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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악한 바보상자가 될 TV

[기고] 6월, 그 시간이 한 발 한 발 다가오고 있다

공영방송 시스템은 자유방임주의에 대한 불신과 사회민주주의의 부상이라는 시대적 조건 하에서 탄생한 1인1표 민주주의 프로젝트이며, 케인스주의의 확산에 따라 유럽을 중심으로 정착한 방송제도라고 요약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공영방송은 평등하고 민주적인 공론장의 운영과 수신료 징수를 연계한 일종의 사회계약이다. 따라서 공영방송사들은 일반적으로 상업방송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보친화적인 경향을 갖게 되고, 바로 그 점 때문에 대개의 경우 보수세력과 불편한 긴장관계를 갖는다. 특히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면서부터 공영방송 시스템에 대한 비난공세가 대대적으로 행해지고 긴장관계가 두드러지게 된다. 대처총리 집권시절 BBC는 가히 보수당과 자본가 계급의 공적 1호였다.

현재 이명박 정권 아래서 벌어지고 있는 방송장악과 방송구도 개편 움직임도 일차적으로는 전편에서 기술한 일반적 맥락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리고 거기에 한국사회 지형의 특수성과 한국방송사의 특수성이 결합되어 있다. 과연 한국의 공영방송은 어떤 길을 걸어왔으며 지금 어떠한 상황에 직면해있는가?

굴종과 순응의 역사(1927-1987)

우리나라 공영방송의 맏형으로 꼽히는 한국방송(KBS). 어처구니없게도 KBS는 여전히 스스로의 시원을 1927년에서 찾는다. 일제총독부 아래서 도쿄방송국의 지국으로 설립됐던 경성방송국. 경성방송국은 식민지근대화를 홍보하고 조선백성들을 대동아전쟁에 동원하던 일제의 도구였다. (따라서 근래 프로그램 타이틀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방송 80주년' 운운은 식민지근대화론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미군이 진주하자 경성방송국은 미군 공보부 산하로 편입된다. KBS라는 이름이 이 때 주어졌다. 일본제국의 하수인들은 그대로 잔류했고 미군의 지휘 아래 반공의 전사로 탈바꿈했다.


▲ 서울 여의도 KBS 사옥. ⓒ프레시안

이승만, 박정희 정권 아래서 KBS는 국영방송으로서 반공/분단 이데올로기의 확산기지로 복무하며 1973년 법률에 의해 공영방송의 지위를 부여받는다. 하지만 그것은 지극히 형식적인 차원에 지나지 않았다. "공무원 신분으로서 고관대작들을 효과적으로 취재하기 어렵다"거나 "홍보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한" 무늬 바꿈일 뿐이었다. 이어서 1980년에는 획기적으로 몸집을 불린다. 신군부의 방송통폐합 조치에 편승해 상업방송 TBC와 동아방송 등을 흡수했다. 그 과정에서 900원이었던 시청료가 2500원으로 대폭 인상되고, 컬러방송 실시 명목으로 광고도 허용된다. 때맞춰 하달되는 보도지침과 회사 내에 상주하는 기관원의 검열을 받고, '왕PD'라 불리던 사장에게 종아리를 차이며, 보도특집과 특집 쇼들을 연출하는 것이 구성원들의 일상이었다. 그들의 뇌리 속에는 공영방송에 대한 고민, 아니 공영방송이라는 개념조차도 아예 존재할 여지가 없었다.

(이러한 관제어용방송의 역사는 한국 공영방송사들 특히 KBS 조직 내부에 치명적인 독소들을 남기고 있다. 통제 위주로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 관리조직을 비대화시켰고-더구나 과거 군사독재의 나팔수 노릇을 하였던 인사들이 여전히 주요간부층을 이루고 있다-그 기능을 보좌하는 행정, 행정보조 직무 역시 과도하게 팽창되어 있다. 중앙방송을 단순 수중계하는 수준에서 지역이나 송신 기능도 과잉 중복되었고 이는 다시 유지인력 과다 등의 문제를 낳았다. 그에 따라 정치권과 조중동의 '효율성' 비판에 극히 취약한 체질을 가지게 되었고 이는 다시 조직 내에 정치·경제 권력에 대한 굴종을 감수하더라도 일자리, 임금 등 경제적 권익을 지키려는 순응적 조직문화를 낳았다.)

한편 상업방송으로 출발했던 문화방송(MBC)은 1981년 KBS가 주식의 70%를 소유하게 됨으로써 형식상의 공영방송이 되었다. 통제가 상대적으로 약했던 MBC의 경우도, 비록 KBS만큼 정도가 심하지는 않았지만, 군사독재의 충견이라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1980년대의 공영방송은 실제로는 관영방송의 허울일 뿐이었다.

군사독재의 홍보·동원기구로서 공영방송들의 행태는 결국 시민들로부터 시청료거부운동이라는 응징을 받기에 이른다. 1981년 전체예산의 약 60%를 시청료로 조달했던 KBS는 1987년에는 34%, 이듬해에는 겨우 23%만을 시청료로 충당할 수 있었다. 시위 군중에 의해 취재차량이 불타고, 청사에 돌이 날아들었다. 결국 6월항쟁이 일어나고 그것이 만들어 준 공간 속에서 방송계에도 PD협회 등 직종별 조직이 생겨나고 노조가 결성된다. 그리고 MBC노조가 선도하는 가운데 일련의 개혁운동이 벌어진다. MBC는 1987년 KBS가 가졌던 지분 70%를 사단법인 방송문화진흥회로 이관하는 한편, 1990년대 초반의 격렬한 싸움들(강성구, 이득렬 등 관제사장 퇴진을 위한 총파업들)을 통해 정치권력으로부터 상당한 정도의 독립성을 획득하는데 성공한다. 상대적으로 온건하고 절충적인 형태로 진행됐던 KBS 내의 민주화도 1990년 4월 '관제사장 서기원 거부투쟁' 등을 거치며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다. 무늬만 '공영'이었던 한국의 공영방송은 시민사회의 돌팔매를 맞으며 비로소 이름에 걸맞은 공영방송으로 조금 조금씩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통제구도의 업그레이드(1990-2007)

그러나 이 땅의 기득권 세력들은 공영방송 시스템의 정착을 호락호락하게 허용하지 않았다. 1990년대 들어 더 이상 국가에 의한 가시적 공영방송 통제가 과거 군사독재 시절만큼 원활치 못하게 되자, 정권은 통제구도의 전환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김영삼 정부는 새로운 방송법안을 만들어 1991년 사영방송 SBS를 탄생시켰고, 외주제작 의무비율을 강제하는 등 시장화 기반조성 조치들을 차례로 시행했다. 1995년엔 케이블 방송을 도입해 삼성, 현대 등 대자본들을 방송시장에 진출시켰고, 지역민방, 위성방송 등을 잇달아 실시했다. 사회전반에 걸쳐 자유주의적 개혁을 실시했던 김대중 정권 역시 '산업논리와 문화논리의 병행발전'이라는 기만적 절충을 내세우며 케이블·위성 등 비지상파 영역에 내외자본의 진출을 확대하는 등 친시장화 조치들을 대거 쏟아냄으로써 이른바 '다매체 다채널 시대'를 정착시켰다. 그로써 상업적 경쟁에 의한, 자본에 의한 방송통제구도가 틀을 갖추었다.

그러나 점증하는 자본의 압박에 대한 방송계 내부의 대응은 미흡하기 짝이 없었다. KBS는 사내외의 진정한 공영방송이 되라는 시민사회의 요구를 우회하여 변칙적인 방법으로 실리만을 꾀했다. 험로가 예상되는 수신료 인상 대신 '한전 전기요금에 병과'라는 '편법'을 구사함으로써 근본적인 개혁을 수행하라는 시대적 요청을 피해나갔고,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들에 대한 집중투자를 통해 광고수주율을 높임으로써 수익구조의 안정을 도모했다. 그에 따라 임금이 올랐고, 방송민주화의 예봉도 무뎌지기 시작했다. 대다수 구성원들의 의식은 자유주의 수준에 갇혀버리면서 신자유주의 찬양 프로그램들이 양산되었고, '기계적 중립' 저널리즘이 새로운 통제이데올로기로 등장했다. 드라마와 예능 중심으로 시청률 경쟁이 본격화되고, 한국의 공영방송은 또다시 정체성 위기에 빠져들었다. 비록 KBS에 비해 상대적으로는 나았지만 MBC 역시 KBS와 유사한 타성과 정체에 빠져들게 된다. 가시적인 정치적 억압의 감소와 자본의 논리에 대한 불철저한 인식으로 인해 언론노조운동도 실리주의와 조합주의적 추세 속에서 자사이기주의에 매몰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추세는 때때로 반전의 계기를 맞기도 했다. 확고한 정치적 독립성,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선 공영성, 자본의 경쟁논리를 넘어선 공공성을 지향하는 움직임들이 간헐적으로 표출되었다. 2003년 현업 평PD들을 주력으로 한 KBS PD협회와 노조의 '개혁적 사장선임'과 KBS의 전면적 개조를 기치로 펼친 아래로부터의 개혁운동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한국사회를 말한다> <인물한국사> <미디어포커스> <시사투나잇> 등 프로그램 쇄신, 팀제도입을 통한 조직의 수평적 개편에 이어 인력재배치를 통한 효율성 증대, 시민사회에 대한 획기적 개방과 투명성 제고. 이를 바탕으로 범국민적 합의 아래 수신료 인상을 이끌어내고 공영방송 제도를 확고하게 정착시키자는 것이 그들의 지향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도 경영진의 근본적 개혁에 대한 불철저함과 무능,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로의 퇴행과 한나라당의 집요한 견제, 사내 기득권층의 반발과 저항에 의해 극히 부분적으로밖에 실현되지 않았다. MBC 내부의 공공성 지향세력들 또한, 전체 예산을 모두 광고에 의존해야하는 한계와 날로 격화되는 광고시장의 압박에 따라 근본적인 개혁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결국 한국 공영방송 시스템은 자본과 정치권력에 대한 고질적 취약성-과도하게 광고에 의존하는 KBS, 전액 광고에 의존하는 MBC, 교재수입으로 연명하는 EBS, 그리고 정권의 은밀한 통제 지속-을 고스란히 안은 채 이명박 시대를 맞이한다.


MB정권의 공영방송 죽이기

이명박 정권의 방송장악의 핵심은 바로 충분히 정착되지 못한 한국 공영방송 시스템의 완전해체에 있다. 먼저 KBS에 낙하산 사장을 앉히고, 어용노조를 당선시킨 후, 수신료 인상을 미끼로 삼아 이른바 '공영방송법'을 제정한다는 수순이다. 예산을 국회에서 사전승인 받게 하고, 보수인사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경영위원회를 신설해 이중의 통제구조를 갖추고, 그럼으로써 다시 과거와 같은 관영방송으로 복귀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아마도 내년 이후엔 구조조정을 빌미로 내부의 진보적 인사들에 대한 선별적 축출작업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MBC에 대해서는 주로 경제적 압박이 동원되고 있다. 소유구조를 공격해 직접적으로 민영화(사영화)를 협박하는 한편, 미디어법을 개정해 재벌· 족벌신문들을 중심으로 수많은 사영방송들을 만들 것이니 알아서 민영화하라는 것이다.

(100% 광고를 재원으로 운영되는 MBC의 경우, 다수의 경쟁매체가 등장하는 것 자체가 생존에 대한 극도의 위협이다. 게다가 이미 공영방송의 광고영업을 제약하는 방향으로 방송광고공사법의 연내 개정이 예정돼 있는 만큼, MBC가 공영체제를 유지하며 생존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광고시장이 줄고 분할될 것이니 살아남기 위해서는 공영방송이라는 제약을 벗어던지고 민영방송으로서 발가벗고 상업적 경쟁에 나서라는 의미이다.)

신경민 앵커와 <PD수첩>에 대한 몰상식한 탄압과 정부협찬광고의 사실상 중단-게다가 최근 불거지고 있는 기업들에 대한 정부기관들의 MBC광고 중단 종용설까지-등은 어떤 저항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노골적으로 표현한 서막에 불과하며, 이런 종류의 안팎 흔들기는 오는 8월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진 교체를 계기로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6월 미디어악법 통과, 8월 방문진 이사회 개편과 MBC 사장 교체, 9월(혹은 이후) 공영방송법 제정과 방송광고공사법(미디어랩 법) 개정, 11월 KBS 사장 선임…. 이 일련의 수순을 거쳐 지난해 진도를 나가지 못했던 방송구도재편을 완결하겠다는 것이 이명박 정권의 공공연한 음모이다. 그럼으로써 어느 정도나마 정착되어왔던 공영방송 시스템을 상업방송과 관영방송 이원체제로, 재벌·족벌신문복합체가 판치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들로 재편하려는 것이 그들의 복안이다.

이제 한국사회의 모든 방송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자본독재 도구로의 전락을 눈앞에 두고 있다. TV는 진실을 가리고 거짓을 유포하는, 억압을 가리고 가십이나 보여주는, 권력자들이 정해준 범위 내에서 '안전이 검증된' 인사들만 출연해 '안전하게' 토론하는, '편안한' 정보와 판타지들만이 돌고 도는, 탁류만이 흐르는, 영악한 바보상자로 온전히 복귀할 것이다. 과거처럼 조중동이 아침에 설정한 의제들을 낮 동안 화면으로 옮겨 저녁에 확산하는 장치에 불과할 것이요, 인터넷 공간과 시민사회의 의제들은 철저하게 외면될 것이다.(한국 언론에서 이미 사라진 것은 경제공황의 진실이요, 넘쳐나는 것은 낡은 신자유주의의 신기루뿐 아닌가!) 그리하여 유사파시즘 세력의 영구집권 기도에 봉사할 것이다.

그것을 막아내기 위해 방송계의 민주세력들은, 시민사회는, 촛불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제대로 꽃 한 번 피워보지 못한 한국 공영방송들은 이대로 종언을 맞이할 것인가?

미디어악법 통과가 예정된 6월. 저들의 시간이 한 발 한 발 다가오고 있다.

* 이 글은 인권재단 사람에서 격월로 발행하는 잡지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5·6월호에도 실렸습니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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