킨다면, 이런 잘못된 길을 가는 정부를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법 경찰 검찰 등이 공권력으로 국민들에게 힘을 가하지만 촛불이 꺼지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은 바뀔 수 있을 것입니다.

힘은 또 다른 힘을 부를 것입니다. 비록 폭력은 잘못된 것이지만 그 폭력을 행하는 것이 지금의 정부입니다.

정부의 폭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국민들의 촛불 역시 강하게 피어오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울산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경남 산업 해고 노동자의 편지글 중에서


우리 노동자들의 민생고도 중요하게 다루어졌으면

▲ 울산 촛불집회. ⓒ서해식

"저희, 택시 노동자들은 광우병보다 민생고가 더 크게 다가옵니다. 지금 협상안으로는 안 되고 재협상해야 한다는 건 다 알지만 삼삼오오 모여 하는 이야기에서는 우리 생존권 문제가 먼저죠. 다들 오른 유가에 대해 많이들 이야기 하죠."


광우병 재협상안이 발표되던 날에 열린 촛불 집회에서 만난 민주택시 본부 울산 지부장 김진우님은 첫마디를 이렇게 열었다. 인터뷰를 할 때 최대한 상대방의 대답에 대한 예상을 피하는 편이지만 그의 대답은 내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다. 수없이 많은 촛불이 반짝거리고 있지만 그 촛불마다의 희망은 수없이 다르고 또 같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와의 첫 대화에서 느꼈다. 그가 촛불에 대해 거는 희망은 크고 간절했다.

" 우리 택시 쪽에는 나이든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다들 자녀들 때문에 광우병 문제에 대한 걱정이 많습니다. 하지만 당장 생계가 급하니 그 이야기는 뒷전이죠. 현장에서 일하러 나가면 예전보다 손님이 많이 없고 기름 값마저 오르니 더 살기가 어렵죠. 촛불 문화제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광우병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 노동자들의 민생고도 같이 이슈가 되어 올랐으면 좋겠어요."

며칠 후 'LPG가격 폭등에 따른 대책 마련을 위한 '울산 택시 살리기 대책위'에서 여는 기자회견이 보도되는 방송을 통해 그를 또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후 내가 내내 촛불 집회장을 쫓아다니는 동안 그를 자주 볼 수 있었다. 그가 촛불 집회에 거는 간절한 기대만큼이나 그의 움직임도 바빴다.

"며칠 뒤면 광우병 소 수입반대를 위한 민주노총 파업에 돌입하는데 현장의 분위기는 어떠세요?"

집회에 꼬박 꼬박 나오던 또 다른 한 노동자를 눈여겨보았다가 마침내 용기를 내어 말을 붙여 보았다. 촛불 집회장에는 가끔 노무 관리팀에서 보낸 사람들이 작업복을 입고 참석하기도 한다. 처음엔 조합원이라고 했다가 계속 질문을 하면 아예 입을 꽉 다물고 고개만 흔든다. "정말 조합원 맞으세요?" 하고 노골적으로 내가 물어보면 그냥 아예 고개를 돌리고 다른 곳만 쳐다보던 사람도 있었다. 그러니 인터뷰를 하려면 사람을 잘 살펴보고 해야 한다. 덕양 산업 수석부지회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안병주님은 조합원들이 정치 파업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며 어렵게 말을 떼었다.

"파업찬반 투표에서 칠십육 프로의 찬성률이 나왔지만 정작 파업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생각하는 노조원이 드물어요"

"그럼 어떻게 그렇게 높은 찬성률이 나올 수 있나요?"

"노조간부들이 하는 걸 따르는 거죠"

"노조 간부들을 따르면서 정작 촛불 집회에 무관심한건 왜 그럴까요?"

"개인주의죠. 내가 피해를 보면 사소한 것에도 목숨을 걸지만 이번 일은(광우병 소고기 수입반대 촛불 집회)직접피부에 와 닿는 일로 느끼지 못하는 거죠"

금속 노조 지침이기 이전에 노조 간부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촛불 집회에 꼬박꼬박 참석한다는 그는, 노동조합 간부가 나서야 조합원을 이끌 수 있고 간부들은 촛불집회에 대해 조합원들에게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운수 노조, 중소기업 노조 소속의 노동자들이 많이 참석한데 비해 며칠 동안 집회장을 계속 다녀 봐도 대기업 노동자들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현대자동차가 파업에 돌입하기로 결정이 났지만 노동조합 간부들조차도 쉽게 만날 수 없었다. 조합 간부들과 대의원,소의원들만 합쳐도 웬만한 중소기업 노동자 수 전체와 맞먹을 많은 인원이 올 텐데 어떻게 된 일인지 아이보리색 작업복을 입은 현대 자동차 노동자들은 간혹 몇 명만 눈에 띌 뿐이었다. 며칠을 돌아다니다가 예전에 이웃에 살던 현대자동차 조합원인 한 노동자를 만나서 공장 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중간 허리가 없다

"정치 파업은 불가능해요. 중앙 교섭에서 나온 임투안을 가지고 찬반 투표를 해서 그것을 매개로 분위기를 띄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광우병 소 수입 반대만으로 정치 파업은 힘들어요."

7월 2일부터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하면 촛불 집회의 흐름이 새로운 방향으로 접어 들지 않겠느냐는 나의 물음에 정용오(현대 자동차 엔진 사업부)님은 현대 자동차 노동조합의 행동 향방이 촛불 집회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거라고 했다.

"광우병 소 수입이 왜 문제가 있는지,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왜 노동자가 나서야 하는지 현장에서 임원들이 나서서 선전하고 조직하면 조합원들도 나설수 있어요. 그런데 각 노조 간부, 대의원들이 집회에 오질 않아요. 조합원들은 이렇게 개별적으로라도 오는데 오히려 핵심 간부들이 집회에 오질 않아요. 조합원들이 아니라 간부들이 문제에요. 조합원들은 광우병 소 수입 하는 거 문제 있다는 것 다 알아요. 출퇴근 시간에 조합 간부들이 선전전하고 간부들이 집회에 올 때 자기 사업부 사람들 같이 조직해서 오면 되는 거 아닌가요? 부정의 힘을 더 큰 힘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 현장에서 조합원들을 만나고 있는 중간 간부들이 그럴 의지가 없는 것 같아요."

정용오님과 만남 이후, 7월 2일 현대 자동차를 포함한 울산의 이만 오천여명의 노동자들이 2시간 부분 파업에 돌입했다. 6월 말부터 시작된 장마는 이날 오후부터 다시 거센 빗발을 날리고 있었다. 4시 30분에 울산역 광장에서 열리기로 한 '민주 노총 총파업 승리 결의 대회'는 비로 인해 취소되었다. 비가 와서 집회가 취소되는 수도 있다니, 나는 비 때문에 집회가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물대포에 맞아 눈이 찢어지고 고막이 터지던 시청앞 광장의 사람들이 떠올랐다. 태풍도 아니고 장마비 때문에 집회가 취소되다니, 정말 비 때문일까?

울산 대공원에서 롯데 백화점 앞으로 자리를 옮긴 이날의 촛불 집회에서는 내리는 비속에서도 많은 시민들과 종교인들이 참석했다. 3000여명의 조합원들이 참석 할려고 했지만 비 때문에 참석할 수 없었다는 민주노총 본부장의 연설을 들으며 나는 씁쓸해졌다. 비가 와도, 물대포를 쏟아도, 명박 산성을 쌓아도 누군가는 비를 맞고, 고막이 찢어지고, 모래 주머니를 밟고서라고 가고야 만다. 오고야 만다. 3000여명의 행렬을 막은 게 정말 비 때문일까?

더 절박한 삶들의 염원을 위해

처음 취재를 시작할 때 만났던 택시 노동자가 다시 떠오른다. 그는 촛불 집회의 힘이 미국 소 수입반대를 넘어서 민생고에 시달리는 대다수 가난한 노동자들의 생존권 문제를 소중하게 다뤄 주기를 바랬다. 집회장 발언대에 오른 한 신부님은 우리는 돈과 경제 앞에서 비겁했고 그래서 어쩌면 5년 내내 이 촛불을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이 촛불이 우리 자신을 더 밝히고 우리 스스로를 더 태워 내기를 희망했다. 이 촛불이 이명박을 향한 싸움이기 이전에 우리 자신과의 싸움이 되기를 바란다는 그의 염원은 우리의 양심을 오래도록 누를 것이다.

작은 섬처럼 위태하게 버티고 있는 천막을 지키느라 촛불 집회에도 참석할 수 없었던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 뜨거운 촛불의 외침 속에서 민중들의 민생고가 떠오르길 바랬던 택시 노동자, 간부들이 앞장서서 집회에 참석하고 촛불 집회의 진실을 조합원들에게 알려 내야 한다던 중소기업 노동자. 그리고 내가 만난 많은 노동자들의 간절한 염원 속에서 나는 우리의 촛불이 어디로 가야하는지 그 근원의 길을 볼 수 있었다. 대기업 노동자, 영세한 사업장의 노동자, 혹은 어린 아이를 유모차에 싣고 나온 엄마까지 모두의 염원은 한결 같을 것이다. 서로의 절박함과 고통의 무게는 다를지라도, 그러나 진정 이 촛불 집회장에서는 더 절박하고 더 가난한 삶들의 염원을 위해 촛불이 타올라야 하는 게 아닐까? 연대를 가로막고 있는 억압은 이명박 정부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이기심이 아닐까? 내리는 빗줄기가 아니라 스스로 채운 족쇄가 연대의 행렬을 막은 것은 아닐까?

이제 며칠 뒤면 나는 현대 자동차 사내 하청 경남 산업 해고 노동자들의 투쟁과 삶을 보고하러 다시 그들의 '파란 섬'을 찾을 것이다. 긴 장마와 폭염에 시달렸을 그들의 천막이 부디 무사하길 바란다. 그리고 촛불 집회가 열리는 여름 내내도 전혀 해결되지 못했던 그들의 삶을 기록할 것이다. 비록 미약한 빛이나마 지친 우리의 눈빛을 나누며 또다시 희망을 향한 연대를 시작하고 싶다.
<작가 소개>

르포작가. 비정규직 교사. 제 5회 전태일 문학상 수상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