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4일 새벽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장 직무대행 이영도 씨와 현대미포조선노조 조합원 김순진 씨가 울산 동구 예전항 부두 입구 소각장의 70m 높이 굴뚝에 올라갔다. '현대미포조선의 노조 활동 탄압 중단'과 '이홍우 조합원 투신 사건 관련 진상 규명 및 책임자 처벌, 부당 징계 철회'등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성탄절 하루 전날 이들이 굴뚝에 올라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들의 이런 요구에 사 측이 '합리적 대화'가 아닌 '무력 진압'으로 일관해 왔기 때문이다. 울산동구청과 경찰마저 일방적으로 현대미포조선의 편을 들고 있다. 지난 17일에 이어 23일에도 이들의 노숙 농성장은 강제로 철거됐고, 끝내 이들은 굴뚝에 오른 것이다. 이와 관련 현장에서 이들을 지켜 본 서해식 르포작가가 <프레시안>에 글을 보내왔다. |
새처럼, 높은 창공을 날아가다 잠시 굴뚝 위에 앉아 있는 새들처럼 보였다고 하면 너무 감상적인 표현일까. 저 굴뚝위에서 지금 이 곳을 내려다보고 있는 형상들이 사람이라고 느끼기엔 너무 아찔하다. 지금 그들의 처지를 상상하기는 너무 어렵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이 일고 소름이 돋는다. 그 공포 앞에서 모든 상상이 멈출 듯하다.
크리스마스 전날이었다. 유달리 산타를 기다리던 작은 아이에게 어떤 방법으로 선물을 전해줄까를 생각하던 아침, 나는 이영도, 김순진, 두 노동자들이 굴뚝 위로 올라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 순간, 굴뚝위로 올라간 그들이 간절히 외쳤던 구호보다도 먼저 그들의 어린 아이들이 떠올랐다. 노동자 이홍우의 세살, 다섯 살 어린 남매가 떠올랐으며 아버지의 해고 이후 학교를 그만 둔 용인기업 노동자들의 아들, 딸들이 떠올랐다. 해고된 아버지를 도와 생계비를 벌다가 화상을 입은 딸의 아픈 얼굴이 겹쳐왔다.
크리스마스를 꼭 하루 앞둔,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온 친구는 이브날 집에서 만찬을 준비하려고 하는데 어떤 음식이 좋겠냐고 물어온다. 칠면조, 탕수육, 샐러드 등 듣기만 해도 감미롭고 군침 도는 몇 개의 음식을 읊조리다가 "재밌게 사는구나"라는 나의 말에 친구는 "그래도 크리스마스 이브잖아. 오늘은 당연히 좀 특별하게 보내야지 않겠니"라고 했다.
그래. 크리스마스 이브인데, 절에서도 기쁘다고 캐롤송을 울리고 불을 밝힌다는 크리스마스 이브인데, 오늘은 아이들과 어울려 좀 가볍게 즐거워도 되는 날인데, 투쟁이니 연대니, 그런 빡빡한 일정 잠시 풀어 놓고 가슴을 녹이는 행복에 잠시 들떠도 좋은 날인데, 아, 당신들이 70m 굴뚝 꼭대기를 향해 오르던 새벽, 당신들의 아이들은 어쩌면 오늘 하루만은 아빠와의 행복한 저녁 식사를 꿈꾸며 깊은 잠에 들어 있었을지도.
오후 5시 반, 굴뚝에서의 하루가 서서히 저물기 시작한다. 굴뚝의 붉은 불빛이 깜빡거리는 사이에 굴뚝 꼭대기에는 형광 빛 플래시 불빛이 반짝이고 있다. 생수 2병과 신나 만이 가지고 있는 물품의 전부. 굴뚝 위의 사람들은 파카잠바 하나로만 추위와 맞서야 한다. 몸이 저장하고 있는 열량들은 이미 다 타버리고 이제 속은 텅텅 비어갈 것이다. 비어 가는 것이 허한 뱃속뿐일까. 땅위에 두고 온 숱한 그리움, 그리움. 우리가 갈망한 세상을 단 한 번도 담지 못한 동공은 이미 눈물도 메말랐을 것이다. 지금, 플래시 불빛으로 당신들이 그곳에 살아 있음을, 함성 소리에 플래시 불빛을 흔들어 응답해 줌이, 당신들의 간절한 마음을 지상으로 내려 보내줘서 고맙다. 정말 고맙다.
70m 상공에서 푸른 플래시 불빛이 빛나고 미포조선 정문 앞에서는 종이컵에 담긴 수많은 촛불들이 빛나기 시작했다. 퇴근 후, 고공 투쟁의 속보를 접한 노동자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동지가'가 울리고 영화 <파업전야>를 뜨겁게 달구었던 '철의 노동자'가 울려 퍼진다.
민주노조 깃발 아래 와서 모여 뭉치세, 아, 정말 이 투쟁이 미포조선 민주노조의 깃발 아래 뭉치고 있다면, 미포조선 노동자들의 총파업 투쟁으로 직결되는 싸움이라면 이 밤이 이렇게 춥기만 할 것인가. 굴뚝 위로 쏘아 보낸 희망이 이렇게 간절하기만 할 것인가. 오히려 노조가 앞장선 일방적 합의안을 철회하고 노동자를 기만한 노조의 진정한 사과와 반성만이 굴뚝위의 사람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길일 것이다.
차기 민주노총 울산본부장인 김주철 당선자는 "제발 좀 모입시다. 모일 때 모이고 투쟁할 때 투쟁하고 분노할 때 분노하자"고 호소했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이영도 수석본부장이 엄청난 무게감에 괴로워했고 최대한 현 집행부에서 이 싸움을 해결하고 가기 위해 이런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어디 이 싸움이 책임의 문제인가. 아직 이홍우 동지가 병상에 있고 용인기업 노동자들의 복직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두 명의 노동자가 굴뚝위에 있다. 이 싸움은 책임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이며 간절함의 문제이다. 이 싸움은 김주철 당선자의 본부장 임기가 시작되는 내년에도 이어질 것이다. 용인기업 노동자들이 복직되고 미포조선에 민주노조가 올곧게 설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직책과 의무가 아니라 그가 진정 노동 해방의 의지로, 그 영혼으로 이 싸움의 주체가 되어 주길 바란 건 나만의 기대일까.
미포조선 '현장투'의 김석진 의장은 "현장 조직 노동자들의 모가지가 잘리더라도 우리의 요구안을 반드시 관철시키겠다"고 했다. "이 집회에 30명이 오더라도, 몇 명이 오더라도 이 집회의 분노를 현장으로 가져가 현장의 분노로 만들자"고 했다. 그는 또 "미포조선 노동조합이 자신을 제명하고 회사에서 보복과 징계가 있다면 거기에 맞서 투쟁하고 활동하겠다"는, 마침내 미포조선에 다시 민주노조가 서는 그날까지 투쟁하겠다는 의지를 특유의 굵고 느린 목소리로 다짐했다.
미포조선 정문 앞의 집회가 끝나고 '동지가'를 부르며 투쟁 대열이 이동한 곳은 예전만 부두 입구 현대 중공업 쓰레기 소각장 70m 굴뚝 앞이었다. "와아, 와아"하는 지상의 함성에 굴뚝 위에서 다시 형광 플래시 불빛이 깜빡깜빡 빛나기 시작했다. 깜빡이는 불빛에서 그들의 호흡을 느낀다. 지상보다 기온이 떨어지고 바람도 드센 곳. 아직 그들에게는 어떤 물품도 전달되지 못한 상태였다. 극한 산악지대에서는 급격히 열량이 손실되어 일주일에 15kg 가량의 몸무게 손실이 생긴다고 한다. 이것은 물리적 수치일 뿐, 사실 이것은 생존의 위기가 닥쳐온다는 의미다.
아, 이 순간만은 그저 아무 생각도 나질 않는다. 그저, 그저 어서 이 맨땅위에서 다시 그들의 젖은 목소리와 순한 웃음만을 만나고 싶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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