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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민의 항변 "이렇게 억울한데 어떻게 가만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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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민의 항변 "이렇게 억울한데 어떻게 가만 있어요?"

[인터뷰] 용산4구역 세입자 박모 씨

지난 20일 일어난 용산 참사가 8일째를 맞았다. 6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를 두고 아직도 많은 이들은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28일 참사 뒤 내놓은 첫 번째 대안으로 "재개발 사업에 제3자의 개입을 금지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사고 원인을 철저히 전국철거민연합 등 '외부 단체' 개입에 맞춘 시각이다. 청와대에서는 경찰청장으로 내정된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의 유임론도 흘러나오고 있다.

정부의 이런 정책이 제2, 3의 참사를 막을 수 있을까? 인권운동사랑방은 사고가 나던 당일, 망루에 있었던 용산4구역 세입자 박모 씨와 진행한 인터뷰를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그의 이야기를 보면 비극을 막는 대안은 전혀 다른데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편집자>

'정말 개발이 되는구나' 실감한 건 2008년 7월 감정평가사가 책 대여점에 찾아오면서. 그가 감정평가사인 것도 옆집 사람이 귀띔해줘서 알았다.

"감정평가사가 뭐하는 사람인지도 몰랐는데…. 어쨌든 그런 사람이 가게에 찾아와서는 월 매출하고 가게 평수를 물었어요. 그러면서 3개월 영업비인가 그걸 받게 될 거라고 했어요. 얼마쯤 받게 될 거 같으냐니까 세금계산서, 평수, 매출, 인테리어 비용 뭐 그런 걸로 계산한다고 하더라고요. 권리금 얘길 했더니 7년 동안 빼먹을 만큼 빼먹었지 않느냐는 거예요. 어이가 없었죠. 오래된 가게일수록 권리금이 높다는 건 누구나 아는 상식이잖아요."

한 달 뒤 박 씨는 조합에서 보낸 고지서를 받았다. 고지서엔 박 씨가 받게 될 보상금과 다음 달 말일까지 가게를 비우라는 내용만 짧게 적혀 있었다. 박 씨는 곧장 조합사무실로 달려갔다. 누가 어떻게 계산한 건지, 정확한 건지 따져 물었다. 조합에선 나가라고 몰아내기만 했다. 그날 조합사무실로 몰려간 건 박 씨뿐이 아니었다. 다음날 다시 조합사무실로 찾아갔지만 사무실은 이미 용역들이 새까맣게 둘러싸고 있었다. 그 뒤로 조합에선 모든 일을 용역 업체에 맡겼다.

"7년 전에 5000만 원으로 시작했어요. 5000만 원(권리금 3000만 원, 책값 2000만 원, 그 외 책장, 장식비도 들어감) 중에서 3000만 원은 대출받았는데 그중 2000만 원은 아직도 남아 있어요. 원금은 거의 못 갚고 매달 이자 20만 원만 갚고 있는 상황이에요. 6~ 70만 원 임대료가 달마다 나가고요. 가게가 잘될 땐 400~500만 원 벌 때도 있었는데 옆 동네가 먼저 개발되면서 수입이 반으로 확 줄어들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보상금이 2100만 원이라니 울분을 토할 수밖에 없죠. 그제서야 재개발 지역 사람들 심정을 알겠더라고요. 너무 억울했어요. 지금 보상금으로는 어디 가도 가게 못 얻어요. 알아보니까 지금 평수(11평)로 용산구 내에서 장사하려면 최소 1억은 있어야 하더라고요. 재개발 때문에 용산구에 있는 집이나 가게 임대료가 너무 많이 오른 거죠."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 보상의 진실

박 씨는 같은 구역에서 보증부 월세로 거주하고 있기도 했다. 주거세입자의 경우 임대주택 입주권과 주거이전비를 받을 수 있다. 박 씨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제가 알아보는 데야 인터넷인데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그런 내용은 안 나오던데…. 집이 4구역이었거든요. 장사하는 사람들은 가게 주위에 집을 얻잖아요. 그래서 저뿐 아니라 상가 주민들 중엔 집이 4구역이었던 분이 많아요. 보증금 3000만 원에 35만 원 월세로 살았는데, 조합에서 주거이전비와 임대주택입주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더라고요. 임대아파트에 들어가겠다고 했어요. 조합이나 구청에선 첨에는 짓는다고 하더니 나중엔 안 짓는다는 거예요. 구청에 연락해서 그럼 용산구에 있는 다른 아파트에라도 살게 해달라고 했어요. 아이들 학교 때문에 이 지역을 벗어나기 어렵거든요. 인터넷 뒤져 보니까 신계동에 임대아파트가 있길래 거기 들어가게 해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구청에선 거기 사람이 꽉 차서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도 제가 계속 임대아파트에 들어가겠다고 했더니 얼마나 더 받고 싶어서 그러느냐며 저를 돈 몇 푼 더 뜯어내려는 사람으로 취급하더라고요. 진짜 너무 화가 났어요. 나중엔 아예 구청에 오지 말라고까지 하더라고요."

집에서 나가지 않자 용역들이 집 앞에 진을 치기 시작했다. 빈 깡통에 불을 지펴 쬐면서 오갈 때마다 노려보는가 하면 길바닥에 일부러 병을 깨뜨려 놓는 등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빈 집이나 벽 등에 낯 뜨거운 욕설들을 휘갈겨 놓아 아이들과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눈 둘 곳도 찾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이런 데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에게 언제 이사 갈 거냐 으르기까지 했다. 이 때문에 박 씨는 매일 아이들을 학교까지 데려다주고 데려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잘 버텨냈던 박 씨 가족이 어쩔 수 없이 그 집에서 나오게 된 건 수도관이 터져 더는 물을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박 씨 집은 2층이었는데 아래층 사람들이 먼저 나가자 용역들이 들이닥쳐 1층을 때려 부쉈다. 그 바람에 12월 한파가 몰아쳤다 날이 풀리면서 수도 파이프가 터져 버린 것이다. 1층에 물이 흥건히 고였다. 용역들에게 다시 파이프를 고쳐 달라고 요구했지만 이사 가면 될 것 아니냐며 오히려 놀려댔다. 결국 박 씨 가족은 그 집에서 나와야 했다.

삶의 자리를 잃어버린 박 씨는 현재 남편과 함께 가게에서 두 달째 지내고 있다. 가게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용역들 때문에 사실상 가게는 문을 닫았고, 일용직 일을 하는 남편 수입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과 중학교 1학년인 아이들은 시댁에 맡겨 놓은 상태.

▲ 참사를 당한 서울 용산 4구역 재개발 현장에는 이런 낙서가 된 빈 집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프레시안

세입자가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관계자는 용역뿐?

용역들의 포악스러움은 박 씨만 겪는 일이 아니다. 음식물 쓰레기를 영업하는 가게 안으로 던지는가 하면 음식점에 들어가 소주 한 병 시켜놓고 종일 인상 쓰면서 앉아 있기도 했다. 아무런 통보 없이 들이닥쳐 가게를 형체 없이 부수어놓는가 하면 여자 옷가게에 들어가 점거하다시피 해 정작 옷을 사러 온 사람들은 가게만 맴돌다 돌아가게 했다. 한밤중에 규찰을 도는 주민들에게 시비를 걸어 폭행하는 일도 잦았다. 사실 용역들은 개발 과정에서 주민들이 만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관계자(?)다.

"우리 요구는 하나예요. 가수용 상가(임시 시장)를 지어달라는 거예요. 그동안 터온 인간관계로 장사가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한 곳에서 오래 장사하는 거고. 그런데 그 적은 돈으로 하루아침에 다른 데로 가라고 하면 죽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죠. 조합 쪽에선 꿈쩍도 안 하고, 전화 하면 용역들 하고 얘기하라고 하고, 구청에선 조합하고 말하라고 하고, 지역 문제는 지역 가서 해결하라고 하고, 용역들은 주먹을 들었다 내렸다 하면서 나가라고 을러대기만 하고…."

1월 20일 새벽, 박 씨도 망루에 있었다. 경찰특공대에게 맞으며 끌려 내려온 이 땅, 삶의 자리를 빼앗긴 박 씨에게는 여기도 망루인 것은 아닐까.

▲ 지난 20일 용산 참사 현장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은 무책임한 정부의 개발 정책을 성토했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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