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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쁘다 주구(走狗) 오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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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기쁘다 주구(走狗) 오셨네"

[촛불의 깊이, 10개의 르포르타주 ④] 부시가 오던 날

미국 부시 대통령이 한국에 온다고 해서 아침부터 '갑호 비상경계령'인지 뭔지 하는 설레발을 치며 벌떡거리고 있는 정부와 경찰들을 보고 나는 크리스마스나 때나 부르는 캐럴 한 대목을 생각했다. 기쁘다 주구(走狗) 오셨네. 만백성 맞으라. 사실 부시 대통령도 맞으면 아프고 슬프면 눈물 흘리는 나약한 인간일 테고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나쁜 일들의 원인이 모두 그 사람에게 있는 것도 아니겠지만 어찌 되었든 부시는 지구촌 깡패 노릇을 하고 있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우두머리이자 미국 하면 딱 떠오르는 신자유주의 혹은 군사패권주의라는 무시무시한 흐름의 앞잡이다. 그런 주구가 왔으니 우리 모두 기뻐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손님이 오셨으니 제대로 대접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정부와 경찰들은 난리 법석을 떨고 있었다.

촛불집회가 우꾼하게 일어나던 지난 두어 달 간 미국에 콕 틀어박혀 있으면서 손꼽아 가며 날짜를 고르긴 한 모양이었다. 평일이든 주말이든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예전 보다는 한참 적게 나온다는 사실을 몰래 살펴 알아낸 것인지도 모른다. 부시는 8월 5일이라는 날짜를 잡아 한국에 왔고 그 생뚱맞은 일정에 맞추어 청계 광장에는 모처럼 거의 만 명은 될 것 같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종각 쪽에서 사전 집회를 벌이고 청계 광장으로 온 수많은 깃발들을 보며 나는 촛불집회가 어느덧 석 달이 훌쩍 넘어버렸다는 것을 새삼 생각했다.

한희정, 32살, 진보신당 당원 : 너무 피곤해! (웃음) 그게 가장 크지요. 집회가 열리기 시작한 초반엔 거의 매일 밤새웠어요. 그때는 제가 직장을 안 다닐 때라 그렇게 밤새우는 게 가능했거든요. 그러다보니 밤에 잠을 안 자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어요. 집회 나가면 밤 꼴딱 새우고, 집에 있게 되면 또 인터넷으로 생중계 보느라 밤새우고… 제 개인적인 저녁 시간이 아예 없어져버렸죠. 그렇게 살다가… 하루하루 느낀 점들을 제 개인 블로그에 글로 써서 올리기 시작했어요. 주변 사람들이랑 온라인에서 서로 댓글 달아주며 소통하기도 하고… 아시겠지만 집회 나와서 하룻밤만 새워도 이야깃거리가 참 많이 나오거든요. 그거 가지고 인터넷에서 얘기 나누는 거에요. 집회 나오다 보니 같은 동네에서 사는데도 한 번도 못 본 사람들을 만날 수가 있었어요. 깃발에 자기 동네 이름 쓰고 사람들 막 나오잖아요. 한 동네 사람들인데 평소엔 알지도 못한 채 지내다가 집회 나와서 알게 되니 그게 참 좋더라구요. 그러다보니 진보신당 당원들도 조금씩 늘어나게 됐구요. 이런 데 같이 나와서 친해진 거죠. 차비랑 밥값이요? 아이구… 말도 마세요. 엄청 들죠! 밤샘할 때는 아예 제 차를 가져왔어요. 요 근방에 제가 주차하는 자리도 정해놨었죠. 차 못 가져오는 날에는 택시 타고 집에 가야 하니까 택시비도 엄청 들고… 아, 그리고 집회 아니었으면 못 만날 사람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어요. 옛 친구들이나 선후배들… 집회 때 오랜만에 만나서 얘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게 참 좋았죠. 아유, 정말 피곤해요. 도대체 몇 달째인지… 저도 애가 있는데 집회 초반엔 데리고 나오구 그랬어요. 그 왜 유모차 부대라고 전에 있었잖아요. 근데 요새는 진압을 너무 폭력적으로 하니 아이 못 데리구 나오죠. 하여튼 피곤한 게 가장 커요. 제가 체력이 좋은 편이라 아직 건강에 이상이 있지는 않지만… 너무 피곤해요.
▲ 지난 8월 5일 경찰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방한 일정에 맞춰 '갑호 비상경계령'을 내리고, 촛불 집회에 대해 처음부터 봉쇄 및 진압에 들어갔다. ⓒ프레시안

십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아와 시청 쪽에서 광화문까지 도로를 가득 메우던 시절은 지났다. 폭력집회는 안된다고, 비폭력이어야 한다고, 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무기라고 말하던 그 많은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지평선을 까맣게 물들인 전경들에 맞서 고작 시위대 백여 명이 비폭력으로 집회를 끌고 간다는 것은 말이나 쉽지,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을 연행해가려고 벌겋게 된 눈으로 달려드는 수많은 전경들은 대체 어찌 하라는 것일까? 맞서 싸우지 말고 얌전히 붙잡혀 가야 할까? 집에서 인터넷으로 대강 뉴스나 읽으며 "그래, 역시 폭력은 안 돼"라고 중얼거리기만 하는 사람들에게는 '촛불집회 = 불법 폭력집회'라는 등식이 아마 마음이 하나도 불편해지지 않는 굉장히 편한 결론일 것이었다. 불법 폭력집회니까 나 자신은 안 나가면 되는 것이다. '처음'의 '순수성'을 '잃어버린' 집회라 얘기하고 넘어가면 끝인 것이다. '처음'이 언제부터인지, '순수성'이라는 것은 또 무엇인지, 도대체 뭘 '잃어버린' 것인지는 아무도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간단히 생각하기로 했다. 지난 5월에 처음 촛불집회를 시작한 후로 지금까지 해결된 것은 하나도 없다. 사랑니 뽑은 환자처럼 입 꼭 다물고 우두커니 촛불만 든 채 서 있어야, 해 떨어지자마자 곧장 흩어져 집으로 가야 '합법' 집회가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현 정권은 정당한 주장을 하러 모인 사람들을 모조리 '불법' 행위 가담자로 규정했고 불쌍한 젊은이들인 전경들을 동원해 물대포질 소화기질 방패질 발길질로 무자비하게 촛불집회를 탄압했다. 미국산 쇠고기는 이미 한국에 들어왔고 공기업 민영화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으밀아밀 진행되고 있다. 서울시 교육감 자리까지 따먹은 현 정권이 이 세상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가능성은 털끝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현 정권에 반대하는 싸움도 도무지 변할 수가 없는 것이다.

촛불집회 한 번 나와 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이젠 그만 좀 해라." "순수한 시민들만의 집회가 아니라 운동권들만의 집회다." "경제가 어려운데 무슨 집회냐." 헛소리들을 지껄여대도 현 정권이 마치 틀린 그림 찾기라도 해보라는 듯 석 달 전과 달라진 것이 전혀 없어 보이는 꼴통의 모습을 고집하고 있으니 싸움을 접고 싶어도 접을 수가 없는 것이다. 처음의 순수함을 잃었다고? 촛불집회는 현 정권이 가정을 박살내는 주정뱅이 아버지 노릇을 이어가고 있는 한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순수할 수밖에 없다. 변함없는 마음을 지켜가는 것이 순수함이라면 현 정권은 촛불집회를 그 무엇보다도 순수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조원선, 27살, 기간제 선생님 : 저도 자주는 못 나오는 편이에요. 그런데 학교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학교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너무 무관심해요. 동료 선생님들이나 행정 직원들 같은 경우 정말 촛불집회든 뭐든 하나도 관심이 없어 보여요. 아니 관심이 없다기 보다… 자기 생각을 웬만해서는 표현하지 않으려고 하죠. 정치 얘기 잘 안 해요. 오히려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과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쉽게 이야기할 수 있어요.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훨씬 개방적이에요. 자기네들끼리 몰래 집회 가서 밤새우고 오고… 수업 시간에 영상물 같은 거 보여주면서 토론도 하고 그러죠. 물론 교무실에서는 제가 수업 시간에 그런 수업을 하는지 전혀 몰라요. (웃음) 글쎄요. 아이들이 집에 가서 부모님한테 얘기를 안 하나? 교무실로 전화 걸려온 적도 없어요. 짤리면 짤리는 거고. 그냥 하는 거죠 뭐. (웃음) 그런데 사실 아무도 모르게 촛불집회 나오는 선생님들이 있긴 있어요. 극소수긴 하지만… 그런 선생님들끼리는 서로 대충 알죠. 저도 그런 선생님들 중 하나고… (웃음) 그런데 다 같이 모여서 한꺼번에 나오지는 못하고 그냥 따로따로 나와요. 음, 그런데… 다른 선생님들과 밥 먹으면서 혹은 회식 자리에서 이런저런 얘기 나누다 보면 다른 선생님들도 이 정권에 대해 불만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가 있어요. 집회에 나오지는 않지만 적어도 현 정권을 굉장히 안 좋은 시선으로는 보고 있다는 거죠. 그건 그런데… 선생님이라는 사람들이 자꾸만 정치와 무관한 사람들이 되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얼마 전에 서울시 교육감 선거가 있었잖아요. 그런데 교무실에 있는 선생님들 대부분이 교육감 선거가 있다는 것도 모르더라구요. 웃기죠? 그래서 제가 제발 선거 좀 하라고 선생님들 등 떠밀어 보내기는 했는데… 정말 어이가 없었어요. 머릿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정작 실천을 하나도 안 하고 있는 거에요.

청계 광장에서 집회를 벌이던 사람들은 곧 거리로 행진할 채비를 차렸다. 왜 이렇게 집회를 빨리 끝내나 했더니 청계 광장 주변 골목에서 경찰 기동대, 아니 백골단원들이 집회 도중에 심심풀이 삼듯 사람들을 연행해가고 있었다. 저 뒤쪽에서는 이미 전경들과 시민들이 충돌하고 있었고 도로에 나서기만 해도 경찰 기동대, 아니 백골단원들이 여러 날 갈고 닦은 솜씨로 한 명씩 붙잡아갔다. 보신각 사거리 쪽으로 시민들은 우르르 몰려가기 시작했고 나도 오로지 사람들의 힘으로 만들어진 폭풍과 해일과 천둥소리를 좇아 종각역 쪽으로 갔다.

종각역 부근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보신각 앞 사거리 한가운데에 모인 대오를 전경들이 사방에서 조금씩 포위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광화문 쪽을 제외한 나머지 세 방향에는 이미 전경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부시를 취재하러 갔는지 MBC나 KBS 같은 유력 언론 보도진은 보이지 않았다. 보도진이 커다란 부담이었을 경찰 측은 기회는 이때다 하는 심정으로 그전보다 몇 배는 더 많이 전경들을 풀어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전경들이 쓰고 있는 시커먼 투구들은 가로등 빛을 받아 섬뜩한 광택을 되쏘았다. 해충이 잔뜩 슬어놓은 알처럼 징그러웠다.

어느덧 광화문 쪽에서도 천천히 전경들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아직 사람들을 진압할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광화문 쪽에서 슬금슬금 이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살수차 세 대를 보고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여덟 시 반이었다. 평소에 밥 먹고 사람 패는 법이나 배우는 전경들이겠지만 촛불집회에서 이렇게 이른 시각에 진압하러 달려든 적은 없었다. 무심코 방심하고 있던 나는 잠시 후 광화문 쪽에 서 있던 대오가 갑자기 내 쪽으로 득달같이 뛰어오는 것을 보고는 껑충 뛸 듯이 놀라고 말았다. 전경들이 와아 하는 함성을 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먹빛 파도가 사납게 휘몰아쳤다.

신세철, 25살, 공익근무요원 : 7월 초에 신문을 바꿨어요. 그동안 집에서 계속 동아일보만 봤었는데… 부모님이 촛불집회랑 광우병 보도를 하나 둘 접하시다 보니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셨던 모양이에요. 신문 좀 바꾸자고 제가 예전부터 그렇게 조를 때는 꿈쩍도 안 하시던 분들이, 제가 촛불집회 다녀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드리는데 신문에서 읽은 내용이랑 너무 다르니까 저한테 설득을 당하신 거죠. 그래서 원래는 한겨레로 바꾸려고 했는데 그 신문은 싫다고 하도 우기셔서 그냥 경향으로 타협을 봤어요. 속이 시원하더라구요. (웃음) 부모님도 제가 촛불집회 나오는 거 아시죠. 별 말씀은 없으세요. 제가 부모님 붙잡고 촛불집회며 광우병이며 대운하며 이야기를 많이 해드리는 편이에요. 부모 자식 사이에 대화하는 시간이 전보다 늘었다고나 할까? (웃음) 제가 초등학교 행정실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군생활을 하고 있는데 거기서 일하시는 분들 중에서 공무원노조 조합원이 한 분 계세요. 그 분이랑 또 죽이 맞아서… (웃음) 같이 일하는 동료 공익근무요원들을 그 조합원 분이랑 막 설득하고 있긴 한데 잘 안되더라구요. 계속 설득하고 있어요. (웃음) 제가 사는 동네 이름이 적힌 깃발을 보고 처음엔 깜짝 놀랐어요. 우리 동네에도 나랑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구나. 정치적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뭐 그런 생각을 했죠. 말은 아직 못 걸어봤어요. (웃음)

도로에 있던 사람들을 인도에 몰아넣기만 하는 줄 알았더니 전경들은 인도에까지 마구 짓쳐들어와 방패를 휘두르고 사람들을 연행해갔다. 순식간에 주변은 생지옥이 되었다. 나는 머릿속이 하얗게 된 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삼성증권 건물 뒤쪽으로 도망쳤다. 골목을 타고 다시 종각역 쪽에 나와 보니 전경들은 보신각 사거리 주변을 도로든 인도든 죄다 자기네 영토인 것처럼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누워서 떡 먹듯 너무나도 쉽게 사람들을 낚아채가는 전경들을 보며 어처구니가 없어서 입을 헤 벌리고 있었다.

"여기서 이러지 말고 종삼으로 가요!" "탑골로 갑시다!" 다시 대오를 수습하고 깃발을 챙겨 든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경들에게 용케 빼앗기지 않고 잘 간수한 깃발들이었다. 깃발을 빼앗아 들고 전리품이랍시고 동료들과 낄낄거리며 좋아하고 있을 전경들을 생각하니 구역질이 났다. "저 새끼들, 아까는 대책위 무대 차량도 빼앗아갔어요!" "깃발 뽀려간 거는 하루 이틀 일도 아니야!" "우리가 깃발 들고 있는 게 그렇게 무섭나?" "종로 바닥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아직 로보캅(경찰 기동대)들은 안 떴지?" "종로 3가 쪽으로 갑시다!"
▲ 경찰은 이날 처음으로 색소 섞인 물대포를 쏘았다. 색소가 묻은 참가자는 나중에라도 검거해서 잡겠다는 목적이었다. ⓒ프레시안

종로 3가 쪽으로 걸어가면서 나는 온갖 맛난 음식들을 파는 가게들을 보았고 누구나 돈만 있으면 흠뻑 취할 수 있는 술집들도 보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안겨줄 수 있는 꽃들을 파는 노점도 보았고 새 것을 사면 최대 54만 원까지 지원해준다는 손전화 매장도 보았고 이 밤이 지나갈까봐 필사적으로 깜박거리는 네온사인들도 보았고 팔짱을 끼고 걷다가 "와, 재밌어! 재밌어!" "재밌긴 뭐가 재밌어? 난 무서워 죽겠는데"라고 재잘거리며 종각역 지하도 입구로 쏙 빠져버리는 한 젊은 연인도 보았고 걱정스레 인도로 나와 전경들을 바라보는 횟집 주방장도 보았고 "저렇게 좋은 머리들 이런 데 나와서 다 골병들면 어떻게 해 으이구"라고 투덜거리며 지나가는 할머니도 보았고 돼지갈비 집에서 흐하하 웃으며 질겅질겅 고기를 씹고 있는 양복쟁이 아저씨들도 보았고 벌써 400만 명이나 봤다는 영화의 포스터 속에서 한껏 자세를 잡고 있는 배우들도 보았고… 평소 같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갈 수 있었을 그 모든 평범한 것들이 갑자기 너무나 끔찍한 것들로 보여서 나는 좀 당혹스러웠다. 밥 먹고 영화 보고 술 마시고 즐겁게 노는 모든 행위들에서 억지로라도 죄책감이라는 냄새를 맡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사람들이 도로로 나서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인도 가장자리에 방패를 세워 들고 마네킹처럼 서 있는 전경들이 정작 지켜주고 있는 것은, 자기 삶 바깥에 있는 것들엔 아랑곳없이 소비문화를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자유였다. 방패로 얻어맞고 있는 사람들을 유리창 밖으로 보며 돼지갈비를 구울 수 있는 용기였다. 다른 사람들이 피를 흘릴 때 나 자신은 군침을 흘릴 수 있는 배짱이었다. 나는 문득 속이 안 좋아져서 길가에 있는 한 패스트푸드점 화장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에 다시 나와 보니 탑골 공원 쪽에서 살수차가 물을 뿌리고 있었다. 어두운 허공 속에서 물보라가 마치 흰 옷을 입은 흉물스러운 귀신의 옷자락처럼 펄럭거렸다. 전경들은 탑골 공원 쪽에도 잔뜩 몰려 있었지만 인사동 입구 사거리 쪽에서는 전경 버스들이 새로운 불쌍한 젊은이들을 자꾸만 날라 왔다. 방패를 든 전경들은 처벅처벅 군홧발 소리를 내며 괴성을 질러댔고 사람들이 도로로 나설 수 있을 만한 길목에 바리케이드를 치듯 도열해 섰다.

문혜원, 27살,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활동가 : 지금까지 한 달 정도 활동했는데… 일단 그때까지 하던 알바들은 다 그만두고 들어왔죠. 알바를 하려고 해도 도저히 할 수가 없으니까. (웃음) 요 몇 주 동안 날씨가 너무 안 좋았잖아요. 주말만 되면 비가 내리고… 장비들을 챙겨야 하니 날씨가 안 좋다 싶으면 많이 불안해지죠. 집회를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집회를 아무 탈 없이 진행하고 싶을 수밖에 없잖아요. 비 오면 장비 관리하기가 되게 힘들어져요. 날씨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이 많았죠. 게다가 오늘은 무대 차량까지 경찰들한테 빼앗겼어요. 휴― 좀 안정된 집회를 하고 싶었는데… 아까 사회자가 봉고차 위에 올라가서 사회 본 거 보셨죠? 그런 일 벌어지면 너무 안타깝죠. 음… 누구나 하는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과연 이 운동이 될까?' 많이 불안했죠. 그런데 얼마 전에는 휴가 기간을 이용해서 포항에서 온 가족이 서울 촛불집회에 참여하려고 올라오신 일이 있었어요. 포항뿐만 아니라 충북, 경남… 휴가 기간을 촛불집회에서 보내려고 그 먼데서 다들 올라오신 거에요. 그런 모습들을 보며 제 생각이 많이 바뀌었죠. 처음엔 확신이 없었지만… 이젠 그런 분들을 보면서 감히 확신이 없다고 말할 수가 없게 됐어요. 돼지 저금통에 동전을 가득 담아서 대책위 상황실로 보내주신 분도 있었고… 힘이 많이 되지요. 물론 집회 하다 보면 저희들한테 막 험한 말씀도 하시고 욕 하시는 분들도 있긴 하지만… 작은 것 하나라도 도와주시려는 분들이 더 많으니까… "경찰들 오면 우리가 막아줄게!"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말씀하세요." 이런 따뜻한 말씀들을 들으며 힘을 받아요. 오늘이 딱 90차 되는 촛불집횐데… 90차 내내 나오시는 '청계 할아버지'라는 분이 계세요.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그 할아버지 말고도 거의 매일 나오시는 분들도 많고… 이제 지칠 때도 됐는데 시민들 보면 꼭 오늘 처음 나오는 것 같은 표정으로 계속 집회에 나오세요. 저도 일에 시달리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나오지만 그런 분들 보면 없던 힘들이 막 생기죠. (웃음) 아― 정말 피곤해요. 대책회의 사람들 대부분이 건강이 되게 안 좋아요. 몸이 한두 군데씩 아프죠. 피로가 계속 누적이 되니까… 그런데 시민들을 보면 에너지가 솟고… (웃음) 저희가 82차 촛불집회부터 촛불일기라는 걸 썼어요. 이게 뭐냐 하면… 매일 집회 시작하기 전에 "촛불일기 쓰실 분!" 하고 신청을 받아서… 저희들한테 해주고 싶은 말들을 그냥 자유롭게 쓰시라고 종이를 드리는 거에요. 신청하는 분이 없으면 저희가 그냥 찍어서 이것 좀 써주시라고 부탁 드리구요. (웃음) 그걸 이렇게 스크랩해서 저희 상황실 사람들끼리 돌려 읽어요. 읽다 보면 울컥해서 눈물이 막 나와요. 힘내라고, 끝까지 같이 싸우겠다고 해주시는 분들이 아직은 많으니까… 그런 분들 믿고 가는 거죠.

못 보던 자그마한 하얀 버스가 스르르 와서 멈추었다. 화창한 봄날에 친구들과 함께 저런 버스를 타고 소풍이라도 가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곧 로마시대 검투사처럼 차려 입은 전경들이 내렸다. 자세히 보니 전경들이 아니라 경찰 기동대, 아니 백골단원들이었다. 도로 한쪽으로는 여경들 십여 명이 탑골 공원 쪽을 향해 바삐 걸어가고 있었다. 굳이 용한 점쟁이가 아니더라도 그 모든 상황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누구나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공권력은 지금 검거 작전용 용역 공무원들을 계속해서 불러 모으고 있는 것이었다.

주변에선 이런 대화도 들렸다. "저 새끼들 사람 한 명 잡으면 5만 원씩 받는다며?" "뭐? 에이, 설마. 연행할 때 대여섯 명씩 달려들어 잡아가잖아. 걔들한테 전부 다 5만 원씩 준다는 거야?" "그건 잘 모르겠구. 하여튼 경찰 기동대들에게 성과급처럼 돈을 지급한대." "야, 무슨 우리가 사냥 당하는 짐승들이야? 그게 말이 돼?" "너는 요 몇 달간 말이 되는 상황을 본 적이 있어?" "그러니까 죄 없는 사람들을 개처럼 끌고 가면 나라한테서 돈을 받는다 이거지?" "죄야 뒤집어씌우면 되지. 도로교통법 위반에 집시법 위반이라고. 범법자들도 잡고 돈도 벌고 쟤들도 내심 보람을 느끼고 있을지도 몰라." "더는 말이 안 나오는구만. 미친놈들. 5만 원 벌자고 이 짓을 해?" "뉴스에서 봤으니 사실이겠지. 나도 깜짝 놀랐다. 내 몸값이 5만 원밖에 안되다니…" 나는 나라에 고용된 불쌍한 젊은이들이 고작 돈에 눈이 멀어 그런 무자비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라 믿고 싶지 않았다.

인도와 도로 할 것 없이 종로 3가 일대는 온통 전경들로 가득 차 있었고 나는 이 많은 젊은이들은 전경이 되기 전에는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았을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시꺼먼 장난감 병정들과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전경들은 쓸데없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고 힘이 용솟음치기라도 하는지 방패로 아스팔트를 쿵쿵 찧어대며 괴성을 질렀다. 으리으리한 옷가게 앞에서 흘러나오는 신나는 음악을 배경으로 바라보기엔 너무나 대조적인 기괴한 풍경이었고 그런 부조화는 총격전을 벌이는 와중 흰 비둘기들이 푸드덕거리며 날아가는 어느 홍콩 영화의 멋진 장면과는 영 다르게 몹시 메스껍게 보이기만 했다.

나는 차라리 코가 비뚤어지도록 술을 마신 젊은이들이 가로등 붙잡고 속에 있는 것을 게워내는, 그 순간만큼은 자기 몸에 솔직할 수밖에 없는 순진한 장면을 보고 싶었다. 전경들이든 경찰 기동대, 아니 백골단원이든 자기가 원해서 저렇게 조련 당하는 짐승들처럼 도로를 뛰어다니는 젊은이들이 저 중에서 몇이나 될까? 정말 내뱉느니 한숨이요 나오느니 탄식이었다.

김윤아, 24살, 대학생 : 피곤해 죽겠어요. 도대체가 피로가 풀리지를 않아요. 알바도 간당간당하고… 언제 짤릴지 모르겠어요. 집회 나와서 밤새우다 보면 잠도 제대로 못 자게 되고 밥도 제때 못 챙겨먹게 되잖아요. 제가 원래 위장이 약한 편인데 집회 나오다보니 소화가 잘 안돼서 요새 좀 힘들어요. 음… 정부가 하는 일들에 대해 무조건 불신하고 보는 버릇이 생겼어요. (웃음) 물론 따져볼 건 따져봐야 하는 거지만… 현 정권을 도저히 못 믿게 된 거죠. 무슨 정책을 내놓든 저것이 우리들을 위한 일은 아닐 거라는 의심이 먼저 들어요. 집회에 하도 나오다 보니 치마를 입을 수가 없어요. (웃음) 저 치마 입는 거 좋아하는데… 그래서 새 옷을 안 산지 꽤 오래됐어요. (웃음) 여기 오면 막 뛰어다니고 바닥에 그냥 앉아야 하고 그러잖아요. 막 입고 올 수 있는 옷들을 주로 입고 오니까… 점점 옷을 안 사게 되더라구요. (웃음) 그리고… 이놈의 정권 때문에 스트레스를 자꾸 받으니까 피부도 점점 안 좋아지는 것 같아요. 피부 트러블 때문에 걱정이에요. (웃음) 아― 잠 좀 제대로 잘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마침내 전경들은 사람들을 모조리 인도 쪽으로 몰아넣었고 종로 3가 쪽 도로는 텅 비어버렸다. 잠시 동안 그러한 잠잠한 상태가 이어졌다. "야, 근데 오늘따라 왜 이리 보도진이 없어?" "부시 취재하러 다 공항 갔겠지." "엠비씨며 와이티엔이며 하나도 없으니까 지금 경찰들이 이 지랄하는 거 아냐?" "그럴 수도 있겠지. 근데 역시 미국 대통령이 참 대단하긴 한가봐. 이렇게 초강경 진압을 하다니. 다 부시 눈치 보느라 이러는 거잖아." "주한미군 분담금이나 더 받아먹으려고 온 거지 뭐. 독도 하나 편들어주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열렬히 환영할 줄 알았겠지." "그런데 결국엔 광우병 쇠고기며 한미 FTA며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미국이 나오는 거 아닌가? 왜 촛불집회에서는 반미 구호가 안 나오는 거야?" "나오려면 5월에 처음 시작할 때부터 나왔어야지. 이제 와서! 미국 반대를 외친다고 해도 수구 언론들은 집회가 불순해졌다느니 반미 세력에 이용당하고 있다느니 개소리들만 할 걸?" "근데 사실은 사실이잖아. 재협상 안 해주겠다는 것도 미국이고.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 정부가 이런저런 협상들에서 미국한테 설설 기고 있는 건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반미라는 말에 대해서는 콤플렉스나 알레르기 비슷한 게 있는 거 같아. 솔직히 반미라는 구호가 좀 애매하긴 하지. 미국의 무엇을 반대한다는 건지 그 의미를 반미라는 두 글자 속에는 제대로 담아낼 수가 없어. 광우병 대책위에서도 반미 구호를 외치는 건 전략적으로도 좀 그렇다는 판단을 내렸을라나? 나도 잘 모르겠네." "하긴 5월에 반미 구호를 외쳤으면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많이 모이지는 않았을 것 같긴 하네. 한미 FTA 반대 집회 열릴 때는 전혀 관심 안 가지던 사람들이었으니." "어쨌든 오늘 부시 반대 집회가 새로운 계기가 될 수 있을지도 몰라. '미국 대통령이 오는데 사람들은 왜 저렇게까지 반대할까?' 집에서 TV만 보던 사람들이 이런 궁금증을 품게 되기만 해도 성과가 있는 거잖아." "공항에서 부시 오는 시간에 맞춰 집회 열겠다고 한 거 불허했다며?" "알아서 기는 거지. 집회 강행한다고 하긴 했었는데 지금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네."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면서 멍하니 서 있던 나는 갑자기 들려오는 비명 소리에 화들짝 놀라 얼른 고개를 돌려 그 쪽을 바라보았다. 전경 버스 한 대를 에워싸고 갑자기 사람들이 마구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연행자를 석방하라!" "야, 이 새끼들아! 때리지 마!" "저거 봐요! 버스 안에서 막 때려!" 그 쪽으로 가보니 연행된 듯한 한 남자가 전경 버스 안에서 경찰들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거칠게 저항하고 있었다. 남자는 자신을 향해 플래시를 터뜨려가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에게 버스 창문을 열고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곧바로 옆에 있는 경찰들에게 제지당했다. 몸싸움을 하는 와중에 그 남자의 일그러진 얼굴이 버스 창문에 짓뭉개졌다. 자꾸만 시민 기자단이 사진을 찍자 안에 있던 경찰들은 돗자리인지 포스터인지 굉장히 커다란 무언가를 가? 側?창문을 가려버렸다.
▲ 경찰은 차도건 인도건 상관없이 촛불 집회 참가자들을 연행해갔다. 그 수는 164명에 달했다. ⓒ프레시안

더욱 놀라운 상황은 잠시 후에 발생했다. 전경 버스 안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어서 비록 창문을 가려놓았다 해도 안에서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그림자가 대강 비쳐 보였다. 나는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와이셔츠를 입은 어떤 남자가 무언가를 발로 거듭 짓찧고 있었다. 담뱃불을 발로 비벼 끄는 것도 아니었고 음악에 맞춰 발장단을 쿵쿵 울리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 누군가를 발로 짓밟고 있는 움직임이었다. 발로 한동안 마구 밟아대더니 와이셔츠 입은 남자는 곧 주먹을 쥐고 누군가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옆 사람들까지 다가와 함께 주먹으로 구타하는 모든 광경이 버스 창문 바깥으로 흐릿하게나마 보이자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발을 동동 굴렀다. "저 봐요! 사람이 맞고 있어!" "발로 밟고 있어요! 어떡해!" "개새끼들아! 왜 때려!" "저러다 ! 저 사람 죽겠어요!" 밑에 깔린 듯한 남자는 여전히 저항을 하고 있는지 경찰들의 구타는 끊이지 않았다. 흔히 말하는 실제 상황이었다. (나는 경찰들이라고 쓰고 있지만 그때 그 버스 안에서 누군가를 두들겨 패던 사람들이 정말 경찰들은 아니었으리라 믿고 싶다. 정말 절실히 믿고 싶다.)

시간이 얼마가 지났는지도 모를 정도로 나는 분노에 사로잡혀 꼼짝할 수 없었는데 어느 순간 구타가 멎고 버스 안은 잠잠해졌다.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매를 맞은 남자가 마침내 축 늘어진 것일까? 아니면 구타를 하던 사람들이 마음을 고쳐먹고는 더 때리지 않겠다고 다짐이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구타를 당한 그 남자는 촛불집회 참여자가 아니라 살인이라도 저지른 중죄인이었던 것일까? 나는 거짓말 같은 정적을 발기발기 찢어버리고 전경 버스 안으로 뛰어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전경들 앞에서 내 두 발은 그 자리에 뿌리 내린 듯 움직이지 않았다.

김민규, 26살, 고시생 : 공부하기 참 힘들죠. 뉴스만 봐도 열 받으니까. (웃음) 자주는 못 나오고 틈틈이 나오기는 하는데… 집에 있을 때는 생중계 보면서 또 밤새우고... 잠을 못 자요. 수면 시간이 확 줄었죠. 공부는 해야겠는데 현실은 저를 가만 놔두지 않고… 죽겠어요 정말. (웃음) 스트레스 때문에 신문 보기도 싫어졌어요. 조선이든 한겨레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너무 짜증이 나니까… 하지만 아예 뉴스를 안 보고 살 수는 없으니 또 보게 되고… 제가 집이 지방에 있어요. 부모님들은 지방에 계시고 저는 서울에 올라와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저 촛불집회 나가는 것도 부모님들이 대충 아시는 거 같긴해요. 서울에서 큰 집회가 잡혀 있다는 걸 뉴스에서 보시면 아버지가 전화를 하시죠. "나가지 마라" (웃음) 그런데 어쩌겠어요. 안 나가면 울화가 치밀어 속이 다 뒤집히는데. 공부도 그렇고 나라 꼴도 그렇고… 걱정이에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기껏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에 붙어 봤자 이런 정부 밑에서 일하게 되는 거잖아요?

어느덧 밤 열 시가 넘었고 전경들은 사람들이 도로로 나오지 못하도록 인도 가장자리에 울타리가 되어 서 있었다. 도로는 여전히 텅 비어 있었고 전경이 없는 쪽 인도를 통해 도로로 슬쩍 나가보니 아까 살수차가 사람들을 향해서 쏜 물이 도로 한가운데에 군데군데 고여 있었다. 빨간색 색소가 섞여 있어서 마치 핏물처럼 보였다. 이건 악랄한 것도 사악한 것도 아니고 애들처럼 유치하고 치사하게 구는 짓거리였다. 집회에 나온다고 빨간 물을 묻혀 나중에 검거할 때 증거로 쓰겠다는 발상은 물총에 빨간 물감을 섞은 물을 넣고 신나게 쏘아대며 친구들을 괴롭히는 못된 아이의 행동과 별 다를 바가 없었다. 수배 전단지라도 만들겠다는 건지 디지털 사진기를 든 전경들도 사방을 계속해서 찍어댔다.

경찰들의 그 모든 행동은 모조리 다 '합법'이었다. 촛불을 들고 모인 백 명도 안되는 사람들이 청계 광장에서 구호만 몇 번 외쳐도 어느새 종로 경찰서 간부가 경찰차 타고 와서 불법 집회 해산하라고 경고 방송을 해대지만 경찰들은 방패로 사람을 찍어버리든 마구잡이로 연행해가든 색소 섞은 물대포를 사람을 향해 쏘든 연행자를 전경 버스 안에서 두들겨 패든 그 모든 것들을 전부 합법으로 인정받았다.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당당할 수 있었다. 경찰들의 그러한 당당함이 자신의 당당함과 이어질 수 있으리라 착각한 다른 사람들은 촛불집회를 무조건 불법집회라 몰아세웠다. 그것들은 힘 있는 자들의 당당함이자 힘 있는 자들에게 붙어먹는 이들의 당당함이었다. 힘없는 자들을 때리고 짓밟아야만 얻을 수 있는 그러한 당당함은 당당함이 아니라 차라리 가학적인 쾌락이었다.

오소영, 27살, 대학원생 : 오늘 집회가 90찬데… 지금까지 40번 정도는 나온 것 같아요. 주말 집회나 중요한 고비 때마다 열리는 큰 집회에는 꼬박꼬박 나왔어요. 토요일이 가까워지면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하죠. 집회가 무사히 끝나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금요일 밤부터 들어요. (웃음) 그리고 집회 나와서 매번 밤을 새우니 외박이 잦아졌죠. 집에다는 대학원 연구실에서 동기들이랑 공부한다고 뻥 쳐요. (웃음) 그런데 저 말고도 가족들이 각자 집회에 나가기는 해요. 제 동생도 나가고 아버지도 나가시고… 그런데 같이 나가는 게 아니라 각자 따로따로 나가죠. 콩가루 집안인가… (웃음) 그런데 아무래도 요새 진압이 점점 강경해지고 하니까 부모님들도 걱정 많이 하시죠. 사실 오늘도 저 여기 있는 거 모르실 거에요. (웃음) 연구실에서 공부하고 있는 줄 아시겠지… 잠을 잘 못 자긴 하지만 집회 나와서 많이 걸어 다니느라 그런지 건강은 오히려 좋아졌어요. 근데 밤새운 다음날에 알바 뛰기가 너무 힘들죠. 그런 날은 정말 하루 종일 피곤에 절어 있게 돼요. 대학원 후배들 데리고 집회 나오고 하니까 걔들이랑 많이 친해지기도 했죠. 또 오랫동안 못 만난 선후배들을 집회 나와서 만나기도 하구요. 그런 게 참 좋아요. 이런 집회 아니면 그 사람들을 제가 어디서 만났겠어요? 물대포 피해 다니고 전경한테서 도망치고 하는 상황인데 누가 제 이름을 딱 불러서 돌아보면 진짜 몇 년 만에 보는 사람이 거기 서 있는 거에요. 그러면 그때부터 막 수다 떠는 거죠. (웃음)

잠잠해진 틈을 타 도로로 조금씩 사람들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전경들은 먹이를 쫓는 맹수처럼 달려와 사람들을 인도로 몰아넣었다. 방패를 휘두르며 아스팔트를 짓쳐오는 전경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주 확실히 알고 있거나 자신들이 도대체 무엇을 왜 하고 있는지 하나도 모르고 있는, 그 둘 중 하나일 것만 같았다. 앞뒤 못 보고 물불 안 가리는 저러한 저돌성은 더할 나위 없는 확신 혹은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 둘 중 하나가 아니면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었다. 군대는 원래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는 집단이라 명령 체계의 맨 끄트머리에 위치한 전경들은 어쩔 수 없이 위에서 하라는 대로 행동해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사람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폭력을 가하고 정말 철천지원수라도 되는 듯 죽일 듯이 사람들을 노려보는 전경들의 행동을 설명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었다.

내가 찾아낸 유일한 해답은, 군대라는 조직이 불쌍한 젊은이들을 강제로 끌고 와서 여기서 반항하면 인생 끝이라는 공포심을 심어주고는 정신도 뜯어고치고 몸도 철저히 개조하면서 마치 용병처럼 고용주의 명령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인간 병기들을 만들어낸다는 것이었다. 분단국가이기 때문에 분단이라는 현실에 빌붙을 수밖에 없는 한국 군대란 참으로 무서운 곳이다. 누가 누구를 때리든 세뇌하든 상처를 주든 인격을 무시하든 감옥에 처넣든 그저 분단과 질서만 들먹이면 모든 것들을 무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컴퓨터마다 하나씩 붙어 있는 리셋 버튼 같다. 누르기만 하면 모든 게 꺼지고 처음으로 다시 되돌아간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 국방부 시계는 째깍째깍 돌아간다.

열두 시가 다 되어 가자 사람들이 하나 둘 집에 돌아갔는지 대오가 확 줄었고 종로 일대엔 어느새 차량들이 다시 다니기 시작했다. 버스와 택시와 승용차의 물결이 밀어닥치자 종로 거리는 순식간에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말끔해진 모습으로 변했다. 평일이라 일찍 해산한 것일까? 아니면 개 잡듯 두들겨대는 폭력진압을 더는 견딜 수 없어서 뿔뿔이 흩어진 것일까? 나는 갑자기 온몸에 힘이 빠져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밀려 있던 버스들이 비엔나소시지처럼 줄줄이 정류장에 도착했다.

막차를 겨우 잡아타고 집에 허위허위 도착하니 새벽 한 시 반이었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 뉴스 사이트에 접속해보니 아직 해산하지 않은 사람들이 명동 성당으로 몰려갔다가 전경들과 경찰 기동대, 아니 백골단원들에게 마구잡이로 붙잡혀 가고 있다는 속보가 올라와 있었다. 160여 명이라는 연행자들 숫자를 확인한 순간 나는 씻으러 가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온몸이 굳었다. 이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밤을 새우지 않고 나 혼자서만 현장을 쏙 빠져나온 것 같아서 너무나 속상하고 가슴이 아팠다. 나 역시 연행은 무척이나 무서웠지만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그 자리에서 사람들과 함께 있었어야 했다. 키가 160이라면 남자에게는 작은 키고 동전 160원으로는 아이스크림 하나 사먹을 수 없지만 연행자가 하룻밤 만에 160여 명이라는 것은 정말 등골이 오싹해지는 수치였다.

남상아, 30살, 잡지사 기자 : 수면 부족이 이젠 만성이 됐어요. 심각한 우울증도 좀 있는 것 같구… 무엇보다 체력이 너무 많이 소모되니까… 힘들죠. 사람들이 전경들한테 맞아서 다치는 걸 보면 엄청 스트레스 받아요. 왜 저래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요. 그리고 제가 아는 사람들이 혹시라도 집회 나가서 다칠까봐 걱정하게 되고… 제가 생각해도 제 성격이 자꾸 이상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길을 걷다가 누가 저를 쳐다보기만 해도 저도 모르게 불쑥 "뭘 봐?"라고 말하게 되고… (웃음) 전경들이 너무 싫어져서 취재 하다가 경찰들이랑 여러 차례 싸우기도 하죠. 제가 다니는 잡지사가 사회복지를 전문으로 다루는 데라서 장애인 집회에 취재를 많이 가는데… 전경들이 취재를 막아요. 그러면 저도 "왜 막아!" "막는 근거를 대!" 막 이렇게 싸우죠. (웃음) 여성 장애인 연행할 때 여경이 오는 게 아니라 남자 경찰들이 와서 연행해가거든요. 그러면 제가 또 "여경 데려와!" 막 소리 지르고… (웃음) 근데 그거 진짜 심각해요. 여성 장애인들의 인권은 인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지… 남자 경찰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여성 장애인들 끌고 가는데… 정말 인권 유린의 현장이 따로 없어요. 아― 정말 전경들과는 이제 상종도 하기 싫어요. (웃음) 그런데 직장에서 보면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저 말고는 하나도 없어요. 동료 기자들조차 "그런 곳에 왜 가?" "데모하는 사람들 전부 다 이익집단 아니야?" 이런 식으로 말해요. 어이가 없죠. 나이도 겨우 이십대 후반인 사람들이 벌써부터 생각이 그러면 어떡해요? 그나마 제가 들었던 가장 긍정적인 말이 "나도 언제는 나가봐야 하는데…" 이 말이었어요. 물론 그 사람 아직도 집회 안 나오고 있죠. (웃음) 이젠 정말 정부가 하는 모든 일에 의심을 품게 됐어요. 청와대에서 하는 말은 믿을 수가 없어요.

이제는 '도를 넘었다'라는 말로는 현 정권의 그 어떤 것도 설명할 수가 없었다. 자기네들이 얼마나 막 갈 수 있는지 하루가 멀다 하고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현 정권은 공권력으로 사람들을 때려잡는 것이 무슨 전자오락이라도 되는 줄 알고 있나 보았다. 나는 전자오락기 화면 앞에다 동전을 수북이 쌓아두고 고득점을 위해 미친 듯이 단추를 두들겨대는 아이들로 가득 찬 옛날 오락실 풍경을 떠올렸다. 아이가 오락실 다니며 동전을 탕진하면 철없다고 몇 대 쥐어박으면 되지만 정권을 쥔 자들이 똥오줌 못 가리고 철없이 굴면 그때는 어떡해야 할까?

밤새 잠 못 이루면서 속보 올라오는 것 없나 컴퓨터 앞에만 붙어 있다가 세 시 쯤에 컴퓨터를 끄고 뒤숭숭한 마음에 시집 한 권을 펼쳐 들었다. 창비에서 1999년에 나온 백무산 시인의 <길은 광야의 것이다>라는 시집이었다.

이런 시가 있었다.

촛불시위

하나의 불꽃에서
수많은 불꽃이 옮겨붙는다

그리고는
누가 최초의 불꽃인지
누가 중심인지
알 수가 없다
알 필요도 없어졌다

중심은 처음부터 무수하다

그렇게 내 사랑도 옮겨붙고
산에 산에
꽃이 피네

십 년 전에 씌어진 이 시에서 촛불시위가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지는 딱 잘라 이야기할 수 없겠지만 나는 마지막 석 줄을 읽으며 촛불집회가 처음 불붙어 오르던 지난 5월을 생각했다. 봄이 오면 누군가가 확 싸질러놓은 불길처럼 걷잡을 수 없이 산에 산에 번져가는 진달래꽃처럼, 그 화창한 봄날에 사람들은 시청에 광화문에 청계 광장에 모여 모여 촛불 하나씩 들고, 아니 자기 자신이 오롯한 촛불 하나가 되어 서로의 마음에 서로의 마음을 옮겨 붙여 주었다. 그건 용기였고 양심이었으며 사랑이었다. 나라를 너무나 사랑하는 '애국 시민' 어르신들께서는 군복 입고 태극기를 흔들며 자신의 사랑을 온전히 현 정권에게 바쳤겠지만 스스로 촛불이 된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또 이 세상을 사랑하려고 했다. 옮겨 붙은 사랑은 진달래꽃처럼 활짝 피어나 시청 앞 광장을 알록달록한 꽃빛으로 물들였다.

석 달이 지났다.

지겹도록 내리던 소나기가 그치고 싱그러운 여름 해가 다시 떠오른 어느 날, 오랜만에 햇볕을 쬐러 바깥에 나가보니 빗물에 몸을 적시러 나왔던 지렁이가 날씨가 갠 후에 미처 땅 속으로 숨지 못했는지 땅 위에 그대로 말라붙어 있었다. 나는 한동안 그 곁에 쭈그려 앉아 말라붙은 지렁이를 들여다보았다. 이 지렁이는 물을 찾아 헤맨 것밖에 없었다. 길을 가다보니 웬 나비 날개 한 쪽이 땅 위에 떨어져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나머지 날개 한 쪽이 있었다. 나는 또다시 앉아 나비 날개들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검은색 바탕에 노란 무늬가 참 예뻤다. 무엇이 하늘을 나풀나풀 날아다니고 싶었던 나비의 꿈을 이렇게 찢어놓았을지 궁금했다. 오래 앉아 있다가 일어나니 핑 하고 현기증이 났다. 가로수가 서 있는 곳으로 걸어가다가 매미들 몇 마리가 땅에 떨어져 죽어 있는 것을 보았다. 어떤 매미들은 십여 년 동안이나 땅 속에서 애벌레로 지낸다는데 일주일도 못 간 소나기에 이렇게 매미들은 자기들이 있어야 하는 공간을 잃어버렸다. 소나기가 그치고 찾아온 새로운 시절에 너무 많은 것들이 죽어 있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사이에도 힘이 없는 것들은 죽어간다. 사람도 비슷하다. 촛불집회에 나와서 얻어맞고 끌려가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기륭전자, 이랜드, KTX, 코스콤 같이 자신들의 일터에서 몇 년에 걸쳐 장기파업투쟁을 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있고 자신들과 동료들의 인권을 위해 싸우는 장애인들도 있고 인간답게 살고 싶어 하는 이주노동자들도 있고 또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곳에서 자신의 삶과 이 세상을 위해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여름날 햇볕에 말라죽어가는 지렁이가 되도록 놔두어서는 안된다. 날개가 찢긴 채 죽어가는 나비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땅속에서 견뎌온 긴 시간을 제대로 보상 받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떨어져 죽어버린 매미처럼 살게 해서는 안된다.

촛불집회는 이 세상을 자꾸만 망쳐놓으려는 현 정권을 향한 거대한 항의로 시작했고 아직 그것이 변해야 하는 이유는 없다. 현 정권은 진절머리가 나도록 여전히 똑같은 소리만 하고 있다. 벌금 물리고 마구잡이로 연행하고 백골단 투입하고 죽도록 두들겨 패는 식으로 겁을 주어서 더는 누구도 찍소리 못하도록 만들려는 속셈이 뻔히 보인다. 그들은 한국 사람들이 그저 직수굿이 돈이나 벌고 정치에는 신경 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관심을 가지는 건 아파트 값과 자기 건강뿐이지 세상 사람들의 삶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미국 대통령이 온다고 하니 옛 연인을 오랜만에 다시 만나는 듯 반짝반짝하는 눈으로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을 꼬락서니들을 나는 안 봐도 알겠다. 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운 '애국 시민'들이 부시를 환영하는 초대형 케이크라면 방패와 곤봉으로 무장한 공권력은 그 케이크에 꽂은 촛불 정도 될 것이다. 부시는 패권주의라는 칼로 케이크를 써억써억 잘라 게걸스럽게 먹어댈 것이고 현 정권은 그 옆에서 폭죽을 터뜨리며 나팔을 불어댈 것이다.

촛불집회의 순수성이란 경찰 말 잘 듣고 전경들과 맞서 싸우지 않으며 해 떨어지면 얌전히 해산하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자기 입으로 들어가는 미국산 쇠고기나 자기 주머니에서 돈이 나갈 대운하 건설에 반대하는 것을 넘어서 보다 많은 이 세상 사람들의 삶을 위한 싸움으로 촛불집회를 끝까지 이어가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촛불집회의 순수성이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고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싸움에 참여하는 것이 바로 순수성이다. 언론이 지껄여대는 헛소리에 휘둘리지 않고 기어코 자기 눈으로 현실을 확인하려 하는 고집이 바로 순수성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런 순수성은 싸움을 일구어가는 사람들이 스스로 지켜내는 것이지 저 멀리서 구경만 하는 누군가가 훈장 달아주듯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촛불집회가 순수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직접 집회 현장에 나와서 자유 발언을 하라. 인터넷 공간에 글이나 몇 줄 싸질러놓지 말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6일 수요일 밤이다. (이제 와서 이야기하지만 이 글에 등장하는 모든 이름은 가명이다.) 인터넷 뉴스를 보니 한 사람 잡아올 때마다 5만원씩 주기로 했던 것을 '마일리지' 점수가 쌓이면 상품권이나 상품을 주는 방식으로 바꾸겠다고 서울시 경찰청이 발표를 했다고 한다. 나는 뉴스를 보자마자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전경이 방패로 자기 발등 찍는 소리 하고 있네.' 어찌 되었든 멀쩡한 사람을 마일리지 점수로 취급한다는 소리 아닌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셈이다. '몇 놈만 더 잡으면 상품권 탈 수 있어' '어제 많이 잡아서 마일리지 오늘 것까지 채웠으니 오늘은 그냥 한 놈만 잡아야지' '마일리지 마저 채우고 포상휴가나 가자' 이런 생각을 품은 채 곤봉을 들고 전경들과 경찰 기동대, 아니 백골단원들이 집회 현장으로 뛰어나온다면? 나는 상상만 해도 무섭다. 공포영화 한 편 보지 않고도 올 여름을 서늘하게 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부시가 오던 날,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외치며 공항으로 몰려간 사람들도 있었고 기쁘다 주구 오셨네를 외치며 촛불을 든 사람들도 있었다. 하룻밤 만에 160여 명이 잡혀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촛불집회는 이제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고민을 하다가 백무산의 시집에서 힘이 되어주는 시를 한 편 찾았다. 잔뜩 흐트러진 마음을 다시 추슬러본다.

선량한 권력

옥상 위에 놓인 물탱크 청소를 한다
언제부터인가 수도에서 냄새가 났다
발목까지 빠지는 침전물은 썩어
악취가 나고 온통 하수도나 같다
물은 계속 들어오고 또 나가므로
언젠가 새 물갈이가 저절로 되리라 믿었던가
썩은 물이 빠지고 천천히
선량한 권력이 들어올 것이라 믿었던가

행여 이타적인 권력을 꿈꾸는가
정직한 권력을 꿈꾸는가
착하고 선량한 권력을 못내 기다리는가
이타적인 자는 권력 경쟁의 무기가 항상 부족하고
착한 성품은 더 이상 권력을 꿈꾸지 않는다
정직한 자는 스스로 백의종군을 원한다
행여 아름다운 권력을 꿈꾸는가
혹시 겸손한 권력을 기다리는가
그렇다면 권력을 지배해야 한다

권력은 종말에 가서야 아름답다
아름다운 권력은 박살이 난 권력이다
모든 걸 잠그고 끄고 한 번씩 비우는 순간
권력은 그때만 겸손하다
권력 아닌 것으로 권력을 비우라
그렇다면 권력을 지배해야 한다
<작가 소개>

삶이 보이는 창 르포문학팀 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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